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매일의 삶

백주의 대결

beautician 2016. 9. 20. 10:00

 

 

디자인 회사를 그만 두었을 때 당장 당면한 문제는 타고 다닐 차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골프샵 시절에 우여곡절 끝에 사서 어렵사리 할부를 끝낸 기아차 슈마를 팔아 DP를 내고 다시 할부를 시작한 토요타 끼장(Kijang)밴이 있었지만 그것을 내가 쓰겠다고 아이들 등하교와 학원 통원에 지장을 줄 수는 없는 일이었어요. 그렇다고 차를 한 대 더 임대하기에는 아직 여유가 없었습니다. 끼장은 아내와 아이들이 전적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나는 대중교통수단을 사용하기로 마음 먹었는데 택시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 역시 비용이 만만치 않았고 그렇다고 코파자(Kopaja)나 앙꼿(Angkot) 같은 일반 버스를 사용하자니 이틀에 한번 꼴로 소매치기나 심하면 강도를 만날 각오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버스웨이(Busway) 였어요.



버스웨이


앙꼿

코파자

 

나는 기본적으로 버스웨이가 자카르타 주정부의 가장 잘못된 실책 중 하나라고 지금도 믿고 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당시로서는 그나마 저렴하면서도 비교적 안전한 교통수단으로서 감사히 사용했습니다. 마침 당시 우린 쯤빠까 마스(Cempaka Mas)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아파트 단지를 나서면 저가 몰인 ITC 앞 번잡하고 나름대로 악명높은 우범지대를 지나 가까운 큰 길에 버스웨이 정류장이 설치되어 있었으므로 출발하는 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어요.

 

좁은 인도에서 시작되는 양철 육교를 타고 도로 중앙선에 설치된 정류장에 들어서면 창구에서 3,500 루피아 내고 표를 사자마자 바로 5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개찰구에 표를 넣고 대기실로 들어가 버스를 기다리는 거죠. 출퇴근 시간을 잘 피하면 쯤빠까 뿌띠(Cempaka Putih) 지역의 버스웨이는 그다지 혼잡하지 않았으므로 가까운 거리를 다니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안락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노선과 연결되는 스넨(Senen)이나 하르모니(Harmoni)의 환승역이었습니다. 스넨 환승역은 그나마 출퇴근 시간을 피하면 그럭저럭 빨리 연결 노선의 버스를 탈 수 있었지만 하루종일 지옥처럼 붐비는 하르모니 정류장은 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장소였어요. 그러나 자카르타 남부 시내로 들어가려면 꼭 거치지 않으면 안되는 곳이었으므로 내가 버스웨이를 사용하는 동안 하르모니 정류장에서 연결차량을 기다린 시간의 총 합계를 내보면 100시간은 충분히 넘지 않을까 싶습니다.

 

버스웨이를 사용하는데 있어 당면한 또 하나의 문제는 내가 산뜻하게 가벼운 서류가방 한 개만 달랑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어요. 명색은 미용기기 수입판매상이라고 근사하게 갖다 붙일 수 있겠지만 거래선들을 만나면 사진이나 브로셔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으므로 다수의 쌤플들을 넣고 다니는 큼직한 가방을 둘러 매고 다녀야 했습니다. 그래서 보통은 어깨에 매는 서류가방 말고도 큰 운동가방 같은 것을 가지고 다녔고 배달이라도 해야 하는 날이면 거기에 큰 가방이나 박스를 한 두 개 더 들고 다녀야 했죠. 그래서 거의 방물장수 수준그래서 배달을 해야 하는 날이면 어렵사리 끼장을 사용하려고 시간을 맞추곤 했지만 그나마 여의치 못해 평소처럼 버스웨이를 사용해야 하는 날이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즈음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어 녹초가 되어 있곤 했습니다.

 

석 달 가까이 버스웨이를 사용하면서 점점 더 불편하게 여겨졌던 이유는 하르모니 환승역의 대혼잡이나 들고 다녀야 하는 짐들 때문만이 아니었어요. 출퇴근 시간이면 차량들이 온통 뒤엉켜 버리는 일반도로에서 저 혼자 편하겠다고 버스웨이로 뛰어드는 얌체족 승용차들이나 기본적으로 도로교통법을 어기는 것이 자신들의 특권이라 생각하며 심지어 역주행도 다반사인 오토바이들이 버스웨이의 앞길을 막곤 했고 수많은 신호등과 좁은 도로에서 일반 차량과 함께 써야 하는 공동차선 등도 버스웨이의 속도를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죠. 더욱이 버스웨이가 도시 구석구석까지 실핏줄처럼 뻗어 있는 것이 아니라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건설되어 실제 목적지까지 가기 위해서는 가까운 정류장에서 다른 교통수단으로 바꾸어 타야 했지만 사회간접자본이 열악한 자카르타에서 짐을 들고 다니는 외국인에게 가용한 선택은 택시뿐이었죠. 그것이 교통비를 크게 줄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불편한 부분은 공공질서를 지키는 것이 손해라고 생각하는 대다수 인도네시아인들의 민도라는 부분이었습니다.

