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국가에 탱크 사주면 군면제 시켜주자 본문
군복부 면제조건과 모병제
고교 대학시절엔 군대에 대한 모종의 동경과 공포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건 아마도 어린 시절 수없이 보았던 전쟁영화들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전쟁은 반드시 영웅을 낳기 마련이지만 한 명의 영웅 뒤에는 수천, 수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 피해자들이 피흘리며 쓰러져 있다는 사실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우린 철의 삼각지대 적 기관총진지를 박살내고 마침내 고지를 점령한 영웅보다는 노르망디 해변가에 수북히 쌓여 바다를 빨갛게 피로 물들였던 수많은 전사자들 중 한명이었기 쉽다.
어느날 난 광주 상무대 소대전투훈련장에서 가파른 산허리를 달려 올라가고 있었다.
그 고지 위에 북한군 진지가 있다고 상정하고 그걸 탈취하게 위해 돌격하던 중이었다. 실전이 아니었으니 빗발치는 총탄도, 좌우에 떨어져 폭렬하며 팔다리를 쪼개는 십자포화도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그게 실전이든 아니든 내앞에 나타난 거의 직각에 가까운 비탈은 도저히 타고 넘을 수 없는 장벽이었다. 만약 실전이었다면 난 일찌감치 적 기관총이나 수류탄에 제물이 되었을 것이다. 고지를 공격하는 병력이 수비병력의 몇 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저 비탈에서 쓰러진 수많은 전우들의 시체더미를 밟고 넘어서야 저 고지에 오를 수 있을 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며 그런 비탈을 타고 올랐을 것이고 그래서 한국전쟁 당시 철의 삼각지대에서 수많은 봉우리들을 매일 뺏고 뺏기는 고지전을 벌였던 것이다. 많은 이들이 거기서 목숨을 잃었음을 역사가 생생히 전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군생활을 했던 1980년대 후반에도 만약 전쟁이 벌어졌다면 그런 무식한 고지쟁탈전을 벌이진 않았을 것 같다. 고지 하나에 몇 개 대대를 쏟아 넣어 수많은 사상자를 내는 소모전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다.
하지만 군생활 내내 난 어느날 때가 오면 내 소대원들을 독려하며 태반이 죽어나갈 게 분명한 고지전의 가파른 비탈길로 등 떠밀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했다. 누구는 봐줘서 뒤에 남기고 누구는 총알받이로 내보내고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 소대원들과 살갑게 지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겨운 김일병, 강상병을 어떻게 죽음의 비탈로 내몰 수 있단 말인가? 소대장은 병사들과 거리를 둬야만 했다. 물론 막무가내로 부대를 사지로 몰아가는 수많은 소대장과 중대장들이 전쟁에서 자기 부하들에게 등에 총을 맞는 사건도 부지기수로 벌어졌다고 하며 그건 미군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베트남전에선 웨스트포인트를 나온 원리원칙의 화신과도 같은 신임 소대장들이 적군 스나이퍼들에게도, 닳을 대로 닳은 고참 소대원들에게도 제거 1순위였다고 한다. 전쟁에서 공을 세워 군문에서 출세해 별도 달고 싶어 전장에 지원한 초급장교들이, 스스로의 의지에 반해 강제징집되어 원치 않는 전쟁을 싸워야 했던 병사들을 무전히도 등떠밀다가 발생한 당연한 결과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전쟁에서 군인들이 죽는 건 전쟁의 본질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문제는 정작 평시에도 군대에서는 일반사회보다 높은 비율로 군인들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군이 그렇게 위험한 곳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벌어진 수많은 군 사고사, 군 의문사, 폭행치사와 자살사건들은 역사적으로 벌어진 실제 사건들이다. 군은 부모들이 자녀들을 절대 보내기 싫어할 만한 환경을 충분히 만들어 왔다.
나도 군시절 최소한 두 번쯤 죽을 수도 있었을 법한 위기를 맞았다.
