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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영양가 없는 상대를 대하는 태도

beautician 2021. 12. 18. 10:26

대놓고 업신여기는 상대방과 미팅

 

 

 

 

 

인도네시아에서 미용 관련 사업을 하겠다는 두 명의 한국인을 만난 것이 2017년 5월 쯤의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카르타에 사업체를 준비 중이었습니다. 상호를 자기들 이름에서 따오기로 했다는 설명을 듣고 꽤 자신만만한 사람들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성형수술을 원하는 현지인들을 모집해 한국으로 성형수술 여행을 보내는 브로커 였습니다. 하지만 그걸로 그치지 않고 그 사업을 위한 커버 영업장으로 남부 자카르타에 작은 피부 클리닉과 화장품 유통사업을 하려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들을 만난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던 마케팅 플랫폼과 환경에 대해 그들이 올라탈 수 있을지 타진하고 싶어했기 때문입니다.그들의 미팅을 요청한 날, 마침 다른 외출 일정도 있어 그보다 조금 이른 시간으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운전해 찾아간 그랜드위자야 콤플렉스의 한 카페에서 그들의 의외의 행동을 보였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나와 교신했던 당사자는 만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일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고 어딘가 닳고 닳은 듯한 인상의 다른 남자가 마치 면접관으로 나선 듯 고압적인 자세로 엉뚱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이 설명한 성형모객사업은 어딘가 다단계사업 같은 구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내가 가진 플랫폼은 2006년 경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10년 가량 해온 미용기기 수입사업을 통해 다진 오프라인 마케팅 네트워크였습니다. 중부 자카르타의 번잡한 시장통인 빠사르바루를 중심으로 전국 각 도시로 연결되어 있는 미용제품 도매상 라인과 전국적을 30만 개에 이르는 미용실들 중 상위 10% 정도를 아우르는 전국 단위 미용실 체인들과 지방 대도시의 유력한 독립 미용실 들에게 한국산 미용기기를 공급하면서 구축한 네트워크였죠. 그들이 하려는 성형모객 사업과 연관이 아주 없진 않지만 당장 연결되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핀트가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때는 내가 베트남을 1년 넘게 다녀와 미용사업 기반이 거의 와해되어 가던 때였습니다. 네트워크는 있는데 그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할 제품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것이나 유통시켜 그간 거래선들과 오랜 기간 쌓은 신용을 잃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어떤 제품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성형모객 브로커. 화장품 유통은 그들의 주사업도 아니었으니 내 사업을 회생시킬 적당한 파트너가 아님은 자명했습니다. 

 

그들이 내 네트워크를 이용하려 한다면 일단 자기들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 남아 있던 젊은 남자는 내게 자기 밑으로 들어와 서브에이전트가 될 것을 제안했습니다. 내 오감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 거기서 거만을 떨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자기가 따로 강사료를 요구하지 않을 테니 내가 제공할 네트워크를 통해 확보하게 되는 업체나 개인들에게 한국 성형여행에 대한  설명회를 한번쯤은 공짜로 열어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거래가 이루어져 수익이 생기면 커미션을 나눠주겠다는 것이었어요.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나는 록밴드 가요제를 오랫동안 조직해 왔고 인도네시아의 내로라 하는 록밴드들을 줄줄이 꿰고 있습니다. 그런데 판소리 하는 친구들이 갑자기 나타나 내가 알고 있는 록밴드들로 자기들 팬클럽을 만들어 주면 공짜로 시범공연도 한 번 해주고 커미션도 나눠주겠다는 주제넘은 소리를 한 겁니다. 말하자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다 내놓고 자기 밑으로 들어오라는 건데 설령 그런다 해도 나한테는 별로 도움될 것이 없었습니다. 네트워크만 망가지고 고객들을 뻇기거나 크게 실망시키는 일이 될 터였으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그 친구가 스스로 그 뜻을 몰랐을 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게 말이 되든 말든, 내 기분이 상하든 말든, 상관 없었고 어차피 거기까지 왔으니 자기 말 다 듣고 가라는 태도였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난 게 처음은 아닙니다. 해 아래 새 것은 없어요. 


이 친구들은 자신들이 매우 효율을 중시한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 나를 불러낸 사람은 날 만나고 5분도 되지 않아 이 미팅이 별로 영양가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빛의 속도로 미팅장소를 벗어나 버렸죠. 그리고 남은 한 사람은 내가 절대 받아들일 리 없는 모욕적인 제안을 던지며 내가 판을 깨고 나가는 그림을 만들려 했습니다. 그런 의도를 들키지 않았다면 나름 수완 있고 노련한 사업가라는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지 싶습니다.

그들은 지난 4년간 이미 성공적으로 사업을 진행해 왔고 성형모객사업이나 피부관리실 오픈도, 화장품 유통도 모든 허가가 완비되어 시작만 하면 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정황이 길지 않은 그 미팅에서, 스스로 노련하다 생각하는 그 친구들의 말과 행동에서 엿보였습니다.

 

내 마케팅 플랫폼을 사용하려면 판매할 화장품들이 법적 하자가 없어야 했습니다. 난 남들이 위탁하는 제품들에 일일이 식약청 허가까지 받아줄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들이 모든 허가취득을 완료했다는 얘기에 난 반색하며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들의 태도가 바뀌며 되도 않는 조건들을 얘기하면서 판을 깨려 한 건 바로 그때부터였습니다. 그건 사실 그들 제품이 합법적인 상태가 아니어서 내 마케팅 플랫폼 사용조건을 충족할 수 없음을 시사하는 반응이었죠. 그래서 그 미팅에 흥미를 잃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지 난 그걸 노골적으로 표현하거나 모욕적, 비상식적인 제안을 내놓지 않았을 뿐입니다. 마케팅으로 먹고 사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아무리 개차반인 상대가 노골적인 악의를 표출할 때조차 자기 송곳니를 드러내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예의이고 업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니까요.

그들이 조금만 더 솔직했다면 일은 훨씬 수월했을 것입니다.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고 양해를 구하면 악수하고 헤어질 일이었죠. 굳이 자기들 상황을 구구절절 설명하며 난색을 표하지 않더라도 검토해 보고 나중에 연락하겠다는 정도로 미팅을 마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먼 길을 찾아간 사람에게 건들거리며 자기 서브에이전트로 들어오라 말하면서 굳이 상대방에게 굴욕을 주려 했습니다. 갑질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걸까요? 아니, 그보다 먼저, 자신들이 갑질을 할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그들은 처음 만난 사람을 업신여기면서 '호의적일 수 있는 플레이어' 한 명을 완전히 잃고 말았습니다. 

 

그들과 헤어지면서 앞으로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라 확신했습니다. 그들 사업의 미래도 예측하기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려는 일이 플랜트사업이나 건설 토목 같은 거라면 몰라도 성형모객사업이란 기본적으로 서비스 산업.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이들에겐 절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으니까요. 

 

난 해외에서 뭔가 해보려는 젊은 한국인들의 노력을 응원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업신여겨 사업에 성공할 수는 없다고 굳게 믿는 편이기도 합니다.

 

그날, 내가 좀 더 좋은 옷에 금시계를 차고 나갔다면 그런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았을까요?

 

 

 

 

 

 

2021. 12. 11

(2017. 5. 17. 원본의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