 

일반 저가 몰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유원지 등의 화장실에 가 보면 다음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지 좌변기 좌석에 흙투성이 신발로 올라 앉아 일을 봐 도저히 앉을 수 없을 정도로 더럽혀진 좌석이나 심지어 고장난 좌석이 떨어져 나가 좌변기만 달랑 있는 화장실이 적지 않지요. 그런 상황은 최근까지도 자카르타나 수라바야의 국제공항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깔끔을 떤다며 화장실에서 용무를 보고 뭘 그렇게 씻어 대는지 화장실을 물바다로 만들어 놓는 사람들, 공공화장실의 세면대에는 사용한 사람이 물을 잠그지 않아 콸콸 물을 쏟아 내고 있는 수도꼭지들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박살난 도로변의 공중전화기, 공원이나 유원지마다 여기 저기 버려져 잔뜩 쌓인 쓰레기들, 안쫄 해양공원 해수욕장까지 밀려드는 각종 부유물 쓰레기들,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른 사람들의 편의는 무시하고 저희들끼리 큰 소리로 떠들어대는 일단의 사람들, 대개는 고장나 있는 게 정상인 공공시설들, 그런 것이 인도네시아인들의 갖고 있는 공공질서의식의 현주소이죠.

 

버스웨이 정류장 공간이 워낙 적어 화장실 설치를 아예 고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급한 사람들에게는 대재난이겠죠. 경비원 복장을 한 차장들이 타고 있어 일반 공공 교통수단에서 활개치는 소매치기들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 버스웨이의 장점이지만 버스웨이 역시 이런 무질서로부터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특히 붐비는 시간이면 승객들은 버스에 타서 안쪽에 넉넉한 공간으로 들어가지 않고 쉽게 내리려고 문간에 버티고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아무리 널널한 버스도 문간은 발 디딜 틈도 없이 혼잡해 타고 내리는 것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차장은 수백명이 기다리는 환승역에서도 서너명만 태우고서 서둘러 문을 닫고 급히 차를 출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버스웨이에 익숙해질 즈음 스넨(Senen)에서 예기치 않았던 사건을 겪게 됩니다.

 

그날도 서류가방 한 개와 짐가방 두 개를 들고서 쯤빠까 마스 정류장에서 버스웨이에 올라 스넨 환승역에서 연결편을 갈아타기 위해 내리려는 중이었어요. 내가 있던 안쪽은 좌석까지 비어 있을 정도로 널널한 상황이었지만 문간은 언제나처럼 초만원 상태여서 짐을 들고 그 틈을 비집고 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쏘리~, 쏘리~.”

 

수퍼주니어의 노래가 아닙니다. 영어가 잘 안통하는 이 나라에서도 이건 누구나 알아 듣는 영어. 그렇게 말하면 대개 쉽게 길을 비켜 주지만 문간 가까이에 버티고 선 한 덩치 하는 현지인이 인상을 쓰며 날 흘겨보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내리기 전에 아무도 내릴 수 없다는 듯  전혀 비켜 줄 기색도 없이요.

 

쏘리~”

 

한번 더 미소를 지으며 양해를 구하고 문 앞으로 비집고 나갔습니다. 그 남자는 옆으로 비켜설 충분한 공간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험상궂은 표정으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몸은 빠져 나오고도 가방을 든 손이 빠져 나오지 못해 애를 먹었죠.

 

, 이런 일은 인도네시아에서 많이 겪는 일입니다. 이 사람들 머리 속에 들어가보지 않아 정확한 두뇌 메커니즘을 알 수는 없지만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대결하려는 현지인들을 종종 보곤 하거든요. 그 대표적인 예는 눈싸움을 걸어오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자카르타 길거리에는 아무 생각없이 앉아 멍하니 먼산을 바라보는, 전문용어로는 멍때리는사람들이 적지 않아요. 그들과는 눈이 마주친 게 아니라 그들 시선이 향하는 지점을 내가 우연히 지나가는 것이죠.

 

그러나 블록엠(Blok M)이나 망가두아(Mangga Dua), 글로독(Glodok), 스넨(Senen) 같은 우범지역에서는 그렇게 길가나 건물 계단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눈싸움을 거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지나칠 것이 분명한 사람들, 특히 외국인들에게 남녀를 불문하고 노려보며 지나갈 때까지 주시합니다. 현지에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은 한번 미소를 지어 보이면 대개 상냥한 미소로 답해 옵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요. 무표정하게, 때로는 험상궂게 끝까지 노려보지요.

