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대한의 날개] 홍콩공항에서 겪은 사건 본문
11월 중순부터 3주 정도 출장으로 자카르타를 떠나 있었습니다.
가야 할 곳도 많고 만나야 할 거래선들도 많아 매우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바쁘게 일을 하면서 꽤 보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출장 초기에 들은 홍콩은 마지막으로 들렀던 20년 전과는 몰라보게 달라진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완차이의 Hong Kong Convention & Exhibition Center에서 있었던 미용전시회는 올 10월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미용 전시회보다 적어도 30배 이상의 규모였고 특히 내 관심처인 미용기기부분만 본다면 100배 정도의 규모였기 때문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카르타도 촌동네는 아니지만 그런 도회지에 나가면 좀 촌티가 나는 것을 어쩔 수 없습니다. 오래 전부터 참관을 준비한 사람들은 미리 인터넷으로 등록을 하면서 등록비를 절약했지만 난 전시회 첫날 아침 수천 명은 족히 될 전세계에서 날아온 미용인들과 함께 아수라장과도 같았던 로비에서 두 시간 이상 줄을 선 끝에 레지스트레이션 비용 홍콩달러 200불을 내고서야 패스를 받았고 지방 거래선들이 자카르타 전시회에 오면 한 두 시간 돌아보고 가던 것을 보고 나도 3일씩이나 매일 전시회에 올 필요는 없을 테니 이틀간의 일정으로 홍콩에 들어와 첫날 전시회 둘러 보고 둘째 날은 오랜만에 홍콩 관광을 하겠다고 생각했다가 그 엄청난 규모에 압도되어 전시회장 문 여는 시간에 들어와 전시회장 문닫는 시간까지 이틀 동안 꼬박 하루 10시간씩 강행군을 하며 새 거래선들을 만났어요.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팠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면 또 다시 1년을 기다려야만 했으므로 시간이 모자라 전전긍긍하며 전시회 마지막날 아침 홍콩을 떠나는 것으로 일정 잡았던 경솔함을 진심으로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견문의 지평을 크게 넓혔다는 사실만은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죠.
보람찬 느낌에 한참 업 되어 있던 기분을 단번에 꺾어 버리는 사건이 홍콩 공항 출국장에서 일어났습니다. 대한항공 티케팅 창구에서요.
“티켓을 인터넷으로 구매하셨어요?”
창구의 현지인 직원이 그렇게 물어 왔어요. 세상이 좋아지다보니 예전엔 여행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티켓 구매를 요즘은 집에 앉아서 인터넷을 통해 충분히 가격비교를 한 후에 카드 구매를 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했죠. 그래서 아내에게 대략적인 일정과 목적지들을 얘기해 주면 그날 밤이면 가장 최저가의 티켓이 가장 효율적인 일정으로 준비되어 있곤 했습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고 자카르타에서 홍콩을 거쳐 한국에 갔다가 다시 자카르타로 돌아오는 일정을 성수기가 임박한 그 시기에 대략 도합 800불 정도에 티켓을 사 둔 상태였어요. 홍콩에서 한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를 비교적 비싼 대한항공으로 잡아준 것은 오랜 만에 귀국하는 남편을 위한 아내의 배려가 듬뿍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려가 예기치 않았던 전혀 반대의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티켓 구매하실 때 공지문이 박스로 떴을 텐데 티켓을 구매할 때 사용한 신용카드 주인이 공항에 오셔야 해요. 그런데…., 이 티켓을 구매한 신용카드는 선생님 이름으로 되어 있지 않네요?”
당연히 내 이름일 리가 없죠. 아내가 자기 신용카드를 썼으니까요.
어쩌면 이런 상황을 예견했을 지도 모를 내 아내가 혹시 문제가 생기면 보여 주라고 마침 출장 출발할 때 그 카드를 내게 맡겨 두었습니다. 난 그 카드를 내밀었죠.
“자카르타에 있는 내 아내가 홍콩에 나타날 순 없잖아요? 그 대신 카드는 여기 가져왔어요.”
그러자 창구직원이 난색을 표합니다.
“부인이랑 같이 오시지 않으셨어요? 그렇다면 규정상 이 티켓을 사용하실 수가 없어요. 이건 나중에 환불 받으시고 다른 티켓을 사셔야 해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한달 전부터 티켓을 사두고 그에 맞춰 일정을 잡았는데 그걸 다 깨라고? 아니, 내 아내 구좌에서 티켓 대금도 다 빠져 나갔는데 아직 대한항공엔 티켓 대금이 입금되지 않기라도 한 거요?”
“그건 아니지만,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어서요. 티켓 사실 때 공지문에 뜬 내용이에요.”
“그런 무리한 말이 어디 있어요? 상황은 보시는 바와 같은데 대안이 전혀 없는 거에요? 도대체 왜 그런 규정이 있는 거에요? 좀 설명이라도 들어 봅시다.”
“아무튼 규정이 그래요. 티켓을 새로 사시든가 사모님을 데려 오세요.”
자카르타 같았으면 대충 이 대목에서 폭발하게 됩니다.
이 쉬키들아! 니들 그런 규정 만들 때 나한테 동의라도 구한 적 있어? 왜 니들끼리 맘대로 규정 만들어 놓고 나한테 지키라고 지랄이야? 결재가 안되었다면 몰라도 돈은 받았는데 비행기는 절대 못태워준다는 건 무슨 어림 반푼어치 없는 수작이야? 그래 백번 양보해서 내가 어쩔 수 없이 자카르타에 있는 내 아내를 불러 와야 한다고 치자. 그럼 니들은 본사 이사나 부장이라도 홍콩으로 불러와야 균형이 맞고 형평이 맞는 거잖아? 뭐? 규정이라고? 그 소린 자카르타에서 수도 없이 들은 얘긴데 대한항공이 인도네시아 회사였던 거야??
