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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7)

beautician 2022. 1. 17. 11:43

ep7. 경찰서에서 총 쏠 배짱

 

그들이 올라가니 어쩌면 오늘부터 광산의 운이 대통해 모든 일이 더욱 순조로워질 거라는 생각을 아주 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아니, 최소한 더 나빠지진 않을 거라 생각했었죠. 하지만 토비메이타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듣게 된 소식은 이미 최악이었습니다.

 

로니 그 미친 놈이 경찰들 앞에서 총을 쐈단 말이지? 

당시 우린 디스타로의 현장 말고도 모셈파의 현장 두 군데를 더 돌리고 있었는데 베이스캠프엔 디스타로가 나와 우릴 맞으며 격앙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전한 소식은 지극히 충격적이었는데 늘 자신만의 꿍꿍이를 가지고 있던 그의 의도 역시 곰곰이 따져봐야 했습니다. 암본 정착촌 마피아 두목 로니는 모셈파의 운영이사가 된 후 더 이상 정글도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습니다. 릴리는 그가 자가용처럼 사용할 검정색 토요타 하이룩스 반트럭도 배정해 주었고 판공비 명목으로 늘 지갑을 두둑이 채워주었으므로 로니의 기세는 이제 하늘을 찌를 듯 했는데 거기에 디스타로가  동료가 된 걸 축하한다며 로니에게 권총을 하나 쥐어 주었습니다. 문제는 로니가 그날 새벽 산자락의 라솔로(Lasolo) 경찰서에서 그 권총을 발사해 어떤 사람 발에 쇠구슬탄 세 방을 박아 넣었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 인간이 왜?” 

디스타로가 전해준 얘기에 따르면 전날 밤 짜맛 사무소가 있는 큰 마을인 라솔로에 나갔던 정착촌 암본 처녀가 그 곳 양아치들에게 희롱 당하는 것을 마침 그곳에서 광산캠프용 물품들을 사러 깄던 로니의 부하들이 보고 대대적인 패싸움이 벌어졌다는 겁니다. 결국 경찰이 출동해 모두 잡아 가두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된 로니가 새벽에 차를 달려 라솔로 경찰서에 쳐들어가 유치장 안에서 로니 모습에 기겁을 한 상대편 양아치 두목에게 다짜고짜 총질을 한 것입니다.

 

그 미친 놈이 경찰을 쏘지 않은 게 다행이죠.”

아니, 경찰서에서 민간인이 총질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요?” 

두 말하면 잔소리로 로니는 그 길로 무장해제되어 유치장에 딸려 들어갔고 모셈파 현장의 암본 젊은이들은 대거 라솔로에 몰려가 경찰서를 때려부수자며 술렁거렸습니다. 이미 일단락된 상황에서 로니가 굳이 그런 무리수를 둔 것은 적에게 철저히 보복하는 모습을 보여 부하들, 아니 자기 부족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보이려 한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순히 그러지 않고는 넘길 수 없었던 성격파탄의 문제였을까요? 우리가 광산에 올라오는 동안 디스타로가 이미 릴리에게 보고했다고는 하지만 내가 직접 상황을 파악해 릴리에게 전화를 걸어야 할 타이밍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당신은 일 보시오. 이 분들은 내가 알아서 하지. 나중에 우리 찾으려면 베이스캠프에 물어봐요. 이 분들 숙소 구하면 여기 얘기해 둘 테니.”

로이 아빠가 그렇게 말할 때 두 사람 중 노인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피고 사람들 얼굴을 뚫어지게 살폈는데 빽구두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껄렁거리며 빙글빙글 웃고 있는 모습이 내겐 영 못마땅했습니다. 어쨌든 로이 아빠가 두 사람을 데리고 베이스 캠프 뒤의 샛길을 통해 어디론가 사라지고 시막이 사람들을 도와 하이룩스에서 쌀푸대와 식량을 내리는 동안 난 디스타로의 베이스캠프 직원에게서 오토바이를 하나 얻어 타고 예의 전화신호가 터지는 심빠티 언덕으로 달렸습니다.

 

“디스타로는 로니 패거리가 그쪽 현장에서 작업하는 게 배가 아픈 거에요. 토비메이타 현장에선 아무리 채굴해도 품위가 안 나오니 자기가 모셈파 현장을 하고 싶은데 로니 쪽이 이미 차지해 여의지 않으니까 암본사람들이 뭔가 사고치기만 기다리던 거라구요. 이렇게 될 게 뻔한데 로니한테 권총은 왜 줬대요? 그 인간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을 리 없어. 아무튼 미스터르가 직접 모셈파 현장 가서 암본사람들 달래서 일 시키고 디스타로한테 그쪽에 끼어들 기회를 주지 마세요. 그쪽에서 필요한 일들이 뭔지 찾아서 우선 다 처리하세요.”

