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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땅굴은 과연 존재할끼?

beautician 2014. 12. 7. 14:06



적잖은 민간인들은 물론 예비역 공군장성까지 나서 수도권땅굴이 존재한다고 기염을 토하는데 군에선 성명을 발표해 수도권엔 땅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땅굴을 수색하는 것은 군예산 낭비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실제로 1980년대 제3땅굴을 관리하는 부대에서 장교로 근무하던 당시 군은 수백개의 땅굴이 존재하고 수도권을 향해 여전히 파내려오고 있는 중이므로 땅굴을 찾아내는 개인이나 부대에게 포상과 현상금까지 내걸었고 땅굴징후를 찾아 한개의 수십만원~수백만원씩 드는시추공을 전문적으로 파고 다니는 부대도 있었습니다. 제3땅굴에 가려면 먼저 지나야 하는 임진각 자유의 다리 너머 멸공관에선 교육영화를 통해 이러한 부분을 방문객들에게 공지하고 주입시키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물론 그 필름이 완전히 낡아버렸을 테니 다른 것으로 바뀌었겠지만요.


그런데 지금까지 그 수백개라고 주장하던 땅굴들 중 70년대까지 3개, 90년대에 들어 1개를 더 찾아 총 달랑 4개의 땅굴을 찾아놓고서 종북단체도, 간첩단체도 아닌 대한민국의 군이 수도권엔 땅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표하며 마치 더 이상의 땅굴은 없는 것같은 뉘앙스를 풍깁니다. 그렇다면 70년대 이후 대대적으로 벌어졋던 땅굴찾는 작전들이나 국가적인 정신교육은 다 미친년 널뛰기였거나, 그간의 군의 주장이 다 뻥이었거나, 지금의 군이 기억상실에 걸린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옛날같으면, 그러니까 1980년대나 심지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더 이상 땅굴이 없다고 주장하는 군인이 있었다면 사상적 문제가 있는 빨갱이로 몰려 보안사에 끌려가 급기야 이적행위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겨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땅굴 찾는 게 군예산 낭비라고요? 왜 얘기가 그렇게 되는 거죠? 그 돈으로 군골프장 더 만들고 6성급 군호텔 더 짓게요? 미안한 얘기지만 작금의 군수뇌부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땅굴이 있다 또는 없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일관성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간 역대 정부가 수백개의 남침용 땅굴의 존재를 천명하며 경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북한이 지금까지 발견된 4개의 땅굴만을 달랑 판 것이라면 그간 땅굴찾기에 투여된 천문학적인 예산과 인력에 대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그런 정보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한 중정, 안기부, 국정원은 다 접시물에 코박고 죽어버려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만약 그것도 아니어서 사실은 그간 발견된 땅굴들이 다 남한 측 조작이었다...뭐 이런 말을 하려는 것이라면 제3공화국 이후 모든 정권들은 철저히 국민들을 기만해 왔던 것이고 제3땅굴에 근무하며 수많은 방문객들에게 땅굴과 북한의 도발의도에 대해 강변하며 설명했던 나까지 거짓에 부역한 5공장교 나부랑이로 만들어 버리는 셈입니다.


그런 것조차 다 떠나 다른 측면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면,

그간 역대정권들이 땅굴의 존재를 부각시키며 국민들에게 긴장감을 조성했던 것은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 거겠죠.

투표에서 이겨야 하겠고 야권을 빨갱이로 몰아야 하겠고 예전 평화의 땜 삽질때와 같이 땅굴찾기 명목으로 국가예산과 국민적 모금을 당겨와 모처, 누군가의 주머니로 빼돌려야 하겠고 그런 이유로 군비증강을 해야 한다며 국방예산을 좀먹어 착복하고....등등의 이유들 말입니다. 물론 경계태세를 강화한다는 본래의 목적도 분명 있었겠고요.


그럼 이제 군과 정부가 수도권에 땅굴이 없다, 더 이상의 땅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발표를 하는 것도 분명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국민들의 혼란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는 판에 박힌 소리는 하지 마시고 말이죠.

그런 발표를 통해 정부는 어떤 이익을 얻을까요?


작금의 땅굴관련 주장을 앞서 언급한 정통성과 일관성 측면에서 바라보자면 헛웃음만 나오는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은 이렇게 선로를 타고 내려가게 된 모양이군요. 1980년대에 이걸 쌩으로 걸어 오르내렸습니다. 특히 이곳에 근무하던 장사병들은 방문객들을 따라 하루 최소 3-4번은 이 갱도를 오르내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비록 입구에 '제3땅굴'이라는 팻말이 달려 있지만 이 갱도는 제3땅굴이 아닙니다. 실제 제3땅굴은 지면으로부터 70미터 지하를 지나고 있고 이 입구를 따라 내려가는 갱도는 적 땅굴의 존재를 감지하고 우리 측에서 뚫고 내려간 interception tunnel 입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내가 근무하던 당시 이 땅굴 내부는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었지만 발견당시엔 북한군이 부비트랩을 설치해놓고 철수했으므로 갱도 수색을 하면서 상당한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얘기도 들은 바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우린 십자매 새들을 새장우리에 넣어 갱도 안에서 키웠는데 그것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북한측의 가스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지하에서도 군사분계선 밑으로는 콘크리트 벽을 세워 경계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건너편의 북쪽갱도는 비록 북쪽에서 막아놓았지만 혹시라도 작은 틈을 통해 유독가스를 흘려 넣을 수 있을 것이라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갱도 내에서 근무하던 병사들은 방독면을 휴대하고 있지 않았고 수많은 방문객들에겐 그런 가스위험을 공지하지 않은 채 갱도로 내려보냈으니 우리 군과 정부는 당시 매우 배짱 두둑했던 것 같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80년대 중반. 아직도 전두환 전대통령이 천하를 호령하던 5공 때였거든요.


그런데 이제 와서 이건 다 뻥이고 더 이상 땅굴은 없다고요?

물론 아직도 북한이 수백개의 땅굴을 파내려오고 있고 일부는 수도권 지하철에 연결되어 간첩들의 남파통로가 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하며 위기의식을 고취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렇게 믿지도 않습니다. 3대세습이 이루어지며 정책적으로도 수많은 변화가 생겼을 북한에서 30-40년전에 파던 땅굴을 아직도 파고 있으리라고도 별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지금까지 발견된 4개 외에 다른 땅굴들이 더 있으리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고 그것이 70년대, 80년대의 일이니 이미 수십년이 지난 지난 지금 수도권 인근까지 성공적으로 파내려온 땅굴이 한 두 개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그렇게 놀랄 일이나 괴담이라 해야 할까요?


그런 가능성을 모두 일축해 버리고 땅굴이 없다고 주장하는 군의 태도가 오히려 괴담인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2014.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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