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인도네시안 드림 (10) 본문
ep10. 에도
그때 최사장이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산만하게 진행하던 모든 프로젝트들은 대부분 망가진 상태였고 그나마 기대를 걸 수 있는 곳은 반뜬 주의 말링핑, 바야 지역뿐이었어요. 비록 메락(Merak) 톨을 통해 세랑(Serang)을 지나 편도 4시간 가까이 비포장 도로를 차로 달려야 하는 곳이었지만 그나마 최사장이 진행하던 다른 지역에 비해선 가까운 펀이었고 관리도 용이했습니다. 그러나 최사장이 그곳에 상주하려 하지 않았고 김부장이나 최사장 동생도 이미 회사를 떠난 상태였으므로 최사장은 현지에 상주하며 현장업무를 맡을 직원을 구해달라고 나에게 또 요청해 왔습니다.
마침 그때 메이의 오랜 애인이었던 에도(Edo)가 반년간의 파푸아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자카르타에 돌아와 있었습니다. 똘똘해 보이는 외모의 에도는 당시 30대 중반을 향해 달리고 있었는데 전화국 교환원을 거쳐 한동안 채무해결사 일도 했고 TV 드라마 엑스트라나 단역으로 나오기도 했으며 그 후엔 이동통신 프리렌서 일을 하는 삼촌을 따라 인도네시아 전국을 돌아 다니며 기지국 안테나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수마트라 빠당(Padang) 출신인 그는 수 년 전 자카르타에서 있었던 누나의 결혼식 때 고향에서 아버지 쪽 수십 명의 친척들이 타고 오던 임대버스 2대가 벼랑에서 굴러 떨어져 전원 사망하는 교통사고도 겪었다고 합니다. 이혼한 아버지가 새로 맞이한 자애로운 새엄마 밑에서 자란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새엄마와 친엄마 두 분을 함께 모시며 일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었답니다. 그러다가 당시 데뽁(Depok)에서 작은 핸드폰 가게를 운영하던 메이를 만나게 되지요.
그는 정직해 보였고 메이도 강력히 추천했습니다. 그래서 최사장에게 채용을 두 번 다시 번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고 에도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에도가 최사장을 위해 하게 된 일은 바야 지역의 납 원석 선별장을 감독하고 원석 구매를 위한 수시 시장조사를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상한가를 경신하던 국제 비철시세는 새해가 되면서 곤두박질치기 시작해 납 가격은 상한가 대비 3분의 1 이하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바야에 선별장을 확장하겠다며 기존 선별장 인근에 5,000sq.m 대지를 새로 2년 임대한 것이 석연치 않았습니다. 그쪽에 더 돈을 더 퍼넣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지금이 오히려 기회라구요. 남들이 다 손을 뗄 때 바야 지역을 장악해 버리면 나중에 가격이 정상화될 때 우리가 선두주자가 될 수 있어요. 장기적으로 투자해야죠.”
더욱 악화되는 시장상황과 최사장의 주머니 사정으로 보아 장기적인 투자보다는 당장 돈이 되는 일을 해야 할 텐데 최사장은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바야의 대지 임대료는 자카르타에 비해 10분의 1도 안되는 수준이었지만 그는 임대료를 뭉치돈으로 치르고 에도를 시켜 임대한 대지에 대나무 말뚝을 둘러 박아 경계표시를 했습니다. 파도가 부서지는 그림같은 해안이 멀리 내다 보이는 넓은 대지는 그럴 듯 해 보였어요. 그리고는 최사장은 해외에서 들어오는 손님들, 투자자들을 데리고 자동차 타이어가 닳도록 바야 선별장으로 데려가 사업설명을 했는데 그때 방문한 사람들 중에는 기존 발릭빠빤 실리카 광산에 투자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자트로파 착유기를 보내왔던 중국공장의 조선족 사장과 소개해 준 부산의 김사장, 그리고 상해 파이넌스 회사에서 온 류상무도 있었습니다.
