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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발레파킹

beautician 2023. 7. 22. 11:48

발레파킹

 

 

발레파킹의 발레(valet)가 백조의 호수 그 발레(Ballet)와 전혀 다른 뜻이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발레파킹(Valet parking)의 사전적 의미는 고객이 타고온 차량을 백화점, 호텔이나 고급 레스토랑의 담당 직원이 키를 받아 대신 주차해 주었다가 나중에 해당 고객이 떠날 때 차량을 고객 앞에 가져다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그간 자카르타에서도 발레파킹 서비스가 호텔에서는 일반적이었지만 레스토랑의 경우엔 자체 주차공간이 협소해 조금 거리가 먼 다른 곳에 주차해 두었다가 나중에 도로 가져다주는 서비스로 진화했다. 부득이한 상황을 발레파킹 서비스로 포장한 것인데 그 효능감과 만족도는 서비스를 주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 매우 높았다.

 

전자의 오리지널 발레파킹의 경우가 온전히 손님 편의를 위한 서비스였다면 후자의 경우엔 레스토랑 자체의 주차공간 부족이라는 약점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서로 윈윈하는 일이었던 것이다. 고객 입장에서는 그 이유가 어쨌든 발레파킹 서비스에 대한 팁을 주는 데에 이의가 있을 리 없다. 없었다면 매우 곤란했을 서비스를 제공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몇년간 급격히 늘어난 발레파킹의 새로운 형태는 서비스의 진화가 아니라 변질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없었다면 매우 곤란했을 수 있는 서비스’가 절대 아닌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느 몰이나 심지어 시장에 가도 발레파킹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하는데 우리가 익히 아는종류가 아니라 도착지 입구 가까운 곳에 파킹할 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즉, 발레파킹 요원을 운용하는 게 아니라 차량 운전자가 직접 예전엔 그냥 보통의 주차공간이었던 곳에 발레파킹이란 표지판을 붙여 놓은 곳에 많게는 일반 주차료의 10-20배를 주고 주차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접근성 좋은 곳에 주차공간을 마련해 놓고 비싼 주차료를 받는 것인데 발레 담당이 직접 차를 운전해 주차해 주지 않는다는 지점에서 사실 이건 더 이상 발레파킹이라 부르기 어럽다. 오히려 서비스가 아니라 주차장을 운영하는 측에서 손쉽게 추가 수입을 올리기 위해 일반 주차공간에 색칠을 하고 간판을 붙여 일반 주차장과 별다를 바 없는 '고가 주차장'을 만들어 폭리를 취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러면서도 기어이 '발레파킹'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물론 자기 땅 사용료를 자기가 정해 받겠다는데 왜 제3자가 참견하냐 하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최소한 말은 제대로 쓰자. 우리 모두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홍길동은 아니지 않은가?

 

평화통일을 추구해야 할 통일부가 북한정권을 붕괴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사실상 더 이상 통일부가 아니듯, 발레파킹을 해주지 않으면서 발레파킹이라 주장하는 것은 고객들을 개돼지 취급하며 '눈가리고 아웅' 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만큼 고객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고 내가 이런다고 니들을 뭘 하겠냐 하는 생각의 발로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카르타의 여러 몰들의 알짜배기 주차공간들을 차지하고 VIP 팻말을 꽂아 놓고서 운전자들을 이끌어가는 발레파킹을 보면서 정말 그러려면 저 발레는 아마도 Ballet일 테니 최소한 주차장 곳곳에 발레리나 몇 명이라도 고용해 춤추게 하든가 하라는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이런 식으로

 

2023.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