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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5)

beautician 2022. 1. 13. 12:16

ep5.  방어선

 

그러나 그렇게 로니와 암본인 마피아들을 포섭했다 해서 까마루딘이나 지역위원장의 공격을 영원히 막아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릴리를 등쳐먹으려다가 오히려 회사를 헐값에 넘긴 셈이 되었으니 절대로 쉽게 포기할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릴리의 사무실엔 보디가드들이 1층을 차지해 자리를 잡았고 쥬프리 대위는 광산에도 나이든 중사 한 명이 이끄는 세 명의 무장군인들을 상주시키며 광산 외곽 몇 군데의 초소를 운용했습니다.

 

코라밀 쥬프리 대위, 마피아 두목 로니, 정체불명 아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릴리가 두려움을 떨치지 못한 것은 분명했습니다. 대담한 척 행동할 수는 있지만 그런 분명한 위협에 전혀 개의치 않을 강철여인은 만화 속에서나 존재할 뿐이죠. 그녀는 아직도 충분한 방어력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언제 어떻게 공격받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암릴이란 친척 조카를 통해 특전사 코빠수스(Kopassus)와도 손을 잡았습니다. 유도선수 출신 암릴은 코빠수스의 무술교관이었어요. 이제 광산과 사무실에는 두 겹, 세 겹의 방어선을 친 셈이었습니다.

 

저 사람들 누군데?” 

 이야기는 다시  70대 노인과 30대 긴머리 빽구두를 스피리춸 씨큐리티라며 소개받던 장면으로 되돌아 갑니다. 이 스토리 참 멀리도 돌아갑니다.

 

 우리 안전에 도움을 줄 사람들이에요. 내일 아침 부식 싣고 들어갈 때 같이 데려가 줘요.”

 올라가서 무슨 일 시켜?”

 그건 로이 아빠가 알아서 할 거에요.”   로이 아빠란 그 짜맛 출신 형부를 말하는 겁니다. 로이는 릴리의 제일 큰 조카로 저 앞쪽 사진에서 앉아서 소총을 만지던 친구인데 당시 릴리의 대관서류를 담당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 트럭에 세 명을 더 싣고 올라가란 말이지?”

 내가 타던 차는 소말리아 반군들을 비롯해 전세계 무장세력들에게 사랑받던 토요타 하이룩스 더블캐빈 반트럭인데 남자 5명 이상은 탈 수 없었어요. 그들 세 명을 뒷좌석에 태우면 나와 운전사를 빼고 늘 데리고 다니던 보디가드 두 명을 끈다리에 두고 가야 한다는 의미였습니다. 짐칸엔 40kgs 짜리 쌀푸대 10개를 비롯해 광산에서 일하는 150명 직원들을 먹일 각종 식재료들이 가득 찰 테니 공간도 없을 뿐 아니라 길이 험해 짐칸에 사람이 타면 어느 산길에서 숲 속이나 벼랑 밑으로 튕겨져 나갈 터였습니다.

 

내가 타던 토요타 하이룩스 더블캐빈  

 

   미스터르, 걱정 마세요. 사실은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해요.” 

 나중에 그 말을 들은 다부진 체격의 운전수 시막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 공무원 임용을 기다리던 그도 릴리의 먼 친척이었습니다. 운전석 밑 가방엔 길이 40cm 정도의 끄리스 단검이 들어 있었고 나와 다닐 때에는 릴리가 준 권총이 든 세면백도 차 안 어딘가에 있었지만 정작 위급한 상황이 돌발적으로 벌어지면 그런 무기들이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릴리가 현장에 한 겹 더 구축하려는 방어선, 그 스피리춸 시큐리티는 로니의 정글도, 디스타로의 압축가스 쇠구슬탄을 쏘는 권총과 소총들, 코파수스와 코라밀 부대원들의 자동소총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임이 틀림없었지만 나로서는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누구나 다 워커나 등산화를 신고 올라가는 광산인데 저 사람들이 신은 엄지발가락 끼우는 슬리퍼나 끝이 뾰족한 늘씬한 빽구두를 보고 믿음이 간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동원해서라도 보안을 강화하려 한다는 측면에서 당시 릴리가 가지고 있던 불안과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 이해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새벽장을 보고 끈다리를 출발할 때 아직 릴리가 잠을 깨기 전이었습니다. 난 솔직히 그녀의 방식이 불만이었어요. 릴리는 늘 충분한 설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설명하지 않는 부분은 내가 알 필요가 없거나 모르는 게 낫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릴리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사업의 전체 그림을 결코 엿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또 다른 방어기제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설명이 지나치게 부족해 그녀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에게 어떤 일을 진행시켜 거기서 어떤 결과를 기대하는지 분명치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달리 생각하면 그건 그저 나쁜 버릇일 수도 있었습니다. 

 

릴리가 야심만만하고 수완좋은 사업가임엔 분명했지만 직관적, 감각적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 모든 서류작업과 절차들을 깔끔하게 처리해야 하는 행정가로서는 낙제점 근처를 맴돌곤 했습니다. 그래서 현장과 대관업무, 행정업무 등이 가능한 나나 로이, 또는 말레이시아 조호르 바루에 앉아 싱가폴에서 할 일들을 관리하고 해외 거래선들과 끊임없이 교신하며 마케팅의 중심축이 되고 있던 인디아인 동업자 나타샤 같은 사람들이 늘 주변에 필요했던 것입니다.

 

물론 릴리는 자기가 그렇게 대충 설명해도 내가 종국에는 모든 조각들을 짜맞춰 전체 그림을 파악할 것이라고 철썩같이 믿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기대했던 바대로 난 마침내 그녀가 인도네시아에 네 개의 광산법인과 한 개의 지주회사, 싱가폴에 한 개의 페이퍼 컴퍼니와 아무도 모르는 그녀의 은밀한 개인 회사 두 개, 그리고 인디아계 마케팅 회사와 만든 한 개의 합작회사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 각각이 어떤 허가와 자산을 가지고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대략 파악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후인 2015년의 일입니다. 내가 릴리를 위해 꼬나웨 산중을 헤맬 당시인 2013년엔 그 일부도 다 알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로이 아빠가 데려온 두 명의 남자에 대해서도 그랬습니다. 난 그들이 절대 보통의 씨큐리티일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릴리는 더 이상 설명을 해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의 행색이나 로이 아빠의 성향으로 보아 연예인이 아니라면 주술사가 틀림없었습니다. 그들을 광산에 데려가 뭘 해야 하려는 것인지 한심스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로이 아빠는 40대 시절 오랫동안 짜맛, 그러니까 면장과 군수 사이의 어디쯤 되는 공직을 맡아 어느 섬 하나를 관리했는데 그곳은 술라웨시 떵가라(동남부주)에서 진주와 흑마술로 가장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 두 남자도 그 섬 출신들이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