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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대선]지금껏 본 적 없었던 것들

beautician 2016. 11. 10. 01:10

지금껏 본 적 없었던 것들

 




핸콕’(Hancock, 2008)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윌스미스가 연기한 핸콕이란 인물은 나중엔 우리에게 익숙한 천하무적, 금강불괴의 친절하고 사려깊은 슈퍼히어로가 되긴 하지만 영화 도입부에선 술주정뱅이에 인성이 못돼 먹어 하는 일은 결과적으로 슈퍼히어로 맞는데 그 과정은 슈퍼빌런에 버금가는 문제아로 표현되었죠. 그래서 영화포스터에는 까칠한 슈퍼히어로’, ‘이런 영웅 처음이다같은 카피들이 달려 있었습니다. 색다른 슈퍼히어로의 출현이었습니다.


 

 

올해 나온 데드풀(Deadpool)이나 수어싸이드 스쿼드(Suicide Squad) 같은 영화들도 비슷한 컨셉을 바탕에 깝니다. 이들 영화에서는 말이나 행동은 양아치 같은데 본질은 좋은 놈이었다거나 원래 악당들인데 결과적으로 힘을 합쳐 좋은 일을 한다는 식으로 새로운 모습의 슈퍼히어로와 슈퍼빌런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영화가 갖는 흡입력 중 하나가 그런 의외성입니다. 의외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아내니까요.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마지막 액션 히어로(1993)의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일단 스크린을 벗어나 우리가 사는 이 현실세계에 발을 디디면 그런 의외성은 현저히 줄어듭니다. 영웅이라도 총을 맞으면 죽는 것처럼 착한 사람들은 착한 일을 하고 나쁜 놈들이 나쁜 짓을 한다는 얘기죠. 아무리 봐도 똥인데 걸 찍어 먹어봤더니 구수한 된장일 리 없는 겁니다. 그건 물리학적 일관성입니다. , 달리 의외성이라 하겠어요?

 

하지만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려는 노력은 오늘도 우리 주변 곳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아침마다 출근하기 전 새로운 넥타이를 고르거나 어제 산 미백화장품을 바르는 것 역시 가장 일반적인 그런 노력의 일환이죠. 물론 그런 노력들은 대개의 경우 좀 더 섹시하고 좀 더 멋진 결과물을 동반하려는 방향성을 가집니다.

 

그런 노력이 미국에서도 벌어졌습니다.

 


 

미국인들은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를 탄생시켰습니다. 인종차별이나 여성비하 같은 막말을 서슴지 않고 외교적 충돌을 불사하면서도 자국민들의 지지와 성원을 끌어낸 그는 핸콕이니 데드풀과 공통점을 갖습니다. 슈퍼히어로는 아닌 것 같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본 적 없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저 깡패, 양아치 같은 의외의슈퍼히어로들과 상통합니다. 그런데 이 의외의 결과에 절반의 미국인들은 하늘높이 환호를 올리지만 나머지 절반의 미국인들과 한국을 포함한 세계는 우려의 탄식을 쏟고 심지어 앞으로 다가올 어제와는 전혀 다를 내일을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해 못할 바 아닙니다.

 

하지만 한국사회가 트럼프의 등장에 왜 우려하는지 만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 사람이 다른 나라 여자 대통령, 여자 총리들 스커트를 버르장머리 없이 들쳐보려 하고 유엔 총회연설에서 전세계를 대상으로 마구 욕설을 퍼부을 것 같지만 그래도 미국 대통령까지 올랐는데 그렇게 막돼 먹은 사람은 아닐 게 분명합니다. 게다가 우린 그보다 더한 일제강점기 36년과 한국전쟁, 길고 긴 군사독재정권의 압제와 IMF까지 그 모든 것을 온 몸으로 겪으면서 살아남은 민족입니다.  부시의 임기도 살아냈는데 트럼프가 어떤 정책을 펼치든 그 임기 역시 또 어떻게든 살아낼 것입니다. 날 한 번 믿어 봐요.

