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소환귀 – 즐랑꿍(Jelangkung) 본문
소환귀 – 즐랑꿍(Jelangkung)
영화 ‘엑소시스트’에서처럼 빙의한 귀신을 쫒아내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와는 정반대로 강령회 같은 것을 통해 초혼술로 죽은 자의 혼령을 소환해 영매에게 빙의시키려는 시도들도 늘 있어 왔습니다.
문제는 이런 강령술의 태반은 강령술 의뢰자들에 대한 사전배경조사, 조명과 음향을 이용한 신비스러운 분위기 조성, 거기에 영매라 자칭하는 사람의 놀라운 눈썰미와 연기력, 그리고 성대모사 등이 한 몫을 하는 사기라는 것입니다. 이런 강령술, 영혼소환술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목표한 그 영혼이 왔다는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의뢰자들의 배경과 의도, 마음 상태 등을 족집게처럼 맞추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해 한국의 무당들은 시퍼렇게 날 선 작두 위에서 널 뛰듯 춤을 추는 것이고 서양의 강령회에서는 희미한 영혼의 실루엣, 피부를 바람처럼 스쳐가는 보이지 않는 차가운 손길, 그리고 탁자 같은 물체나 참석자의 공중부양, 나아가 깜짝 놀랄 만한 엑토플라즘의 발현 같은 것을 강령의 증거로 삼곤 했습니다.
이런 강령술은 전통적으로 죽은 자에게 미처 듣지 못한 얘기들을 묻기 위해 행해지곤 했는데 비명횡사한 자의 혼령을 불러 그의 죽음의 원인, 또는 아직 찾지 못한 그의 시신의 위치를 묻거나 급사한 재력가에게 유산에 대한 의지를 묻는 것 등이 주종을 이루었죠. 물론 죽은 자녀나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그리움만으로도 강령회가 소집되기도 했지만 그 만만찮은 비용이나 번거로운 절차로 인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이든 알 것만 같고 미래도 알고 있을 듯한 미지의 혼령을 불러내 묻고 싶은 질문들은 비단 그런 대단한 것뿐만은 아닙니다. 올해 수능시험에 내가 붙을지 떨어질지, 저 남자애가 정말 날 좋아하는지 아니면 사실은 양다리를 걸친 채 같잖은 밀당만 시도하고 있는건지, 저 재수없는 상사가 내일쯤 독감이라도 걸려 한 이틀 회사 결근할 쾌는 없는지 등등 좀 알았으면 좋을 법한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비싼 무당이나 영매를 통하기엔 복채가 아까운 그런 질문들 말이죠.
그런 사람들을 위해 저렴한 방법들 역시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일본의 콧쿠리상이나 한국의 분신사바 같은 것 말입니다. 물론 분신사바를 ‘한국산’이라 말하긴 좀 곤란합니다. ‘분신사바’란 일본어 分身樣 (분신사마)에서 온 것이 분명하고 혼령을 부르는 주문 역시 '분신사바 분신사바 이윳테 쿠다사이'(분신님 분신님, 말해주세요) 또는 좀 더 원어에 가깝게 ‘분신사마 분신사마 오이데 쿠다사이’(分身様 分身様 おいで下さい 분신님 분신님 와주세요)와 같이 일본어 주문을 외는 것이니 말입니다. 한국귀신들 소외감 느낄 듯 합니다.
그래도 이와 언급된 김에 분신사바 하는 법을 잠깐 들여다 보자면 우선 O, X 등의 문자와 ㄱㄴㄷㄹ 등의 한글 자모음, 0에서 9까지의 숫자 등을 써 놓은 흰 종이를 준비합니다. 그런 다음 위의 영화 ‘분신사바2’ 포스터에서와 같이 연필이나 볼펜 같은 필기도구를 둘이 마주 잡고, 주문을 외우면 펜이 움직여서 뭔가 글씨 비슷한 것을 쓰게 되죠. 그 펜을 움직이는 동력은 마주잡은 두 사람이 아니라 그 펜에 빙의된 혼령이라는 것입니다. 간편한 방법이기 때문에 어디서든 행할 수 있어 사실은 굳이 영화에서처럼 으슥한 구석방을 찾아가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귀신을 부르거나 부리는 일이 언제나 그렇듯 분신사바에도 징크스가 따릅니다. 예를 들면 다른 7명에게 이 비법을 퍼뜨리면 죽는다거나 하는 도중 펜에서 엄지손가락을 떼어서는 절대 안되며 분신사바에 사용한 펜은 도중에 분실하거나 버려서도 안되고 반드시 끝까지 다 사용한 후 버려야 한다는 조건들 말입니다.