류상무는 국내 유수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후 현재의 상해소재 한국계 파이넌스 회사에 스카우트 되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중국에서 그의 회사가 돌리던 막대한 자금이 홍콩의 한 광물수입회사에도 대출되었는데 인도네시아 철광석 수입이 몇 차례 실패를 보면서 대출금 회수가 이루어지지 않자 류상무는 이제 사고처리 차원에서 그의 회사가 주계약자로서 직접 철광석 수입을 진행하고 홍콩 회사는 브로커가 되어 나중에 해당 거래에서 발생할 커미션으로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기로 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최사장을 통해 나와 릴리를 소개받았고 이미 깔리만탄(Kalimantan)지역의 석탄, 철광, 망간, 납, 니켈 등의 광산과 소유주들을 꿰고 있던 릴리가 철광석 광산회사와의 미팅에 참석해 류상무에게 도움을 주었죠. 모든 것을 숫자로만 처리했던 류상무로서는 거래 타당성을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해야 하는 현장실무에는 당연히 약할 수 밖에 없었는데 시장상황과 가격동향은 물론 현지 광주들의 신용도와 거래실적들을 오래 전부터 파악하고 있던 릴리가 류상무의 나침반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릴리는 아무런 대가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나를 돕는 일이라 생각했던 거죠. 특히 릴리는 그 당시 공식적으로 인디아의 상장기업인 한 대형 그룹회사의 현지 독점 파트너가 되어 있었으므로 릴리의 참석 자체가 신빙성을 높였고 소개자 자격이었던 최사장의 신용도도 한껏 끌어 올렸습니다.
그의 출장 끝물에 최사장은 류상무에게 납 원석사업 투자를 요청하면서 바야 지역의 선별장을 보여 주었습니다. 상해로 돌아간 류상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결정을 내리고 최사장에게 첫 투자대출금 미화 6만불을 송금해 옵니다. 그것은 최사장으로서도 기대 이상의 성공이었고 나 역시 이로서 그 동안 꼬이고 꼬였던 최사장의 사업이 류상무 회사의 자금지원에 힘입어 서서히 풀려 나가기를 기대했지요.
그러나 늘, 기대와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류상무가 보내온 돈은 수출용 납원석 컨테이너 10개 분량의 구매자금과 관련 운영경비였습니다. 류상무의 자카르타 출장기간 동안 최사장은 해당 물량을 2주일 안에 선적할 수 있다고 자신했어요. 그러나 실제로 선별장 부지는 울타리만 둘렀을 뿐 기존의 작은 선별장에서도 자금부족으로 원석을 사들이지 못해 일용직 직원들을 거의 다 내보낸 상태였으므로 2주일의 기간은 200톤 물량을 만들기 위해 원석 300여톤을 사고 선별장으로 가지고 와 뿌려 놓고 일용직 직원들을 다시 수배해 선별하고 컨테이너를 불러 싣고 선적까지 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만류해 보았지만 최사장은 절대 문제 없다며 자신감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류상무의 송금이 입금된 지 열흘이 다 되어 가도록 이미 상당한 물량의 원석을 구매했어야 할 최사장은 자카르타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에도에게만 좋은 원석을 찾아 보라고 지시해 놓고 한 컨테이너 물량 구매대금도 되지 못하는 2천만 루피아(약 2천불)만 바야에 남겨 놓은 상태였어요. 이미 시간상 열 컨테이너는커녕 그 반도 처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므로 류상무의 확인독촉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고 난 최사장에게 최소한 한 두 컨테이너라도 급히 작업해 내보낼 것을 건의합니다. 그래서 약속한 2주일의 시한을 불과 3~4일 남겨놓고 에도가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순도 60%는 보장할 수 있는 원석이에요. 가격도 kg 당 2천 루피아 정도라니 굉장히 좋고요. 당장 10톤 정도를 구할 수 있지만 한 두 시간 내에 결정을 내려주지 않으면 다른 데 팔릴 지도 몰라요.”
