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도네시안 드림

인도네시안 드림 (8)

beautician 2022. 2. 14. 12:04

 

ep8. 진실게임

 

조코 위도도 당시 자카르타 주지사를 열렬히 응원하던 2013년의 메이

 

발릭빠빤으로, 말링핑으로, 인도네시아 온 천지를 돌아 다니며 최사장의 납 원석 사업을 도우면서도 나도 이번만큼은 미용사업의 고삐를 더 이상 늦추지 않았습니다. 내가 H 그룹의 현지공장에 처음 부임할 당시 취학 전이었던 아이들은 내가 독립할 때 잠시 귀국했다가 각각 초등학교 4학년과 5학년을 마치고서야 다시 자카르타에 합류했는데 최사장 일을 봐줄 즈음엔 큰 애가 벌써 고3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 말고는 그 누구도 내 생활을 책임져 주지 않는 것처럼 내가 돈을 벌지 못하면 아이들 대학 등록금도 내지 못할 텐데 그런 상황이 이제 코 앞에 닥쳐와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간 노력이 빛을 보아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반둥의 큰 도매상과 거래를 트고 연이어 현지 미용업계에서는 제일 규모가 큰 로레알에도 납품을 시작하면서 나의 미용사업은 일대 전기를 맞이합니다. 그것이 그 해 3. 그러니까 양프로와 정산을 마치고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사람의 미래란 그렇게도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양프로가 투자원금을 회수한 것은 더 이상 내 사업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그와 결별하자마자 내 사업 규모는 몇 배로 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더욱이 최사장이 채용을 번복해서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했던 메이의 눈부신 활약은 전혀 기대하지도 않은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입장이 되어 서로 어색하기 그지없었고 어떤 일을 시켜야 할지 몰라 곤혹스러웠지만 메이는 방판소매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며 놀랍게 선전합니다. 그리고서 불과 몇 개월 후. 우린 시장 점유율 면에서 선발주자들을 모두 따라잡아 버렸습니다! 때로는 수십, 수백 명이 몇 년 동안 하려 해도 안되는 일을 어쩌다 제대로 마주친 단 한 명이 그렇게 단숨에 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필드에서 메이의 위상은 미용사들 사이에서 마치 무슨 사이비 교주 같았고 이젠 내가 전력을 다해도 달성하기 힘든 성과를 혼자서 만들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난 당연히 입이 귀에 걸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최사장은 나름대로 여러 조력자들을 만나 다양한 지역에서 사업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하나같이 좋지 못했어요. 마카사르(Makassar)에서 납광산 허가를 추진한다던 한 한국인은 최사장으로부터 선급금을 받고도 납원석 공급을 미적거리다가 그 동네 어딘가에서 무허가 광산 갱도가 무너져 적잖은 사상자를 냈고 불법채굴에 대한 해당 지방정부의 규제가 강화되자 결국 본격적인 채굴은 시도도 하지 못한 채 손을 들고 맙니다.

 

최사장은 또 땅거랑의 레곡(Legok) 지역에 소재한 한 기계공장에 납 제련설비를 갖추겠다며 시멘트로 작은 임시 고로를 만들어 달랑 몇 킬로그램씩 납괴를 만드는 원시적 제련방법도 시도해 보고 중국으로부터 하루 5톤 정도를 생산할 수 있는 제련장치를 들여 오기도 합니다. 그런데 레곡 공장과 문제가 생겨 그 공장과 관련된 모든 프로젝트가 갑자기 중지되어 버렸어요. 중국에서 들여온 제련장비를 레곡 공장에 놓아 두려 했었는데 갑자기 목적지를 잃은 장비는 통관도 하지 못한 채 자카르타 부두창고에 장기간 묶이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사장은 뜬금없이 바이오디젤에 급관심을 보이며 납 제련장비를 공급했던 그 중국공장으로부터 자트로파 착유기 두 대를 들여옵니다. 당시 불어 닥친 바이오디젤 광풍으로 인도네시아의 웬만한 산골짝마다 땅을 몽땅 갈아 엎고 자트로파나 끌라빠사윗을 심어 대던 시절, 날개 돋친 듯 잘 팔릴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들여왔던 그 기계들은 구매선이 나서지 않아 당장 갖다 놓을 창고도 없는 상황이 벌어져 한동안 애를 먹다가 아는 사람 공장에 버리듯 던져 놓고 맙니다.

