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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싱가폴에서 인니 비자받기

beautician 2017. 2. 24. 10:00

 

 

 

이미 오래 전의 일이지만 인도네시아에 부임하기 전에도 다른 나라에 가기 위해 많이도 비자를 받아 보았습니다. 당시 일본 비자를 받을 때마다 왜 체류기한을 꼭 12일로 한정해 놓고 있는지 불만스러웠고 한번 미국비자를 받았을 때 세상에 10년짜리 비자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고 놀랬던 기억이 있습니다. 홍콩이 반환되기 전 한국에서는 오래도 시간 걸리던 중국비자가 홍콩에서는 반나절만에 나온다는 사실에 홍콩은 앞으로 중국 때문에 돈 벌 일이 창창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요.

 

그러다가 오랫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생활하던 중 2005년도에 베트남의 호치민을 한번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만났던 호치민 혼마 대리점 사장으로부터 현지 근로비자가 3년간 유효하다는 얘기를 듣고 이렇게 좋은 나라가 있나 싶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내가 살게 된 첫 외국이었고 이곳은 모든 것을 매년 새로 갱신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본인과 가족들의 비자, 근로허가, 경찰청 관련서류 등 개인 비자관련 서류들은 물론 회사등록증을 비롯한 온갖 회사관련 서류들도 매년 갱신해야만 하는 곳이 인도네시아고 그 만만찮은 비용을 매년 지불해야 하는 것도 두말할 나위 없죠. 하다못해 운전면허증까지도 매년 갱신해야만 합니다.

 

아무리 후진국이라 해도 정부의 정책이란 다 타당한 이유가 있어 그렇게 결정되는 것이겠지만 이 나라의 모든 법규와 규정들이 그렇듯 이러한 비자관련 법규와 규정들도 관련 공무원들의 주머니를 매년 두둑하게 불려주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웬만한 외국에 나가려면 비자를 받아야 하는 인도네시아는 몇 년 전 형평을 맞추겠다며 인도네시아를 찾는 모든 관광객들에게도 정식 비자를 받도록 하겠다는 무대포성 정책을 발표하고서 관광업계의 집중포화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직후 터진 발리 폭탄테러로 현지 관광업계가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이런 논의는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었죠.  인도네시아에 입국하는 것이 불안해 현지 공장에 의류며 전자제품 등의 오더를 뿌리는 미국 바이어들은 물론 대부분의 유럽 바이어들이 거래선들을 싱가폴로 불러내 상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를 찾는 관광객들과 비즈니스맨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 들었기 때문이었죠. 당시 생각으로는 대개는 고압적이기 쉬운 인니 대사관에서 누구나 다 비자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인도네시아 행을 포기하고 말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 역시 인도네시아 비자를 받는 일이 마치 무슨 대단한 시험을 보러 가는 것처럼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이유는 우선 신청서류 작성하는 일 자체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사람 신청서를 채우는 것만 20분 정도 걸릴 정도로 두 장 짜리 신청서를 앞뒤로 빽빽히 기재해야 했는데 4인 가족의 신청서를 작성하는 것은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작업이었어요.  여의도에 있는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는 그렇게 작성한 신청서를 창구에 가져가면 무슨 대단한 보안문제라도 감추고 있는 것처럼 안도 들여다 보이지 않도록 시커멓게 코팅된 창구 유리 밑 구멍으로 손 하나가 나와 영수증을 내 주는 모양이 마치 ‘총몽’ 이란 일본 만화에서 본 것처럼 사람 손이 달린 기계랑 얘기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대사관이란 원래 외국에 있는 것이어서 인도네시아에서 현지 공무원들을 직접 상대하며 KITAS나 운전면허 만드는 것처럼 영수증도 나오지 않는 급행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점 정도였지요.

 

그러다가 몇 년 지난 후 문제의 정책은 도착비자 제도로 확정되어 비자없이 인도네시아에 도착하는 모든 사람들이 일주일 이하 체류자는 미화 10, 한달 이하 체류자는 25불을 내고 도착한 공항에서 비자를 사서 여권에 붙이는 방식으로 결정되었지요. 예전 무비자로 60일 체류허가를 내주던 시절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도 없이 야박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그나마 대사관을 통하지 않고 비자를 받게 되었다는 사실만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에 체류하면서 일하는 교민들의 비자는 나날이 점점 더 규정이나 절차가 복잡해지고 있는 듯한 인상입니다.

 

예전에 싱가폴에서 비즈니스 비자를 직접 받아본 적이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멀티풀 비자라고 하던 그 비자는 입국할 때마다 60일간 체류가 가능한 1년짜리 비자였고 실제로는 한번에 30일씩 최장 180일까지 연장이 가능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를 자주 들락날락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비자였지요. 물론 이 비자는 아직도 받을 수 있습니다.

