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호구 5

선하게 생겼다며 칭찬하는 사람들

나 자신과의 소통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선하게 생겼다’는 것이었습니다. 선하다, 착하다는 말이 나쁜 말일 리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착한 사람이 되라고 배워왔고 사실 그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일에 약간의 진심과 선의를 담고, 필요하다면 자기희생을 조금 더해 주면 누구나 듣게 될 찬사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 말이 너무나 듣기 싫어졌습니다. 최근 10~20년 사이에 나한테 그런 말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 나에게 장기적인 도움을 요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건 대개 채용이나 계약의 형태였고요. 그들이 내가 선하다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고마운 감정이 들고 선하다 착하다는 찬사를 입에 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진심은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독한 인간이 되려면 2019년 초에 뿌지(Puji)라는 친구로부터 와쎕(whatsapp) 문자를 하나 받았습니다. 300만 루피아, 한화로 약 25만원쯤 되는 돈을 빌려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난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뿌지는 2004년쯤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인데 골프 액세서리를 한국에서 수입해 파는 사람과 오래 일한 친구입니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두 곳에서 사업하던 한국인 사장이 결국 태국에 집중하게 되자 뿌지도 결국 정리되었는데 그 과정이 그리 아름답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분을 삼키며 자카르타에서 차로 네 시간쯤 걸리는 고향 찔레곤(Cilegon)으로 돌아간 그녀는 결혼해서 애기도 낳았고 작은 가게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300만 루피아를 빌려 달라 한 것은 그 가게가 잘 되지 않아 은행에서 빌..

호구로 살 것인가?

만랩 찍기 2000년대 초중반에 만났던 사람들을 통해 난 내가 스스로 늘 생각해 오던 유형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이 세상도 내가 교실에서 배웠던 그런 세상이 아님을 절절히 알게 되었습니다. 술라웨시에서 시작된 파산의 나락에서 기어 나오려 몸부림치던 시절이었죠. 그때 만났던 사람들에겐 특이한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도네시아에 와서 이미 두 세 차례 정도 사기를 당하거나 사업을 거의 거덜낸 상태에서 나에게 왔습니다. 그들은 대개 처음엔 나와 일하게 된 걸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일이 어느 정도 회복되거나 주변정리가 되면 난 늘 정리대상 1호가 되어 떨려나곤 했습니다. 처음엔 내가 나쁜 놈들을 만난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같은 문제가 반복되면 그 원인은 그들에게 있는 게 아..

호구의 용도

하루 종일 쓸 데 없는 일로 뛰어 다녔다. 이틀 내에 마무리 지어야 하는 영진위 리포트가 두 개나 있고 그걸 만들기 위해 번역해야 할 기사들이 수 십개 있었는데, 그리고 14일과 15일까지 보내야 할 원고도 두 개가 남아 있고, 그 준비도 족히 며칠은 걸릴 텐데 오늘 한 일은 내게 아무런 도움되지 않는 일이었다. J대표의 이노바를 매각해 준 것은 그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앞으로 지옥을 맛보아야 할 나디아와 이메이를 구하기 위해서였고, 그 매각대금으로 BFI와 담판을 벌여 벨파이어의 대출금 상환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대출계약에 한국인 상사를 위해 이름을 빌려주었다가 보름 넘도록 해결사들이 매일 집에 쳐들어와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한 건 물론, 동네 사람들에게 망신살을 구기게 된, 그래서 본격적인 지옥을 맛보..

매일의 삶 2020.12.04

꽃놀이패

아침부터 전 직장 대표가 쳐놓은 사고들을 처리했다. 회사 운전사 와스디로부터 부재 중 전화가 열 통 가까이 온 상태. 무슨 일인지는 불보듯 뻔하다. 내가 그의 회사를 떠난 것은 지난 2월 말의 일. 그러니 벌써 9개월도 넘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직 그의 이런저런 일들을 봐주고 있는 이유는 그간 퇴직금 정산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고 내가 도움을 거절하면 그는 온갖 이유로 퇴직금 정산을 미루었을 것이다. 그래서 찔끔찔끔 주던 퇴직금은 아직도 완전히 정산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과 차량 등에 걸린 문제들을 내가 해결해 주려 애쓰는 것은 내가 돕지 않으면 아무도 그를 돕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차량담보로 대출을 받으면서 자기 운전사의 명의를 빌렸고 내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한국..

일반 칼럼 2020.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