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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칼럼

빨갱이 만드는 사회

beautician 2015. 1. 12. 01:50


 

안타까운 일이지만 21세기에 들어서서도 아직 흑백논리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의 입을 막으려 드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한국사회도 그 예외가 아닙니다. 오히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부터 한국사회는 자신의 소신을 말하는 것이 위험한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정치적 소신을 밝히는 순간 어느날 밤 행방불명되어 실종되거나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 떨어지거나 목매달리는 것을 우린 해방 이후 지겹도록 보아 왔었죠이 세상 전체도 그렇습니다. 그 소신이 날카로운 풍자와 비평을 담으면 더욱 위험한 상황이 되곤 합니다. 최근 벌어진 프랑스 풍자언론 샤를리앱도에 대한 테러가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언론을 탄압하고 집회를 가로막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던 것은 봉건시대의 통치방식이었는데 그런 것이 아직까지 세계 곳곳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심지어 그게 맞다고 옹호하는 사람들마저 적지 않은 것을 보면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그들의 자유로운 생각이니 난 그들이 한심스럽다 생각만 하기로 하고 그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내 입이 딴 사람 얼굴에 달려 있지 않고 내 얼굴에 달려 있는 이유는  바로 그 입에 내 생각을 담아 얘기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말의 옳고 그름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자기 스스로의 생각을 애기한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러니 그 자기 스스로의 생각이라는 것이 다른 누군가의 입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라면 매우 곤란한 일이 됩니다.

 

한국은 참 특수한 상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세계에서 하나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이고 같은 민족끼리 전쟁도 치렀습니다. 물론 그게 새삼스러운 일일까요? 국사시간에서 배운 바로는 삼국시대부터의 역사는 그야말로 동족상잔의 역사였는데 말입니다. 6.25 전쟁이 동족상잔의 전쟁이란 부제를 달게 된 것은 고려시대 이후 약 1천년간 한반도가 어떤 식으로든 통일되어 있었다는 것과 36년간의 고통스러운 일제강점기를 치른 끝에 맞이한 전쟁이었다는 것이죠. 온 민족이 외세와 맞서 싸웠는데 해방 5년만에 이번엔 같은 민족끼리 총뿌리를 겨누었다....이런 맥락에서 '동족상잔'이란 문구에 방점이 찍힌 겁니다. 우린 그것을 소련과 미국의 이익과 패권주의가 한반도에서 부딪혀 발생한 대리전이라고 배웠으면서도 그 대리전의 배후인 두 나라 중 오직 소련만을 욕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당시 전쟁배후의 중요한 한 축이었고 훗날 한국청년들을 월남전에까지 밀어넣은 미국은 욕해서는 안되는, 그래서 욕하는 순간 빨갱이가 되어 버리는 이상한 논리가 당연한 것처럼 교육받아 왔던 것입니다.

 

김일성이 제안했다는 고려연방제라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그 구체적인 내용이나 조건은 잘 모르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체제가 다른 두 나라가 전쟁이나 흡수통합이란 극단적 방법을 취하지 않고 훗날 완전한 통일을 기약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로서 두 체제를 그대로 유지한 상태에서 국가 대 국가로서의 결합인 연방제를 한다는 것은 지극히 온건하고도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게 반신반인 박정희 전대통령의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라 경애하는 지도자 김일성 주석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죠. .그러니 연방제가 아무리 합리적인 방법이라 해도 그 제의에 동의하는 순간 이상한 흑백논리에 쇄뇌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빨갱이라고 비난하며 짓쳐 공격해 들어올 것이 뻔합니다. 북한이 뭔가 먼저 옳은 소리를 하면 대국적 측면에서 고개라도 끄덕거려줄 수 있는 것인데 뭐든 북한이 얘기한 건 틀리고 그걸 반대하고 심지어 비난하고 욕설을 퍼부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되는 한국사회는 정신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매우 비정상적입니다. 안타깝지만 그렇습니다.

 

