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아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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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조선인 인도네시아 독립영웅
인도네시아는 일본이 패망한 8월 15일 대신 독립선언서 낭독일인 8월 17일을 독립기념일로 정했다. 일본을 이용해 350년 네덜란드 식민지배의 사슬을 끊으려 했던 수카르노와 당시 인도네시아 지도층은 태평양전쟁 내내 일본에 적극 협력했으므로 그날의 독립선언은 일본보다 네덜란드를 향했음이 분명하다. 연합군의 일원으로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열도로 귀환하면서 자바와 수마트라에서 격렬한 독립전쟁이 점화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4년 간의 독립전쟁은 1949년 5월 7일 체결된 로엠-반로엔 조약을 통해 수습국면으로 접어들어 8월 3일 휴전협정이 서명되고 자바에서 8월 11일, 수마트라에서 8월 15일 각각 휴전이 발효되었다. 그런데 자바 휴전발효 하루 전 8월 10일 서부자바 가룻(Garut)에서 세 명의 외국인이 처형되는 사건이 있었다. 일본군을 이탈해 네덜란드군 전선 후방의 독립유격대 ‘빠빡왕자의 부대’에서 활약했던 아오키, 하세카와, 야나카와를 네덜란드군은 절대 살려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전후 이들이 독립영웅으로 인정되어 가룻 영웅묘지로 이장된 것이 1975년이고 그중 현지명 꼬마루딘으로도 알려졌던 야나카와 시치세이가 훗날 전북 완주군 출신 조선인으로 밝혀져 양칠성이란 한글이름 묘비가 세워진 것은 1995년 8월의 일이다.
대체로 저평가된 독립영웅들을 발굴하고 독립투사 가족들을 지원하는 인도네시아 역사연구단체 히스토리카(회장: 압둘 바시드)는 작년부터 양칠성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기록에 등장한 한국인들을 조명하는 세미나를 현지인 대상으로 매년 열고 있다. 올해 세미나는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 한국인 투사의 역할’이란 주제로 인도네시아 국립대학(UI)에서 8월 16일 열리며 한국인 발제자도 참여한다. 히스토리카는 지난 3월 4일 아트마자야 카톨릭대학교 대강당에서 우리 대사관과 한국문화원이 주최한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세미나’에 참여해 전방위적 협력을 제공한 바 있다. 그들은 연내 가룻 지역 ‘양칠성로’ 명명식도 추진하며 지방정부와 협의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문화원은 8월 세미나 관련 히스토리카의 후원요청을 정중히 거절한 바 있다. 양칠성이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연합군 포로를 학대했을 것이라는 정황과 처형 직전 일본인 동료들과 함께 천황폐하만세를 외쳤다는 주장이 있지만 후원거절이 이와 관련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 주장은 처형직전 양칠성과 일본인 동료들이 인도네시아 국기를 뜻하는 적백 색상 수의를 요구했고 총살직전 독립이란 의미의 “머르데카”를 외쳤다는 역사지 마잘라 히스토리아 헨디 조하리 기자의 현지 취재와 철저히 상충된다. 현지 공관에서는 양칠성에 대한 공식입장을 정하지 않았을 뿐이지 외면하는 것은 아니라며 향후 관련 협의의 여지를 남겼다. 그 대신 재인도네시아 한인회(회장 박재한)가 한인사회를 대표해 팔을 걷어붙이고 히스토리카 후원에 나서고 있다.
남양군도에 끌려와 그와 비슷한 길을 걸었을 수많은 조선인 학도병들과 군무원들의 삶이 투영된 양칠성은 분명 항일투사가 아니었지만 일본과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시각에 큰 온도차를 가진 한국와 인도네시아를 심정적으로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접점임에 틀림없다. 또한 일본이 총칼 대신 이번엔 경제력으로 한국을 공격해온 오늘날 일본인 동료들과 어깨를 나란히 네덜란드군에 맞서 싸운 인도네시아군 전우로서 한날 한시 함께 죽음을 맞은 양칠성은 일정한 조건이 충족된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이 어쩌면 진정한 동료로 거듭날 수도 있는 사이였음을 시사하는 또 다른 접점이기도 하다.
이번 8월 10일은 양칠성이 처형당한지 70주기 되는 날이다. (끝)
조선인 군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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