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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의 역작] 자카르타 버스웨이

beautician 2016. 9. 19. 10:00

 

 

서울과 동경엔 지하철이 있고 싱가폴엔 MRT가 있고 쿠알라룸푸르엔 모노레일이 있듯이 자카르타엔 버스웨이가 있습니다.

 

 

 

 

 

 

 

 

아직도 수티요소(Sutiyoso)씨가 자카르타 주지사로 재임하고 있던 당시 시내 한복판인 수디르만 거리(Jl. Sudirman)에 선을 그어 놓고 ‘BUSWAY’라는 간판을 그 위를 지나는 육교들 위에 붙여 놓을 때만 해도 버스웨이라는 것이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게 될 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사가 시작되면서 긍정적인 시각으로 버스웨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마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버스웨이는 기본적으로 버스전용차선입니다.

 

평상시에도 정체가 심한 자카르타 시내에 비교적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많은 외국기업들이 프로포절을 내고 정부와 오랫동안 상담을 벌여 왔던 지하철, 경전철, 모노레일 등은 모두 MoU를 맺으며 신문의 한 면을 장식했지만 그 천문학적인 공사비로 인해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나 자카르타 주정부가 탐을 내면서도 엄두를 내지 못했지요. 그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관련 부처의 적지 않은 고위공직자들과 그 친인척들만 외국업체들의 로비활동을 통해 주머니를 부풀린 채 결국은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카르타 남부 물리아 호텔(Hotel Muilia) 인근의 스나얀(Senayan) 지역엔 모노레일을 만든다며 몇 개의 기둥을 세웠지만 결국 공사가 중단되어 그 버려진 기둥들이 흉물단지가 되어버린 지도 몇 해가 지났지요.

 

그러다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버스웨이였습니다.

기존 도로에서 한 차선을 할애해 버스전용도로를 만들어 버스들의 적정운행속도를 보장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그 저변을 이루는 아이디어였던 것 같습니다. 지하철처럼 땅을 팔 필요도 없고 모노레일처럼 기둥을 세울 필요도, 경전철처럼 철로를 놓을 필요도 없는 이 버스웨이를 생각해 낸 사람들은 자기들 혹시 천재 아니냐며 스스로 감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한국에도 버스웨이가 있다고 들었지만 자카르타의 버스웨이는 몇 가지 특이한 점들이 있습니다.

 

그 첫번째는 버스웨이와 일반차도를 구분하기 위해 선만 그어놓는 것이 아니라 블록을 이용해 낮은 벽을 쌓아 구획을 분리해 놓았다는 점입니다. 길을 막아서 뭔가를 이루어 보려는 일반적인 인도네시아 도로정책이 버스웨이 건설의 시작단계에서부터 엿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스망기 인터체인지에서 또망(Tomang) 방향으로 달리다가 수디르만 도로로 접어들기 위해 좌회전 하려면 경찰들이 길을 막아 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길이 막히니 돌아가라는 것이죠. 그러나 목적지가 수디르먄 거리라면 돌아가더라도 결국 수디르만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술탄 호텔 앞을 지나 물리야 호텔, 스나얀 플라자 앞을 지나는 먼 길을 돌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퇴근시간이 되면 시내 중심가의 도로에서는 저속차선에서 고속차선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막아 놓는 일도 매일 벌어집니다. 길 막히니 웬만하면 고속차선으로 끼어들지 말고 계속 막히는 저속차선으로 가라는 경찰들의 무언의 압력이지요. 그러나 그런다고 목적지를 바꿀 수는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열려 있는 한 두 개의 통로에 차량들이 뒤엉켜 장사진을 이루지요. 이런 경찰이나 자카르타 주정부의 시도는 조삼모사와 다름 아니지만 길을 막아 뭔가를 해결 보려는 그 기본적인 마음가짐만은 충분히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도로 확장을 위한 부지매입이 쉽지 않은 번잡한 자카르타에서 사거리를 지나는 지하터널이나 고가차도가 많이 건설되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연초가 되면 양방향 도로가 어느 날 갑자기 한쪽 방향의 진입을 막아 일방통행으로 바뀌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도로의 일방통행정책이 반둥에서는 비교적 성공을 거둬 반둥의 도심에는 일방통행 도로가 대부분이고 그 길을 거꾸로 접어 들어 몇 차례 딱지를 떼이면서 길을 익히면 그런 다음엔 하루에 더 많은 목적지들을 보다 수월하고 효율적으로 다닐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자카르타는 얘기 자체가 틀립니다.