원조인 일본은 좀 더 복잡해서 반드시 빨간색 펜을 써야 하고, 종이에 도형과 글씨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공물에
해당하는 음식그림도 그려 넣어야 하며 불러낸 혼령을 되돌려 보낼 때에는 종이를 몇 조각으로 찢을 지를 먼저 물은 다음 그 조각 수대로 찢어서 태워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건들이 더 붙습니다.
분신사바의 원조격인 일본의 코쿠리상도 기본적으로 같은 개념이긴 하지만 분신사바가 두명이 치는 고스톱, 맞고 같은 형식이라면 코쿠리상은 일반 고스톱인원, 즉 3-4명 정도가 참여하고 펜을 맞잡는 대신 숫자, 고주온도(일본어 자모음표), 네, 아니오, 그리고 신사 기둥모양 등을 기재한 종이 위에 놓인 10엔짜리 동전에 참가자들이 집게손가락을 함께 올려놓고 코쿠리상을 부르는 주문을 외우면 여우의 혼령이 동전에 빙의해 참가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 놀이(?)를 끝내려면 일단 신사 기둥모양이나 북쪽의 창으로
되돌아가는 의식을 한 뒤 종료해야 하는데 그래서 애당초 코쿠리상 놀이를 시작하기 전에 북쪽 창을 열어 두고 외부인이 보지못하는 환경으로 만들어 두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물론 동전이 움직이는 이유가 꼭 여우의 영이 붙어서라기보다 참가자들의 자기 암시나 무의식적인 근육의 움직임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누군가 짓궂은 참가자가 몰래 힘을 줘 움직이는 것이라는 데에 무게를 두게 됩니다. 하지만 미지의 혼령이 그들 가운데 와 있다는 공포와 긴장감 그리고 때로는 죄책감 같은 것에 짓눌린 분위기때문인지 코쿠리상을 하는 도중 기괴한 일을 경험했다는 투고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고 그 중엔 코쿠리상을 함께 하던 친구얼굴이 점점 여우처럼 변했다거나 참가자가 혼령에게 빙의해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거나 급기야 기절했다는 얘기들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코쿠리상 하는 오리지날 방법을 찾아 알려드립니다. 뭘 하든 전문가가 되야죠.
①「はい」を右、「いいえ」を左に、その中央に鳥居。下に五十音が右から書かれている紙を用意。오른쪽에 ‘예’, 왼쪽에 ‘아니오’, 그 한가운데에 신사기둥표시, 그 밑엔 우측으로부터 일본어 알파벳이 기재된 종이를 준비
②コックリさんが入ってくるための窓を開ける。(窓の方角はどこでも良いという話が多いが、「北」と限定しているものもある。他にも開けた窓の方角と逆の方角にある窓を開けないと帰ってくれない、という話もある。)코쿠리상이 들어올 수 있도록 창문을 열어둔다.(창문방향은 어느 쪽이라도
좋다는 얘기도 있지만 반드시 북쪽이어야만 한다는 얘기도 있으며 열어놓은 창문의 반대편 창문도 열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돌아가주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음)
③十円玉を鳥居の上に置き、その上に人差し指を置く。(二人以上)10엔 동전을 신사기둥모양 위에 놓고 동전 위에 집게손가락을
올린다 (2인이상)
④詠唱。「コックリさん、コックリさん。おいでになりましたら「
」(開けた窓の方角)の窓からお入りください。」 주문 합창
‘콧쿠리상, 콧쿠리상 오이데니나리마시타라 (열어놓은 창문방향, 예를 들면 북쪽 – 키타)노 마도카라 오하이리구다사이.’
(오시려거든 북쪽창문으로 들어와 주세요)
⑤少しして、もう一度詠唱。「コックリさん、コックリさん。いらっしゃいましたら「はい」へ進んでください。」(4を飛ばして、いきなり5に行く説もあり) 잠시 후 한번
더 다음과 같이 주문합창 ‘콧쿠리상, 콧쿠리상, 이랏샤이마시타라 ‘하이’에
스슨데구다사이’(오셨으면 ‘예’로 진행해 주세요). 4번을 거치지 않고 곧장 5번으로 건너뛰는 경우도 있음.
⑥コックリさんが来たら、質問攻めに。 콧쿠리상이 왔다면 질문시작.
⑦帰ってもらうには「コックリさん、コックリさん。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開けた窓の方角)の窓からお帰りください。(帰らないようだったら、しつこく言って帰ってもらいましょう。)돌려보내려면 ‘콧쿠리상, 콧쿠리상, 아리가토오고자이마스. (열려있는 창문방향 – 예를 들면 북쪽 – 키타)노마도카라
오카에리구다시이’(고맙습니다. 북쪽 창문으로 돌아가 주세요). 만약 돌아가려 들지 않는다면 인내심을 갖고 계속 돌아가 달라고 말하세요.