하지만 이렇게 나가면 당장 파국이지요. 게다가 상대하고 있는 창구직원은 홍콩시민이고 내 뒤엔 다른 승객들이 길게 줄을 늘어선 상태였어요. 쪽팔리는 일이기도 하고요. 툭하면 규정이라며 고객들의 불편과 불이익을 강요하면서 아무 책임을 지지 않는 공급자의 태도는 인도네시아에서라면 너무나 당연한 장면이지만 여기는 홍콩, 게다가 내 조국의 날개라는 대한항공 창구에서 이게 무슨 개쪽입니까?
“무슨 방법을 좀 찾아 봐요! 한국사람이 대한항공 타겠다는데 그런 무리한 말이나 하면서 티켓 새로 사라는 건 너무 무책임한 얘기 아니에요?”
게다가 난 아직도 긴 출장일정이 남아 있었어요. 98년 전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 이후 툭하면 벌어졌던 위기 속에 망하고 엎어진 회사와 개인들이 부지기수인데 전쟁에서 입은 부상이 장애가 되어 평생을 따라 다니는 것처럼 파산을 겪은 사람들에게도 오랫동안 남는 상처가 있기 마련인데 그 중 하나가 신용불량자라는 딱지이지요. 나도 2000년대에 들어와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는 신세가 되어 있었고 그게 다시 가능하게 되었을 즈음엔 더 이상 불필요한 빚을 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아예 다시는 카드를 만들지 않았지요. 그래서 예산을 세워 경비와 쌤플 구매비 등으로 준비해온 빠듯한 현금을 들고 다니는 것인데 출장 초기에 예상치도 않았던 용도에 함부로 쓸 수는 없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티켓팅 데스크에서 전화로 연결된 홍콩 공항의 대한항공 한국인 매니저도 계속 규정을 언급하고 있었습니다.
“정해진 규정을 매니저인 제가 어길 수는 없는 일인데요…,”
“이거 봐요. 카드 명의자를 티켓팅 데스크로 끌고 오란 건 뭔가 확인할 게 있어서 그런 거 아니에요? 두 시간 후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자카르타에 있는 아내가 여기 오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잖아요? 그러니 그 확인하고 싶어 하는 걸 무슨 방법으로든 확인시켜 드리면 되는 거잖아요? 본인이 오지 않고서도 그렇게 확인할 방법이 있으면 그 방법을 찾아야죠. 도대체 뭘 확인하고 싶으신 건데요?”
“그게 좀…”
“내가 비행기 타고 다닌 게 수백 번이 넘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에요. 그것도 에어아시아나 타이거항공 같은 저가항공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백 번 이해하고 넘어가겠지만 명색이 대한항공에서 국적기 한번 타 보겠다는 한국사람한테 꼭 무전취식하러 식당 들어온 부랑자 취급을 하면 어떡합니까?”
끝도 없는 미로로 빠져들던 대화는 마침내 매니저가 한발 양보하면서 극적인 반전을 맞습니다.
“저, 그럼 저희 창구직원에게 전화로 사모님을 연결해 주셔서 티켓 구매사실을 구두로 확인 받도록 해 주실 수는 있으시죠?”
“물론이죠. 그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죠.”
내 아내가 나름대로 유창한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심 감사히 생각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좀 더 오랜 시간을 티켓팅 데스크 앞에서 허비하고 있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간신히 티켓팅을 하고 나서 한숨을 돌리긴 했지만 그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날아가는 동안 내내 찝찝한 심정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건 창구 직원이나 한국인 매니저가 무례하게 굴었다거나 자존심이 상했다거나 해서가 아니었어요. 창구 직원과 한국인 매니저는 물론 살가운 느낌보다는 지극히 사무적이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대체로 프로페셔널하며 인내력도 있었고 사뭇 친절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홍콩 공항에서 맞닥뜨린 그 대책없는 규정은 그 회사의 정책결정의 문제였고 결국 신용카드 없는 인간들은 대한항공 타려는 엄두도 내지 말라는 고압적인 자세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고객님 고객님 하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공급자 중심의 세상이 거기 펼쳐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건 앞으로 이따금 대한항공도 타보고자 하는 우리 아이들의 희망을 꺾어 버리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싱가폴과 호주에서 공부하고 이제 직장을 갖게 된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현지에서 신용카드를 만들기 전까지는 이제까지와 같이 이런 저런 비용들을 엄마 신용카드 한 개를 가지고 결재하고 있었는데 그 비용들 중 가장 큰 것이 비행키 티켓이었죠. 그래서 그 엄마 신용카드를 통해 아이들은 매년 한국에 날아가고 좀 더 여유가 되면 말레이시아로 뉴질랜드로 날아다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동안 내가 홍콩에서 겪었던 그런 상황을 아이들은 단 한번도 겪은 적이 없었죠.
하지만 거기서 아이들이 대한항공을 타고 한국에 가려 한다면 그 순간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아이들이 대한항공을 타려 할 때마다 엄마가 싱가폴 공항이나 멜번 공항까지 날아가 티켓팅 창구에 얼굴을 보여 줄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런 무리한 소리를 하지 않는 다른 항공사를 물색하는 수 밖에요. 홍콩공항에서 통화했던 한국인 매니저는 그럴 경우엔 미리 시내의 대항항공 지점에 직접 들러 상황을 설명한 후 티켓팅을 하면 된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고객들이 그런 발품을 파는 수고를 줄이려고 인터넷으로 항공권을 구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그는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대한의 날개….
아직 멀었습니다.
2012.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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