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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섹시한 여비서 폐혜

beautician 2016. 9. 16. 22:47

 


  

20대에 딱 한번 대기업 채용면접을 보았습니다.

대학 졸업 직전이었던 그 면접시험 후 ROTC 소위 임관 하기 전까지 1.5개월, 전역 후 7년 반 동안을 그 회사에서 근무했었죠. 그냥 그대로 대기업에 남아 지금쯤 차장 말년이나 부장쯤 되어 있다면 요즘 많은 청년들이 겪고 있는 채용면접의 중압감을 남의 일처럼 생각하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그 다음에 겪었던 면접시험들은 무척 힘든 것이었습니다. 40대에 막 접어들어, 그것도 남의 나라에서 겪어야 했던 파산은 그 자체만의 후유증뿐 아니라 그 후 절박한 심정으로 문을 두드렸던 여러 회사의 면접시험에서 퇴짜를 맞으면서 자존심과 자신감에 큰 상처를 받았었죠. 그래서 이제 직원들을 채용하기 위해 면접을 볼 때면 비록 적합한 스펙이 아니어서 돌려 보내게 될 때에 내가 당시 느꼈던 자괴감을 주지 않으려 새삼 노력하곤 합니다.

 

직원 채용면접을 할 때마다 기억나는 것은 에피(Evi)를 면접할 때의 일입니다.

지난 불협화음편과 애국심 사건편 등 다수의 에피소드에 출연했던 에피는 95년도 짜꿍(Cakung) KBN 보세공단에 있던 우리 공장 면접대기실에 앉아 있을 당시 무척이나 아름다운 자태를 하고 있었어요.

 

당시 공장장은 보통 5년 기한인 지사근무기간을 훌쩍 넘겨 8년째 자카르타에서 근무 중이었는데 본사가 그의 지사근무 연장신청을 받아 들이면서 9년차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10년 연속 해외근무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므로 그 해가 공장장의 마지막 인도네시아 근무가 될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사실 바로 1년 전의 상황도 마찬가지였지요. 8년이나 한 지사, 한 해외공장에서 근무한 사람 역시 그 전엔 아무도 없었으므로 그는 마지막일 것이 확실한 그 해에 아마도 모든 것을 누려 보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임공장장이 공장을 넘겨줄 때 함께 넘겨 받은 플러스 몇 만불이었던 비자금 장부를 롬복(Lombok)섬 여행을 비롯해 잦은 골프모임과 회식 등에 흥청망청 지출한 끝에 마이너스 28만불로 만들어 놓고 후임 공장장 내정자로 부임해 온 내게 떠넘기려 했었지요. 내가 절대로 떠맡을 수 없었던 그 비자금 장부가 결과적으로 그를 1년 더 자카르타에 묶어 놓는 족쇄가 되었고 공장이 정리되거나 공장장이 교체되면 백일하에 드러날 시한폭탄 같은 것이 되고 말았지만 그는 그렇게 해서 얻은, 당시로서는 격오지나 다름없었던 자카르타의 현지법인을 제왕처럼 군림할 수 있는 또 한번의 1년을 최대한 만끽하고 있었습니다.

 

여비서 한 명 뽑아 줘.”

 

전용 여비서를 거느리는 것이 내 부임 초창기부터 공장장이 늘 입에 달고 있던 희망사항이었죠. 이제 귀국이 1년 연기되자 그는 이 참에 그 꿈을 실현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인사담당 아리스(Aris)는 꼼파스(Kompas) 신문에 대문짝만한 채용공고를 냈고 다음 날부터 구직자들이 물밀 듯 밀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스스로도 낯간지러운 일이었는지 공장장도 차마 직접 면접관으로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이렇게 한 마디를 던졌죠.

 

여기 사무실 직원들은 모두 한국사람이 직접 뽑아야 돼. 특히 비서는 한국사람들 취향에 맞아야 되거든. 나중에 한국에서 손님들 오면 창피하지 않을 정도는 돼야지. 가능하면 예쁜 애로…”

 

남자들의 인지상정일까요? 늘 충돌하기만 했던 공장장과도 그 부분에서는 의견일치를 보았습니다.