⑧10円玉が「はい」に行き、その後鳥居に戻ったらコックリさんは帰ったということ。10엔
동전이 ‘예’에 간 다음 최종적으로 신사기둥표시에 가면 콧쿠리상이
떠났다는 의미.
⑨帰った後は、コックリさんで使用した紙を燃やし、10円玉はその日のうちに使う。콧쿠리상이
돌아간 후 사용한 종이는 불태우고 사용한 10엔 동전은 그날 안에 써버려야 한다.
(출처 - http://detail.chiebukuro.yahoo.co.jp/qa/question_detail/q1029651740)
사실 이런 초혼술이 정말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라면 명시된 절차를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무당이나 두꾼들과 달리 혼령들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분신사바나 콧쿠리상을 불러 뭔가 정말 그 자리에 도착한다면 그건 분명 일반인, 특히 학생들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규정된 절차라는 것은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결정된 것이므로 분명히 지키는 것이 좋겠죠.
분신사바의 원형인 코쿠리상도 어쩌면 100% 일본산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방식은 좀 틀리지만 서양의 위자보드(Ouija Board)와 너무 닮았기 때문입니다. 위자보드라는 명칭 자체는 좀 생소할 지 모르지만 우리가 헐리웃영화에서 수없이 보아왔던 물건인데 이렇게 생겼습니다.
위자게임의 유래에 관해 많은 설 중 가장 유력한 설은 14세기 프랑스에서 집시계통의 유목민들이 영혼들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던 일종의 ‘놀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게임의 위험성 때문에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금지령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1800년대 중반에 이르러 사랑하는 이를 일찍 잃은 사람들이 영혼과의 접촉을 위한 방법을 찾기 시작하다, 1890년에 기업가 찰스 케나드가 케나드 노벨티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토킹 보드’(Talking Boards)가 현대 위자보드의 본격적인 시초가 됩니다. 당시, 케나드 노벨티 설립자들이 보드에 직접 이름을 물어보자 보드의 말판이 알파벳 O-U-I-J-A를가리키면서 ‘위자’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으며, ‘행운을 빈다’는 의미를 가진다는 답도 전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프랑스어로 'yes'를 뜻하는 Oui와, 독일어로 'yes'를 뜻하는 ja에서 유래되었다는 얘기도 있고요.
아무튼 당시 위자보드를 든 커플의 모습을 유명잡지 ’새터데이 이브닝포스트’의 표지로 선정할 정도로 유명세를 얻은 후 1966년, 모노폴리의 초기 발매처로 알려진 파커 브라더스에게 판권이 넘어가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의 위자보드가 탄생하게 되었고, 1991년, 세계적인 완구 전문기업인 해즈브로(Hasbro)사가 이를 인수해 위자보드를 계속해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이 이어지게 됩니다.
위자게임 방식은 두 명 이상의 사람이 마주보고 앉은 후 말판 위에 손을 얹고 주문을 외우면서 시작됩니다. ‘주위에 누가 와 있나요?’라는 질문에 말판이 Yes를 가리키면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Yes와 No 로 답할 수 있는 것에서 점차 알파벳으로 단어를 완성하는 식으로 말판이 움직이게 됩니다. 하지만 이 때 반드시 지켜야 할 사항은 절대 혼자 위자게임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위자게임에는 15분 이상 게임을 지속해서도 안되며, 말판이 위자 보드에서 떨어지게 되면 영혼은 사라지게 된다는 등의 암묵적인 절대 규칙들이 존재합니다.
(출처 - http://www.user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11)
그런데 위자게임으로 불러낸 귀신은 좀 더 집요하고 무서운 듯 합니다. 서양귀신이라 그럴까요? 인터넷에서 찾아 볼 수 있었던 한글로 된 위자게임 후기들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음산하고 경악스럽기까지 한 것들이었는데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합니다.
(전략)
2007년 3월, 미국의 이모집에 가게 됐습니다.
