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망간 7

인도네시안 드림 (10)

ep10. 에도 그때 최사장이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산만하게 진행하던 모든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망가진 상태였고 그나마 기대를 걸 수 있는 곳은 반뜬 주의 말링핑, 바야 지역뿐이었어요. 비록 메락(Merak) 톨을 통해 세랑(Serang)을 지나 편도 4시간 가까이 비포장 도로를 차로 달려야 하는 곳이었지만 그나마 최사장이 진행하던 다른 지역에 비해선 가까운 펀이었고 관리도 용이했습니다. 그러나 최사장이 그곳에 상주하려 하지 않았고 김부장이나 최사장 동생도 이미 회사를 떠난 상태였으므로 최사장은 현지에 상주하며 현장업무를 맡을 직원을 구해달라고 나에게 또 요청해 왔습니다. 마침 그때 메이의 오랜 애인이었던 에도(Edo)가 반년간의 파푸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자카르타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똘똘해 보이는 외모..

인도네시안 드림 (8)

ep8. 진실게임 발릭빠빤으로, 말링핑으로, 인도네시아 온 천지를 돌아 다니며 최사장의 납 원석 사업을 도우면서도 나도 이번만큼은 미용사업의 고삐를 더 이상 늦추지 않았습니다. 내가 H 그룹의 현지공장에 처음 부임할 당시 취학 전이었던 아이들은 내가 독립할 때 잠시 귀국했다가 각각 초등학교 4학년과 5학년을 마치고서야 다시 자카르타에 합류했는데 최사장 일을 봐줄 즈음엔 큰 애가 벌써 고3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내 생활을 책임져 주지 않는 것처럼 내가 돈을 벌지 못하면 아이들 대학 등록금도 내지 못할 텐데 그런 상황이 이제 코 앞에 닥쳐와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간 노력이 빛을 보아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반둥의 큰 도매상과 거래를 트고 연이어 현지 미용업계에서는 제일 규모가 큰 로레알에도..

인도네시안 드림 (3)

ep3. 불법체류 내가 입주한 최사장의 끌라빠가딩 사무실은 루꼬(Ruko)라고 부르는 주상복합 4층짜리 소형 유닛 두 개를 튼 4층짜리 건물의 2층이었습니다. 그 당시 북부자카르타의 중심지인 끌라빠가딩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어요. 자카르타 고급 몰 순위에도 들지도 못하던 작고 허름한 끌라빠가딩 몰은 증축을 거듭하면서 이제 자못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게 되었고 지역 전체에 건축붐이 일면서 수많은 아파트들과 루꼬, 상업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좀 더 나중의 일이지만 기존의 창고형 할인매장인 마크로(MAKRO)도 2010년 롯데마트가 인수하여 새롭게 리모델링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고 끌라빠가딩은 이제 자카르타 전역에서도 내로라 하는 노른자위 상권으로 떠오른 지 오래입니다. 내가 입주한 루꼬 단지는 이..

인도네시안 드림 (1)

1. 파산 이후 다양한 스펙트럼의 업종과 사업현장들을 돌고 돌다가 디자인 회사 봐주던 일을 막 그만 두게 되었을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사업이나 봐주는 바보짓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정말로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달리 먹고 살 방법이 없다면 어떤 일이든, 그 대가가 얼마이든,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래서 파산 후 반둥공장 꼬린 가멘타마에 헐값으로 팔려 갈 뻔 했던 것도, 박치기 대마왕이 지배하던 빠룽의 봉제공장에서 자존심의 시련을 겪어야 했던 것도, 골프샵에서 사장 첩의 집사 노릇까지 감수해야 했던 것도 그 만큼 절박했기 때문이었죠. 그리고 그런 막다른 골목에서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은 그 뒤끝이 한결같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디자인 회사의 운영을 맡게 될 즈음의 상황은 분명 달라지기 시작했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