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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도네시안 드림

인도네시안 드림 (9)

beautician 2022. 2. 15. 11:54

 

ep9. BMW

 

North Jakarta International School (NJIS)

 

내 일이 점점 더 바빠지는 동안에도 최사장의 통역요청과 동반출장요청을 수없이 들어주어야 했지만 소희엄마 역시 그에 질세라 수많은 요청을 해오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한국에서 막 들어온 아이들을 당시 아직 끌라빠가딩의 니아스 거리에 있던 NJIS 학교에 입학시키는 것부터였어요. 돌아온 싱글의 화려한 삶을 즐겨왔던 소희엄마에게 8년만에 아이들을 다시 슬하에 들이는 것은 무척 만만찮은 일이었겠죠. 어느 날 갑자기 다 큰 아이들 엄마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돈 만으로 해결되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NJIS 입학신청서 영어 양식의 빈 칸을 채워 넣는 것은 더더욱 돈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고요. 나라고 해서 육아와 교육에 만능일 리 없었는데 아랑곳없이 소희엄마는 내게 SOS를 쳐왔어요.

 

내가 짬을 내서 몇 번 학교에 들러 학생처장 선생님을 만나 아이들을 소개하고 서류를 작성, 제출, 보완하여 입학 수속을 마친 후에도 소희엄마는 학부모 면담이 있는 날마다 함께 가달라며 부탁해 왔고 작은 아들의 심각한 수학능력부족이 선생님들 사이에 문제가 되어 심지어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라는 얘기까지 듣게 되며 분쟁의 성격을 띄자 나를 더욱 빈번히 학교로 불러냈습니다. 내가 정말 책임져야 할 내 아이들이 아직 간디스쿨에 다니고 있던 당시, 내 아이들 학부모 면담에도 시간을 내지 못했던 내가 남의 아이들을 위해 전력을 다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양심적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내가 내 입장과 상황을 설명하고 어렵사리 손을 떼자 얼마 지나지 않아 소희엄마는 입학금이 이중으로 지불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들을 간디스쿨로 전학시켜 오기에 이릅니다. 이젠 부탁을 거절하기 더 곤란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비단 학교 문제뿐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소희가 빨라디안 아파트 안의 피트니스 센터에서 운동기구를 다루다가 기구 모서리에 눈 언저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합니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지만 소희엄마는 불같이 화를 내며 내게 도움을 요청해 왔어요. 나를 아파트 관리사무실로 불러내 항의서와 손해배상 청구서를 영문으로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일로  며칠간 아파트의 담당직원과도 십 수 차례 전화통화를 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은 아파트에 정전이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인데 관리사무실에 항의해 달라는 요청이 날아옵니다. 어느 날은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소희엄마는 다시 전화를 걸어와 관리사무실에 수도물이 언제쯤 나올지 확인해 달라고 합니다. 어느 날은 화장실 배수구가 막혔습니다. 배수구를 뚫어야 하는데 이건 아파트 측 책임이니 아파트가 관련 배관공사 비용을 부담하도록 전화해 달라고 요청해 옵니다. 나는 완전히 지치고 말았습니다.

 

“최사장님, 내가 최사장님네 집사가 아니잖습니까?”

두 손 두 발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결국 최사장에게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 우린 또 배사장님이 여력이 되신다고 생각해서 계속 부탁을….”

“학교 일이야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아파트에서 일어나는 잡다한 일상 문제들까지 제가 일일이 해결해 드릴 수 없어요. 거래선 미팅하다 말고 사장님 아파트 하수구 뚫어 주러 갈 수는 없는 거 아니에요? 아파트 입주하신 지도 꽤 됐으니 거기서 사모님이 친구들 사귀셨겠죠? 그 아파트 상황을 전혀 모르는 나보다 그 아파트 아주머니들이 훨씬 더 잘 도와드릴 수 있어요.” 

 

그러나 어쩌면 당시 소희엄마는 아파트에서 친구들을 별로 사귀지 못했는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최사장 부부와 식사할 때면 소희엄마는 늘 발리에 사는 언니라는 사람 얘기만 했습니다. 단골 술집인 몇몇 식당 여주인들과는 언니 동생으로 트고 지냈지만 그 밖에는 개인적인 관계를 넓게 갖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예전 골프샵의 미스 박도 자카르타에서는 아무런 인간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첩이라는 사실 때문이었죠. 그래서 잠긴 아파트 문 앞에서 키를 집안에 두고 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문을 따주기 위해 내가 상담처에서 백방으로 전화하여 온갖 조치를 취하는 동안 그 아피트에 잠시 신세를 지고 가 있을 만한 이웃 한 명 만들어 두지 못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소희엄마의 처지도 그런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와중에 최사장의 상황은 계속 나빠져 갔습니다.

