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인도네시안 드림 (12) 본문
ep12. 사랑은 변하는 것
그 즈음 소희엄마도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해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최사장을 따라 인도네시아에 와서 40번째 생일을 지낸 소희엄마는 여전히 어리고 건강해 보였지만 예전의 활기는 거의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 대신 아이들은 자카르타에 처음 올 당시 깜짝 놀랄 정도로 산만하고 불안정하던 모습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8년간 떨어져 지내던 엄마와 다시 함께 사는 것은 쉽지만은 않아 많은 진통이 따랐는데 그 중 하나는 의사소통의 문제였같습니다.
막내아들은 지극히 소극적이고 어느 정도 자폐적이라 느낄 정도였던 것에 반해 큰 딸 소희는 무척 덤벙거렸습니다. 그래서 집과 학교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급기야 일주일에 몇 차례씩 아이들 몸에 시퍼런 멍이 들 정도로 잦은 구타가 벌어졌지요. 최사장집에 상주하며 일을 하던 가정부 얀띠(Yanti)는 메이가 고향에서 데려와 소개해 준 사람이었는데 소희엄마의 구타장면을 몇 번 보고는 그 살벌함에 질려 일을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얀띠는 그런 일이 없었더라도 소희엄마와 사이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고 있었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막 온 한국 부인 입장에서 현지 가정부들이 하는 가사일은 빨래에서 청소, 심지어 설거지까지 어느 하나 맘에 쏙 뜨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가정부 복이 없었던 내 아내가 얀띠를 우리 집 대신 최사장 집에 보낸 것을 탓할 정도로 얀띠는 밝고 부지런한 여자였고 최사장 집을 나온 후 내가 주선하여 릴리 집에 들어간 후 재혼할 때까지 별다른 문제없이 지냈지만 최사장 집에서 일하는 내내 쌀을 축낸다는 타박을 들었고 소희엄마는 그 문제를 급기야 나한테 가져 왔습니다. 얀띠에게 밥을 조금 먹으라 얘기해 달라고요. 기가 찼습니다. 다들 먹자고 하는 일인데 말입니다.
사실 소희엄마도 자신이 그런 치사한 말을 하게 되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자기 말대로라면 포항에서 BMW 승용차 두 대를 굴리고 피아노 학원사업도 잘 나가고 있었다는데 그녀가 그 모든 것을 버리고 뜬금없이 본처가 버젓이 있는 최사장과 불륜관계를 맺고 머나먼 인도네시아까지 따라온 진짜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습니다. 남편이 양육권을 가져가 부양가족이 없었던 소희엄마가 30대 후반에 이르러 어쩌면 10대 소녀들처럼 또 다시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던 건지도요. 그러나 소희엄마가 인도네시아에 넘어 올 때 미화 10만불을 가지고 들어왔다는 점에서,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 소희엄마도 최사장의 장미빛 환상과 미래에 대한 현란한 미사여구에 걸려 들었던 거라는 심증이 강합니다. 하지만 소희엄마는 이제 가정부가 밥을 많이 먹는다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희엄마의 10만불은 불과 1년도 버티지 못했고 그래서 아이들을 자카르타로 불러 들이던 시기에 4만불 정도를 한국에서 더 끌어와야만 했습니다. 말하자면 최사장은 투자자들의 돈만 물쓰듯 쓴 것이 아니라 소희엄마의 돈까지 거덜내는 중이었습니다. 소희엄마는 나중에 포항의 한 공동명의 대지까지 팔아 환치기를 통해 그 대금을 자카르타에 들여 오지만 그 역시 한 두 달도 버티지 못했습니다. TV 드라마 속 사랑에 눈 먼 여자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남자에게 몸도 돈도 모두 바치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장터식당에서의 사건도 벌어졌던 것이죠. 