 

사실 미국에서 이전엔 한번도 보지 못한 대통령이 탄생한 것 정도에 한국사람들이 놀라고 걱정해서는 안된다고 믿습니다. 우리 역시 이전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종류의 대통령을 2012년에 뽑아 놓고 이제 4년 차를 맞았으니 말입니다.

 


 

전임 대통령이 국민의 피땀어린 세금으로 편성한 국가예산을 4대강 강바닥에 처박아버려 더욱 더 허리띠를 졸라 매야 했던 백성들은 디스카운트샵이나 1+1 사은행사를 쫓아다니다가 대통령까지 1+1로 뽑아 놨던 것입니다. 박과 최가 둘이서 서로 도와 국정을 두 배로 효율적으로 돌봤다면 아무도 욕하지 않았겠지만 두 사람의 결합은 시너지효과를 일으켜 다른 대통령들보다 몇 배 높은 효율성으로 국격과 국기를 형체도 없이 무너뜨리고 국민들의 세금과 자존심마저 말아 쳐드시고 말았습니다. 독재자의 딸은 무당의 꼭두각시로 전락했고 통진당과 세월호와 개성공단과 그 밖에 굵직굵직한 국가의 대소사와 사건사고들이 막돼 먹고 천박한 강남아줌마 변덕에 놀아나고 만 것입니다.

 

하지만 박근혜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진실한 여인입니다.

대선 당시 박근혜 캠프의 캐치프레이즈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였습니다. 그녀는 자기 캐치프레이즈에 충실했을 뿐입니다. 그녀의 꿈이 국민들의 꿈과 너무 달랐을 뿐입니다.

 

그러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뭘 걱정하세요?

트럼프의 꿈이 한국인들의 꿈과 전혀 다른 것이라 한들, 우린 이미 지난 4년간, 아니 어쩌면 지난 9년간 반복학습을 통해 충분한 내성을 익혔습니다. 독약으로 이런 식의 내성을 길렀다면 청산가리 한 말을 먹어도 절대 죽을 리 없습니다. 그러니 트럼프가 대수겠어요?

 

MB가 한 가지 잘 한 게 있습니다. 전작권 환수를 무기한 연기한 것 말입니다.

 

물론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끝난 지 60년이 넘었는데 우린 그 엄청난 예산을 들어 부으면서 무기 로비스트들, 몇몇 부패 군장성들, 배후의 정치가들 주머니만 불려 주었을 뿐 아직도 자주국방은 꿈도 못 꾸고 미군 바지가랑이만 붙잡고 늘어져야 하니 말입니다. 북한이 핵탄두와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만드는 동안 고작 그 10분의 1쯤 되는 사거리의 로켓 분사체 만드는 것조차 미국의 허가를 얻으려고 온갖 알랑방구를 껴야 하는 현실은 정말 코미디입니다.

 

그런데 국민지지도가 단단위로 떨어져 버린 박근혜가 살아날 동아줄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아니라 북한만이 내려 줄 수 있습니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덮으려면 전쟁 쯤 되는 일이 벌어져야 한다는 애기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개성에 대포 몇 방 쏘면 됩니다. 북한이 도발해서 응사했다고 거짓말하면 반드시 통합니다. 정 뭐하면 북한에 선전포고 해도 좋습니다. 그러면 나사로의 기적처럼 숨이 깔딱거리는 정권도 즉시 부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박근혜는 그걸 할 수 없어요. 전작권이 없거든요. MB 만세~!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여 박근혜가 축전을 보내고 그녀가 가서 정상회담을 하도록 내버려 둘 상황은 전혀 아닌 것 같습니다. 솔직히 4년간 용케 참아 줬으니 남은 1년 마저 하겠다 하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 합시다. 새로운 책임총리가, 아니면 새로운 정권, 새로운 대통령이 당당히 트럼프를 마주 대하고 그간 형편없이 실추된 국격을 재건하고 마땅히 우리 손에 쥐고 있어야 할 전작권도 이번에야말로 조기에 회수해 올 수 있는 그런 내일이 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두려움도 없이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동시에 박근혜의 조속한 하야와 새 정부 구성을 촉구합니다.

 


 

2016. 11.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