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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녀의 일곱 시간

beautician 2016. 11. 19. 16:24




오늘도 광화문 광장에선 거대한 촛불집회가 열린다.


멀리 자카르타에서 집회의 안전한 진행과 성공적인 결실을 두 손 모아 기원한다.



물론 박근혜는 하야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수백만 명이 목소리를 높여 그의 하야를 외치고 또다른 수천만 국민들이 집회를 응원한다 해도, 박근혜와 그 지지층들은 침묵하는 4,900만명이 자기 편이라 주장하며 손에 쥔 권력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실시간 뉴스를 인터넷으로 보면서 그 옆에 빠르게 스크롤 되어 올라가는 시청자들의 코멘트에서 '김재규 열사'라는 글을 자주 접한다.


박근혜를 끌어 내리려면 평화로운 촛불보다 김재규의 권총이 필요하다는 발상일 것이다.


매우 위험한 생각이다.


하지만 매우 공감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말에게 고삐를 달고 기수가 박차를 가하고 채찍까지 휘두르는 것은 말 잘 듣지 않는 말을 통제하려는 것이다. 


그런 모든 방법을 썼지만 그래도 말을 듣지 않는다면 우린그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박근혜는 지금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너흰 박차도 없고 채찍도 들면 안돼, 그건 불법이야. 당연히 나한텐 고삐도 달 수 없어. 자, 이제 어쩔래?"


이 시대는 정말 김재규를 필요로 하는 걸까? 


김재규 (육군 보안사령관 시절)


요즘 세월호 사고 당시 박근혜의 일곱 시간을 밝히려는 많은 시도가 일고 있다.


물론 밝혀야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몰입해서는 안된다.


세월호 사건의 핵심은 그 당시 박근혜가 무슨 뻘짓을 하느라 소중한 일곱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느냐를 밝히고 그녀가 얼마나 무능한 대통령인가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건 박근혜 하야를 요구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의 핵심은 아니다.


정말 세월호에 대해 밝혀야 할 문제란


- 그 사고가 정말 왜 일어난 것이며, 


- 배후세력과 사전계획이 정말 있었느냐를 밝히는 것이고


- 사고 당시 왜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는지, 


- 아니 왜 오히려 거꾸로 작동해 학생들을 선실 속에 갇아두게 되었는지


- 이 사건 배후에 그림자를 비치는 국정원은 과연 어떤 역할을 한 것인지, 


- 누가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처벌을 받아야 하는가


등을 밝히는 일이다. 물론 결국 무력화된 특조위가 하려고 했다가 마침내 이루지 못한 것들이다.





그러니 착각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의 일곱시간의 비밀을 추적하는 것은 대통령의 무능을 질책하는 한 수단임이 분명하지만 그것이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열쇄는 아닌 것이다.


자칫 그것은 당시 유병언만 찾으면 세월호의 모든 문제가 풀릴 것처럼 호도하여 전국민이 유병언 일가를 추적하도록 만든 것과 같다.


하지만 백골이 되어 나타난 유병언(이라고 주장하는) 시체는 세월호의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리고 애당초 당국이 유병언을 쫒은 것은 세월호 문제 중 구상권 청구의 문제, 즉 돈문제때문이었다. 우리 솔직해지자. 유병언을 추격한 건 분명 돈문제였다.


세월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래서 박근혜에 일곱 시간에 너무 몰입되는 것은 옳지 않다.


세월호를 침몰시키고 배의 인양을 방해하고 진실을 은폐하여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어떤 세력을 단죄하기 위해선 박근혜의 일곱 시간 말고도 앞서 언급한 수많은 문제들의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박근혜는 억울하다 할 지도 모른다.


동생에 대한 문제가 발생해 기자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그녀의 대답은


"제 동생이 아니라잖습니까?" 였다.


오늘 수백만의 촛불이 하야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해도 그녀가 어떤 대답을 할 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내가 아니라잖습니까?"


참 염치없는 세상이다.


장자연이, 성완종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얘기하려 한 것은 모두 근거없는 것들이라 일축해 버리고서, 이제 자기 목숨 하나가 아깝고 자기가 손에 틀어쥔 권력이 아까워 주워섬기는 저 거짓말들을 믿어 달라고 요구하는 박근혜는 정말 염치가 없다.


성완종 전 경남그룹 회장


장자연양


끌어 내리고 일곱 시간도 밝히자. 


하지만 박근혜의 문제가 아니라 세월호의 문제에서 본다면 박근혜의 일곱 시간의 미스테리를 푸는 것만으로 세월호 사건이 해결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양쪽 모두, 아직 갈 길이 멀다.



2016.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