그 때가 되어서야 소희엄마도 최사장이 이미 돈 한푼 없는 빈털터리일 뿐 아니라 거액의 빚을 지고 있어 자기가 평생 모은 재산을 다 털어 부어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활비와 아이들 학비로 들어간 돈들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최사장 사업을 위해 대 주었던 돈은 한국과 상해의 투자자들이 당한 것처럼 도저히 회수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도요. 그녀의 말대로라면 포항에는 소희엄마한테 언제라도 맨 몸으로 넘어 오라는 부유한 남자들이 줄지어 있었는데 최사장에게 몸과 마음을 맡기면서 그녀는 마치 빨대 꽂아 놓은 아이스 카푸치노처럼 모든 것을 쪽쪽 빨려 크림만 몇 덩어리 남은 상태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소희엄마는 인도네시아에 산재한 활화산들처럼 자카르타에 있는 동안 몇 번의 대폭발을 하게 되는데 장터식당에서의 사건이 아마 그 첫 번 째 폭발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내 크리스 킴(Kris Kim) 미용실을 단골로 다니던 최사장이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소희엄마와 함께 머리를 자르러 왔다는 얘기를 크리스에게 들었습니다. 초창기엔 늘 활기찬 모습이었던 소희엄마도 그날은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어두운 표정이었고 최사장은 마치 엑스맨 울베린과 한바탕 결투를 하고 돌아온 듯 왼쪽 뺨에서 목덜미까지 깊은 상처 세 줄을 길게 달고 있었답니다.
“아니, 얼굴은 왜 그렇게…?”
“아, 광산에서 좀 넘어졌어요.”
그렇게 대답했다던 최사장은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후 내가 그의 사무실에서 나오기 직전 이번엔 오른쪽 뺨에서 목을 거쳐 가슴까지 세 줄짜리 상처를 여러 세트 달고 있었습니다.
“상처가 심하네요. 곰하고 싸웠어요?”
“아니, 광산에서 좀….”
인도네시아에서 1년 반 정도를 지내는 동안 소희엄마는 이제 악이 받칠 대로 받쳐 틈나는 대로 술의 도움으로 업그레이드된 갈퀴 손가락에 손톱을 곧추 세우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카르타 초창기 시절엔 말링핑이나 바야에 출장갈 때마다 누가 보던 말던 늘 로얄살롱 뒷좌석에서 서로 부둥켜 안고 있었으나 언젠가부터 최사장이 혼자 출장가는 경우가 잦아졌고 저녁 술자리에 늘 참석해 교태 섞인 콧소리로 '우리 서방님'을 연발하던 소희엄마는 나중엔 그런 자리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가끔 인근 몰이나 한국 슈퍼마켓에서 먼발치에서 보게 되는 소희엄마는 언제나 어두운 표정으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곤 했어요.
최사장에게 거액을 투자했다가 돈과 함께 자신의 30대말 청춘을 함께 날려 버린 소희엄마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단 남은 돈을 단 한 푼이라도 지켜야 할 판에 돈을 벌기는 커녕 자기 돈을 곶감 빼먹듯 탕진하는 최사장이 소희엄마 눈에 더 이상 곱게 보일 리 없었습니다.
한편 난 최사장과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면서 황금 같은 1년을 헛되이 보내고 말았다는 자괴감에 빠졌습니다. 처음 최사장을 만났을 때 양프로 체면을 생각하기보다는 내 입장이 더 중요했던 건데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유치한 정의감에 스스로 놀아나서 버린 것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메이라는 걸출한 마케터(Marketer)와 에도라는 듬직한 직원을 얻은 것은 큰 득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길바닥에서 일하면서 10시에 문을 여는 아르타가딩 몰의 푸드코트에서 9시에 미팅을 시작하는 기술도 터득했고 일의 성패는 조직을 구성하는 사람들 하나하나의 마음가짐과 팀웍에 있는 것이지 개인용 PC와 파티션으로 치창된 화려한 사무실이나 그럴 듯한 회사주소지, 타고 다니는 차량의 브랜드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최사장과 소희엄마의 사이는 점차 파국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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