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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4) 본문
ep4. 위태로운 동행
하지만 2013년에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미 5년을 유예한 원석수출금지조치의 발효가 2014년 1월로 다가오면서 그전에 가능한 한 많은 물량을 실어내려 하면서 중국을 위시한 전 세계 벌크선들이 몰려들면서 북부 꼬나웨 주 모롬보(Morombo)만이 대형 선박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습니다.
릴리 역시 다잇 니켈 광산 세 군데에서 직접 또는 도급으로 맹렬히 채굴작업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물량을 대지 못해 애를 먹던 차였습니다. 니켈의 품질은 황이나 실리카에 영향을 받지만 대체로 원석상태에서 순도 품위가 2%만 나와도 최상품 취급을 받습니다. 벌크선에 싣는 5만톤에 함유된 니켈이 1천톤만 되어도, 그러니까 나머지 49,000톤이 쓰레기라도 이미 최상품이란 얘기입니다. 제련소에서 품위를 높인 후 수출한다면 이런 엄청난 비효율을 줄일 수 있을 터였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원석수출을 금지하려는 것이었지만 어쨋든 돈이 되는 사업이니 엄청난 숫자의 크고작은 개인 사업체들이 개미떼처럼 광산에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릴리의 광산에서 나오는 니켈 품위는 평균 1.9%~2.2% 정도로 측정되었는데 그건 노천광에서 굴삭기로 그냥 파 올려 싣기만 해도 돈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생산이 시작되자 실제로 측정된 품위는 1.3% 전후였습니다. 그 품위로는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때로는 인수거부를 당할 수도 있오 투입된 생산비를 커버할 수 없었습니다. 릴리는 현장소장 디스타로가 장난을 친다고 의심했습니다. 그 권총 차고 다니는 친구 말입니다. 실제로는 높은 품위가 나오는 물량의 검사서를 위조해 광산주에게는 저품위인 것처럼 보고하고 그걸 비싸게 팔아 차액을 챙기는 야바위가 광산 현장에서는 공공연히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릴리가 날 불러들인 이유는 현장소장 말고 완전한 자기 편, 그것도 얕잡아 보이지 않을 만한 누군가가 현장에서 채굴진행과 품위검사를 객관적으로 모니터링 해주길 바랬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릴리는 ‘모셈파’라는 현지 광산회사의 대지분을 매우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했습니다. 약 300헥타르에 달하는 그 광산은 디스타로의 현장에서 40분 정도 거리에 있었고 이미 도급 컨트렉터 3개 회사가 그 지역에서 채굴한 원석들을 모셈파 명의를 빌려 수출하고 있었습니다. 모셈파는 수출을 위한 각종 허가를 받아주는 조건으로 수출물량에 대해 톤당 5불 전후의 로열티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어쨋든 이미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건 거기서 니켈 원광의 품질이 검증되었음을 뜻했습니다. 디스타로의 현장에서 오더 물량을 대지 못하자 릴리는 모셈파에서 물량을 대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절박한 순간에 꼭 필요한 해결방안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코 앞에 나와 있다면 그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십중팔구 사기꾼들의 함정일 공산이 큽니다.었던 것입니다. 우연이란 절대 그런 식으로 벌어지지 않으니까요. 니켈을 사겠다고 돈 들고 찾아오는 바이어들이 넘쳐나던 시절, 그렇게 간단히 대지분을 매각할 니켈광산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사탄이야말로 천사의 영광을 입고 나타난다는 성경 속 말씀처럼 릴리의 발목을 잡을 함정이 가장 달콤한 형태로 유혹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해 하반기는 지방단체장 선거의 열기가 뜨거웠고 술라웨시에도, 끈다리에도, 북부 꼬나웨와 왕구두와 모롬보에도 수많은 후보들이 단체장 선거에 나섰습니다. 그들 중 훗날 강력한 대통령 후보를 냈던 한 전국정당의 지역 위원장도 엄청난 물량을 투하하며 선거운동을 펼치고도 낙선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이권에 도를 넘게 개입하며 선거자금을 끌어쓰고 뒤처리를 거칠게 한 결과 송사가 줄을 잇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채권자가 실종되거나 사고를 당해 입원하는 등 그와 대립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사하지 못했습니다. 그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온 끈다리와 꼬나웨에 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엇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가 모셈파의 지분의 5%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지분매각을 승인해 주지 않았어. 모셈파 매각은 무효로 돌릴 수 밖에 없네. 미안한 얘기지만 그분은 이 거래에 불법적인 의도가 개입되었다고 보고 이미 지불한 대금은 돌려줄 수 없다 하시네. 부당하다 생각되면 소송을 통해서 자네 입장을 주장해야 한다고 봐.”
