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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도네시아 영화 ‘해부’ 전문

beautician 2023. 7. 1. 11:40

나는 인도네시아 영화 ‘해부’ 전문

매불쇼 시네마지옥

 

신문에 난 영화평론을 자주 읽는 편이고 매불쇼 금요일판에 라이너, 최강희, 전찬일, 거의없다가 나오는 영화평론 코너는 거의 빠지지 않고 듣는 편이다.

 

그건 인도네시아 영화들 중 걸작들(취향상 대개 공포영화지만)를 나름 리뷰하거나 소개하는 입장이어서 평론가 흉내를 내보려는 시도의 일환이었지만 역시 평론가들은 나름의 학력, 경력 등 배경을 갖춘 사람들이어서 나처럼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고 나름의 의견을 가진 정도로는 고매한 ‘평론가’의 반열에 오르기는 어렵다는 걸 실감했다.

 

특히 얼마전 디즈니의 <인어공주> 실사판에 대해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주인공이 어울리지 않는다며 혹평하던 것을 보면서 영화의 가치가 ‘재미’에 있는 게 아니라 평론가들의 사상과 사고방식, 가치관에 크게 달려 있다는 것 알게 되자 영화평론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것도 사실이다.

 

영화란 엔터네인먼트, 즉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것이 그 본령이고 그래야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지본주의의 총아인데 평론가들은 영화 속에 재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때로는 내가 감명 깊게 본 영화들을 악평하는 것을 보면 결국 영화평론이란 영화애호가들, 관객들의 총의를 반영하여 영화의 가치를 평가하는 ‘가이드라인’이어야 할 터인데 자신의 시각과 논리 만이 옳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평론가들에게 마침내 식상하고 말았다. 우린 그런 사람들을 ‘꼰대’라고 부르는데, 모든 꼰대들이 그렇듯 그들은 자신이 꼰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다.

 

난 내가 영화에 대해 하고 싶은 게 뭔가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난 세계 모든 영화에 대한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내가 하는 일은 대개의 경우 인도네시아 로컬영화들 중 100-200만 명 관객 이상이 들어 현지인들이 선호한다고 확인된 영화들, 또는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기대했던 문제작들을 가능하면 극장에 가서 관람하고 극장 분위기(매표상황, 홍보물 설치상태, 관객 반응)을 읽고 해당 리뷰를 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인도네시아와 한국의 문화적 차이, 정서적 차이 때문에 자칫 이해하지 못하거나 놓치지 쉬운 부분들을 부연설명을 달아 이후 영화를 볼 다른 한국인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 기본 취지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등장하는 배우들이나 감독의 필모그래피, 특징 등을 소개해 인도네시아 영화산업 또는 해당 연도의 로컬 영화들 중 특정 영화 또는 특정 인물(배우, 감독 등)이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정도까지 설명하는 것이 내가 하려는 일이다.

 

그 외에 좀 더 산업적인 부분들, 예컨대 스크린쿼터 제도, LSF의 영화검열시스템, 관람연령분류시스템, OTT 스트리밍 플랫폼들과의 상관관계, 영화제작비 조달방식, 망 사용료와 피어링(Peering) 문제, 넷플릭스 등 해외 플랫폼들에 대한 부가세 부과 상황과 법인세 부과 전망, 영화제작 현장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로케이션 촬영을 위한 지방정부의 지원, 곧 마련한다고 공지된 영화제작사들에 대한 세제 혜택, 출판사들의 영화제작 트랜드, 국영영화제작소(PFN)의 영화제작비 조달창구 기능 같은 것들은 영화진흥위원회 정기 보고서에나 들어갈 만한 내용이어서 굳이 영화를 소개하는 글에는 넣지 않는다.

 

결국 인도네시아 영화에 관심을 가진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유력한 현지 영화와 그 문화적 배경, 출연한 배우와 감독들을 소개해 주는 정도의 일을 하는 것이니 난 평론가가 아니라 소개인, 중계인에 가깝다. 분석보다는 해부에 가깝다고 할까?

 

뭔가 하려면 자신의 포지션부터 우선 분명히 정의해야 한다.

평론가 흉내는 더 이상 내지 말기로 결정했다.

 

돈되는 보고서에도 들어가지 않을 로컬영화 소개를 왜 하냐고 묻는다면?

몇 년쯤 이 일을 더 하다 보면 인도네시아 영화산업과 개별 영화들에 대한 책을 한권쯤 낼 수 있게 되겠지.

 

2023.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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