친척언니와 근처 한국인 친구 집에 가게 됐는데 그 친구는 저보다 한 살 많은 친척언니와 동갑이었습니다. 일은 그 집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언니의 방에 오래된 나무판자가 있길래 뭐냐고 물으니 '위자보드' 라고 하더군요. 위자보드는 위험한 게임이라 들어 신기해 하는데 그 언니는 3개월 전쯤에 아는 분에게 그 위자보드를 받았다고 설명하면서 50년도 더 된 독일산이라고 하더군요. 자기도 겁이 나서 가져다 놓기만 하고 아직 하진 않았다더라구요. 결국 그 언니의 오빠와 여동생도 합류해서 총 다섯명이 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참고로 위자보드는 Yes와 No, Good Bye 등의 문자와 0~9, A~Z까지 알파벳이 씌여져 있는 판인데, 그 위에 글씨를 가리키는 포인터를 놓고 귀신에게 질문을 하면 포인터가 가르키는 문자를 통해서 대답을 받을 수 있고, Good Bye를 가리키려면 꼭 귀신의 허락이 있어야만 합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들은 위자게임 규칙의 개요는 이랬습니다.
1. 15분 이상 플레이하지 말 것.
2. 귀신에게 미래따위는 물어보지 말 것.
3. 귀신과 합의 하에 게임을 마칠 것. 귀신이 No 한다면 계속 플레이해야 함.
4. 귀신이 No 한다면 계속 설득할 것.
"Are You Ready?"
첫 질문을 던졌는데 2분이 넘도록 아무 반응이 없어서 ‘에이 뭐야' 하는 소리가 튀어나오려던 찰나, 갑자기 Yes 쪽으로 반응이 오더군요. 처음엔 언니들이 장난을 치나 싶었는데 언니들도 표정이 심상치 얺았어요. 영어로 질문을 하면 제가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You can understand korean?"
라는 질문을 하자, 귀신의 대답은 No.
결국 언니들이 영어로 질문하고 저는 대충 설명을 듣기로 했어요. "What's Your Name?" 등등 기본적인 질문들을 했는데 그 대답들 듣는 것만으로도 10분 넘게 지나고 있어서 저희는 마음이 급해져 게임을 끝내도 죻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되는 빠른 속도로 포인터가 곧장 'No' 를 가리켰고, 저희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습니다. 15분내에 끝내기는 틀렸다 싶어서 귀신에게 우리를 달라 했더니 "It's up to me" (내맘이야) 라는 대답이 오더군요. 위자보드를 통해 오는 귀신 중엔 악질들도 있다던데, 하필 그런 귀신이 와버린 것 같았습니다.
귀신의 허락없이 마음대로 게임에서 이탈한 사람들이 사고로 죽었다거나 악령에 씌였다거나 하는 소문도 들은 적도 있어서 공포가 밀려왔는데 같이 하던 그 오빠는 귀찮다며 그냥 손을 떼고 일어났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공포영화도 아니고 멀쩡히 있던 창문이 순간 굉장히 큰 소리로 '덜컹'거리는 거였어요. 소름끼치는 섬뜩한 분위기에 그 오빠가 나가버리고 여자 넷만 남게 되니까 더욱 오싹해졌고 그 언니의 여동생은 울기 시작했어요. 우린 그 애를 잘 달랜 뒤 먼저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동생이 지금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하는데 게임을 끝내도 좋냐고 묻자 Yes 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그 아이는 Yes 를 받아내자마자 손을 떼고 울면서 방을 뛰쳐나갔고 무서워진 저희 친척언니도 자기는 이 집 사람이 아니어서고 돌아가봐야 하니 게임을 끝내 달라고 했더니 대답은 Yes. 남은 저희 둘(그 언니랑 저)도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어 보면서 게임을 끝내기를 요구했지만 번번히 대답은 No, No, No, No, No, No
그 언니가 언제 우리를 보내줄 거냐고 묻자 자기가 원치 않을 때까지 놀아줘야 한다며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저도 무서워서 울어버렸고 같이남은 언니와 아직도 방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던 친척언니도 울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절박해진 저희는 너무 늦어서 가봐야하니 게임을 끝내주지 않으면 그냥 갈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그러자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는 협박이 돌아왔습니다.
해는 한참 전에 졌고 다시 한번 게임을 끝내 달라고 하자 또 다시 No. 자기가 그렇게 쉽게 끝내줄 것 같냐며 비웃는 듯한 말투로 대답했습니다. 이건 정말 장난 아니다 싶어진 저는 같이 하던 언니의 양해를 받아 울고불며 정말 가야하니 제발 끝내달라고 애원했고, 결국 Yes 를 받아냈습니다. 저는 손을 떼고 나서도 한참을 울었고, 그 언니는 혼자 남았다는 엄청난 공포 속에 어쩔수 없이 혼자 게임을 계속했습니다.
20분 후에 보내달라는 요청에 마침내 Yes를 받은 그 언니는 울면서도 다행이라 안도하면서 몇가지 질문을 더 하다가 약속했던 20분이 되자 이제 끝내도 좋겠냐고 다시 물었어요. 그런데 약속과 달리 귀신의 대답은 또 다시 No. 그 절망적인 대답에 그 언니는 자포자기하여 더 이상 못하겠다고 울면서 손을 뗐습니다.