 

중국기계들은 모두 외상으로 들여온 것들이었고 그가 현지 업자들에게 지불한 선급금, 계약금들은 한국에서 보내온 망간 투자금에서 지출된 것들이었는데 모두 무위에 그치면서 최사장은 또 그만큼의 시간과 돈을 날리고 중국에는 추가로 빚까지 지게 되었습니다.

 

크러셔 시설을 사용하기 위해 보고르에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간 찌암뻬아(Ciampea) 지역에 석회석 분쇄공장을 가진 군 상조회 모 장군에게도 선을 대 보았고 당시 석탄이나 철광 등 광산분야에서 이미 상당한 인맥과 경험과 쌓고 있던 내 파트너 릴리도 소개해 주었지만 매번 뭔가 진행되는 듯 하다가 중간에 흐지부지 되어 버렸습니다. 최사장은 뭐 하나 이렇다 할 결과를 보기도 전에 자꾸 방향을 바꾸었으므로 그의 사업은 점점 더 중구난방이 되어버렸고 이젠 내가 소개해 준 사람들이 하나 둘 최사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해 와 나 역시 상당히 곤혹스러운 처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그게 그의 능력의 한계인지 아니면 단지 나쁜 버릇인지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투자자들의 돈이 인도네시아 산골짝에 아무렇게나 흩뿌려지는 상황이 반복되자 한국 투자자들의 아우성은 당연히 더욱 커졌습니다.

 

그러던 어는 날 저녁, 하루 종일 미용관련 일을 보고 사무실에 들어가던 길에 걸려온 전화에서 최사장이 빨리 와달라며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뭔가 큰 일이 터졌다고 생각한 나는 급히 차를 몰아 그가 기다리고 있다는 끌라빠가딩 가딩 바타비아 식당가의 한 한국식당으로 달려 갔지요. 거기선 이상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훔치고 있는 최사장의 테이블 건너편에는 부인인 소희엄마가 식당이 떠나가라 쩌렁쩌렁 소리를 지르고 있었어요.

 

벌써 몇 시간째 저러고 있어요. 소희엄마는 소주 일곱 병 마셨고 최사장도 벌써 다섯 병 째에요.”

 

식당주인 아주머니가 내게 넌지시 속삭였습니다. 최사장이 불러서 온 것인데도 난 어정쩡하기 그지없었고 소희엄마는 나를 아랑곳하지도 않고 계속 고함을 질러 댔습니다. 소주 일곱 병을 마셨다는 소희엄마는 발음 하나 꼬이지도 않고 멀쩡해 보였지만 시니컬한 빈정거림이 말투 가득 차 있었어요.

 

내가 너 같은 거 따라올 때 이런 꼴 보려고 따라온 줄 알아? 포항 가면 아직도 나 기다리는 남자들 많아. 이제라도 당장 들어와 살림 차리자는 병원장도 있어. 정신차려, 병신아! 이제 끝내! 남자가 뭘 찔찔 짜고 앉았어?”

 

이건 도대체 어떻게 된 스토리일까요?

당시 내가 들은 바로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날 당시 이혼 8년차의 소희엄마는 그 동안 기업형 피아노학원을 차려 번창시킨 후 곧 상당한 권리금을 받고 넘기고 다시 새 학원을 차리는 식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비록 공동명의지만 포항 일대에 부동산도 여러 필지를 구매했다고 하고요. 그런 소희엄마를 최사장이 처음 만난 건 폐기물 처리공장을 하고 있을 때였는데 실제로 두 사람이 서로 사랑에 빠진 것은 실리카 광산개발의 막바지였다고 합니다. 하필이며 최사장이 투자자들에게서 받았다는 그 30억원을 거의 다 써가던 끝물이었으므로 아직 남은 돈으로 제법 큰 씀씀이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거의 빈털터리가 되어가던 시기였죠.