기본적으로 도로면적에 비해 너무나 많은 차량을 보유한 자카르타에서 차량의 흐름 방향을 바꾼다는 것은 어느 한 쪽의 교통정체를 풀기 위해 다른 곳 어딘가에 병목과 정체구간을 만드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스망기 인터체인지에서 쉽게 보듯 우회전, 좌회전 길목을 막고 버티고 서서 승객들을 태우는 버스들이나 학교가 파하는 이른 오후 초, , 고등학교들 앞에 두 줄, 세 줄로 도로를 점거하는 승용차나 앙꼿(Angkot), 예전 스넨(Senen) 시장이나 요즘 끄마요란(Kemayoran)에서 쯤빠까 뿌띠(Cempaka Putih) 지역으로 넘어가는 도로 등에서 흔히 보듯 혼잡한 퇴근시간에 차도 대부분을 점거하고 장사하는 노점상들의 못된 버릇들을 고쳐 놓는 것만으로도 교통정체상황은 분명 어느 정도 개선되겠지만 자카르타의 교통정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차량 숫자를 줄이거나 도로를 늘리거나 앞서 언급한 지하철, 모노레일 같은 별도의 교통시스템을 갖추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차량 숫자는 줄어들기는커녕 날로 늘어나고 오토바이 숫자는 더욱 기하급수적인 증가세를 보이는데 자카르타의 버스웨이가 갖는 기본적인 개념은 기존의 도로에 금을 긋고 다른 차량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므로 오히려 일반 차량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도로 면적을 절대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이지요. 그것도 다른 차량들의 진입을 절대 허용하지 않도록 벽까지 쌓아 놓고 한동안은 진입로에 경비원들이나 경찰, 심지어 군인들까지 배치해 다른 차량들의 진입을 막았으니 버스웨이로 인해 자카르타의 교통정체가 완화되겠어요? 아니면 더 심해지겠어요?

 

버스웨이를 고안한 천재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건설한 도로에 그렇게 제멋대로 금을 그어놓고 세금을 낸 납세자들에게 그 길에 들어오면 벌금을 때릴 테니 승용차를 사용하려면 예전보다 더욱 좁아진 도로로 다니라며 엄포를 놓는, 아마도 위헌에 가까운 정책을 강행한 것입니다.

 

만약 이 버스웨이에 그 명칭이 뜻하듯 모든 버스들을 몰아 넣었다면 정체는 분명 완화되었겠죠. 그러나 자카르타 버스웨이의 두번째 특징은 버스웨이에 버스들이 다닐 수 없다는 것이지요. 골때리지 않습니까?

 

자카르타 주정부는 트랜스 자카르타 등의 사업체를 만들어 버스웨이의 독점 사용권을 주었고 이 업체들은 버스웨이용 전용버스들을 수입해 운행시키면서 코파자(KOPAJA), 빠타스(Patas) 등 모든 버스들을 포함한 일반차량들의 버스웨이 진입을 막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이면 자카르타 도심의 버스웨이에는 한 줌도 안되는 트랜스 자카르타의 전용버스들이 널널하게 다니는 한편 그 차선 한 개를 헌납한 나머지 도로에는 모든 승용차와 버스들이 서로 엉켜 달라 붙어 극도의 정체를 빚어내는 극과 극의 현장을 매일 목격할 수 있습니다.

 

이 버스웨이를 고안한 천재들은 그러나 몇 가지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해 일반 차량들은 물론 버스웨이 이용자들에게도 별다른 큰 이익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중 하나는 사거리, 도로의 유턴 부분 등에서 버스웨이가 불가피하게 일반도로와 겹치게 된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버스웨이 전용도로를 비워 놓는다 하더라도 번잡한 사거리와 유턴 포인트에서는 신호등과 지나는 차량에 막혀 전용버스도 멈춰 설 수 밖에 없고 일부 외곽지역까지 연장된 버스웨이는 기존 2차선 도로를 차마 벽을 세워 분리하지 못해 차선만 그어 놓고 일반차량과 함께 사용하게 함으로써 전용버스 역시 극심한 정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죠. 그래서 신호등이나 유턴 포인트에는 버스웨이 전용버스들이 몇 대씩 줄지어 서서 신호를 기다리는 것을 흔히 보게 되고 그것이 버스웨이 정류장에 몇십분을 기다려도 오지 않던 전용버스들이 조폭처럼 한꺼번에 떼지어 들어오게 되는 이유가 됩니다.