그날 에도가 아침부터 바야에서 나와 최사장에게 전화하며 조속한 결정을 촉구하고 있었어요. 그런 상황이라면 최사장은 당장 바야에 달려가 물건을 확인하고 구매 결정을 내렸어야 하는데 오전에 미팅 약속이 있다며 모든 결정을 오후로 미루었던 그는 에도가 족히 20번은 넘게 전화했을 오후 4시경 양프로가 있는 가딩마스 골프 연습장에 가 있었습니다.
“배사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라고 할까요?” 최사장은 오히려 전화로 내 의견을 묻고 있었습니다.
“사장님이 사용할 원석을 사장님이 운용하는 자금으로 사는 거고 에도도 사장님 직원인데 그건 전적으로 최사장님이 결정할 사안이지요. 에도가 사장님과 연락이 잘 안된다고 해서 나는 말씀만 전달해 드리는 것뿐이에요.”
“그럼…, 지금 있는 돈으로 사라고 하세요.”
사라는 말 정도는 최사장이 직접 에도에게 전화하여 말할 수도 있는 것인데 그는 굳이 내가 중간 연락책 역할을 맡아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는 문제가 터집니다.
며칠 후 최사장과 함께 방문한 바야의 선별장에는 에도가 구매한 납 원석 포대자루가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대 몇 개를 열어 본 결과 제품 상태는 에도가 전화로 얘기한 것과는 영 딴판이었어요. 60% 정도의 순도를 낼 만한 원석은 전혀 없었고 40% 정도나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불과 1톤도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9톤은 순도 5%도 기대하기 어려운 짱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최사장은 노발대발 화를 냈고 에도의 낯빛도 노랗게 변했습니다.
당시 최사장이 선별장 겸 바야 사무실로 연 800만 루피아에 임대하고 있던 집은 현지 경찰서장소유였습니다. 그 경찰서장의 아들이 현장 직원으로 에도 밑에서 일을 했고 동네 통장인 RT를 선별장 감독으로 최사장이 뽑아 놓은 상태였고요. 에도는 구매 당일 결정이 오후 늦게 내려지자 급히 직원 경찰서장 아들과 함께 원석채굴업자의 창고로 달려 갔고 아침에 봤던 포대들을 두 군데의 창고를 오가며 구매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오후 6시가 지나며 땅거미가 내렸겠죠. 조명이 충분치 않은 현장에서 제대로 제품검사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구매 책임을 맡았던 에도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최사장이 언성을 높이자 같이 따라갔던 직원도 에도가 독단적으로 구매를 했다며 에도를 비난하기 시작했지요. 최사장은 에도가 예전 김부장처럼 짱돌을 사면서 차액을 빼돌렸을 거라고 매도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인지하는 상황은 사뭇 달랐습니다. 어차피 팔은 안으로 굽는 것. 경찰서장이나 아들이나 채굴업자들은 모두 바야 사람들이고 최사장이나 에도는 모두 외지인이었죠. 어둠이 내린 틈을 타 좋은 원석을 보여주고 짱돌포대들을 트럭에 싣는 현지 채굴업자들의 전형적인 방법에 에도가 놀아난 것이고 그것을 함께 감독해 주었어야 하는 서장 아들이 못본 채 눈감아 주었을 가능성이 오히려 더 높았습니다. 그 후 따로 만나 본 채굴업자 두 명이 에도로부터 2천만 루피아를 받았다고 시인하고 에도에게 끊어 준 영수증 사본도 보여 주었지요. 에도가 뒤로 돈을 챙기지 않은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에도는 아무런 이익도 생기지 않는 사고를 일부로 저지른 것일까요?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에도는 최사장이나 최사장 동생, 김부장, 그리고 원석을 구매해 본 수많은 업자들이 겪었던 것과 같은 현지업자들의 뻔뻔스러운 수법에 농락당한 것입니다.
