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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맹의 해변

beautician 2023. 7. 17. 11:57

컴맹의 해변

내 핸드폰과 같은 기

 

 

2014년 노트4가 고장난 후 새로 산 삼성 폰들이 GPS 신호와 인터넷 신호를 잡지 못해 애를 먹었다. 자카르타에서 산 보급형 갤럭시였는데 싸구려 부품을 써서 그런 것인지 이것저것 시원치 않아 외출할 때마다 애로사항이 속출했다. 비싼 갤럭시에선 그런 문제가 있다는 얘기 듣지 못했는데 보급형은 사는 족족 같은 문제가 있었으므로 아마도 메이커 측에서 보급형을 사는 이들은 네비게이션이나 인터넷을 하지 않는 부류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보조폰 성격으로 산 것이 중국산 oppo였는데 가장 저가 폰을 샀는데도 gps와 인터넷이 빵빵 터졌다. 당연히 큰 도움이 되었으므로 중국 폰에 대한 신뢰가 생겼고 나중엔 메인폰마저 oppo로(이번엔 두 번째 비싼 걸로) 바꾸었다.

 

요즘 핸드폰 몇 개씩 들고 다니는 사람 거의 없지만 난 최근까지도 친구 일로 광산을 다니는 일이 자주 있었는데 오지에서는 장소에 따라 잡히는 이동통신 서비스가 달라 인도삿, 텔콤셀, 프로엑셀 세 개 번호를 늘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메인폰과 보조폰은 물론 삼성탭에도 각각 다른 이동통신 SIM을 장착해 사용했다.

 

그런데 이제 처음 산 oppo 저가폰이 이제 수명이 다해 가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오른쪽 전원/절전 스위치가 잘 듣지 않더니 이젠 아무리 눌러도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수리를 몇 차례 했지만 금방 같은 고장이 다시 발생했다.

 

사실 스위치 하나 고장났다고 멀쩡한 핸드폰을 새것으로 바꾸긴 좀 아깝지만 그 스위치가 들지 않으면 화면이 꺼졌을 때 다시 켤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전원을 연결하거나 해제할 때엔 자동적으로 화면이 다시 켜졌기 때문에 굳이 스위치를 고치는 대신 외출할 땐 차량에 둔 충전기 코드를 사용하거나 늘 가방에 넣어 다니는 보조충전기를 연결하기로 했다.

 

인도삿 번호의 신형폰 말고도 굳이 그 oppo 폰까지 같이 들고 다니려 한 것은 인도삿 선불제 번호를 후불제로 바꾸는 것이 다른 이동통신과는 3개월에 한 번씩 다시 갱신하는 등 좀 번거로웠기 때문에 프로엑셀 번호인 오래된 폰을 주로 인터넷 핫스팟 용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전원을 연결해야만 화면을 켤 수 있다는 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싱가포르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딸 집에서 딸이 그 화면 꺼진 oppo 핸드폰을 가져가면서 와이파이에 연결해 주겠다고 하여 전원을 연결해야 화면이 켜진다는 말을 해주기도 전 딸이 순식간에 그 핸드폰 화면을 켜고 와이파이 비번을 치고 있었다.

 

"그거 어떻게 한 거야?"

"뭐? 와이파이 비번 치는 거?"

"아니, 꺼진 화면 켠 거."

"액정을 두 번 톡톡 치면 켜지잖아."

 

뭐라고?

그 oppo핸드폰을 받아 화면이 꺼지길 기다렸다가 액정을 두 번 가볍게 두드리니 정말 거짓말처럼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심드렁하게 핸드폰을 넘겨준 후 엄마랑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딸에게 내가 그걸 몰라서 1년도 넘도록 충전기 코드를 찾아 돌아다녔다는 사실을 죽어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날 번거롭게 만들던 문제는 그렇게 1초만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었다.

 

우린 어쩌면 다른 방법,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단번에 해결될 것인데 본인은 그것도 모른 채 오늘도 어떤 턱도 없는 문제에 목을 걸고 금방이라도 죽들 듯 애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왕년엔 컴퓨터 얼리버드였는데 이젠 시류에 떠밀려 컴맹의 해변에 올랐다.

 

컴맹의 해변

 

2023. 7.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