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도네시안 드림

인도네시안 드림 (13)

beautician 2022. 2. 19. 11:41

 

ep13. 꽃뱀

 

어느 날 오랜 만에 골프백을 차에 싣고 가딩마스 골프연습장에 갔습니다. 그곳은 양프로의 직장입니다. 그동안 바쁘기도 했고 양프로를 만나기도 껄끄러운 느낌 때문에 멀리 했던 곳이었죠. 그러나 사업이 풀려 가면서 양프로에게 맺혀 있던 감정도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피를 빨아 먹은 자카르타의 사기꾼들 중 나도 그 중 한 명으로 생각하냐는 질문에 그는 지금은 뭐라고 대답할 수 없네요 라며 가시 돋친 대답을 했었죠. 그러나 이젠 그것도 감싸 안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양프로를 다시 만날 준비가 되었다고 성급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양프로는 요즘 연습장 안 나와요. 수라바야에 간다고 했는데…, 그리고 나서 안나온 지 몇 달 됐어요.” 

연습장 카운터 여직원이 하는 말에 최사장이 전에 했던 말들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내가 최사장과 관계를 정리하기 몇 개월 전, 그러니까 양프로와도 정산을 하기 한 두 달 전, 양프로는 자신이 깔리만탄 어딘가에 통역하러 다녀 왔다고 자랑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사장과 결별한지 한 달쯤 지난 술자리에서 최사장은 망간 광산주들과 계약하러 반자르마신에 다녀 온 것을 자랑했고요.

 

“양프로 참 괜찮은 사람이더군요. 일도 열심이구요.” 

최사장의 입에서 툭 튀어나온 말. 

그렇습니다. 나 대신 최사장 출장을 쫒아다니며 일을 돕고 있던 사람은 양프로였어요. 

그렇게 말하는 최사장의 입에 소주병을 박아 넣고 싶었습니다. 그는 내가 한국을 다녀 온 후 두 달이 넘도록 그토록 양프로 욕을 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그 시기에 최사장은 양프로를 통역으로 대동하고 깔리만탄을 다녀왔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 당시 양프로와 내가 미용 수익금 분배 문제로 서로 오해하고 대립하도록 이간질해 놓고서 자긴 나 몰래 양프로에게 엎어지며 도움을 청했던 겁니다.

 

그러나 프로의 인도네시아어가 아직 서툴렀습니다. 영어도 인도네시아어도 거의 하지 못하는 최사장은 언제나 현지어를 비교적 매끄럽게 구사하는 조력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에는 모나스 광장 노숙자 황사장이, 한동안은 SK 지사장 출신의 맹사장이, 그리고 그 후에는 김부장의 뒤를 이어 내가 그의 일을 도왔던 거죠. 당시 양프로는 내 대타로 가발업을 하는 안사장이라는 사람을 최사장에게 소개해 주었다고 합니다. 스칼렛이라는 전문가발공장 출신의 안사장은 인니어를 능란하게 구사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거기에 애 양프로도 직접 뛰어든 것일까요?

 

처음 최사장을 내게 소개해 준 사람이 양프로였죠. 그리고 나와 최사장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 당시 내 앞에서 그렇게 집요하게 양프로의 욕을 했던 것처럼 최사장은 양프로 앞에서는 또 내 욕으로 대화를 일관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내가 그의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 양프로는 성격상 자신이 사람을 잘못 소개해 파국이 왔다고 생각해 안사장을 교체 투입한 것 만으로 부족해 자기 자신도 발벗고 뛰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일종의 애프터서비스였던 거죠.

 

최사장의 사무실과 양프로의 가딩마스 연습장은 직선거리로 불과 1km도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최사장 사무실에 있는 동안 족히 100번 넘도록 양프로를 방문했지만 양프로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단 한 번 외에는 나를 방문하지 않았습니다. 그 한 번도 맡긴 돈을 회수하기 직전 내가 사업상황을 설명할 때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자기 일을 팽개쳐 놓고 최사장과 출장을 다녔다는 사실에 배신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최사장과 틀어진 것이고 자신이 소개한 최사장이 옳았음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모양새였습니다. 기분이 더러워졌습니다.

 

망간 원석

그러나 안사장을 붙여 놓은 이상 양프로의 역할은 그다지 없을 것이었으므로 머지 않은 장래에 연습장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예 연습장을 완전히 그만 두고 레슨이 남은 손님들까지 팽개쳐 둔 채 내가 겪어 본 바 확실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던 최사장이 차려놓은 수라바야의 사업장에 상주하고 있었습니다. 

 

 최사장은 내가 사는 아파트의 29층을 5년 임대계약했다며 동네방네 떠들었지만 불과 3~4개월도 되지 않아 뜬금없이 자카르타를 떠나 발리로 날아가 버렸고 그곳에서 수라바야를 오가다가 나중엔 롬복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비용을 어떻게 마련했는지, 반자르마신, 마카사르, 수라바야, 발리 등 각지에 집과 사업장을 임대하면서 투자자들의 피같은 돈을 매번 버리듯 방치하고 움직여 간 것입니다.