그가 개인적으로 납원석 구매를 시도했던 다른 지역에서도 모두 실패를 보았고 그러는 사이에 아까운 시간만 허비한 것입니다. 해외에서 4인 가족이 생활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드는 비용만도 만만치 않은데 곳곳에 헛돈을 뿌리면서 실패를 거듭하던 최사장은 이미 빚더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화려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려 했지만 사실은 이미 경제적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희엄마가 갑자기 피아노를 한 대 들여 놓고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소희엄마의 당초 구도는 야심차게 루꼬 한 동을 세내어 대대적으로 피아노 학원을 한다는 것이었으나 한국에서 자기 돈을 또 끌어 왔음에도 그것만으로는 아이들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도 여의치 않아 결국 계획을 대폭 축소해 자신의 아파트 유닛 안에서 피아노 레슨을 하기로 한 것입니다. 과거 포항에서 성공을 거듭했다는 피아노학원 신화를 자카르타에서 재현해 보려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최사장의 사업상황이 그만큼 나빠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해 12월, 나는 실로 7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파산의 충격에서 조금씩 회복되고 있었지만 한국에 한번 돌아가보려 마음 먹을 때마다 그 적잖은 경비에 눈앞이 캄캄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해 장인어른 장례를 위해 전 가족이 한국으로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은 사위된 도리로 당연한 일이었지만 그만큼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의미였고 그 저변엔 소매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던 메이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일을 마친 후 가족들은 거기 좀 더 머물게 하고 난 일주일 만에 자카르타에 돌아왔는데 최사장이나 소희엄마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딘가 이상했습니다.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듯, 어색했어요. 그래서 메이에게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메이도 대답을 피하려 애쓰는 모습이 확연했습니다. 특별이 공금이 비는 것도, 한국 간 사이 맡긴 차량들이 사고로 찌그러져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다가 한참 후에 소희엄마가 돈을 좀 빌려 달라는 요청을 해왔는데 메이가 정색을 했습니다.

 

“미스터르, 돈 빌려 주지 마세요. 뇨냐 리(소희엄마)는 돈 많아요.”

“뭔 소리야?”

 

내가 한국에 있는 사이 최사장과 소희엄마가 메이를 불러 앉혀 놓고 소희엄마의 한국통장을 보여 주었답니다. 

"봐, 동그라미(0)가 이렇게 많잖아." 그게 최근 통장인지 옛날 통장인지 메이로서는 알 길이 없었겠지만 엄청난 액수에 입이 쩍 벌어졌겠죠. 그러더니 소희엄마는 사진들도 몇 장 보여 주더랍니다.  

"봐, 메이, 내가 한국에 가지고 있는 BMW 자동차야. 무려 세 대씩이나 가지고 있어. 네가 평생 벌어도 살 수 없는 차라구."

물론 소희엄마가 이메이에게 보여준 BMW 자동차의 사진이란 것이 달랑 자동차만 나온 딜러 카탈록인지 소희엄마가 레이싱 모델처럼 차에 기대 포즈를 잡은 사진인지는 직접 보지 않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BMW

 

“바쁜 남의 직원 불러 놓고 그런 거 왜 보여 줬대? 아무튼 소희엄마가 한국에 돈 많다는 얘기지? 그런데 무슨 얘기하다가 그런 걸 보여 준 거야?”

“그게….”

 

쭈뼛거리던 메이의 대답을 듣고서야 난  왜 그간 최사장 부부가 네게 어색해 했는지, 메이가 왜 대답하기 곤란해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소희엄마가 그렇게 자기 재력이 나보다 월등히 뛰어난 것을 보여주면서 메이를 스카우트 하려 했다는 거였어요. 월급을 두 배 주겠다고 하면서요

 

“월급만?”

“아뇨, 집도 사주신다고….”

 

또 그 놈의 집. 

난 실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최사장은 직원들 채용할 때마다 사업이 잘 되면 집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남발하곤 했어요. 그러나 메이는 그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죠. 면접을 통과한 후 최사장의 약속만 믿고 전 직장에 사표를 낸 메이를 최사장이 이해하기 힘든 이유로 채용결정을 번복해 내가 어쩔 수 없이 떠맡게 된 것을 당사자인 메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최사장은 당시 메이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았습니다. 내가 대신 메이를 채용한 것만으로 이미 보상이 되었다고 생각한 거겠죠. 

 

그 결정을 이제 최사장이 후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메이가 그렇게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내 회사에 엄청난 매출을 올려 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거죠. 그러다가 내가 한국출장으로 자리를 비우자 그 기회를 이용해 메이를 회유하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 회유방법이라는 게 고작 소희엄마의 한국 통장과 BMW 자동차 사진을 보여준 거였다니, 난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난 짐짓 모른 척 하고 말았지만 그 일로 최사장 부부의 마음이 예전 내게 사무실 입주를 종용하던 때와는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었어요. 소희엄마는 아이들 학비와 최사장 사업자금 때문에 포항 언저리의 땅을 팔아 그 돈을 들여올 때 공동명의로 산 땅의 자기 지분만 파는 게 무척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BMW를 정말 세 대씩이나 가지고 있었다면 수속이 까다로운 공동명의 땅을 파는 것보다 BMW 한 대를 파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요? 그런 측면에서 소희엄마가 통장과 BMW 사진으로 메이를 꼬이려 했던 것은 뭔가 사기성이 짙어 보였습니다. 물론 손발이 오글거릴 정도로 촌스러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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