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가룻군 투자설명회와 양칠성 영화 본문
서부자바 가룻(Garut)은 지도로 보면 반둥에서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거의 3시간 전후가 걸리는 거리다. 거리가 멀다기보다는 도로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부빠띠(군수) 말대로라면 최근 도로가 많이 개선되었다고 하는데 그럼 반둥에서 대략 2시간 전후에 주파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장 최근에 가본 것은 코로나 팬데믹 직전인 지난 2019년 12월의 일인데 당시 '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라는 현지 역사협회가 가룻군과 함께 진행하고 있던 '양칠성로 명명식' 관련해 루디 구나완 군수를 접견하고 뗀졸라야(Tenjol Raya) 영웅묘지의 양칠성 묘소를 찾아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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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가룻에는 새로 도로들이 여러 개 나면서 그중 10개에 가룻 로컬 영웅들의 이름을 붙이려던 계획이 있었고 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는 그 중 하나에 양칠성 이름을 붙여달라고 요청하고 관련 협의를 해오던 차였다. 양칠성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받은 현지 이름이 꼬마루딘(Komarudin)이었으므로 해당 도로의 이름은 '잘란 꼬마루딘'(Jalan Komarudin) 또는 '잘란 양칠성 꼬마루딘'으로 붙게 될 터였다.
그런데 간단한 도로 명명식이 표지석 또는 기념탑 건립, 추모공원 조성 등으로 점점 덩치를 불리며 복잡해졌고 인도네시아 측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한국정부와 교민사회에 거의 전반적인 금전적 지원을 요구했다. 가룻 군청은 물론 히스토리카 측마저 로컬 영웅 양칠성을 추모하는 것이 한국인들에게 뭔가 큰 혜택을 베푸는 것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문제가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큰 것은 양칠성의 친일논란이었다.
만일 그의 무덤이 뗀졸라야에 남지 않았다면 태평양전쟁 중 징발되어 태평양 전역에서 스러져간 수많은 조선인 학도병, 군무원, 징용인들처럼 오래 전에 영영 잊혀지고도 남았을 일개 연합군 포로감시원에게 친일을 논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일본군 상관에게 입 안의 혀처럼 굴어 총애를 받았고 전범 판결을 두려워 해 현지 사회에 스며들 정도로 연합군 포로들을 가혹하게 대했고 인도네시아 공화국군 유격대에 가담한 후에도 일본인들과 함께 움직이며 작전에 임했고 죽을 때에도 그들과 함께 했으며 죽기 직전 기미가요를 부르고 죽었다.....는 굴레가 덮어씌워지면서 양칠성 추모사업은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친일논란은 관련 사건을 처음 조사한 우쓰미 아이코의 저서와 이후 관련 사건 취재에 응한 현지 노인들의 오락가락하는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한 결과다. 실제로 현지 역사신문 히스토리아(https://historia.id/)는 이에 대해 사뭇 다른 취재기사를 내기도 했다. 그들이 죽은 날짜가 8월 10일이 아니라 5월의 어느날이며 기미가요를 부르고 죽은 것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국기를 상징하는 붉은색 상의, 흰색 하의를 요구해 맞춰 입고 머르데카(Merdeka)! 즉 해방 또는 독립이란 단어를 외치며 총살당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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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양칠성에 대한 친일논란은 한국정부나 교민사회가 그를 기념하고 영웅시하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걸림돌이 되어 왔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양칠성로 명명식이나 관련 기념사업이 진행되지 않은 것은 가룻 군청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가룻 군청은 2021년에 히스토리카 인도네시아에 공문을 보내 코로나-19 관련 지출로 인한 예산부족으로 해당 사업을 더이상 진행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통보해 온 것이다. 명명식 뿐이었다면 이미 내놓은 도로에 이름 붙이는 게 무슨 예산이 그리 많이 들겠나 싶지만 아무튼 공식 통보는 그랬다.
따라서 그간 많은 노력을 해온 히스토리카 측은 절치부심했지만 거기서 꺾이지 않고 관련 도서를 제작하거나 양칠성이 속한 빠빡 왕자부대(Pasukan Pangeran Papak - 이하 PPP 부대)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 또는 극영화 제작을 구상하며 내부협의를 계속해 왔다. 물론 제작비 문제가 늘 발목을 잡았다. 한국이나 교민사회가 비용 측에서 도울 수 있냐는 문의를 여러번 받았는데 그때마다 펀드레이징을 하려면 관련 사업계획을 잘 만들어 보라고 조언하곤 했다. 역사협회가 갑자기 영화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이 부분은 그간 지지부진했다.
그러다가 2023년 8월 25일(금) 자카르타 소재 JS 루완다 호텔 볼룸에서 열린 '가룻군 투자의 날(Malam Pesona Investasi Garut)' 이란 제목의 성대한 행사를 열고 그 자리에서 가룻군 측이 직접 양칠성 영화를 제작하겠다며 관련 프레젠테이션과 함께 제작비 모금을 한 것은 전혀 의외의 일이었다.
이 자리에는 가룻군 측은 물론 가룻에 투자하고 있는 한국기업들 거의 모두가 참석했는데 한-인니 수교 50주년 기념 마크가 함께 달려 있었으므로 행사의 성격은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하지만 시놉시스도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태의 영화를 홍보하면서 한국에서 40% 로케 촬영이 이루어질 것이며 쁘라보워 국방장관이 해당 영화 제작에 전적으로 찬성했다는 정도의 발언으로 과연 한국사회로부터 투자를 받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그 자리에 초청된 가룻에 투자한 한국기업들로서는 가룻군청의 영화제작비 투자요구가 마냥 흘려 들을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 같다.
다음날인 8월 26일(토) 매체에서는 해당 행사를 보도하며 한국 측이 해당 영화제작에 협조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실었다. 실제로 25일(금) 오전에 가룻 군수와 영화 관계자들이 우리 이상덕 대사 접견을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해당 영화의 한국 정부차원 협조가 약속된 것같은 뉘앙스의 기사에 좀 뜨악했던 것이 사실이다.
해당 영화제작을 기정사실화한 더틱닷컴의 8월 26일자 기사(위)도 마치 가룻 군수가 이상덕 대사와 만나 이야기한 결과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한 것처럼 되어 있다.
당일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통신원 자격으로 행사에 직접 참석해 영화관련 내용을 주의깊게 청취한 필자로서는 10년 째 가룻 군수를 역임한 루디 구나완씨는 아마도 3연임에 도전할 것 같은데 임박한 현 임기 만료를 앞두고 한국과 교민사회에서 친일 논란이 마무리되지 않은 인물이 단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한 숙고 없이 이 영화제작 계획을 들고 나와 조금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닌가 싶은 걱정이 살짝 들었다.
2023.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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