한번은 상무대 유격훈련 2주차 첫 날 , 칡흙같은 무등산 능선을 야간에 넘어가다가 벼랑에서 떨어진 것이다. 다리가 덩굴에 걸려 바닥으로 수직낙하하는 불상사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끼고 있던 그때 떨어진 내 안경은 지금도 무등산 계곡 어딘가 바위틈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
또 한 번은 제3땅굴을 견학하러 온 종고생 2학생들을 태운 버스들 중 한 대가 전진교를 통해 빠져 나가는 과정에서 벼랑에 바퀴가 빠졌을 때였다. 난 미국 험비차랑 두대에서 끌어온 와이어 두 개를 등에 걸치고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벼랑에 매달려 버스안의 학생들 40 ~ 50명을 내려주어야만 했다. 그 구조작전은 다행스럽게도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뭔가 하나만 삐끗해 차량이 벼랑 밑으로 곤두박질 쳤다면 나를 포함한해수십 명의 사상자를 내는 대형사고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 사건이 있었던 1988년은 서울올림픽 직전. 즉 구석기 시대의 일이다. 하지만 지금 세상이 변했다고, 군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군은 정말 안전한 곳이 되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D.P.>는 그렇지 않다고 강변한다. 고질적인 군내 폭력을 차치하더라도 각종 병기들을 구비하고 사람을 죽이고 적을 파괴하는 방법을 배우고 훈련하는 그곳은 절대 안전한 곳일 수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군이 안전한 곳이 될 경우, 그 국가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그런 걱정은 할 필요없다. 군이 안전한 곳이 되긴 힘든 일이니까.
그런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 군면제 혜택을 시켜주는 제도가 있다.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따야 한다. 그렇게 군 면제를 받은 축구, 야구 프로선수들은 실로 적지 않다. 빨렘방 아시안게임이 열렸던 2018년 당시 방탄소년단이 두 번 째 빌보드챠트 1위를 차지하면서 BTS는 왜 군면제를 받지 못하냐는 팬들의 볼멘 소리가 여론이 되고 청와대게시판 청원이 되어 한동안 한국사회를 들쑤셨다. 그 논의를 따라가다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지점들이 보였다.
올림픽, 국제콩쿨 등의우승자와 방탄소년단 같은 대중음악인들의 세계무대 제패는 국위선양의 질이 다르다고? 그래서 차별되어야 한다고? 오래 전 등소평이 이미 그 대답은 했다. 쥐 잡은 고양이가 흰색 고양이등 검은색 고양이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검은 고양이가 잡은 쥐는 쥐가 아니란 말인가?
형평성에 중점을 두어 수정보완하겠다고?
정말 형평성에 중점을 둔다면 왜 금메달을 딴 여자선수들에게 4촌이내 친인척 중 누구 하나를 지정해 대신 군면제 시켜줄 권리를 주지 않는가? 남자들의 금메달은 군면제의 혜택이 달고 나오고 여자들의 금메달은 그 정도의 가치까지는 없단 말인가?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거기 무슨 형평성이 있단 말인가?
군면제혜택의 수정보완을 이야기하는 정부관계자나 국회의원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군면제혜택 문제의 모순들을 벗어나는 가장 간단하고도 분명한 길은 모병제로 가는 것이다.
모병제로 당장 갈 수 없다면 최소한 군에 간 젊은이들에게 충분한 생명수당을 제시해 주진 못할지라도 대졸 초봉 정도에 해당하는 월급을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걸 못하면 군에 간 사람과 가지 않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그 무슨 수로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인데 근본적인 해결이 안되는 수정보완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정부관계자들과 국회의원들은 해방 70년을 맞아 OECD 회원국이 되고 경제규모로도 세계적으로 손가락 안에 꼽히는 나라가 되고서도 여전히 군사적 독립도 하지 못하고 군인들 몸값을 헐값으로 지불하고 있는 국가와 정권의 무능함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그간 국가가 몇 번의 뻘짓을 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모 전 대통령 시절 수 십, 수 백조의 국가자금을 허랑방탕하게 낭비하지 않았더라면 모병제 정도는 2010년 쯤에 시작하고도 남았을 것이고 전시작전권도 이미 오래 전 회수했을 것이다.