원석이란 것은 공산품처럼 품질이 균일할 수 없습니다. 선광기를 사용하여 허용오차를 줄이는 것은 가능할 수 있어도 백이면 백, 만이면 만포대의 원석을 똑 같은 순도로 포장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납이나 망간은 석탄과 달리 폭이 좁은 광맥을 따라가야 하지만 사람이 들어가서파내야 하니 갱도의 폭과 높이는 사람의 덩치를 기준하게 되지요. 그래서 갱도에서 나오는 돌들은 비단 납 원석뿐 아니라 일반 돌들이 대량 섞이기 마련이고 불법채굴업자들은 기왕에 힘들여 파낸 짱돌들도 납 원석에 끼워 팔려고 온갖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서 그런 장난이 판치는 곳에서 노련한 구매자는 알짜와 짱돌을 어쩔 수 없이 함께 사면서 가격을 후려치는 것이고 최사장이나 그의 동생같이 미숙한 사람들은 짱돌들만 비싸게 사들이곤 하는 것입니다. 에도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에도가 사고를 낸 금액은 2천만 루피아. 그러니까 한화 200만원 쯤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나 최사장은 바야에서 자카르타로 돌아오는 4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거품을 물고 에도의 욕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그를 소개해 준 내 입장이 무척 곤혹스러웠어요.
“지금 돈 빠듯할 때에 지 뒷돈 챙기겠다고 하루 종일 전화해 졸라 대더니 저 해 놓은 꼴 좀 보세요. 이 나라 놈들 하는 꼴이라니…, 반납도 하지 못할 걸 쌩돈을 주고…., 2만불 돌려서 열 컨테이너 만들어야 하는 판에…” “2만불이요?”
내가 정색을 했습니다. 최사장은 항상 다변을 자랑했지만 말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그렇듯 언중유골, 취중진담 식으로 그 말 속에 진심이나 실상이 살짝살짝 비치기 마련입니다. 류상무가 보내준 6만불이 풀빵 꺼지듯 2만불로 대폭 줄어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돈을 효율적으로 써야죠. 2만불이면 될 걸 6만불 다 처들일 필요가 없었던 거에요. 다섯 컨테이너 먼저 보내고 B/L 제출하면 바로 결재 나오니까 그걸 다시 돌려 구매하면 2만불도 남죠. 다른 급한 경비들도 많은데 어떻게 바야에만 그 돈을 다 퍼붓습니까? 그리고 류상무도 그 돈 몇 푼 보내 줬다고 이래라 저래라 할 권리는 없는 거에요. 어차피 내가 내 이름 걸고 받은 돈, 이자 쳐 주고 이익 내서 돌려주면 되는 거지 돈 쓸 때마다 일일이 상해에 허락받을 수는 없는 일이에요.”
최사장은 전에도 비슷한 취지의 말을 하곤 했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대충 알 것 같았습니다. 납 원석사업은 늘 이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일이고 대개의 경우 낙장불입이라 불법체굴업자가 그 짱돌들을 되사갈 가능성은 전혀 없었으므로 다음 번 구매에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실수 없도록 해서 전체적인 평균 구매가를 예산에 맞추어 가는 것이 최선이지요. 그러나 최사장이 지금 저렇게 열변을 토하며 분개하고 있는 이유는 류상무가 보내 준 6만불이 이미 자카르타에서 공 밀린 차량 렌트비, 아파트 관리비, 생활비, 외상 술값 등을 갚는데 대부분 공중분해되어 버린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그 중 가장 큰 부분은 호주에 보내는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였겠죠. 그렇다고 돈이 모자라니 더 보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남은 돈 2만불을 어떻게 잘 돌려 6만불어치 구매효과를 내 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하고 있던 차에 발생한 문제였기에 그 2천불 손실이 뼈에 사무치도록 아쉽고 아까웠던 것이죠.
