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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일반 칼럼

노동의 가치는 헐값에 흥정하는 말린 멸치가 아닙니다.

beautician 2016. 10. 20. 13:40


인도웹 구인광고 중 이런 게시물이 있었습니다.

 

11 1일 오후 2~4시 간단한 미팅
11
2 ~ 5 8 30 ~ 6시 전시회 부스 도우미 및 통역 지원

전시회에서 함께 도움을 주실 여자 도우미 및 통역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인 영어와 현지어 한국어가 가능하신 분을 희망합니다. 도우미 비용은 11 1일 리허설(2시간) 포함 전시회 4일 합쳐 USD 450 이며 적극적이고 활달하신 분이면 좋겠습니다. 담당업무는 부스내 손님이 찾아올 경우 안내 / 미팅 진행시 음료 다과등 캐터링 업무 지원 입니다. 국제적인 행사인 만큼 오시는 손님들이 VIP 고객이 많으며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5일간 통역을 포함한 전시회 도우미를 구하는 광고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의 현지 통역료는 하루 최소 USD150, 근무지역과 업무내용, 통역수준에 따라 USD300-400까지도 호가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통역을 수반한 안내, 접객, 식사추진 등을 망라하는 도우미 업무에 하루 90불 정도의 박한 일당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시세를 모르고 무조건 싸게 부르는 업체들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니까요. 인도네시아는 모든 게 싸야 하니 인건비도 싸야 한다는 생각이 그 기저에 깔린 거겠죠.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산 김치를 사먹으려 해도 한국보다 더 비싼 값을 치르는 게 정상인데 인도네시아에서 인니어,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을 구하면서도 현지 지저분한 전통시장에서 말린 멸치 흥정하듯 한국에선 꿈도 못 꿀 고급인력을 헐값에 어떻게 해보려는 겁니다.



통역을 수반한 하루 일당 90불은 매우 박하군요.
일을 싸게 시키면서 그게 좋은 경험이 될 거란 말은 좀 염치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이런 댓글이 붙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업체들은 본국에서 유행하는 열정페이를 인도네시아 교민들에게도 강요합니다. 하지만 이 댓글이 게시업체에겐 좀 따끔했던 모양입니다. 곧 이런 댓글이 올랐습니다.

 

저희가 실수가 있었네요. 일단 90불이 아니라 150불 책정하였는데 전시기간을 3일만 생각하고 있었네요.
리허설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전시회 배지 전달들 간단한 미팅이므로 전시회 4일 일단 USD 150 600불로 정정하였습니다. 관심있는 분들 많은 지원 바랍니다.

 

보수금액이 수정된 것은 긍정적인 일입니다. 하지만 이 업체가 일에 대해 갖고 있는 개념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리허설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럼 리허설에 왜 사람을 불러 뭔가를 시키는 걸까요? 두 시간 일을 시키고서도 보수를 계산하지 않겠다는 패기가 놀랍습니다.


간단한 미팅을 일로 보지 않는다니 좀 놀라운 관점입니다.
며칠씩 마라톤 상담을 해도 오더 한 톨 따내기 어려울 때도 있고 20분 미팅하고 수백만 불 오더를 따내는 경우도 있어요. 그렇게 20분 미탕하고 커다란 성과를 들고온 사람한테 그건 일이 아니었다고 하진 않겠죠.
한시간 일을 시키고서 그건 일도 아니니 공짜로 치자 하지 말고 한시간 노동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그나마 이 회사는 4일치에 대한 통역비를 주겠다니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멀리 인도네시아에까지 와서 교민들에게 일 시키고 보수는 주지 않으려는 업체들도 넘쳐나니 말입니다.

 

실현될지 무산될지도 모르는 거창한 미래의 약속을 내세우면서 상대방에겐 당장 오늘 이런저런 일들을 실현시키라고 요구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많죠. 현지인 직원 채용면접 하는 날에 일 잘하면 나중에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겠다며 구름 잡는 약속을 남발하는 이상한 사장님들처럼요.

 

어느 날 만나게 된 이 말은 정말 진리입니다.

 

그저 누군가를 위해 하루를 아낌없이 쓸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린다.’ – 이희주(환상통)

 

각종 구인광고에 응하는 분들이 스스로의 노동의 가치를 헐값에 팔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한 일과 노력에 대한 적절한 대가가 반드시 주어지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16.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