 

직접 부딪쳐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나로서는 당시 여행사를 사용하라는 지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한번 치기를 부려 새벽 비행기로 날아가 주 싱가폴 인도네시아 대사관 문 열기가 무섭게 신청서를 작성해서 창구에 들이 밀었죠. 10년이 다 된 옛날 얘기입니다만 예의 1년짜리 멀티풀 비자의 수수료는 그때나 지금이나 체류비자(Kitas 비자)보다 항상 더 비쌌고 당시 수수료로 싱가폴 달러 120불을 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차드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며 시간을 때운 후 다시 대사관에 돌아온 오후, 혹시나 처리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그 동안의 우려를 단숨에 불식하고 여권에는 비자도장이 멋지게 찍혀 있었고(그 해까지는 비자를 스티커를 붙이지 않고 고무인으로 커다란 도장 같은 것을 찍어 주었습니다) 난 예정대로 그날 밤 비행기를 타고 다시 자카르타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공무원들도, 그 지긋지긋한 급행료 관행도, 싱가폴 같은 선진국에 나오면 확실히! 달라지는구나 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 순간이었습니다. 관광회사를 사용할 경우에 내야 하는 수수료를 내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요. 

그러다가 가족들을 다시 자카르타로 불러 들인 후 체류비자를 다시 내기 위해 또 싱가폴로 날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게 2002년도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 만에 합류한 가족들을 당일치기 비자발급을 위해 촉박한 일정으로 몰아 세우지 않기 위해 34일의 일정을 세웠습니다. 당시 가족들로서는 싱가폴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주말까지 며칠 머물면서 싱가폴과 인근지역의 구경을 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오후에 싱가폴 창이공항에 내려 호텔에서 1박을 한 후 다음날 아침 아내와 함께 주 싱가폴 인니 대사관을 들어섰지요. 지난 번의 경험을 토대로 이번에도 직접 비자를 수속할 요량이었습니다.

 

그때 잠깐 소스라쳤던 이유는 인니 대사관이 금요일에는 영사업무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기억해 냈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주중 하루인 금요일에 왜 영사업무를 보지 않는지는 물어보지 않아 알 길 없지만(아마도 숄랏 줌앗-Sholat Jumat 이라 일컫는 이슬람 기도행사 때문이라 추측하기는 했습니다만…) 앞서 언급한 멀티풀 비자를 받으러 왔던 목요일 아침에도 만약 하루 늦게 왔다면 다음주까지 기다려야 될 판이었다고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 내린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수요일 오후에 도착하여 오늘은 목요일. 그런 중요한 사실조차 깜빡깜빡 잊어버릴 정도로 기억력은 날이 갈수록 점점 나빠지지만 아무튼 찬스만은 놓치지 않는 몸에 배인 동물적 감각(?)에 스스로 사뭇 흡족해 하면서 영사과에서 신청서 양식을 다 채우고 번호표 순서에 따라 창구에 서류를 내밀자 인디아 출신이 틀림없는 창구 직원은 퉁명스럽게 나를 올려다 보더니 창구 유리창 위에 써붙인 공지문을 탕탕 두드렸습니다
.

“각종 비자 처리시한 – 3. 급속 처리를 요하는 신청자는 모든 서류를 완비할 것”

갑자기 뒷골이 땡겨 왔습니다. 3!?!? 금요일과 주말은 근무를 하지 않으니 오늘 목요일에 신청서를 넣어도 다음주 화요일에나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 왔지만 난 어쨌든 모든 서류를 완비하고 있었습니다. 여권, 신청서, 거기에 사진도 제대로 붙여 놓았고 인도네시아 이민국에서 받은 KITAS 비자 케이블 사본까지 첨부해 놓은 상태였죠.

“이 서류들은 다 완비된 상태입니다. 오늘 오후에 비자를 찾을 수 있겠지요?


내 질문에 창구직원은 대꾸도 하지 않고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댑니다.


Another stupid guy came. You handle him.


아무런 설명도 없이 창구직원이 들이 미는 핸드폰 저편에서는 어떤 한국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왜 연락도 하지 않고 오셨어요? 서류는 창구에 접수시켰나요? 그럼 제가 지금 시간이 없는데 이따 저녁때 저희 사무실로 오세요.
 
도무지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나로서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하는 여자에게
‘그런데 누구신가요?라고 멍청히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비행기표를 산 하나관광과 제휴하고 있는 싱가폴   롯데관광이랍니다.