 

40대에 막 들어선 소희엄마는 나름대로 미모도 잘 관리해온 돈 많은 이혼녀였고 아이들 양육권은 전 남편이 가져갔으므로 모든 부담을 떨쳐버린 그녀가 포항의 내로라 하는 중장년 남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모았다는 주장을 굳이 믿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런 소희엄마가 포항의 모든 것을 버리고 최사장을 따라 인도네시아까지 날아 온 것은 물론 사랑에 빠지기도 했겠지만 또 한편으론 최사장 재정상태의 실체를 아직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사장이 늘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실리카 광산은 사실상 다른 사람 명의여서 그림의 떡에 지나지 않았고 소희엄마도 열심히 현장을 따라 다녔던 납 원석사업은 비용만 턱없이 들어갈 뿐 아무런 결실도 내지 못하면서 비용 때문에 쩔쩔 매는 최사장이 투자자들을 반 협박하다시피 하며 돈을 받아내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제서야 최사장이 빈털터리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커먼웰스 은행에서 구좌개설을 위한 최초입금액조차 인출해서 써야 할 정도로요.

 

그러다가 소희엄마가 갑자기 엄마의 위치로 복귀해야 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전남편이 뇌종양으로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면서 아이들을 8년 만에 돌려받은 것입니다. 이 일은 내가 최사장 부부를 만난 이후 벌어졌으므로 아이들을 자카르타에 데려올 준비를 서두르면서 한편으론 걱정하고 초조해 하던 소희엄마가 다른 한편으론 행복한 기대감에 넘쳐 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소희엄마는 학비가 연간 2만불 이상 드는 NJIS(북부자카르타 국제학교)라는 미국계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내심 최사장의 도움을 기대했겠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곧 뼈저리게 실감했고 결국 포항 땅 일부를 팔아 아이들의 등록금을 냈습니다. 그 돈에서 최사장의 사업경비도 일부 대주었던 모양이고요.

 

그날 식당에서의 사건은, 거기에 내가 왜 불려 나와야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난리의 배경이 최사장의 무능을 탓하는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는 장면이었습니다. 그러나 뒤이어 소희엄마가 덧붙여 내뱉는 말은 의외의 것이었습니다.

 

네 아들, 네 딸 중요한 것만큼 내 아들 딸도 중요해! 네 사업 도와 주겠다고 내가 돈 만들어 준 게 얼만데 살기는 나랑 같이 살면서 돈 생기는 데로 네 부인하고 애들한테 다 퍼부어? 내가 네 첩이야? 내가 네 물주야? XX! 넌 인간도 아니야. 내 인생 최대의 실수가 있었다면 그때 널 만나서 뭐에 씌었는지 여기까지 따라온 거지! 그렇게 가족들 사랑하시면 호주 가서 마나님하고 사세요. 왜 나랑 살고 있어?”

 

이 부분은 내가 모르던 스토리입니다. 그 말을 한 직후 소희엄마도 흠칫, 만취상태에서 계속 훌쩍거려 잔뜩 부은 눈이 반쯤 풀린 최사장도 흠칫하며 날 돌아 보았습니다.

 

그 호주의 마나님 얘기가 내 등덜미를 팍 쑤시고 든 것이 사실입니다. 두 사람은 다시 모른 척하며 원래의 부부싸움을 계속했고 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의 전쟁을 한 시간쯤 더 참관한 후 먼저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지만 이 사람들이 이젠 상관도 없는 일에 시도 때도 없이 나를 불러내기 시작했다는 불쾌함과 함께, 오랫동안 속고 있었다는 배신감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렸습니다.

