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와 소설 사이, 그 어디쯤

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인니 민속과 주술

[뻴렛주술] 쉑 수바키르(Syekh Subakir)의 고사

beautician 2017. 4. 9. 14:30



B 스마르므셈 뻴렛주술과 관련하여 쉑 수바키르(Syekh Subakir)의 고사.



 

쉑 수바키르(Syekh Subakir)는 오스만투르크 술탄왕국의 술탄 무하마드 1세의 칼리프가 인도네시아에 이슬람을 전파하기 위해 보낸 왈리송고 울라마의 일원이다. 그가 인도네시아 열도에 가르침을 전파하러 왔을 때 귀신의 나쁜 영향을 받아 자바의 대지를 희생제로 올린 상위급의 울라마이자 퇴마사였다.

 

반지의 제왕 스토리와도 비슷한 이 얘기는 술탄 무하마드 1세가 꿈속에서 자바 땅에 이슬람의 율법을 전파하라는 속삭임을 들으면서 시작한다. 이슬람선교단은 9명으로 이루어졌는데 죽거나 낙오하는 사람이 생기면 다른 울라마로 교체해 9명의 숫자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당대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이름 높은 울라마들을 모았는데 그들은 국가운영, 포교, 의료, 제사, 축신 등 각각의 전문분야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자바섬에 파송되기 전에도 오스만투르크 술탄왕국은 이미 몇 차례 이슬람 포교단이 파송되었지만 모두 실패를 겪은 이유는 당시 자바인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슬람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울라마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한편 당시 자바섬은 정글이 우거지고 귀신과 악한 도깨비들이 잔뜩 살고 있었는데 페르시아의 울라마로 축신과 자바섬의 생태, 기상학, 지리학 등에 정통한 쉨 수바키르도 포교단의 일원으로서 앞서 출발한 울라마들의 뒤를 따라 자바에 파송되었다. 그의 임무는 이슬람 전파에 방해가 되는 마술과 영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함이었다. 그가 자바섬에 도착해 살펴본 바 자바섬에서 이슬람 전파의 실패한 것은 자바섬의 귀신과 도깨비들의 영향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모든 진들과 더더밋과 러름붓들은 배와 승객들을 삼켜버리는 거대한 파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고 파괴적인 회오리바람으로 현신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야수의 모습으로 나타나 사람들을 해치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쉑 수바키르는 애당초 아랍으로부터 특정 문양이 새겨진 검은 돌을 가지고 왔다.

 


 

그는 자바섬의 한복판이라고 여겨지는 마글랑 소재 띠다르산(Gunung Tidar)에 아지 깔라짜크라의 이름이 새겨진 돌을 놓았다. 검은 돌에서 발생한 성스러운 마법의 위력은 세상을 뒤흔들어,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평화롭기만 하던 세상은 3일 밤낯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강한 바람과 함께 벼락과 불비가 내렸으며 산들은 끊임없이 흔들렸던 것이다. 귀신들과 악마, 요괴들이 달아나고 진과 요정, 바나스빠띠, 꾼띨아낙, 자일랑꿍 등 공중의 모든 귀신들은 검은 돌이 뿜어내는 열기를 감당할 수 없었다. 살아남은 귀신들은 모두 바다로 도망쳤다. 그 과정에서 일단의 진들은 검은 돌의 뜨거운 기운에 녹아내려 죽어버리기도 했다.


자바섬 마물들의 왕 삽다 빨론. 스마르 므셈(Semar Mesam) 이미지의 원형 캐릭터.

띠다르 산 정상에서 9천 년을 살아온 진들의 왕 삽다 빨론(Sabda Palon)은 이 사태에 놀라 진과 귀신들을 덮친 이 뜨거운 기운의 근원이 무엇인지 찾아 나섰다. 삽다 빨론은 쉣 수바키르와 마침내 마주했다. 샅바 빨론은 그가 검은 돌을 설치한 이유를 물었다. 이 울라마는 오스만투르크의 칼리파가 보낸 울라마들이 자와 땅에서 이슬람을 가르치는 것을 훼방하는 진과 귀신들을 쫓아내기 위해 그 검은 돌을 설치했다고 자기 목적을 설명했다. 삽다 빨론은 그 설명이 마뜩치 않았다. 물론 둘 모두 간단히 설득될 위인들이 아니었다.

둘은 설전을 벌인 끝에 마력 결투를 벌였는데 혹자에 따르면 이 결투는 40일 밤낮 동안 계속되었다고 했다고 한다. 삽다 빨론은 자바섬 지박령들의 우두머리인 끼 스마르 바드라나야라고 알려져 있는 영적 존재였는데 결투에서 밀리는 듯 하자 이내 말로 하자며 한발 물러섰다. 삽다 빨론은 자바섬에 이슬람 전파를 허용하면서 몇몇 조건을 내 걸었는데 그 중 하나는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슬람 술탄들이 세워져 자바섬을 다스리게 되더라도 기존의 관습과 문화를 파괴하지 말 것을 분명히 했다. 쉑 수바키르는 고심했으나 마침내 이들 조건을 받아들였다.


스마르(Semar), 떼곡(Tegog)과 만나고 있는 쉑 수바키르. 왼쪽부더 떼곡, 스마르, 쉑 수바키르.

한편 쉑 수바키르는 띠다르 산 정상 뿐 아니라 다른 진들과 요괴들의 왕들이 다스리는 자바섬의 다른 음습한 지역들도 정화시켰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쉑 수바키르가 띠다르 산의 요괴들을 쫓아내기 위해 똠박 끼아이 빤장이라는 창 형태의 영적무기를 가져왔다고도 한다. 이 신령한 창은 적들을 봉쇄하는 장치로서 띠다르 산 정상에 박아 넣었는데 여기서 엄청난 뜨거운 기운이 몰려나와 띠다르 산에 사는 귀신과 요괴들이 감당해 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앞서 에피소드의 검은 돌 대신 장창을 설치했다는 애기다.

 


 

귀신들은 허겁지겁 띠다르 산을 떠나 달아났는데 삽다 빨론을 따르는 일부 요괴들은 동쪽으로 달아나 머라삐 산 지역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이 지역은 아직도 음산한 귀신출몰 지역으로 여겨지고 있다. 삽다 빨론의 또 다른 부하들은 로반 고원과 스란딜 산으로 달아났다고 한다.

 

이 창은 지금도 띠다르 산에 남아 ‘똠박 끼아이 빤장(끼아이의 장창) 무덤’ 이라고 이름 붙여져 이곳 주민들이 지키고 있다. 이 창이 거기 있어서 띠다르 산은 모든 요괴와 귀신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는 것이라고 믿어지고 있다.

 

이렇게 쉑 수바키르가 자바 땅을 정화한 덕에 이슬람은 왈리 송오의 1차 포교단에 의해 순조롭게 전파될 수 있었다. 페르시아 출신 울라마 쉑 수바키르는 이 일로 당대 자바 땅에 사는 모든 민족들과 전사들, 마술사들, 이능력자들 및 요괴와 귀신들 사이에서 그 이름을 떨쳤고 높이 떠받들어졌다. 그러나 그를 추앙하는 움직임이 지나쳐 오히려 무슬림들의 종교적 신념에 해가 되었으므로 그는 1462년 자바를 떠나 지금의 이란 땅인 페르시아로 돌아갔다.

 

쉑 수바키르는 자바땅을 정화하고 영적 존재들의 부정적 영향을 일소하는 사명을 완수했다. 그가 죽은 후 그의 자리는 왈리 송오 포교단의 또 다른 일원인 수난 칼리자카(Sunan Kalijaga)가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