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일본의 경제공격 당시 일부 우리 지성인들의 자화상 본문

일반 칼럼

일본의 경제공격 당시 일부 우리 지성인들의 자화상

beautician 2021. 12. 14. 12:18

 

TV 뉴스를 빨갱이가 장악했다는 교수님

 

 

오랫동안 서울대 교수를 하다가 은퇴하신 의학박사를 자카르타에서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백발임에도 안광이 형형하고 지혜로운 표정을 한 점잖은 분이었습니다.

 

그날 있던 출판기념회 행사 때문에 아침에 호텔로 모시러 갔을 때 함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동석한 다른 교수님들에게 그 다음 주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에서 내가 발표자로 나가는 양칠성 세미나 관련해서 고견을 얻고자 몇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러저러한 배경을 가진 양칠성을 친일반역자로 봐야 합니까? 아니면 일제강점기를 기어코 살아낸 선량한 민초라고 봐야 할까요?"

 

질문을 잘못 이해했는지 교수님들의 답변은 내 질문과 별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견해는 너무 의외였습니다.  노교수님들은 당시 전국적으로 펼쳐지고 있던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폄하하고 일본과 대결하려는 한국정부의 정책에 비난으로 일관했던 것입니다. 마침 일본이 한국 반도체 산업을 무너뜨리려고 불화수소 등 전략 품목들 수출을 금지하며 경제공격을 시작한 지 몇 개월 쯤 되던 시기였습니다.

 

"교수님.... 그게 아니고...."

 

하지만 이미 발동이 걸린 교수님들은 일본과 상대도 되지 않는 한국이 일본과 한판 하자고 나서는 건 가소로운 행위라는 주장을 계속했습니다. 그때 그 의학박사님이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일본과 싸우자는 지금 문정부 핵심인사들이야말로 다들 친일파 후손들이랑 증거가 즐비해. 그런 놈들이 무슨 독립투쟁이고 무슨 불매운동이야?"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동석했던 다른 여자분이 울컥하며 이렇게 묻자 박사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걸 다 면밀히 조사해서 카톡으로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어."

 

기가 막혔습니다. 

노인들 사이 단톡방에 나돈다고 뉴스에 나왔던 바로 그 가짜뉴스를 지혜로워 보이는 노교수님이 말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즘 빨갱이들이 정권을 다 잡고 있어서 TV 뉴스보면 안돼. 믿을만한 근거들만 믿어야 한다고."

 

지성인 지식인들은 최소한 그런 가짜뉴스에 대해 인지하고 면역력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고령의 명예교수님들은 다른 노인들과 아무런 차이없이 그런 식으로 가짜뉴스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남 얘기할 것 없습니다.

우리 집안도 벌반 큰 차이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친일과 맞닿은 극우의 가짜뉴스들은 지성 유무를 차치하고 모든 노인들의 의식과 심리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존경해마지않는 교수님들조차 일본을 떠받들고 진보정권을 비난하고 싶어하는 공통의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요? 이건 극복 가능한 문제일까요?  아니면 나도 언젠가 나이를 먹고 나면 저런 어리석은 가짜뉴스에 속아넘어가고 말 필연일까요?

 

당시 일본의 경제공격이 무위에 그치고 한국의 위상이 이제 일본을 추월하려 하는 요즘까지도 왜 그분들의 생각은 전혀 변하지 않는 걸까요? 내가 뭔가 빠뜨린 게 있었던 걸까요?

 

2021. 12. 9. 

(2019. 8. 25. 원본의 수정)

 

 

 

 

 

 

 

 

 

 

'일반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양가 없는 상대를 대하는 태도  (0) 2021.12.18
국가에 탱크 사주면 군면제 시켜주자  (0) 2021.12.16
세상의 모든 관문  (0) 2021.12.12
빨갱이라 불리는 사람들  (0) 2021.12.11
권위와 옹졸함 사이  (0) 2021.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