 

상황은 그런 식으로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이젠 로니가 같은 편이 되었으니 디스타로의 현장 간이검사소에 레이저로 원석의 품위를 즉석에서 측정하는 니콘장비도 구비되어 있어 로니의 현장에서도 매일 쌤플들을 보내와 품질검사를 하며넛 서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면에서 서로 조율하며 일을 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 친구들은 사실 등 뒤에 비수를 감추고 주도권 싸움을 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모셈파의 현장 두 곳 중 하나는 페리라는 경험많은 컨트렉터와 계약해 도급을 준 상태였고 또 다른 현장에는 임대해 온 중장비를 제외하고는 전원 암본 정착촌 젊은이들이 투입되어 몸으로 부대끼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대홍수 때 토비메이타로 들어가던 접근로에서부터 눈의 띄었던 로니의 암본 정착촌 사람들은 끊어질 듯 위태로운 다리에 차가 지나도록 신호해 주며 통행료를 받거나 진흙탕이 되어 미끄러운 오르막길에서 간이 포털을 설치해, 간신히 올라가는 오토바이들에게 돈을 뜯는 양아치 짓을 하고 있었는데 땀을 흘린 대가로 건전한 보수를 받고 있는 친구들을 보니 나름 대견했습니다.

 

하지만 대장인 로니가 없다면 거친 이 사람들을 통제하긴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수하르토 정권이 이주정책을 통해 사람들을 산간오지와 극한의 섬에서 국토개발을 시도할 당시 이에 응해 인도네시아 전국 구석구석까지 들어갔던 암본인들이 척박한 토지와 토착민들의 텃세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외지인들인 그들은 종족이기주의를 기반으로 한 전투적 성향을 발현시키곤 했는데 토비메이타의 암본 마피아들은 그 파생물인 셈이엇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암본 마피아들의 근거지나 다름없는 채굴현장에 들어가는 게 사실 썩 내키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로니 일은 내가 알아서 조치할 테니 현장에서 로니 부하들 동요하지 않도록 잘 다독거려 줘요.” 

다시 토비메이타에 돌아가 짐을 부린 하이룩스를 타고 모셈파 로니의 현장에 들어가 보니 동요하고 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중장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채광이 한창이었고 우리가 들어가던 길에도 번호판을 달지 않은 20톤짜리 광산용 트럭들 몇 대가 스치듯 지나 제티 방향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마카사르 지역사령부에서 라솔로 경찰서에 전화해 줬다고 들었어요. 거기 우리 보스랑 잘 아는 장군님이 계시거든. 경찰서에서도 거절하기 어려울 테니...,, , 아마 문제없이 나올 거에요.” 

로니에 비해서는 훨씬 점잖아 보이는, 부두목쯤 되는 남자가 현장 사무실에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릴리가 벌써 그렇게 조치했거나 로니가 원래 그쪽으로 선이 닿아 있던 것이었겠죠. 로니는 이미 10여년 동안 이 지역에서 자충우돌하며 힘을 키우면서 까마루딘이나 그 지역위원장까지 알고 지냈는데 마카사르의 육군 장군을 안다고 해서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습니다. 군경이나 지방정부 입장에서도 공권력이 효과적으로 미치지 못하는 산간오지에서 로니 같은 사람들을 관리하거나 부추겨 현지에 영향력을 행사해 통제하는 것이 어쩌면 더욱 효율적이란 계산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로니 신변에 이상이 생겨 현장 통제력을 상실할 경우 그 영향력을 재건하기 위해 또다시 시간과 돈을 들이는 것보다 로니를 꺼내 줘 기존의 세력구도를 지속하는 것이 더욱 유리할 터였습니다. 그것이 로니가 경찰서에서 총질을 하는 배짱을 부린 배경이었죠.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얼마 후 경찰서를 유유히 걸어나왔습니다.

 

그런데 원래는 우리 보스가 새벽에 경찰서에 갈 게 아니라 저 배에 갔어야 했어요. 이 우기에 습기가 많은 거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똥깡 두 개를 붙여 놨는데 습기 때문에 돌려 보내겠다고 난리거든요.”

 

 

당장 니켈 선적에 문제가 생긴 겁니다. 로니가 경찰서에서 총을 쏴댄 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치고 선적은 당장 돈의 문제였습니다. 선적이 안되면 일은 엄청나게 꼬이게 됩니다. 계약 불이행 문제를 떠나서 똥깡이나 본선에 대해 천문학적인 데머리지를 내야 할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내가 오늘 바다에도 나가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새벽부터 출발해 두꾼들까지 모셔왔는데 영빨이 받지 않는지 상황은 오히려 점점 더 꼬여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들이 하겠다는 영적 보안강화는 운이 좋아지는 것과는 별반 관계가 없는 것이었을까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