그렇게 게임은 끝이 났습니다. 위자보드를 플레이했던 저희 다섯 명은 이틀이 지나도 서로에게 아무 일이 없자 별것 아닌것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폭풍전야의 고요함이더군요. 게임 후 정확히 3일째 되는날, 손을 떼고 나간 오빠는 자기 집 바로 앞에서 뭔가에 홀린 듯 달리는 차를 향해 뛰어들어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Yes 를 받지 못하고 게임을 끝낸 그 언니는 밤마다 여자로 보이는 검은 물체가 창문을 타고 넘어와 자기 침대 위로 올라오는 꿈을 시도때도 없이 꿨다더군요. 그 언니는 무서워서 밤에 잠도 못자고 혼자 있으면 자꾸 누가 있는 게 느껴져 무서워서 낮에도 집에 혼자 있지 못한데요.
귀신은 24살에 자살한 백인여자이고 이름은 Olivia(올리비아) 라고 했습니다. 저희 다섯 명 전부다 룰을 깨고 15분 넘게 플레이 했지만, 정말로 귀신을 화나게 한 건 귀신의 동의없이 게임을 마친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겨울 방학때 엄청난 공포를 경험했고, 최악의 추억을 남겼습니다. (후략)
이 이야기는 소름끼치라고 써놓은 픽션일까요? 아니면 정말 일어났던 최악의 위자게임 후기일까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분신사바나 코쿠리상의 경우에도 강령술의 절차와 규칙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게임(?)을 중단하거나 이탈했다가 주변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후기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혼령들은 너무나 외로운 존재인가봅니다. 그러니 누군가 얘기를 나누며 함께 놀아줄 사람들이 나타나면 쉽게 보내주지 않는 거겠죠.
그래서 그런 위험성을 애초에 최소화시키는 소환주문이 있습니다.
Jelangkung jelangsat 즐랑꿍, 쯜랑섯
Di sini ada pesta 디 시니 아다 뻬스따 (여기 잔치가 열렸네)
Pesta kecil-kecilan 뻬스따 끄찔끄찔란 (아주 작은 잔치가 말이야)
Jelangkung jelangsat 즐랑꿍, 즐랑섯
Datang tidak diundang 다땅 띠다 디운당 (왔지만 초대한 적 없고)
Pergi tidak diantar 뻐르기 띠다 디안따르 (돌아간데도 배웅하지 않아)
맨 마지막 두 구절은 이렇게도 불립니다.
Datang Ga Dijemput 다땅 가 디즘뿟 (오더라도 데리러 가진 않고)
Pulang Tak Diantar 뿔랑 딱 디안따르 (가더라도 데려다 주진 않아.)
올 테면 오고 갈 테면 가라는 거 아니에요? 깔끔하죠?
분신사바나 코쿠리상을 할 만한 나이의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즐랑꿍 놀이를 통해 혼령을 부르는 주문입니다.
즐랑꿍(Jelangkung)이란 귀신을 소환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인형, 또는 그 인형을 통해 혼령을 소환하는 ‘놀이’를 뜻합니다. 주술이나 술법이라 하지 않고 ‘놀이’라 한 것은 분신사바나 코쿠리상, 위자보드게임의 경우와 같이 이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무당이나 두꾼 같은 전문적 영매들이 아니라 일반인들, 특히 학생들이고 혼령을 불러 물어보고자 하는 것들이 사소하기 이를 데 없기 때문입니다.
즐랑꿍은 기본적으로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들이는 놀이지만 놀이 치고는 사뭇 음습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전합니다.
