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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디아가가 통합개발당(PPP)으로 가려는 이유는?

beautician 2023. 1. 7. 14:57

그린드라당 아이콘 산디아가 우노의 통합개발당(PPP) 입당 논란 배경은?

 

산디아가 우노 관광창조경제부 장관

 

산디아가 우노 관광창조경제부 장관이 조만간 통합개발당(PPP)에 입당할 것이란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 산디아가 장관 본인은 쁘라보워 수비얀토 그린드라당 총재의 뜻을 따를 뿐이라는 선문답 가까운 입장을 내놓을 뿐이고 정작 쁘라보워 자신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아끼고 있다.

 

산디아가는 2019년 대선 당시 쁘라보워의 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로 차출되어 자카르타 부지사라는 현직을 내려놓고 그린드라당와 함께 뛰었던 인물이다. 당시 비록 낙선했지만 그린드라당 산하 조직에서도 꽤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고 2019년 10월 쁘라보워가 국방장관이 되어 조코위 정부 연정에 전격 합류하자 산디아가 역시 2020년 12월 관광창조경제부 장관으로 입각하며 쁘라보워의 뒤를 따랐다.

 

그런 그가 그리드라당을 떠나 통합개발당으로 간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인도네시아 정치가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이런 상황이 의아할 수밖에 없다. 산디아가가 쁘라보워의 손을 놓는 걸까? 그러면서도 자긴 쁘라보워의 뜻에 따른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하지만 대략의 구도를 보면 산디아가는 쁘라보워의 ‘보험’이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현재 쁘라보워의 그린드라당은 국민각성당(PKB)와 손을 잡고 있다. 이는 민족주의 정당과 이슬람 정당의 결합으로 선거 득표를 위한 확장성 측면에서 납득이 가는 조합이며 해당 제휴를 통해 그린드라당은 대선 후보를 내기 위해 정당 또는 정당연합이 국회의석 20% 이상을 점유해야 한다는 선관위 규정을 충족시켜 대선판 입장권을 따냈다.

 

원래 두 당이 제휴하며 쁘라보워가 대선진출을 공식화하던 자리에서 무하이민 이스칸다르 PKB 당대표를 부통령 후보 러닝메이트로 발표했어야 마땅하지만 쁘라보워는 그러지 않았다. 무하이민의 인지도나 당선가능성이 너무 낮기 때문이다. 그래서 쁘라보워는 사실 집권여당인 투쟁민주당(PDI-P)와 손잡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각별한 사이인 메가와티-뿌안 모녀와 쁘라보워

 

메가와티 수카르노뿌트리 투쟁민주당 총재와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쁘라보워는 메가와티가 그녀의 딸 뿌안 마하라니 국회의장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붙여준다면 투쟁민주당 표까지 끌어들여 2024 대선 필승을 기약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딸을 권좌에 앉히고 싶은 메가와티 입장에서도 30% 전후의 당선가능성을 보이는 자기 당 중진인 중부자바 주지사 간자르 쁘라노워를 두고 당선가능성 1~2%인 뿌안을 대선후보로 지명하는 것은 당원들에게 너무나 눈치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메가와티가 간자르를 쁘라보워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내준다면 쁘라보워로서는 실로 금상첨와가 아닐 수 없다. 간자르와 쁘라보워의 당선가능성을 합치면 50%를 훌쩍 넘을 것이므로 무조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그렇게 높은 인기를 누리는 간자르가 쁘라보워 밑으로 들어가 부통령을 하려 할 리 없고 메가와티가 그리 밀어붙인다면 투쟁민주당원들의 마음이 메가와티에게서 돌아서기 쉽다.