 

서부 자바(Jawa)와 중부 자바의 접경지역 도시 찌레본(Cirebon) 출신인 에피는 자카르타 동부 뿔로마스(Pulo Mas) 지역에 있던 아스미(ASMI)라는 비서 전문대학을 졸업한 재원이었습니다. 사흘 동안 계속된 면접에서 40명 정도의 지원자들을 면접했는데 그 중에는 아스미는 물론 타라카니타(Tarakanita), 돈 보스코(Don Bosco) 등 비서 전문대학 출신들이 많았지만 에피가 유독 눈에 띈 것은 초콜렛색 살결에도 불구하고 진주처럼 반짝이는 피부와 돋보이는 미모, 거기에 순정만화책에서 막 튀어나온 여주인공 같은 큰 눈망울 때문이었어요.

 

마이 네임 이스 에피. 아이 해브 그레쥬에이티드 프롬 아스미, 아이브 갓 D3 디플로마 포 세크레타리스…”

 

인도네시아식 억양으로 인도네시아어가 상당히 섞여 들어가는 엉성한 영어조차도 에피의 차분한 분위기와 수줍어하는 표정과 어울리면서 더더욱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면접관으로서는 불순하기 그지없는 자세이긴 했지만 아름다운 여성의 미모는 어디에서나 통하는 법입니다. 에피를 면접 보면서 입가에 침이라도 흘리지 않은 게 다행이었죠.

 

지금 우리 회사의 캡틴 이메이(Imey)도 예니(Yeni)라는 예쁜 동생을 가지고 있습니다. 폐결핵의 악화와 회복을 반복하면서 160센티 키에 35~40kgs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몸무게의 이 말라깽이 아가씨는 천진난만한 웃음이 거의 바보스러워 보일 정도이지만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면 마치 영화에서 나올 법한 여주인공처럼 제법 분위기 있는 얼굴이 되기도 합니다. 건강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가 회복되면 다시 다른 직장을 찾는 등 이직이 많았던 21살의 이 아가씨가 그동안 한번도 면접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 역시 그녀의 미모에 있었겠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안쫄(Ancol) 해양공원 두니아 판타시(Dunia Fantasi)라는 놀이공원, 고급 영화관인 블리츠 메가플렉스(Blitz Megaplex)를 거쳐 지금은 서부 자카르타 쁠루잇(Pluit) 지역의 소고(Sogo)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 예니의 미모는 그러나 에피와 같은 청순가련형이 아니라 백치미 같은 것이었죠.

 

왜 그래요? 왜 울어요?”

 

들은 얘기이지만 예니의 영화관 면접에서 면접관이 그렇게 물었답니다. 한국에서도 그렇겠지만 인도네시아에서도 괜찮은 회사가 구인공고를 내면 지원자들이 구름같이 몰려 들고 예니는 아침 일찍부터 도착해 순서를 기다린 끝에 저녁 5시가 다 되어 면접실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메가플렉스 같은 영화관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영화를 보러 오므로 면접관이 어떤 상황을 주고 영어로 반응하라고 하자 처음 시작은 괜찮았던 예니가 중간쯤부터 울먹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면접관도 당황했지요.

 

아침부터 굶어서 영어가 생각 안나요. 엉엉~~”

 

면접관들을 모두 뒤로 넘어가게 만든 이 대답 후 예니는 바로 채용이 되었고 나중에 다시 병이 악화되어 그만두게 되는 날까지 그날 면접관으로 나왔던 메가플렉스 북부 자카르타 지역 매니저의 총애를 한 몸에 받게 됩니다.

 

에피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에피를 특징지을 수 있는 단어는 앞서 언급했던 미모 외에 차분함과 수줍음이었죠. 마지막 면접자였던 에피를 우리가 선택하게 된 것은 바로 그 앞에 면접을 보았던 아가씨의 영향이 컸습니다.