모셈파의 대주주였던, 그러나 지금은 릴리에게 해당 지분의 대부분을 팔아넘긴 까마루딘이 릴리의 끈다리 사무실을 찾아와 한 말입니다. 짧달막한 키에 숱 많은 머리를 2:8 가르마로 넘기고 콧수염을 기른 이 노인은 인도네시아 부통령 유숩깔라와 매우 흡사해 보이는 지혜로울 듯한 외모를 하고 있었지만 하는 말은 부당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자기 지분을릴리에게 돈받고 팔고서 하는 말이 5% 지분의 그 분, 즉 그 정치인이 동의하지 않으니 거래는 무효이고 돈도 돌려주지 않겠다니 말입니다. 지분인수를 위해 릴리가 지불한 돈은 100만불이 족히 넘었고 그 돈은 니켈 바이어들로부터 받은 선금에서 충당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미 중장비를 모셈파 광산에 추가 투입해 채굴한 원석으로 5만 톤짜리 벌크선 한 척을 거의 다 채운 상태였습니다. 까마루딘의 말은 릴리가 지분인수를 위해 지불한 돈은 물론 그간 릴리가 충당한 생산과 운영비용, 그리고 모셈파 명의로 수출될 저 벌크선의 수출대금까지 자기가 거저 먹겠다는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뒷목을 잡고 넘어갈 줄 알았던 릴리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지분 5%뿐이고 아저씨는 아직 44% 갖고 계신데 그분을 마치 상전 대하듯 하시네요.”
“사업가가 어떻게 정치가를 이기겠나?”
“지분거래는 아저씨가 계약서에 서명하셨고 법무사 공증도 끝났어요. 만약 거래를 번복하시려면 당연히 지분을 다시 되사셔야 되잖아요? 물론 저는 되팔 생각이 없어요.”
“그분이 선거에서 졌다고 힘도 없어진 거 아닐세. 자넨 아직 앞길이 창창한데 잘 생각해야지. 신중하게 처리해야 할 거야.”
“아저씨 뜻은 잘 알겠어요. 다음 주까지 제가 알아서 잘 처리해 둘게요.”
“그래야지. 그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면 그분이 아무리 강경하게 나와도 내가 자네 큰 손해 보지 않게 선처해 줄 수 있네. 그러니 잘 처리해서 연락 주게나.”
까마루딘은 아무리 릴리가 겉으로 태연해 보여도 내심으론 분명 겁을 먹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간 후 릴리가 한 일은 법무사를 불러 주주총회 서류를 까마루딘과 ‘그분’을 이사와 감사에서 해임한 것으로 정리하고 다른 사람들로 대체해 모셈파의 정관을 새로 만들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대주주로서 그렇게 할 권리가 있었고 까마루딘의 그 정도 협박에 간단히 물러설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한 판 붙어 보겠다는 전의가 활활 불타올랐던 것이죠.
그러나 릴리가 그렇게 조치했다는 정보는 너무나 간단히 새어 나갔습니다. 그 정관의 초안이 채 잡히기도 전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까마루딘은 릴리에게 전화를 걸어 노발대발 소리를 질러댄 것입니다. 매수당한 법무사가 정보를 흘린 게 아니라면 도청 당했을 것이라고 릴리는 의심했습니다.
“아저씨가 그리 말씀하셔도 제가 아저씨 존경하는 마음은 변함없어요. 그러니 내가 거꾸로 아저씨 지분 내놓으라고 협박하진 않을 거에요. 오히려 그 지분 꼭 지켜드리고 배당도 두둑이 드릴게요. 전 법을 지키면서 사업을 할 거에요. 세금도 꼬박꼬박 내고요. 그분이 아무렇게나 지어내는 이상한 법 말고, 이 나라 국회에서 만든 법을 지킬 거라고요.”