자와(Jawa)지역 산골마을엔 마을 사람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었던 한 두꾼이 있었습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그는 주로 약초와 주술로 마을사람들의 병을 고쳐주곤 했습니다. 그러고 누구에게 얘기하지도, 과시하지도 않았지만 저주술 두꾼으로서도 발군의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겐 성실한 아들이 한 명 있었어요. 비록 두꾼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흑마술엔 전혀 관심조차 없었고 오직 땀 흘려 열심히 일해 장성해서는 실질적으로 가족들을 먹여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시에 나가 떼어온 물건들을 그의 마을을 포함한 인근 시골지역에 팔았는데 혼신을 다한 노력과 서글서글한 성격, 그리고 뛰어난 장사수완을 발휘해 큰 돈을 벌면서 가족들을 위한 큰 집을 짓고 논과 밭을 늘리더니 아직도 젊은 나이에 그 마을에서는 물론 그 일대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두꾼이라는 사실을 아들이 부담스러워 함을 잘 알고 있던 아버지는 가족을 떠나 마을에서 떨어진 산 속에 허름한 천막 같은 것을 치고 살며 여전히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주술을 팔았지만 훌륭하게 성장해 가는 아들이 자랑스럽지 않을 리 없었습니다. 옆 마을 지체높은 집안과 혼담이 오가기 시작할 때엔 하루종일 아무 것도 먹지 않았도 배가 불렀습니다. 아버지가 뚜율을 부리거나 귀신들의 힘을 빈 재물주술을 시전해 아들이 하는 일들이 형통하게 한다고 사람들은 몰래 수근거리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더욱이 두꾼이란 뭔가 마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모든 굴레를 뒤집어 쓰고 욕을 먹는 직업이기도 했으므로 그런 수근거림이나 비난은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죠.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엔 더 많은 말과 수레를 끌고 물건을 떼러 도시로 떠난 아들과 그 일행들은 돌아올 날이 지난지 오래임에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보내 백방으로 수배해 보았지만 아들의 행방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또 다시 몇 달이 지나자 그동안 아들을 칭송하던 마을 사람들은 아들의 재산을 갉아먹기 시작했고 어머니와 여동생들만 남은 가족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피땀흘려 쌓아놓은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더욱이 그가 몇번씩이나 뽑아 본 점괘는 아들이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산막을 닫고 세상을 떠돌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득도 없이 몇 개월 만에 돌아온 마을에서 그는 자신의 산막이 불타 없어졌고 모든 재산을 잃은 아내는 몸져 누웠고 딸들은 어딘가로 모두 팔려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평생동안 두꾼으로서 섬겨왔지만 막상 자기 가족들의 불행에 냉담했던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갈며 피눈물을 흘리던 두꾼은 문득 이 모든 재난에 어쩌면 마을 사람들 누군가가 연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날 밤 그는 나무와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인형에 옷을 입히고 팔을 달아 잔치가 한창이던 마을 광장에 나타납니다. 광장 한 가운데에 나무인형을 세워놓은 두꾼은 어리둥절해 하는 마을 사람들 앞에서 초혼술을 펼쳐 죽은 아들의 영혼을 불러 나무인형에 덧씌웁니다.
“아들아! 너는 과연 죽고 만 것이냐? 너의 차가운 몸은 지금 어디에 누워 있느냐?”
나무인형이 움직이며 팔이 북쪽 산 너머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아! 같이 간 사람들은 어디에 있느냐? 그들은 모두 어디에 있느냐?”
나무인형의 팔은 여전히 북쪽 산 너머를 가리켰습니다. 그들도 그쪽 멀리 어딘가에 함께 묻혀 있는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아들아! 너는 왜 죽었느냐? 혹시라도, 너를 죽인 사람이 여기 이 사람들 중에 있느냐? 만약 있다면 누군지 가르쳐 다오!!”
한맺히 두꾼의 목소리가 광장에 쩌렁쩌렁 메아리치자 나무인형은 마치 발이라도 달린 것처럼 미끄러지듯 광장을 가로지르며 그 팔로 사람들을 가리키기 시작했습니다. 한 명, 두 명, ...열 명, ....이십 명....오십 명... 두꾼은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아들의 성공을 보고 시기심에 눈먼 마을사람들이 모두 작당하여 도시로 떠나던 아들 일행을 저 북쪽 산속 어딘가에서 따라잡아 모두 죽여 파묻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을사람들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고 두꾼의 두 눈에선 불똥이 튀었습니다.
그날 밤 두꾼은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온갖 악독한 귀신들을 소환해 자신이 알고 있는 최악의 산뗏저주들을 마을에 모두 퍼붓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 마을은 마치 수백년 동안 아무도 살지 않은 폐허처럼 변해 있었고 온전히 서 있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도 없는 그 곳에 두꾼이 만든 나무인형만이 산처럼 쌓인 마을사람들의 시체들 위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좀 심하게 각색이 된 셈이지만 아무튼 대략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자료들을 쭉 찾아 보면 즐랑꿍놀이의 기원은 고대 중국본토라는 것이 지금까지 알려진 정설입니다.
즐랑꿍의 기원
인도네시아어대사전(KBBI)을 찾아보면 즐랑꿍이란 사람의 형상과 비슷하게 인형을 만들어 팔이나 몸통 중심에 백묵이나 볼펜 같은 필기구를 장착하고 귀신을 불러 그 인형에 빙의토록 한 후 인형에게 질문을 던지면 빙의한 귀신이 인형의 필기구를 통해 대답을 적는 방식의 놀이다.