 

왜 그토록이나 눈싸움에서 이기고 싶어 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아 알 수 없습니다. 350년간의 네덜란드 식민지 생활과 3년간의 일본 식민지생활을 거쳐 독립하고 나서도 다국적 외국기업들의 경제적 식민지화 되어 있는 현실에 화교들과 졸부들과 공무원들에게 늘 눌려 지내고 있어서일까요? 그래서인지 수많은 현지인들이 주차장에서, 도로 유턴 포인트에서 아무런 자격도 없이 차량을 통제하려 들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위세를 과시하듯이 길바닥의 눈싸움꾼들은 그런 의미도 없는 눈싸움을 걸어 오면서 마음 속으로 자신이 오늘 몇 명을 물리쳤는지 헤아리며 흥분하고 쾌재를 부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대개의 경우 나도 이들과의 눈싸움을 피하지만 때로는 끝까지 눈싸움을 붙어 보기도 합니다. 막판에 내가 충분히 근접한 거리에 들어서면 눈싸움을 걸어오던 현지인이 시선을 피하는 게 보통이고요. 한국 같으면 싸움 붙을 일이죠.

 

치를 운전하면서도 이런 사람들을 종종 만납니다. 10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내 차 뒤에 간격을 1미터도 안되게 붙여 따라오며 비키라고 상향등을 번쩍이고 경적을 울리는 미친 운전사들은 이제 매일 만나다 보니 별로 특별한 느낌도 들지 않습니다. 정말 곤란한 경우는 차량 앞을 지나는 보행자들이에요. 대개는 경적을 울리면 안전을 위해서라도 피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차량과 대결이라도 하려는 듯 칠 테면 쳐 보라고 오히려 더욱 느릿느릿 움직이기도 하고 심지어 노려 보기까지 합니다. 또 하나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대결이지요. 그렇게 해서 그들은 무엇을 얻는지 모릅니다. 자기 월수입의 수백배가 넘는 가격의 차량과 싸워 이겼다는 쾌감? 차에 치이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의 과시? 모르겠습니다.

 

이면도로를 다니다 보면 길을 가로막는 5~6세 짜리 아이들도 종종 봅니다. 지나는 차는 신경도 쓰지 않고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위험스러운 아이들은 피하면 그만이지만 때로는 자기 집 앞, 또는 친구들 앞에서 서서 차가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 설 때까지 길 한가운데를 막고 있다가 깔깔 거리며 도망치는 아이들도 있지요. 자기 용맹을 친구들에게 그런 식으로 과시하려는 걸까요? 그런 아이들이 커서 대로에서 차량들과 대결을 벌이고 유턴 포인트를 통제하며 길가에서 눈싸움을 걸어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스넨 버스웨이 정류장

 

버스에서 만난 험상궂은 그 남자 역시 그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죠. 아무튼 난 간신히 그 틈을 비집고 나와 버스 문 앞에 섰고 잠시 후 버스는 스넨 환승역에 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내가 막 버스에서 내리려는 찰라….

 

!

 

목덜미 바로 밑 등 한가운데에 갑자기 둔중한 충격이 육중한 중량감과 함께 부딪혀 왔습니다. 난 차에서 거의 곤두박질치듯 환승역 플랫폼으로 밀려 나왔습니다. 아까의 그 남자가 환승역에 도착할 때까지 내내 가만이 있다가 내리려는 내 등을 주먹으로 내려친 것입니다.

 

기회를 노린 것이죠. 차에서 내린 내가 다시 버스에 올라타지 않으리라, 곧 차문이 닫힐 테니 절대 보복 당할 염려가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안전하기만 하다면, 들킬 염려만 없다면, 잡힐 위험만 없다면 무슨 짓을 해도 좋다는 생각은 많은 사람들이 하겠지만 실제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요. 게다가 장소는 사람들이 많은 환승역. 차 안에 타고 있던 다른 승객들과 경비원 복장의 차장이 보는 앞에서 그는 나름대로 만용을 부린 것인데 사람을 잘못 봤습니다. 당시의 나는 이미 산전 수전 다 겪고 밑바닥까지 가 봤던 사람이었고 그렇게 뒤에서 공격을 받고서도 헤헤 웃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곧장 연결 버스를 타러 갈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는 몰랐습니다.

 

버스에서는 나 말고도 서너 명이 더 내렸지만 아직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의 스넨 환승역 플랫폼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습니다. 난 가방들을 내팽개치듯 내려 놓고서 제지하려는 차장을 밀치고 차안으로 다시 쫓아 들어가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 플랫폼으로 끌어 냈습니다. 그 남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마치 도움을 청하려는 듯 주변을 돌아 보았지만 버스를 탈 사람들은 다 탔고 내린 사람들은 자기 갈 길이 바빴어요. 나는 손목시계도 벗어 내던지듯 가방들 위에 던져 놓고 자세를 잡았어요. 쿵푸, 당랑권 자세였다면 코미디가 되었겠죠. 태권도 대련 자세였습니다.