 

이 사거리와 유턴 포인트에서 버스웨이로 인해 낭패를 당하는 일반차량들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일부 구간에는 여기서부터 버스웨이’, ‘버스웨이 분리대 조심등의 안내팻말을 볼 수 있지만 아무런 표시가 없는 곳도 적지 않아요. 그래서 버스웨이 초창기에는 이 분리대(분리벽) 위에 올라 앉아 좌초되어 버린 승용차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습니다. 버스웨이 전용버스의 속도를 보장하기 위한 이 분리대는 사거리와 유턴 포인트 등에서 실제로는 일반차량을 위협하는 도로상의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버스웨이 정류장의 공간적 한계라는 부분입니다.

일반버스들의 승객용 출입구가 왼쪽에 달려 있는 반면 버스웨이 전용버스들은 오른쪽에 출입구가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버스웨이 정류장이 양차선 도로의 한가운데, 중앙에 건설되기 때문이지요. 보통의 경우라면 두줄 짜리 차선 한 개로 표시될 도로 중앙분리선 위에 설치하는 버스웨이 정류장이 차선을 먹고 들어가지 않으려면 그 시설의 폭이 제한될 수 밖에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처음부터 내재하고 있었습니다.

 

버스웨이 정류장은 대개의 경우 그 폭이 최대 3미터 정도에요. 가장 큰 환승역인 하르모니(Harmony) 정류장도 그 폭이 7미터 정도를 넘지 않습니다. 그래서 환승역 내부는 아수라장처럼 붐비는 도로 이상으로 사람들이 뒤엉켜 금방이라도 질식할 듯 대혼잡을 이루죠. 한정된 대기실 공간에 몰려든 수백명의 사람들이 10줄 이상을 만들어 서로 팔꿈치로 밀어가며 버스를 타는 플랫폼을 향해 장사진을 이루지만 플랫폼은 달랑 두 줄이어서 특히 하르모니 정류장에서는 환승버스를 타기 위해 10대 이상 버스들을 보내야 자기 순서가 오는 게 보통이지요. 그것도 운이 좋으면요.

 

그렇게 붐비는 버스웨이 정류장, 환승역은 양철로 만든 오두막집 같은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 양철 샷시를 빗살처럼 연결해서 밀폐해 놓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에요. 밀폐되었다면 질식해 졸도하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씩 나왔을 테니까요. 그러나 그 대신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쪄 죽기 십상이고 환승버스에 올라탈 즈음이면 옷이 온통 땀범벅이 되어 있는 것은 기본이에요. 거기에 심한 몸냄새가 환승역과 환승버스에서 거의 코의 기능을 마비시켜 버립니다.

 

코파자 같은 일반 시내버스의 차장들은 시정잡배처럼 보이는 남자들이 맡고 있지요. 다행히 버스웨이 전용버스의 차장들은 정복을 입은 경비원들입니다. 정류장 입구의 창구에서 Rp3,500 주고 표를 사고 정류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지하철 차표 등록기 같은 기계에 표를 넣기 때문에 경비원 차장들이 차비를 걷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차량의 효율적 운행이나 승객들의 편의보다는 차 문을 지키는 데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듯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버스 안 공간이 넉넉한데도 차에 타려는 승객들을 강제로 밀치며 급히 문을 닫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버스에 뒷문도 있고 뒷문에 연결되는 플랫폼이 있는 정류장들도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뒷문을 폐쇄해 놓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앞문에는 승객들이 몰려 항상 혼잡을 이루고 있지만 뒷문 쪽은 수십명이 더 타도 될 정도로 널널합니다. 그래도 경비원은 험악한 인상을 지으며 앞 문을 닫아 버리고 승객을 반도 태우지 않은 버스는 매정하게 떠나 버리곤 합니다.

 

 

이런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수티요소의 뒤를 이어 자카르타 주지사로 선출된 파우지 보워(Fauzi Bowo) 주지사는 전임자의 정책을 이어받아 자카르타의 구석구석까지 버스웨이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반둥과 수라바야에서도 버스웨이 시스템을 도입하려 한다는 신문기사가 났었지요

 

그것은 가장 버스웨이가 어쩌면 인도네시아의 경제적 현실에서 교통정체를 완화하는 가장 실질적인 대안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수디르만 거리나 쯤빠까 뿌띠(Cempaka Putih) 지역에서 환승할 필요 없는 지역까지 이동하려 한다면 버스웨이가 출퇴근 시간에 가장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버스웨이 전노선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심과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현실이지요. 일반 차량들을 위한 기존 도로를 좁히면서까지 강행한 버스웨이가 실질적인 정체완화 효과를 보이기 위해서는 버스웨이를 무작정 도입한 천재들의 겸허한 반성 위에 많은 성찰과 보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며 그때까지 우린 또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