인도네시아에서 즐랑꿍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자료는 매우 한정되어 있다. 즐랑꿍 문화는 최소한 춤이나 행위예술 정도의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즐랑꿍놀이는 중국에서 발생해 넘어왔으며 정작 중국에서의 해당 원본문화는 소멸되었다고 전한다.
즐랑꿍문화는 대략 1,500년 정도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즐랑꿍은 놀이로서뿐 아니라 운과 미래를 묻는 방식으로서의 역할도 일정 부분 하고 있다.
즐랑꿍(Jelangkung)이라는 이름은 중국어의 ‘야채바구니 혼령’이란 의미의 ‘짜이 란 공’(Cai Lan Gong = 菜篮公)에서 유래했다고 여겨지는데 중국 원본문화는 현재 인도네시아에 보편적으로 퍼져있는 즐랑꿍문화와는 꽤 차이가 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인도네시아의 즐랑꿍은 반으로 가른 박 모양의 말린 야자열매를 머리로 하고 팔에 필기구를 장착한 인형의 모양을 하고 있는 반면 중국의 즐랑꿍은 아랫부분을 야채바구니에 고정해 혼자 서 있을 수 있도록 한 형태다.
즐랑꿍이라는 단어가 고대문헌에서 처음 발견되는 것은 5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고대문헌에는 따르면 인형에 반드시 옷을 입혀야 하고 혼을 부르는 특정 노래를 부르거나 주문을 외워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혼령이 어떤 식으로 즐랑꿍을 움직여 물음에 답하도록 하는지도 기록되어 있다. 보다 구체적인 답변을 얻기 위해 즐랑꿍에 필기구가 장착되기 시작한 것은 그 후의 일이며 빙의한 혼령의 요청에 따라 즐랑꿍의 목 부분에 커피나 물이 담긴 유리잔에 푹 담궈 적신 열쇠를 매달기 시작한 것도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중국과 인도네시아 즐랑꿍놀이의 공통점 중 하나는 즐랑꿍을 통해 묻는 질문들이 이번에 어떤 복권번호가 맞을 것인지 또는 누가 누구의 애인일 될 것인지 등 사소한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는 점이다.
즐랑꿍 인형이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갖추기 전엔 ‘Y’자 형태의 나뭇가지를 이용한 ‘푸지’(Fu Ji)라는 무속놀이가 있었다. ‘Y’자 갈라진 윗부분을 두 사람이 한쪽씩 각각 잡고 펼쳐놓은 가는모래 위에 기둥 밑부분을 대고 글을 쓰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미래를 예언하는 많은 방식을 가진 중국 도교의 문화적 전통과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무속신앙은 자와에서는 니또웡(Ni Towong)이라고도 알려져 있고 그 내용은 즐랑꿍과 거의 일치한다.
(출처 - http://banaanaalicious.tumblr.com/tagged/jelangkung)
즐랑꿍 놀이도 코쿠리상이나 의자보드와 같이 꼭 지켜야 하는 일정한 규칙이 있습니다.
준비물
- 나무인형, 야자열매 바가지인형 또는 지푸라기인형, 묘지에서 가져온 진흙
- 온전한 공물
- 일곱가지 꽃잎
- 쓴 커피와 설탕넣은 커피, 쓴 차와 설탕넣은 차, 물, 각각 다른 유리컵 사용
- 한 군데에서 수확한 미직, 자파론, 장미에서 얻은 기름 각 한 스푼
- 시장에서 파는 군것질 거리 일곱 가지
(물론 현실에서 인도네시아 학생들이 즐랑꿍 놀이를 할 때엔 이런 복잡한 준비물들 하나 없이도 그냥 나무인형과 받침대, 또는 고무줄 정도만 준비하는 것이 보통임)
* 규칙
- 반드시 밤 9시에 실시 (그 이전엔 안됌)
- 참가자는 최소 5명이상. 꼭 홀수 인원이어야 함.
- 혼령이 도착했을 때 도망가거나 기절하는 등 이상행동 금지.
- 혼령이 도착했을 때 달아나면 나중에 화가 미침.
- 놀이는 뜰이나 빈 집 또는 밀폐된 밤에서 행한다.
혼령이 도착하면 인형이 움직이거나 바람이 세게 부는 등 징조가 보인다. 도착한 혼령은 바쳐진 공물에 따라 일반 잡귀들일 수도 있고 꾼띨아낙이나 뽀쫑, 겐더루워 또는 진일 수도 있다. 비싼 공물이라면 진이나 겐더루워같은 중량감 있는 귀신들이 올 수도 있고 싼 거라면 인근을 배회하는 잡귀들이기 쉽다.