역시 아스미를 졸업했다는 그 아가씨의 이름은 이제 기억나지 않지만 그 분위기만은 절대 잊지 못합니다. 그녀의 미모는 에피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어요. 170센티는 될 큰 키와 모델같은 몸매 위에 말끔한 캐주얼 정장을 입고 있었지만 어깨까지 드리운, 헝클어진 듯 아닌 듯 헐리웃 최신유행의 긴 머리 미꾸라지 퍼머, 짙은 아이라인과 새빨간 입술, 게다가 충격적일 정도로 짧은 미니 스커트는 면접관들은 물론 사무실 직원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었는데 그녀의 머리 위에 나이트클럽 반짝이 조명이 돌아가고 있는 환상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말끝마다 아양과 교태를 담은 신음소리 같은 것을 내고 있었으므로 내 옆에 앉아 있던 인사부장 대머리 아리스는 자신을 주체 못하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연신 싱글벙글 거리는 중이었고 사무실 전체를 감돌고 있던 뭔가 에로틱하면서도 데카던트한 분위기를 감지한 공장장은 물론 생산현장 건너편에 자기 사무실을 따로 만들어 놓고 있던 창고장 마저 어느 새 면접실 내 자리 옆에 앉아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려는 듯 실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이 아가씨는 영화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 흉내를 내고 있었습니다. 그 짧은 스커트 밑에 꼬고 있던 다리를 바꾸었던 것이죠. 아리스는 거의 뒤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공장장님 생각은요….?”

 

그 아가씨가 나간 후 난 공장장을 돌아 보았죠. 면접실은 마치 한편의 에로영화라도 보고 난 듯 자못 후끈한 분위기였고 그 옆의 창고장은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긴 것이 이 유혹을 떨쳐 주십사 기도라고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장장 역시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죠. 그리고 나서 그날 마지막이었던 에피와의 면접을 아리스와 우리 한국인 셋이 함께 마친 후 공장장은 고민에 빠집니다.

 

마지막 두 명이 제일 나은 것 같은데…., 한 명은 고혹적이고 또 한 명은 청순하고…, 창고장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난 아무 것도 본 것 없고 아무 생각도 없소….”

 

창고장은 여전히 명상 중이었습니다. 나는 한편으론 허탈한 심정이기도 했어요. 사흘 동안 40명의 면접을 보았는데 공장장이 직접 본 것은 아까의 두 명뿐이었죠. 그러나 그 두 명을 공장장이 보았기 때문에 그 앞의 38명은 마치 애초부터 없었던 사람들처럼 되어 버리고 말았거든요. 공장장이 너무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었으므로 내가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공장장님, 비서를 뽑는 거지 애인 뽑는 거 아니잖습니까?”

 

그 말 한 마디에 비서 면접기간 동안 나름대로 부드러워졌던 공장장과의 관계가 순식간에 원위치 하면서 또 다시 삐걱거리기 시작했지요. 그 한 마디 못 참은 나도 그때는 참 어지간했습니다.

 

결국 결론은 에피를 뽑는 것으로 결정이 나고 에피는 다음 날부터 공장에 출근하기 시작했지요.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기도 했어요. 그 앞에 면접 본 아가씨를 뽑았다면 그 아가씨가 지나다니며 엉덩이를 살랑거리고 교태 섞인 코맹맹이 소리를 낼 사무실에서 공장장을 포함해 아무도 제대로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 테니까요.

 

당시 본국 본사에는 상무급 이상에게만 비서가 있었는데 에피를 비서로 얻은 공장장은 한동안 한 시간에도 몇 번씩 에피를 자기 방으로 불러 들이면서 비서가 딸린 현지법인장의 생할을 만끽했습니다. 그러나 에피로서는 그 생활이 그렇게 즐겁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물론 비서 전문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당장 전문적인 비서가 되는 것이 아니겠지만, 비서를 처음 써보는 공장장으로서도 커피를 시키고 서류 복사를 시키는 정도의 일 밖에 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우리 공장에는 오피스 보이, 오피스 걸이라는 정식 직함을 가진 사환들이 이미 있었음에도 결국 나름대로의 고급인력이었던 에피는 공장장의 비서로 있는 동안 여사환 정도의 일 밖에는 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면접 후에도 오랫동안 명상에 잠겼던 창고장은 창고사무실로 돌아가기 전 내 책상에 들러 나직이 속삭였습니다.

 

비서 둘 뽑아서 나도 한 명 붙여주면 안될까?”

 

창고장은 샤론 스톤을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러나 공장장은 비서를 거느리는 특권적 지위를 공장 내 그 누구와도 나누어 가질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그의 희망은 그가 귀국하던 날까지도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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