 

그래, 해 보자, 이 자식아!”

 

객관적으로 얘기하자면 이건 분명한 만용이었어요.

자카르타 길바닥에서 외국인이 현지인과 주먹다짐을 했다는 얘기는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스나얀 플라자(Senayan Plaza) 2층에 있는 토니 앤 가이(Toni & Guy) 미용실에 아트 디렉터(Art Director) 자격으로 와 있던 호주인 미용사 트리스탄(Tristan)이 현지인 미용사와 면도칼을 들고 대결을 벌인 사건을 들어 알고 있지만 결론은 트리스탄의 국외 추방이었고 그 브랜드권을 갖고 있던 체인점 주인 조티(Joty)여사의 도움으로 6개월이 지나서야 다시 자카르타에 돌아올 수 있었어요. 그와 대결을 했던 현지인 미용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줄곧 그 미용실에서 일했고요.

 

정말 싸움이 붙는다면 내가 꼭 그를 때려 눕히리라는 보장도 없는 것이었고 승패를 떠나 그날 경찰서에서 밤을 지새며 조서를 꾸미고 그런 불필요한 일에 적잖은 돈이 들어 가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상대를 한 대 쥐어 박고 나는 1톤짜리 해머로 얻어 맞는 것과 다름 아니었죠. 그러나 등뒤에서 공격해 오는 사람은 전략의 귀재이거나 비겁한 겁쟁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길거리의 눈싸움꾼들이 그렇듯 비겁한 인간들은 자신이 노출되거나 위험을 느끼면 바로 몸을 사리는 게 보통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내 등등한 기세에 얼굴이 흙빛이 된 이 남자는 버스의 닫히려는 문에 매달렸습니다. 버스 차장인 경비원이 이 상황을 말릴 법도 했지만 버스 밖에서 벌어지는 싸움은 그의 소관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오히려 차장은 차에 다시 타려는 남자를 떼어 내려고 손을 쳐내면서 고함을 질렀어요. 실소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사르 브랭섹! 아와스 블라깡무! (Dasar Brengsek, Awas belakang mu)”

 

간신히 차 문을 비집고 들어간 그 남자는 대충 밤길 등 뒤 조심하고 다녀라 이 새끼야!” 정도로 번역될 만한 소리를 지르며 차 안으로 사라져 버렸고 버스는 그렇게 출발해 버렸습니다.

 

허탈했어요.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생각도 들고요. 그러나 계속 그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불과 30초도 걸리지 않았던 그 사건을 보고 구경꾼들이 몰려 오기 시작했고 바닥에 내팽개친 가방이며 손목시계는 그대로 놔두면 1분도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 손을 탈 것이 분명했으니까요. 나는 급히 가방을 챙겨 들고 자리를 떴습니다. 연결버스를 포기하고 바로 환승역을 나와 택시를 탔지요.

 

그것이 내가 버스웨이를 이용한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아내가 버스웨이 사용을 금지시켰기 때문이었어요. 매번 그런 사고가 벌어질 리 없는 일이지만 아내는 내 안전을 진심으로 걱정했고 나 역시 그 순간 들끓어 오르는 아드레날린을 억제하지 못하고 위험과 결말이 뻔히 보이는 유치한 대결로 치달아 버린 것을 스스로 반성하고 있었습니다. 짐을 들고 버스웨이를 사용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되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것도 인도네시아에서요. 그리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공공질서의식이나 민도를 끌어 올리는 것 역시 내 소관이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끼장을 내가 쓰라고 했지만 며칠 후 나는 스즈끼(Suzuki)에서 나온 APV라는 미니버스처럼 생긴 밴을 임대해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공공 교통수단이 충분히 안전하고 편리한 것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자카르타에 사는 한국인들 중 많지는 않지만 바자이(Bajaj)나 오젝, 코파자, 앙꼿 같은 현지 교통수단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분명 있고 혹자는 절대 위험하지 않다고 강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래 전 한국 대기업으로부터 자카르타에 현지 전문가교육과정에 선발되어 1년간 인도네시아 국립대학의 어학연수과정을 거치며 인도네시아 전역을 여행했던 친구도 초창기에는 현지 공공교통수단에 대한 위험성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며 매일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을 자랑(?)했지만 두 달쯤 후 그가 매일 타던 버스에서 거의 강도나 마찬가지인 소매치기들에게 승객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손목시계와 지갑을 털린 후 다시는 버스를 타지 않게 되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공공 교통수단이 안전해 지는 날, 그 날은 인도네시아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날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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