그 다음날 일단의 남자들이 릴리의 끈다리 사무실로 우르르 몰려 들었습니다. 당연히 ‘그분’이 배후였겠지만 실제로는 사주를 받은 까마루딘이 보낸 사람이었죠. 하지만 릴리 역시 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말 누굴 절단내려 했는지는 몰라도 정글도와 죽창을 들고 릴리의 사무실이 있는 루꼬의 철문을 두드려대던 그들은 루꼬 안에서 나온 군인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당장이라도 사격할 듯 겨누진 않았지만 군인들은 장전된 자동소총을 겨드랑이 밑에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인근에 꼬라밀(Koramil)이라 부르는 중대 규모 육군분견대에서 온 군인들이었는데 그곳 분견대장 쥬프리 대위도 릴리의 먼 친척 아저씨였습니다.
“커피 한 잔 할래요?”
그 앞에 대담하게 나선 릴리는 그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시커먼 남자를 사무실로 불러 들였습니다. 그 남자는 꼬나웨와 왕구두에서 악명을 떨치던 '로니'라는 이름의 깡패 두목으로 릴리 역시 익히 이름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위험한 사람인 만큼 맞서기보다는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이는 것이 상책이었는데 그건 릴리가 가장 잘 하는 일 중 하나였습니다.
“그 나이 먹도록 그렇게 칼이나 들고 행패부리며 살 거에요? 아니면 가족들이나 마을사람들한텐 물론이고 외부인들한테도 진심으로 존중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 남자는 이전에도 그런 얘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번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다루기 힘든 양아치들을 자기 밑에 끌어들여 복종시키려는 수작에 불과했고 실제로 부탁한 일이 끝나면 개한테 먹이 던지듯 약속한 돈을 던져주긴 하지만 쓰레기 취급, 위험물 취급하는 것은 여전했습니다. 그는 이제 그런 감언이설에 넘어갈 사람이 아니었어요.
“이년이 사람을 뭘로 보고.....!”
“너 머리에 구멍 난다.”
로니가 당장 릴리에게 당장 달려들지 못한 건 커피 테이블 건너 릴리 옆에 앉아있던 쥬프리 대위가 무릎 위에 꺼내 쥐고 있던 권총 때문이었습니다.
“누구 부탁받고 몰려 다니며 사람들 협박하는 것보다 그 대신 우리 광산을 관리해 주는 건 어때요? 보호가 아니라 '관리'요. 당신 부하들도 모두 취직시켜 줄게요.”
“깡패들한테 광산관리를 맡긴다고?”
“당신 하기 나름이지. 당신 월급도 챙겨 줄게요.”
“사람 갖고 놀지 마!”
그는 콧방귀를 뀔 뿐이었어요. 그러자 릴리는 핸드폰을 꺼내들었습니다.
“정관 초안 다 됐어요? 그거 조금 고쳐줘요.” 그녀는 그 자리에서 법무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거기 이사 이름 하나만 바꿔주세요. 새 이사 이름은 로니 토마스 레프왈루. 주민증 사진은 곧 찍어서 보내드릴게요.”
로니의 입이 딱 벌어졌습니다. 릴리가 그 자리에서 모셈파의 운영이사로 채용한 로니는 꼬나웨 지역에서 악명을 떨치던 암본 출신 마피아 두목이었어요. 그건 분명 위태로운 동행의 시작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니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 것은 당시 릴리에게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로니는 인근 기업들의 기피대상이던 암본인 정착촌의 양아치와 다름없는 젊은이들을 모셈파 광산현장의 직원으로 대거 취직시키면서 정착촌 ‘족장’으로서 위신을 높였고 릴리는 로니의 마피아를 광산을 보호할 첫 번째 울타리로 만들면서 까마루딘과 지역위원장에게 카운터 펀치를 날렸습니다. 물론 로니가 릴리에게 목숨을 바쳐 충성을 바칠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광산이 수익을 내서 로니의 주머니를 두둑이 채워주는 한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릴리는 생각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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