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매일의 삶

호구의 용도

beautician 2020. 12. 4. 00:12

 

 

 

하루 종일 쓸 데 없는 일로 뛰어 다녔다.

 

이틀 내에 마무리 지어야 하는 영진위 리포트가 두 개나 있고 그걸 만들기 위해 번역해야 할 기사들이 수 십개 있었는데,

 

그리고 14일과 15일까지 보내야 할 원고도 두 개가 남아 있고, 그 준비도 족히 며칠은 걸릴 텐데

 

오늘 한 일은 내게 아무런 도움되지 않는 일이었다.

 

J대표의 이노바를 매각해 준 것은 그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앞으로 지옥을 맛보아야 할 나디아와 이메이를 구하기 위해서였고, 

 

그 매각대금으로 BFI와 담판을 벌여 벨파이어의 대출금 상환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 대출계약에 한국인 상사를 위해 이름을 빌려주었다가 보름 넘도록 해결사들이 매일 집에 쳐들어와 정상적 생활이 불가능한 건 물론, 동네 사람들에게 망신살을 구기게 된, 그래서 본격적인 지옥을 맛보고 있는 운전사 와스디를 구하기 위함이고, 

 

3년 넘게 최선을 다해 J대표를 위해 밥을 짓고 운전을 하며, 남들이 모두 월급을 받는 상황에서 자기들은 월급을 깎이고 3개월씩 월급이 밀리기까지 한, 그리고 퇴직금도 받지 못하기 쉬운 샤르티와 와스디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보전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정작 책임져야 할 인간은 나몰라라 하고 , 

 

그의 문제를 풀어주기 위해 누구보다 애써야 할 사람은 자긴 바쁘다고 하는데, 

 

나같은 호구나 그런 돈도 안되고 빛도 안나는 일에 뛰어들어 발품을 팔고 시간을 축내고 만다.

 

그렇게 하루 종일 쓸 데 없는 일로 뛰어 다녀야만 했다.

 

최소한 그래도 누군가는 그로 인해 도움을 받았다면...

 

나디아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지난 두 달간 부실채권을 관리하던 고통을 털었지만

 

이메이는 만약 내가 오늘 조치하지 않았으면 내일부터 이름 빌려준 댓가로 거친 콜렉터들을 대면했어야 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다.

 

하지만 정작 도움을 받은 J대표는 호구처럼 뒷 일을 정리해주는 나한테 시킬 또 다른 일들을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그를 도와야 마땅하나 자꾸 뒷걸음쳐 그림에서 사라지려 하는 사람은 내가 자기 할 일을 마저 해주지 않아 못마땅할 따름이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루 종일 쓸 데 없는 일로 뛰어다녔다.

 

 

 

 

난 왜 바뀌지 않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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