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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침 뱉고 나온 바벨탑들

beautician 2023. 7. 31. 11:40

바벨탑

 

(전략)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창세기 11장)

 

바벨탑은 한 면의 길이가 90미터에 7층 높이로 지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며 이를 입증하는(?) 석판도 발견되었다. 그 높이는 100미터 전후였을 것이므로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건축물이 아닐 수 없다.

 

성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바벨탑이 고고학적,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자료들이 발견되고 있지만 유력한 유적지 어딘가에 '여기 바벨탑 있었음'같은 고대인들의 메시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바벨탑의 실존사실을 100% 입증하고 담보하는 것은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벨탑이 실존했다 치더라도 거기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사람들을 온지면에 흩었다는 것은 고대 이라크 지역의 한 구지라트가 세상 모든 언어의 근원지라고 말하고 싶은 누군가의 조금 과도한 주장이었을 것 같다.

 

말이 통하지 않아 헤어지는 것만이 답이라면 인간이란 외국어 습득능력이 전혀 없는 종이어야 한다. 똑똑한 개들도 사람 말을 알아듣고 영리한 이들은 외국인들 눈치만 보고도 원하는 걸 귀신같이 알아맞히는데 말이다.

 

실제로 사람들이 갈라서는 이유는 대개 서로의 이해가 상충되거나 크게 싸웠기 때문이다. 장로들, 안수집사들이 서로 싸우다가 큰 교회가 깨져 나가는 걸 보면 바벨탑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대충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로 세를 형성해 대립하다가 사람들 모아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가는 엑소더스팀이 하나 있고 그냥 남아 교회를 지키는 팀이 또 하나 있다. 그리고 싸움꾼들 보기 싫어 교회를 떠나긴 하지만 엑소더스팀을 따라가지 않고 전혀 다른 제3의 교회로 뿔뿔이 흩어지는 또 다른 일단의 사람들이 있는데 아마도 그런 일이 4천년 전 바벨탑에서도 벌어졌던 것이리라.

 

그런데도 언어가 달라 흩어졌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고대의 어떤 시점에 다른 언어를 가진 외국과 적대적 갈등을 겪던 시절을 배경으로 이 바벨탑 기사를 창작했거나 편집했을 거란 걸 대략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은 침략자이거나 적이었던 세상에서.

 

물론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 성서 속 바벨탑 이야기를 해석해볼 수도 있다.

 

2년 3개월의 ROTC 단기복무를 마치고 전역한 대학 동기들이 전역하던 날 모교 앞 모처에 모두 모였다. 그게 88 서울올림픽을 얼마 남기지 않았던 시절의 일이다.

 

대학 3-4학년의 2년간 학군단에서 ROTC 후보생으로 동로동락했던 동기들 중 두 명은 그 사이 국립묘지에 묻혔고 나머지 대부분이 각자 다른 병과, 다른 부대, 다른 보직에서 근무하다가 실로 오랜만에 모인 자리였다.

 

임관 직후 광주 상무대에서 14주 훈련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경험을 공유한 동기들과는 눈빛만 봐도 마음이 척척 통했는데 각각 자대로 흩어져 군복무를 마친 후 오랜만에 다시 만난 동기들은 분명 예전과 같은 사람이었지만 대화의 핀트가 좀처럼 맞지 않았다. 각자 자대에서 2년3개월 동안 겪었던 서로 다른 경험들이 물리적 거리보다 심리적 거리를 벌려 놓았던 것이다.

 

그간의 근황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동기들이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다 왔다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병, 헌병, 기갑, 통신, 정보, 정훈 등 다른 병과들은 물론 공수부대, 특공연대, 수색대, 전방사단, 예비군사단 등 같은 보병이라도 전혀 다른 부대에 각각 근무했던 동기들이 하는 이야기가 각자의 경험과 서로 사맛디 아니했던 것이다.

 

더욱이 난 문산 북방 보1사 제3땅굴 출신이다. 그 누구도 내 보직과 내가 했던 일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과거의 공통점보다는 현재의 차이점이 더 크게 느껴지게 되는 모순적인 상황. 그래서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들이고 앞으로 각자 다른 길로 걸어가게 될 것임을 직감하는, 그런 걸 ‘바벨탑 현상’이라 하는 모양이다. (바벨탑 현상, 바벨 현상이라 하는 단어는 실제로 사용되는 용어다 – 주)

 

그 후 여러가지 일들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을 수없이 경험해 보았다. 대개의 경우 자기 말과 입장만 늘어놓거나 자기만 맞고 다른 모든 사람들은 틀리다고 믿는 이들과 이야기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자 비로소 바벨탑에서 사람들이 온 세상으로 흩어진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을 것 같았다.

계단을 만드는 이들은 벽을 다듬는 이들의 수고를 알지 못하고 바닥을 다지는 이들을 천정을 장식하는 이들의 비법을 알 수 없으니 서로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중하다 여기는 상황에서 가장 말이 안통하면서도 자기 주장만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상대방에게 다들 나름 어퍼컷이나 레프트훅 한 방씩 먹인 후 화끈하게 짐 싸들고 떠나버린 것이리라.

 

언어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서로 멀리 다른 곳으로 간 후 백 년쯤 지난 후부터이지 싶다. 결국 바벨탑과 언어교란의 기사는 너무 오래된 일이라 작가님이 그 전후 순서를 착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잘 생각해 보면 나도 인도네시아에서 침 뱉고 나온 바벨탑이 몇 개인가 있다.

 

 

2023.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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