 

그들을 처음 만나던 날, 난 그들에게. 두 사람 정상적인 부부가 맞냐고 물었었죠. 최사장은 그렇다고 대답했고요. 그게 중요한 일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분명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민국 직원도 아니고 하다못해 동네 통장도 아닌 내가 자기들 주민등록등본 상의 부부관계를 일일이 확인할 권리도 없는 것이죠. 불륜의 커플과 말을 섞는 것만으로 존엄성이 깎여버릴 정도로 내가 그렇게 고결한 인간도 아닙니다. 그러나 예전 골프샵 석사장과 그의 첩으로 인해 일어난 수많은 사건들을 겪은 후 첩을 끼고 사는 사람의 일을 도와준다는 것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무모하기만 일인가를 이미 절감한 바 있었습니다. 비밀을 감추려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기 마련이고 한 개의 거짓말은 필연적으로 열 개의 거짓말을 낳습니다. 문제는 듣는 사람 입장에선 석연치 않고 일관성도 없어 보이더라도 어쨋든 그걸 기억해 놓지만 정작 거짓말 한 사람은 자기가 전에 무슨 거짓말을 했는지 대체로 기억하지 못하거든요. 앞서 한 거짓말을 기억 못하는 사람은 나중에 늘 맥락이 다른 거짓말을 남발하면서 결국 신용을 점차 읽어가는 수순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면, 그리고 그들이 불륜관계라면 난 그들과 사업적으로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했습니다. 그들이 숨긴 진실과 그걸 덮기 위한 수많은 거짓말이 나중에 화산 터지듯 분화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 것이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까지 삼켜버릴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그 순간 만약 내가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면 난 예전 석사장의 사례로부터 아무런 학습도 하지 못한 인간이 되는 겁니다.

 

당시 분위기에서 그런 느낌을 받아 그들의 관계를 물었던 것이었는데 최사장은 우리의 첫 만남에서부터 내 첫 질문에 거짓말로 대답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소희엄마는 종전의 부부관계를 완전히 청산한 것이 사실이지만 최사장은 그렇지 못했어요. 최사장은 그 후 한 술자리에서 본부인이 실업팀 배구선수 출신인데 여자들에게 인기 많았던 자신이 왜 우락부락한 여자에 끌렸겠냐고 강변했습니다. 홧김에, 취기에 한 결혼이었고 처음부터 애정은 없었다고요. 그런데도 두 자녀를 낳았고 그 본부인은 조기유학을 떠난 아이들을 따라 호주 멜번에 가 있었습니다. 최사장은 이미 이혼했다는 최초 주장에서 말을 바꾸어 사랑 없는 결혼생활 끝에 별거 중이라고 한 발 물러섰지만 명백한 사실은 그가 소희엄마를 만날 당시 자신이 기러기 아빠라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애당초 사랑 없는 결혼이었기에 딴 집 살림을 차려야만 했다는 그의 해명은 마음에 와 닿지 않았습니다.

 

예전 석사장은 첩이 자기 아이를 갖지 못하게 조심하면서도 다른 남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여자를 아파트나 사무실 뒷방에 감춰두고 있었습니다. 그를 내게 소개해 주었던 유사장도 현지처를 만난 이후 자기 부인과는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았다며 이상한 순정을 과시했었죠. 이제 최사장은 사랑 없는 결혼은 무효라는 논리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처가 싫어도 아이들은 여전히 내 아이들이잖소? 아이들 돌봐 주는 여자를 박대할 수 없는 일이고 아이들한테 전화할 때 엄마가 먼저 받으면 잠깐 얘기하게 되는 거 인지상정이잖아요?  애들 엄마가 전화 받았는데 소희엄마 앞이라고 대뜸 전처에게 화부터 낼 수는 없는 거잖아요?”

 

내가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후부터 최사장은 틈나는 데로 자신의 입장을 그렇게 변호하곤 했습니다. 소희엄마가 과민반응하고 있다고 호소하는 것인지 내게 자기 처지를 이해해 줘야만 한다는 것인지 잘 알 수 없었어요. 그런 얘기를 최사장이 할 때마다 난 더 찝찝한 마음이 되어 갔습니다.

 

불륜 감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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