우리가 자카르타에 돌아온 후 며칠 동안 에도는 그 물건들을 반납하고 돈을 돌려 받거나 다른 업자에게 좀 손해를 보고서라도 통째로 넘기는 방법을 백방으로 모색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와주겠다던 경찰서장도 사실상 뒷짐만 지고 있을 뿐이었고 서장 아들과 RT 역시 서로 귓속말로 뭔가 속닥거릴 뿐이었답니다. 아마도 에도가 지불한 2천만 루피아의 일부는 채굴업자의 손을 통해 또 다른 여러 명에게 수고비, 감사비 명목으로 지출되었겠지요. 에도는 혈혈단신으로 바야에서 현지인들의 텃세에 맞서며 어떻게든 손해를 보전하려 노력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사장은 그마저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에도를 철수시키고 싶으세요?” 매시간 걸려오는 최사장의 불평전화에 못이겨 내가 먼저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뭐, 그렇게 지시해 주시면 고맙겠는데…”
그는 여전히 나를 에도와 자기 사이의 중간 연락책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결국 그래서 에도에게 철수지시를 내렸고 에도는 완전한 실패를 한 채 축 처진 어깨를 하고 자카르타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최사장의 불평은 그 후에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에도를 내보내고 싶으신 건가요?”
“뭐, 이젠 그 놈 얼굴도 보기 싫으니…, 그렇게 해주시면 고맙고…”
이런 식이었습니다.
아무 불평없이 해고를 받아 들이는 에도는 자기가 해고당해도 싼 큰 실수를 저질렀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에도에게 인간적으로 많이 끌렸는데 해고통지를 전달해야 하는 내 입장이 곤혹스러웠고 애인에게 발생한 갑작스런 문제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고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메이가 안쓰러웠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최사장은 도무지 내가 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에도를 해고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한 시간에 한번씩 전화하면서 나를 들들 볶았습니다. 그는 아직 에도의 지난 달 월급도, 이번 달 수당도 지급하지 않은 상태였지요.
“그럼, 이번 손해를 에도 월급에서라도 까고 싶으신 건가요?”
“뭐,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 아무래도 지가 상당히 해먹은 게 분명한데…”
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결정을 내렸죠.
“에도. 내가 소개해 주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서 정말 유감이다. 최사장은 네가 월급을 반납해서라도 책임을 져 주길 바라고 있어. 만약 내가 조언을 해도 된다면…, 젊은 시절엔 몇 푼 돈보다 깨끗한 평판이 더 중요한 거야. 네가 열심히 일한 건 내가 알고 있으니 만약 네가 월급을 받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널 위해 싸워 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최사장 입장에서는 네가 돈에 미쳐서 바야에서도 돈 해 먹고 이제 또 월급 내놓으라고 난리 죽이는 불한당이라고 얘기하고 다닐 거야. 차라리 최사장한테 받을 월급 다 포기하고…., 나랑 일하자.”
몇 개월 전 이메이를 최사장으로부터 떠맡은 후 이번엔 에도마저 떠 맡을 각오를 했던 것입니다.
“난, 네가 예전에 네 삼촌이나 최사장에게 받던 만큼의 월급을 줄 능력이 아직 없어. 너한테 줄 수 있는 월급은 많이 적을 거야. 하지만 분명히 약속할 수 있는 건, 내가 최선을 다할 거라는 거, 그리고 내가 밥 먹을 땐 당연히 너도 밥 먹여 줄 것이고 내가 굶을 땐 너도 굶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거야.”
에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그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습니다.
난 그것으로 에도의 사고처리가 마무리 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어요. 에도가 밀린 월급을 포기한 후에도 최사장은 계속 전화를 걸어 에도를 비난했고 저녁식사를 할 때에도 그가 하는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에도에 대한 욕이었습니다. 난 비로서 최사장이 원하는 바를 알 수 있었어요.