 

인니 대사관에서 비자를 하루 만에 받으려면 꼭 자기들을 통해야 하는데 왜 직접 대사관에 나타나 나라망신을 시키냐는 투였어요. 난 마치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온 사람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처리시한의 규정이 바뀐 것은 몇 달 된 모양이었지만 비자를 직접 받으러 싱가폴에 간다며 티켓팅을 할 때 하나관광에서는 아무런 얘기도 해 준 바 없었고 만전을 기하려고 출발 하루 전 싱가폴의 인니 대사관에 전화를 했을 때에도 처리시한에 대한 얘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묻지 않았습니다…..T.T  공무원들의 업무의 기본적 개념이 국민과 방문하는 외국인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일진대 더 나아지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거꾸로 나빠지는 쪽으로 역행하는 서비스라는 건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L관광은 물론 현지 비자대행 회사를 사용할 경우 실제 대사관에 내야 하는 싱가폴 달러 100~120불 수수료의 2배에 가까운 미화 150불을 내야 했는데 나는 대행회사를 끼지 않고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직접 멀티풀 비자를 수속한 경험이 있어 좀 수고스럽긴 해도 이번에도 직접 수속하면서 비싼 수수료를 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창구 앞에서 황당해 하고 있는 나를 제쳐 놓고 창구직원은 다음 번호를 불러 댑니다. 그러는 동안 인도네시아에서 도대체 뭘 하느라 이런 것도 모르고 있었냐는 듯 날 째려보는 아내의 눈초리는 점점 더 냉랭해졌고요.

그날 오후 시내 호텔 1층에 있는 L관광 사무실에서 전화의 여자를 만나 일인당 미화 150불의 수수료를 내고 비자 스티커가 붙은 여권들과 함께 마치 시장통에서 끊어주는 것 같이 날려 쓴 글씨의 간이계산서를 받는 기분은 참담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미리 연락하고 오면 그 비용으로 공항 픽업, 시내 관광, 점심식사에 공항 출영까지 시켜 주고 당일 비자발급을 위한 모든 수속은 그쪽에서 알아서 진행하지만 아무리 모든 수속을 내가 직접 했더라도 수수료는 정액제이니 미화 150불에서 절대 한 푼도 깎아 줄 수 없다는 것이 여자의 설명이었죠. 그 말투가 이틀 후 비행기를 타고 자카르타에 돌아올 때까지도 귓전을 맴돌며 가슴을 후벼 팠고 그 예기치 않은 일격의 후유증은 내 여권에 붙은 인도네시아 비자 스티커를 볼 때마다 생생히 되살아 났습니다
.

서비스업에 있다고 해도 그것이 사업인 이상 당연히 영리를 추구해야 하겠지만 그 기본이란 그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만족시켰기 때문에 그 대가로서 이익을 취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서비스는 근본적으로 서비스라 부를 수 없는 것인데 기어코 그걸 서비스라 부르고야 말겠다면 그건 고객 입장에서는 사기가 되는 것에 다름 아니라 생각했지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자신의 영리를 위해 마음대로 국가와 지역의 정책, 허가 등을 좌지우지하려는 인도네시아의 공무원들은 국민과 외국손님들을 대상으로 야바위를 치고 있는 것이고 덩달아 일부 관련업체들도 이에 크게 고무되어 무당 널뛰기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최악을 향해 역행하는 서비스들을 그 이후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수없이 보게 됩니다.

 

당시 정말 아쉬운 것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모범적이라는 싱가폴에서마저 인도네시아에 관련된 것이라면 급행료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었고 새삼 깨달은 것은 대사관은 모름지기 해당 국가의 영토라 그 안에 오래 발을 들이고 있는 사람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본국의 체질을 닮아 갈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곳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사업할 때 내 싱가폴 경험같은 황당한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두뇌 용량을 불문하고 우린 모두 만물박사, 수퍼맨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그러기 위해 안테나를 높이 세워 두어야 하지만 가용한 송신국에서 보내오는 전파는 낙도 초등학교 도서실의 책장처럼 썰렁하기 그지없고 다른 사람들, 후배들이나 인도네시아에 첫발을 내딛는 초심자들이 어처구니없는 실패와 좌절을 충분히 비켜 가도록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보도 대개의 경우 누군가의 경험 속에, 책상서랍 속에 자물쇠 채워져 꼭꼭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지요.

 

아마도 내가 이런 경험을 하던 이 시기 즈음부터 재외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개인은 3일 수속, 관광회사를 통하면 당일 수속 가능한 이상한 형태의 시스템이 정착되어 결국 아무도 직접 당일 비자를 받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재싱가폴 인도네시아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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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실제로 2006-2007년 사이에 썼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