그런 근본적 해결을 해야 할 마당에 군면제혜택제도를 수정보완하겠다니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그래, 잘 해 봐라.
그러다가 2021년에 이르러 BTS는 이전에 그 누구도 상상 못한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그들이 이룬 국위선양은 웬만한 운동선수가 금메달 열 개쯤 따온 것조차 훌쩍 뛰어넘는 정도지 싶다. 그 친구들 군대 보내지 않고 계속 국위선양하도록 놔두는 게 훨씬 낫다는 건 누구나 수긍할 만하다. 단 하나 문제가 남는다. 형평성. 공정성. 그게 문제다.
하지만 이건 의외로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
모병제가 최선이지만 차선은 각자 형편에 맞는 기부를 하고 군면제를 받는 것이다. 대햑에 기부체납하고 입학하는 것처럼.
단지 국가가 국민들에게 뭔가 지원하려고 하면 일부 정치인들이 늘 주장하는 '차등지급'처럼 기부체납액도 차등적용하자.
우선은 국위선양 평가위원회를 만들어서 비단 운동선수들 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16세 이상 남녀에게 국위선양 정도를 평가해 점수를 매긴다. 예를 들어 1000점이 되면 군대 안가도 된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25세쯤 될 때까지 50점도 미치지 못하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1000점 안되면 모두 군대에 가도록. 비트코인 가격처럼 동양대 표창장 한 장에 0.001점 정도로 하고 모의고사 전교 1등은 0.1점 정도로 하자.
그런데 개인이 획득한 국위선양지수는 군복무를 마친 사람에게도 평생 평가되어 가산되며 양도, 상속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니 나는 25살 되었을 때 50점 밖에 못 따 군대에 가지만 이 점수를 이웃의 소년가장에게 몰아줘 그 친구가 부양해야 할 가족을 놔두고 군대가지 않도록 해줄 수 있다. 나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 20명을 찾아 1000점을 그 친구에게 몰아주는 거다.
돈많은 사람은 국위선양점수를 살 수도 있다. 거래소도 만들자. 1000점에 50억원 쯤 되도록 가격을 정하자. 탱크 한 대 값이다. 그럼 1점에 5천만 원이네. 그러니 군대 가기 싫은 사람은 국위선양점수를 다 따지 못해도 50억원을 국가에 내면 군대 안가도 된다. 군대 가기 싫으면 거래소에서 1점에 5천만 원씩 사서 1000점을 채우거나 닥치고 국가에 탱크 한 대 사주면 된다.
그런데 아까 차등적용하자고 했다.
국내 대기업 관련 친인척 8촌 이내는 누구든 탱크 1대 사주면 군대 안가도 된다.
그런데 10대 그룹 자녀들은 탱크 10대로 하자. 아니면 잠수함 한 대.
이재용 자녀들은 전투기나 전폭기 한 대로 하자.
종부세 안내는 사람들은 깎아주자. 군용트럭 다섯 대쯤으로 하자.
극빈자들은 소총 100정 정도?
아무튼 이렇게 하면 군대 가든 안가든 대한민국 국민들은 개개인이 국방에 무지하게 도움되는 거다.
가문의 종손 4대 독자를 군대 보내지 않으려면 가문의 남녀 모두가 각자의 국위선양점수를 모아 주면 된다. 그러기 위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국위선양점수를 따면 된다.
BTS는 지금까지 한 것 정도면 각각 탱크 한 대 정도 가치의 국위선양을 했으니 군대 면제해 주자.
충분히 공정하지 않은가?
2021. 12. 7
(2018. 9.9. 원본의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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