“그 2천만 루피아…, 손해 난 것을 내가 물어 주면 되는 건가요?”
“그게…, 사실 에도는 배사장이 소개해 준 사람 아니요? 내가 꼭 그렇게 요구하는 건 아니지만 배사장이 그래 주신다면야…”
처음부터 그렇게 얘기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그 많은 날을 에도의 욕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야 했던 것입니다. 사실 그 사고에서 에도는 분명 구매 책임자로서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당시 에도는 최사장의 직원으로 최사장의 지시에 따라 최사장의 이익을 내기 위해 물건을 구매했던 것입니다. 그 관리책임은 당연히 최사장이 져야 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이제 그는 그 잘못을 에도를 소개해 준 나에게 돌리고 있었습니다. 남의 회사 직원이 그 회사 일을 하다가 낸 사고에 대해 사실상 아무 책임도 없는 내가 배상해 주어야 하는 상황…. 난 허탈한 웃음을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한국 투자자들과 상해 류상무로부터 받은 사업 투자금을 돌려 써도 충당할 수 없는 규모의 최사장 생활비와 각종 경비들이 그만큼 그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최사장은 비록 거짓말을 밥먹듯 했지만 그렇게까지 치졸하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자기가 져야 할 비용마저 남에게 떠넘겨야만 할 정도로 그의 자금상황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내가 쌩돈 2천만 루피아를 그에게 바치는 것도 너무나 억울한 일이었어요.
내가 그를 돕기 시작한지 반년쯤 지났을 때 최사장은 내 시간과 비용에 대한 보상이라며 월 1천만 루피아(미화 1천불)씩을 유류 보조비 성격으로 주기로 했었는데 그것도 첫 두 달 뿐이었고 그 후로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면서 몇 달치가 밀린 상태였습니다. 그것은 이미 허덕이고 있는 것이 외관으로부터도 보이기 시작한 최사장 상황으로 보아서는 어쩌면 결코 실현되지 않을 악성채권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에도가 손해를 끼친 금액과 최사장님이 제게 주기로 했던 보조금…, 서로 퉁 치는 걸로 해요. 앞으로도 영원히 보조금은 받지 않기로 하고요. 그렇게 하면 손해 보신 이상의 보상은 충분히 될 겁니다. 에도가 포기한 월급도 있고…, 아무리 짱돌이 섞여 있어도 에도가 산 원석에서도 최소한 납 1~2톤은 나올 거고요.”
최사장은 현금을 기대했던 것인지 그리 흡족한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최사장은 내가 에도를 사형이라도 시키기를 바라고 있었는지 모르죠. 그러나 그 이상 내가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바야에서의 문제는 깨끗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내 생각이 틀렸습니다. 그는 또 다시 에도 문제를 언급합니다.
“배사장이 에도를 받아 주셔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에도가 거기 있으니 내가 사무실 출근하기가 좀 껄끄러워요. 에도를 좀 내보내 주시면 안될까요?”
이 부분부터는 정도를 한참 넘어선 요청이었습니다. 자기 직원을 내게 해고시켜 달라고 한 것도 이미 선을 넘은 것이었지만 이젠 자기가 껄끄러우니 내 직원을 해고하라고? 게다가 최사장은 한달에 한번도 사무실에 나오지 않는데 말입니다.
“그건요…, 직원에 대한 입장이 최사장님하고 내가 많이 다른 모양입니다. 만약 그렇게 불편하시다면 제가 에도랑 같이 나가드릴 수는 있습니다만…”
“아,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 뭐, 배사장님 입장이 그 정도라면 잘 알겠습니다. 없던 일로 해주세요.”
최사장은 그제서야 거기서 멈췄습니다. 에도가 바야에서 사고를 친 이래 근 한 달이 다 가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에도 문제로 나를 밀어 붙였던 것은 내가 그의 무리한 요구를 계속 들어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거절하자 비로서 에도 문제가 완결되었습니다. 최소한 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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