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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촛불혁명 - 불어끄고 싶었던 촛불에 녹아내린 정권

beautician 2016. 11. 29. 16:24


세상이, 인간들 기술이 정말 놀랍게 발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엔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본국의 방송을 접하는 것은 신문지상을 통하거나 며칠 경과한 후 한국수퍼마켓에서 불법복제한 비디오테이프를 빌려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러니 본국 90년대-200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유행하던 문화컨텐츠들, 예컨데 걸그룹 유행가나 흥행대박난 국산영화들은 놓치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오랜만에 한국에 돌아가면 물정이 어두워 옛날 같으면 간첩으로 오인받을 만한 상황이 종종 벌어지곤 했습니다. 새벽에 산에서 내려오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버스비 모르고 담배값 모르는 사람 나타나면 경찰서에 신고해야 했잖아요? 딱 그랬습니다.


그런데 예전에 동경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다음 날 서울에 복제품이 나돈다는 식으로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 대부분을 자카르타에서도 거의 동시에, 아니면 최소한의 시간차를 두고 금방 알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11월 29일 정오를 조금 넘긴 12시30분 본국 청외대에서의  기자회견을 자카르타를 달리는 내 차안에서 실시간으로 시청할 수도 있었으니 말입니다. 당대의 신기술을 통해 한 정권의 몰락을 지켜보게 되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의미심장했습니다.




물론 대통령의 변명과 사과를 듣는 마음은 무거웠고 즉각적 하야가 아니라 국회의 결정을 따르겠다며 아직도 충성을 다하는 이정현 같은 친박계 의원들이 즐비한 국회에 마지막 일말의 기대를 걸어 보려는 생각이 일견 엿보인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상상할 수도 없는 많은 실정을 거듭하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한 대통령이 이제 와서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며 국회에 자신의 퇴로를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이 담화의 골자였지만 박근혜의 고집스러운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문구는 여전히 도처에 존재합니다. 


그 중 하나는 자신은 국가를 위한 공적사업이라 여기고 했던 일들이 자신이 제대로 관리못한 주변 사람들에 의해 어그러졌다고 말하는 부분입니다. 여전히 그녀에게 있어 자신이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이라는 자각과 반성은 없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국정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치권 합의에 따른 방법과 일정에 의거,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을 물러나겠다는 부분입니다. 여기선 실소를 금치 못합니다. 이 상황이 되도록 국정혼란을 야기한 것은 대통령 자신이고 정치권과의 합의는 커녕 야권은 물론 국민들을 거스려 대항하던 불통의 아이콘이었던 그녀가 자신이 대통령 시절 그토록 짓밟고 분탕질 쳤던 법 절차를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이 얘기는 분명 자신이 법 절차를 따르겠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촛불 들고 나오는 너희들, 하야를 부르짓는 국민들, 퇴진을 요구하는 야권들에게 너희들도 법 절차를 지켜 나한테 손가락 하나 건드리지 말아 달라는 요구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최순실 일당과 함께 전횡을 일삼으며 국정을 농단하는 동안 세월호에서 304명의 생떼같은 생명들이 안타깝게 스러져 갔고 그의 임기중 의문사 당하거나 궁지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한 둘도 아닌데 자신만은 법 절차에 따라 안전히 청와대를 나와 귀가하겠다는 것입니다.


박근혜는 쫒겨 내려가면서도 자신은 아직도 잘못이 없다 생각하며 자신의 안전만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내려 갈테니 다들 물러서 길을 열어 달라는 것이죠. 이건 패기일까요? 아니면 반성할 줄 모르는 금수저의 오만일까요?


사과하고 물러나겠다고 했는데 왜 아직도 그녀에게 매몰차게 구느냐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녀의 1차, 2차 담화문을 다시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그녀가 담화를 통해 장담하고 약속했던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진실된 것이 있었는지, 어느 하나라도 약속대로 실행된 것이 있었는지 말입니다. 두번째 담화를 마치고 관저에 돌아간 박근혜가 한 일은 양아치 같은 변호사 한 명을 선임해 검찰조사를 받겠다던 약속을 모조리 뒤집은 것입니다. 손바닥 뒤집듯 거짓말 하는 사람이, 아직도 권력을 주렁주렁 단 권좌에 앉아있는 상태에서 하는 약속들은 또 다시 언제 뒤집어질 지 모르는 손바닥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번 담화문 전문을 읽어보세요.

그 어디에 앞으로 검찰조사나 특검수사를 성실히 받겠다는 얘기가 있습니까?

그녀는 그냥 빠져나가고 싶은 겁니다.

이제 자기가 모든 것을 내려놨으니 너희들도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 하는 겁니다.

애당초 우린 내려놓을 것도 없을 정도로 그녀의 정권과 최순실 대통령 서리에게 쪽쪽 빨려 버린 후인데 말입니다.




이번 주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두렵고 또한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게 됩니다.


박근혜는 스스로 하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번 담화의 요지는 어쨋든 자긴 스스로 내려가지 않으니 끌어 내려 달라, 그러나 자긴 사실 결백하니 법 절차에 따라 살살 끌어내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난 그 사과에 승복하기 어려운데 지난 11월 26일 광화문광장과 전국 주요도시의 밤을 찬란하게 밝혔던 190만 촛불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박근혜와 그 빤스끈에 매달려 이 정권을 살아온 추종자들의 말로는 과연 어떠할까요?

막판 반전으로 개성에 야포 몇 방 쏘고서 계엄령이라도 내리지 싶지 않을까요?

진심으로 두렵고도 설렙니다.


이미 5차에 걸쳐 있었던 촛불집회가 그냥 대규모 시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정권을 종식시키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촛불혁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나라가 해방되었을 때 하지 못했던, 반민특위가 이루지 못했던, 4.19와 5.18의 영령들이 목놓아 외치며 염원했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첫 걸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그러기 위해선 박근혜의 사과 한 마디에 현혹되어 뜻한 바를 이루었다고 벌써부터 마음 놓아서는 아직 안됩니다.


꺼진 불도 다시 봐야 하는데 하물며 이 정권이겠습니까.


2016. 11. 29.




P.S.



박 대통령 제3차 대국민담화 전문 (2016. 11. 29)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저의 불찰로 국민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깊이 사죄드린다. 이번 일로 마음 아파하시는 국민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서 저 자신이 백번이라도 사과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그 큰 실망과 분노를 다 풀어 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제 가슴이 더욱 무너져 내린다. 국민 여러분 돌이켜보면 지난 18년 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했던 여정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해 오늘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해왔다.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왔다. 지금 벌어진 여러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이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안에 소상히 말씀을 드리겠다. 국민 여러분 그동안 저는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저의 결심을 밝히고자 한다. 저는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 국정 혼란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만들어 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하루속히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벗어나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다시 한번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드리며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정치권서 지혜를 모아줄 것을 호소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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