 

그들이 자카르타를 떠나면서 자연히 소희엄마나 그 아이들에 대해서도 자주 얘기를 듣지 못하게 되었지만 간간히 최사장과 전화통화를 할 일이 있었습니다. 예전 김부장이 마나도 직원들과 함께 해고당할 당시 최사장 회사의 정관에서 김부장이 넣은 현지인들 이름을 빼고 우리 직원들 명의를 대신 빌려 주었죠. 그러나 최사장은 그렇게 유지해 놓은 회사를 방치해 버리면서 우리 직원들에게 세무당국에서 밀린 세금 독촉이 들어온 것입니다. 최사장은 세금을 정리하고 회사를 폐쇄하겠다는 약속을 수 차례 했지만 계속 말을 바꾸며 시한을 넘겼으므로 우리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최사장과 연락해 세금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전화통화를 할 때마다 최사장은 세무문제에 대한 대답을 교묘히 피해가면서 늘 그렇듯 자기 사업 전반에 대한 설명만 장황하게 늘어 놓곤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제 2~3주 후면 첫 선적이 시작되고 곧이어 수십만 불의 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할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주에도 그 다음 달에도, 거의 1년이 다 지난 후에도 2~3주 후면 선적한다는 일정이 그대로였습니다. 즉, 선적은 기약이 없었던 겁니다.

 

그 안사장이란 사람은 영 아니더군요. 능력이 전혀 없어서 해고했지요. 하지만 양프로만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 끝까지 데리고 갈 겁니다. 양프로도 어려운 처지인 것 같은데 내가 사업을 잘 가르쳐서 한 번 부자로 만들어 줄 참이에요.”

 

최사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 즈음 난 최사장 말을 절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고 있었습니다. 최사장도 처음부터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그가 자카르타를 떠난 후부터 그가 했던 거짓말들이 드러나고 좁은 교민사회에서 나오는그의 말과 행동에 대한 평판은이제 그가 번데기의 허물을 벗고 완전한 사기꾼 성충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

 

안사장을 해고했다는 얘기는 더 이상 안사장의 효용가치가 없어졌거나 최사장의 실체를 파악한 안사장이 그의 사업에서 손을 뗐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안사장은 끌라빠가딩 인근 쯤빠까마스(Cempaka Mas)의 루코에서 하고 있던 가발가게를 내팽개치다시피 하고 양프로와 함께 전격적으로 최사장 사업에 동참했었습니다. 심지어, 최사장이 프렌치웍 아파트를 5년 계약했다며 만방에 선포하고 다닐 당시, 사실은 잔금을 치들 돈이 없어 계약금을 날리게 된 최사장을 도와 거의 1만불 가까이 돈을 빌려 주기도 했죠. 며칠 후면 갚겠다던 그 돈을 몇 달이 지나도 최사장이 상환하지 않자 두 사람의 사이에 깊은 골이 생겼고 그 돈을 오랜 시간에 걸쳐 할부로 받아낸 후 관계를 끊고 만 것입니다. 그런 상황을 최사장은 자신이 안사장을 해고했다고 얼버무린 것입니다.

 

양프로를 끝까지 데리고 간다는 얘기는 불길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그 당시 최사장은 누구를 월급을 주며 쓸 능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전 반자르마신에서 망간 스톡파일을 만들고 있을 때 미용사 출신 류과장이라는 사람을 잠시 데리고 있었지만 그는 상해 류상무의 사촌동생으로 최사장은 그에게 일을 시키기만 했을 뿐 실제 그의 월급은 류상무가 상해에서 보내주고 있었죠. 사실상 류과장은 투자한 돈의 쓰임새를 감독하고 상환을 보장하려는 류상무의 안전장치 내지는 보험이라는 의미가 강했으므로 최사장이 그를 오래 데리고 있을 리 없었고 결국 최사장은 반자르마신에 쏟아 넣었던 돈과 함께 류과장도 그곳에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런데 세제 큰 통을 하나 사면 유연제 작은 통 하나가 따라 나오듯 최사장 입장에서는 별책부록이나 다름없었던 양프로를 세제 큰 통인 안사장이 떨어져 나간 후에도 계속 데리고 있겠다는 의도는 분명 수상했습니다. 더욱이 양프로는 인니어가 능숙하지 못한데 말이죠. 아무래도 양프로가 돈을 투자하고 있을 것 같다는 심증이 갔습니다. 양프로는 이미 한국에서 집을 팔아 가져온 현금도 바닥나고 연습장에서의 수입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으나 그가 최사장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할 당시 내가 돌려 준 1만불의 현금이 있었고 한국에는 제주도와 강원도 등에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땅도 있었거든요.

 

양프로를 말려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나에게 그랬듯, 이번엔 먼저 판에서 손을 털고 일어난 안사장에게도 당신들이 틀렸고 자기가 맞았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점, 그리고 순진한 양프로가 최사장의 번지르르한 말을 여전히 액면 그대로 믿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양프로가 고집을 부리면 누구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가 내 진심을 알아 주리라 기대하기 힘든 시점이었습니다.