이 놀이가 안전하다거나 위험성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들어온 것이 잡귀라면 이 놈도 왔다가 저놈도 왔다가 할 테지만 겐더루워나 진이 온다면 분명 제물을 원할 텐데 보통은 토종숫탉이나 아얌쯔마니라는 토종흑닭의 피를 요구할 것이다. 그런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이 귀신들은 노여워 하며 떠나려 들지 않을 것이고 결과적으로 모두 집단빙의에 걸리고 말 것이다.
(출처 - http://informasipesugihan.blogspot.com/2013/02/cara-bermain-jailangkung-yang-benar.html)
우리 직원 메이도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즐랑꿍을 시전한 적이 있는데 당시엔 이런 제작규칙들이나 기본 형태를
다 무시하고 성냥개비나 수수깡 같은 것으로 A자에 머리가 달린 모양으로 만들되 한쪽 다리에는 연필을
끼우고, 그 인형을 양쪽에서 맞잡은 고무줄 두 줄 위에 앉혀 놓고서 여러 명이 함께 주문을 외워 인형을
움직이게 했다고 합니다. 물론 고무줄 자체에 탄성이 있으니 그 위의 인형이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 인형이 한쪽 발로 그리는 그림이 개발새발 그림같지도 글씨같지도 않았을 것이 뻔하지만 초등 여학생들을 까무러치도록 놀라게 했을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움직이는 인형이 종이 위에 그리는 이상한 글씨들에 놀란 메이와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명을 지르며 인형을 내팽개치고 방에서 도망쳐 나왔는데 그날 밤부터 매일 밤 누군가 집문이나 방문을 두드려 나가 보면 아무도 없는 그런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졌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한동안 귀신에 쫒기는 악몽에 시달렸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런 면에서 보면 인도네시아의 즐랑꿍이 코쿠리상이나 위자보드보다 획기적으로 우수한 부분이 한 가지 엿보입니다.
즐랑꿍인형은 이런 식으로 나무를 십자로 엮어 몸통을 만들고 야자열매 바가지를 씌워 머리를 만듭니다. 물론 소형으로 만들 때엔 레몬이나 감자 같은 좀 더 작은 물체로 머리를 끼워 넣죠. 그런데 몸통의 십자가 만나는 부분이나 한쪽 팔 끝에 백묵이나 매직펜 같은 것을 장착합니다. 그래서 귀신을 불러 빙의시킨 후 질문을 던지면 코쿠리상이나 위자보드처럼 ‘예’ 또는 ‘아니오’로 움직여 가며 질문에 대해 객관식으로 답하거나 알파벳 위를 오가며 단어를 짜맞추는 게 아니라 즐랑쿵은 묻는 말에 ‘주관식’으로 대답을 합니다. 즉 코쿠리와 위자보드가 4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를 푼다면 즐랑쿵은 논술문제를 푸는 거에요. 즐랑꿍 인형의 작동은 무당이 날선 작두 위에서 널 뛰는 것 정도의 분명한 강령의 증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분신사바도 코쿠리상도 위자보드도 다들 영화화되었는데 즐랑꿍이라고 그렇지 못할 리 없습니다.
Jelangkung (2001)
Tusuk Jelangkung (2003)
Jelangkung 3 (2007)
Kalung Jailangkung (2011)
Tumbal Jailangkung (2011)
사족이지만 즐랑꿍의 초혼술을 영화 인시더스(Insidous) 시리즈의 내용과 비교하려는 현지 블로그를 본 적 있는데 기본적으로 인시더스는 성격상 즐랑꿍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리암니슨 주연의 테이큰(Taken)과 비교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영화 인시더스에서도 초혼술이 시도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악령에게 납치된 영혼을 사후세계에 직접 들어가 되찾아온다는 컨셉이 적진에 들어가 딸을 구해내 오는 테이큰의 컨셉과 맥락이 닿아 있기 때문이죠.
즐랑꿍의 내용을 준비하면서 들여다 본 대부분의 자료들이 강변하고 있는 것은 모두 이런 초혼의식에 절대 손을 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것은 초혼술이 실제로 효력을 발휘하느냐의 문제나 초혼술의 규칙을 어겼을 때 발생한다는 파국적 결말을 두려워해서라기보다는, 분명 우리들은 이 행위의 전문가도 아니고 그 파국을 책임질 수도 없는 상황인데 궁금한 것을 귀신에게 물어보려다가 공포심과 죄책감에 정신건강을 해치는 것보다는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요즘은 뭔가 물어보려면 즐랑꿍이나 코쿠리상이나 분신사바보다는 구글링을 하거나 다음지식인에 물어보는 것처럼 더욱 좋은 방법들이 얼마든지 있는 세상이거든요.
2015.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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