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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영이란 인간에게 기생하는 미지의 존재

beautician 2023. 7. 28. 11:12

영혼체백 사상 (concept)

이 사람이 할 법한 얘기를 오늘 해 보겠다.

 

 

예전부터 우리 선조, 아니지 동양철학에서 세상이 물, 바람, 불, 흙 등 네 개 요소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것처럼 인간도 영(靈), 혼(魂), 체(體), 백(魄), 이렇게 네 개 요소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람이 죽으면 살아 있을 때 움직이던 하드웨어인 체는 스러지고 거기 담겨있던 영혼이 떠나고 백은 세상에 남아 점점 희미해지다가 언젠가 흩어지고 만다고 생각했다. 죽은 자의 형상을 하고 나타나 공기 중에 날 듯 움직이며 벽을 통과하는 유령이란  바로 그 백을 말하는 것이다.

 

체와 백에 대해선 그래서 대충 납득이 된다.

 

그런데 영혼에 대해서는 우리 자신을 이루고 있다면서도 사실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체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니 충분히 조사해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이 쌓여 있고 백은 유령의 형태로나마 어쨋든 관측이 되는 것이니 노력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영혼은 정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으니 그걸 완벽히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혼이란 하드웨어인 체를 움직이는 소프트웨어와 같다. 랩톱으로 치자면 체인 랩톱을 움직이는 윈도우 같은 구동 프로그램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랩톱 구동 프래그램을 MS 같은 곳이 만들고 있으니 그래서 인간의 혼도 누군가 만든 존재, 말하자면 창조주라 칭하는 우주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종교와 신앙의 근원이 대략 그 지점 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왜 선조들은 영혼을 하나로 보지 않고 영과 혼을 구분했을까?

그게 다 선조들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나도 나 나름대로 가설을 세워 보았다.

 

영이란 인간의 혼에 반응해 끌려와 혼과 결합해 존재를 유지하는 것으로 자연계에 많은 기생충들이 있듯 보이지 않는 것들에 기생하는 부류의 하나다. 즉 혼에 기생하는 기생체인 셈이다.

 

원래 처음부터 영이라 부른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나 정신 이외에 발현되는 무언가 있음을 알게 되면서 그것을 영이라 명명하게 되었을 것 같다. 영은 그래서 사람의 취미와 취향, 지식 발전에 크게 영향을 주며 범죄성, 성적 방향성 들도 인간에게 기생하는 영에 의해 결정되는 거 아닐까?

 

영들은 우리 사이에 존재하면서 들어갈 몸을 찾는다. 그러다가 하나의 몸에 여러 영이 들어가면 그건 나중에 다중인격으로 발현된다.

 

우린 영을 볼 수 없지만 영은 우리를 본다.

 

영이 들어와 영혼을 갖추게 된 인간은 살아가면서 영의 존재를 특별히 느끼지 못한다. 단지 간혹 꿈 속에서 영의 생각을 듣고 자신의 영, 즉 자신의 몸속에 사는 ‘영’이란 이름이 기생체와 대화를 할 수 있기도 하며 영의 세계를 경험하기도 한다. 즉 영은 인간에게 대화나 지시, 명령, 암시를 주지 않지만 그렇게 기생함으로써 인격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영은 몸의 주인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기 원치 않는다. 그래서 우린 꿈을 기억하지 못한다. 때로는 꿈을 기억해도 금방 잊어버리게 되는 것은 영이 그렇게 되길 원하기 때문이다. 영은 우리와 함께 하지만 우리가 그걸 모르길 원한다. 왜 그럴까?

 

영은 다른 영과 소통하고 스스로의 지각과 의지를 갖는다. 하지만 영의 상태로는 물리적 소통을 할 수 없어 단지 인간을 통해 반응하고 소통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이들을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 선입견을 갖기도 하고 처음 만나 거부감이나 적개심을 느끼기도 하고 때로는 첫눈에 반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이 서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이란 그렇게 원래의 인간과 그 몸의 운영 시스템인 혼이 영과 결합해 움직이는 종합 생명체인 셈이다.

 

영들은 실체가 없어 자연상태로 존재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과 결합하기 전에는 다른 것들과 결합한다. 대개의 경우 큰 나무는 여러 개의 영들이 동시에 깃들 수 있다. 서낭당의 나무, 거대한 신령한 거목들은 그러한 영들이 영험한 능력을 발산하기 때문이다.

 

영들은 그렇게 자연물에 깃들어(기생) 있는 것이 일반적인 존재방식이며 꼭 인간만 아니라 동물들에게도 기생한다. 하지만 동물들의 혼은 인간만큼 고도화되지 않아 인간처럼 움직이게 할 수는 없다. 단지 인간에게 그런 것처럼 성향과 성격을 결정한다. 곤충들, 벌레들에도 마찬가지다. 영들은 생명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결국 모든 생명체에 영이 깃드는 것이다.

 

당연히 선량하지 않은 영, 공격적인 영, 다른 영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진 영, 인간에게 악의를 가진 영들도 있다. 그런 것들을 인간들은 악마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런 영이 깃들면 인간은 특별한 능력을 발하는데 그게 천재, 최고의 운동선수, 암살자, 전투원, 독재자들이 되고 때로는 귀신들린 사람 또는 정신병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영은 누군가 생각하는 것처럼 불멸의 존재이거나 끝없이 윤회하는 것은 아니다. 이 세상이 멸망하면 영도 소멸한다.

 

그래서 영, 혼, 체가 설명된다.

 

백은 인간 존재의 그림자다.

인간의 몸이 그 수명을 다할 때 별도의 존재인 영은 인간의 몸을 떠난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래서 자손을 낳지만 그런 번식방법 말고도 스스로를 복제하여 남기는 그림자가 백, 즉 유령이다.

 

하지만 백은 영처럼 어딘가에 깃들 능력이 없어 시간에 따라 서서히 투명하고 희미해지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소멸한다. 그러니 귀신들린 집이란 그런 백들이 아직 돌아다니는 곳이고 백들은 종류나 성향에 따라 어느 정도 물리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런데 영은 백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영은 백에 기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대략 이런 시스템으로 되어 있는 거 아닐까?

 

 

2023.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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