 

결국 쁘라보워 입장에서는 메가와티가 뿌안을 자신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내주고, 그에 대한 반동으로 간자르가 높은 인기를 등에 업고 투쟁민주당이 아닌 다른 당의 대통령 후보로 추대되어 대선판에 나오는 상황을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나스뎀당이 내놓은 아니스 바스웨단 전 자카르타 주지사만 해도 만만찮은 상대인데 간자르까지 나서면 아무리 뿌안을 업고 간다 해도 2024 대선은 매우 어려운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딜레마는 그렇게 투쟁민주당의 뿌안과 손을 잡으면 둘러리로 전락하게 될 PKB와 무하이민 당대표가 떨어져 나갈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단독으로 국회의석 20% 이상을 차지한 투쟁민주당과 손을 잡는 것이니 PKB가 떨어져 나가도 대선판 입장권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투쟁민주당의 성격은 그린드라당과 같은 민족주의 정당. 즉 이슬람 정당이 떨어져 나가면서 무슬림표를 상당히 잃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원내 정당들 중 이슬람 정당은 PKB 만이 아니다. 국민수권당(PAN)과 통합개발당(PPP)도 전통적인 이슬람 정당들이다.

 

앞서 설명한 이런 배경 속에서 통합개발당에 산디아가를 입당시키는 것이 쁘라보워의 뜻이라면 그 의도는 대략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나는 메가와티가 뿌안을 낙점하여 자당의 대통령 후보로 삼거나 쁘라보워의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내줄 경우 높은 당선가능성을 등에 엎고 투쟁민주당에서 떨어져 나가게 될 간자르의 갈 길을 막자는 것이다.

 

현재 인도네시아 정치권은 그린드라당-PKB의 대인도네시아연합, 아직 완전히 제휴한 것은 아니지만 여당측 나스뎀당과 야당인 민주당, 복지정의당(PKS)의 변화연대(Koalisi Perubahan), 골카르당-PAN-PPP가 손잡은 통일인도네시아연대(KIB), 그리고 아직 누구와도 손잡지 않은, 그러나 반드시 누군가와는 손잡을 투쟁민주당(PDI-P), 이렇게 네 개의 파벌이 구축된 상태다.

 

이중 간자르가 투쟁민주당을 떠날 경우 갈 수 있는 곳은 통일인도네시아연대(KIB) 뿐이다. 투쟁민주당과 그린드라당은 이미 간자르의 선택지가 될 수 없고 이에 앞서 아니스를 추대한 나스뎀당은 민주당 아구스 유도요노(AHY) 당대표를 아니스의 파트너로 마음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거기엔 간자르의 자리가 없다.

 

아직 유력한 자체 대선후보가 없는 KIB 입장에서는 아이를랑가 골가르당 총재 겸 경제조정장관이 그나마 가장 인지도가 높지만 당선가능성은 바닥에 가까워 그간 PAN과 PPP는 이미 간자르에게 러브콜을 보낸 바 있다. 그 PPP에 산디아가를 보내 아이를랑가-산디아가 대선후보팀을 만들면 그곳으로도 갈 수 없게 되는 간자르는 이제 낙동강 오리알이 되기 쉽다. 한 마디로 간자르를 고립시킬 패로 산디아가를 동원한 것이다. 

 

간자르 쁘라노워 중부자바 주지사

 

또 다른 하나는 쁘라보워 입장에서 투쟁민주당과도 결국 손을 잡지 못하고, 이미 제휴한 무하이민의 PKB마저 떨어져 나가는 최악의 경우도 상정해야만 한다. 그 경우 쁘라보워의 선택지는 KIB일 수밖에 없다.

 

그때 만만찮은 거물인 골카르당의 아이를랑가를 상대로 누가 대통령, 누가 부통령 후보를 할 것인지 다투는 것보다 산디아가가 PPP에서 이미 주요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이야기가 훨씬 편해진다. 더욱이 골카르당은 대체로 민족주의 정당으로 분류되지만 PPP는 이슬람 정당이다. PKB의 빈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린드라당은 그런 식으로 KIB과 연계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 골카르가 KIB에서 떨어져 나간다 해도 PPP를 통해 이슬람표를 얻고, 잘하면 또 다른 이슬람정당인 PAN까지 한편으로 끌어들여 결코 불리하지만은 않은 대선구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우리 교민들 중엔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산디아가 우노가 뜬금없이 통합개발당(PPP)에 입당한다는 얘기는 이런 스토리와 계산을 바닥에 깔고 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