최근 종북논란을 빚는 신은미-황선씨의 토크콘서트에서 발생한 폭탄테러사건의 진행경위를 보아도 우리 사회의 그런 비정상적인 부분은 금방 발견됩니다. 테러를 저지른 고딩 또라이는 소위 보수라는 꼴통들에게 영웅이라고 칭송받고 정작 피해자인 신은미, 황선은 강제출국 당하거나 구속수사를 당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래서 테러라는 엄청난 사태가 벌어졌다는 사실에서 신은미가 북한을 방문한 후 북한사회를 긍정적으로 표혔했다는 부분으로 옮겨 가면서 곧이어 ㅂㄱㅎ 자신이 종북콘서트라고 비난하고 나선 반응에서 보듯이 정권은 한쪽 측면만 보여주려 거의 전력을 기울입니다.. 거의 동시기에 또 다른 북한 방문자는 북한을 맹비난했다고 비교하면서 말입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무리한 종북논리를 앞세워 이석기의원 구속과 통진당 해산을 결정한 정부가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이 문제에 침묵할 수 없었으리란 피치못할 배경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말 북한이 희망있는 사회냐 아니냐 하는 건 사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종북딱지를 피하기 위해 한 마디 덧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북한은 6.25 이후 분명한 대한민국의 주적이고 무리한 3대세습과 전쟁준비, 도발을 통해 국민들의 인권을 형편없이 무너뜨린 나라인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 훗날 침공해 오는 북한과 싸워야 하느냐 아니면 쓰레기같은 현 정권과 싸워야 하느냐 하는 결단의 순간이 온다면 전자를 택할 것 역시 분명합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면서 이런 부분을 포함시켜야만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하게 된다는 사실 역시 한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마치 통진당 해산결정에 대해 많은 정치인들이 이에 반발하면서도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지만...'이란 전제를 달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죠.

 

아무튼 정말 중요한 것은 그런 말도 할 수 없느냐는 겁니다. 악의 축이든 테러지원국이든 간에 어쨋든 북한도 긍정적 측면이 있을 수 있는 나라라는 발언 말입니다. 그런 생각도 못하냐고요. 그리고 한 사람이 그런 의견을 한 번 개진했다고 하여 국가가 전복될 거라, 국민들이 모두 호도될 거라 난리를 부리는 정부가 이해되지 않습니다. 겨우 그런 게 이적행위가 된다면 김정일은 신뢰할 수 있는 협상파트너라고 얘기했던 사람은 지금쯤 이미 매장되거나 복역하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 있잖아요? ? 여보세요들?.

 

북한을 미화하면 종북이고 구속되어야 하고 박근혜를 미화하면 승진도 하고 청와대 대변인도 하게 되는 그런 이상한 나라. 그게 정상이라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그토록 많다는 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아니면 옥도경, 연제훈에 못지않은 또 다른 걸출한 사이버사령관이 현직에서 열심히 댓글을 달며 국론을 창조해 가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입니다.

 

신은미와 황선의 입을 막으려 하기 전에 농협과 소니픽쳐스를 마음대로 해킹하고 상상도 할 수 없는 신무기로 천안함도 침몰시키는 신출귀몰한 북한과 싸워 이길 군사적, 기술적 능력부터 배양하는 건 어떨까요? 미국 본토까지 사거리로 하는 대포동 미사일을 날리는 북한에 비해 평양에나 간신히 닿을 듯 말듯한 사거리의 미사일들을 보유하고 그 사거리를 조금 더 늘리려면 미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현재의 웃기는 한미 안보시스템부터 고쳐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한쪽에선 종북을 이유로 적지않은 국민들이 표를 던진 정당을 맘대로 해산시켜 버리는 부끄러운 짓들을 자행하고 언론을 제한하며 국민들의 자기검열을 유도하고 븍한과 싸워 이길 수 없다 천명하면서도 이것저것 원인규명이 힘든 것들은 모두 북한 탓이라 비난하며 도발하는 정권에서 유독 탈북단체 대북삐라만은 막을 수 없다며 북한정권에 대한 공격은 무조건 수용, 허락하면서 북한이 파내려온 땅굴을 더 이상 없다며 수도권 민심수습만을 겨냥한 듯한 누가 봐도 논리적으로 이해불가한 주장을 천명하는 군과 정부는 좀 제대로 중심을 잡아야만 할 것이고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좀 생각하면서 입을 벙긋거려야 할 것입니다.

 

요즘 돌아가는 일들을 보면 정말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연방제 하자는 것만 종북이 아니라,

북한이 희망 좀 있는 사회라 툭 던져도 종북이라 아우성치고, 

친일청산하자 해도 종북이라 하고,

애들 무상급식하자 해도 종북이라 하고,

근로기준법 지키라 해도 종북이라 하는데,


정말 놀고들 있습니다.

그런 건 종북이 아닙니다.


선거가 다가오니 무력시위 좀 해달라고 북한에게 부탁하는 것이 종북이고,

부끄러운 일을 북한에 돈다발 안기며 입막음하려는 것이 종북이고

증거조작하며 무고한 사람 남파간첩 만드는 것이 종북이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될 생떼같은 아이들이 진도 앞바다에 수장되는데 구조노력을 도외시하는 것이 종북이고,

대한민국을 유신시대로 되돌리고 그림자 실세들에게 국정농단을 허용하는 것이 바로 이적행위이자 종북입니다. 

 

 

2015.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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