 

“양프로는 그동안 고생 많이 한 사람이에요. 잘 해 주셔야 됩니다.” 

, 걱정 마세요. 양프로 같은 친구는 내가 평생 책임질 수 있어요.” 

염려되어 얘기했지만 최사장의 장담은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았습니다.

 

사모님하고 애들도 잘 있지요?” 

엄마가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아서 애들이랑 같이 한국으로 돌려 보냈어요.” 

?”

 

자카르타에서 마지막 봤을 때 비록 어두운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건강한 모습이었고 소주 일곱 병을 마시고도 혀 꼬인 소리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소희엄마가 위암 말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비록 막판에 좌충우돌하고 다니긴 했지만 8년만에 다시 한 가족이 된 두 아이를 맞아 엄마로서 포부를 가다듬던 모습이 안타깝게 떠올랐습니다.

 

어쩌다가 그렇게…, 소희랑 민수도 많이 놀랐겠네요.” 

전화기 너머 최사장은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더니 껄껄 웃으면서 다시 말을 잇더군요. 

하하. 소희엄마 얘기가 아니라 호주에 있던 애들 엄마 얘기요.” 

…” 

그게 웃으면서 할 얘기인지 의아했어요.

 

“3개월 밖에 못산다고 하더니 벌써 반년 다 되도 잘만 살아 있어요. 한국 물이 좋긴 좋은 모양이지.” 

유머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들을 최사장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와 전화를 하던 당시 대장암으로 투병하던 완도 사촌형이 강원도의 어느 여관방에서 창틀에 목을 매고 자살했다는 소식을 중국 광주에 있던 형에게 이메일로 전해 들은 지 불과 몇 주 지나지 않은 시기였어요. 죽어가는 사람, 또는 죽은 사람을 빗대어 우스개 소리 하려는 사람들 마음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 소희엄마랑 얘들은 잘 지내는 거죠?” 최사장은 이번에도 의외의 대답을 합니다. 

그 여자 꽃뱀이었어.” 

이건 또 무슨 얘기일까요? 소희엄마가 몸과 마음은 물론 최소한 14만불이 넘는 돈을 가지고 들어와 자카르타에 풀었던 것은 나도 알고 최사장도 아는 일이었습니다. 돈을 뜯기는커녕 돈을 퍼부어주는 꽃뱀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요? 

처음부터 그 여자 목적은 내 돈이었어요. 완전히 털렸어. 여기 롬복까지 따라오지도 않았어요. 발리에서 헤어졌고 그 여자 자기 애들은 발리 언니 집에 버려 놓고 지금 포항 가서 피아노 학원 한데요.”

 

그는 언젠가부터 상황을 자기 편하게 왜곡해서 말하는 버릇이 생긴 모양입니다. 소희엄마가 애들을 버리고 포항에 갔다는 얘기 역시 믿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포항에 자기를 기다리는 돈많은 한의사, 사업가들이 줄 서 있다는 얘기를 여러 번 들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없이 자존심 높던 여자가 그렇게 간단히 자기 실패를 인정하고 포항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나 아이들과 재합류하면서 그토록 기뻐했었는데 발리에 아이들을 버려 놓고 자기 혼자 떠났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사장이 하는 말의 진위를 하나하나 따져 볼 만큼 나 역시 그리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그 사람들 삶이었으니까요.

 

최사장과 전화를 끝내고서 난 한참동안 애꿎은 담배만 연거푸 피워 댔습니다. 양프로를 갖고 놀지 말라고, 안사장이나 소희엄마처럼 떠나간 사람들 등 뒤에 욕해 대지 말라고 고함을 쳤어야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사기꾼이 되고 싶냐고, 정신 좀 제대로 차리라고 다그쳤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잘난 정관에서 직원들 이름을 빼야 한다는 과제 때문에 난 시종 내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기만 했을 뿐이었어요.

 

끌라빠가딩 한성관 식당 2층에서 처음 만났던 최사장은 밝은 표정으로 정열적으로 많은 얘기를 했었고 소희엄마는 그 옆에서 팔을 끼고 앉아 최사장의 무릎과 어깨를 어루만지며 홀린 듯한 표정으로 최사장의 옆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최사장은 실리카 광산투자에 실패한 운도 없고 어쩌면 능력도 없는 사업가였을 뿐이지 아직 사기꾼은 아니었고 소희엄마 역시 그것이 로맨스든 불륜이든 신혼의 단꿈에 젖은 행복한 새신부였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불과 1년 조금 더 지난 이제, 최사장의 미소는 읍습한 그림자가 드리우며 음흉하게 일그러지고 소희엄마의 신혼의 꿈은 산산히 깨어져 그녀가 어디 있는지는 알 길 없지만 그녀의 마음은 발리와 포항 사이 태평양 어딘가에서 가야 할 바를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최사장은 이미 안사장의 단물을 빨아 먹은 후 내팽개치고 이제 김프로의 정수리에 빨대를 박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도대체 이 이야기는 불륜 치정을 거쳐 어디까지 흘러 가는 걸까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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