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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매일의 삶

돈 주고 산 친절

beautician 2022. 9. 19. 09:21

4년전 한국에 왔던 건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고 출장목적이었던 미팅 외에 잡동사니로 엉망진창인 아버지 집을 청소한 것이 그 기간 동안 할 수 있었던 일의 전부였다. 당연히 그때엔 한국이 어떤 모양으로 변모하고 발전했는지 둘러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그 전에 한국에 왔던 건 무려 15년 전 장인어른 상을 당했을 때였다. 당시엔 열흘쯤 일정으로 다녀갔으니 이번 한국출장 기간과 비교하게 되는 건 결국 15년 전님 당시 경험이 가장 최근인 셈이다.

교통카드, 넘쳐나는 와이파이 핫스팟, 신경질적으로 자기방어하는 지하철 속 젊은 여성(요즘 스토킹 범죄들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잘 정비된 지하철 화장실....

모든 게 새로운 가운데 그중 압권은 편의점 알바였다.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도 cu편의점이 있는데 그곳 알바에게 구매물품들을 결재할 때 받은 느낌이 묘했다.

그/그녀는 너무나도 친절했지만 말 한 마디 행동 하나에 묻어나는 매너리즘에 깜짝 놀랐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가식적인 친절.

사실 그건 불쾌한 느낌이 아니라 생경한 것이었다.

편의점 알바의 말투는 아무 문제되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고 친절했지만 그게 진심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마치 그가 '착각하지 마, 난 너한테 아무런 호감도 없어. 그냥 이 일을 해야 하니 내가 너한테 존대말을 하고 필요한 바를 해결해 주는 것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누구나 다 그런 생각 가지고 있는 거 아닐까?
매뉴얼을 따르는 것일 뿐 진심은 아니라는 느낌.

그러다가 우리가 예전엔 불과 500원 1000원 주면서 편의점 물건을 사면서 주인이나 알바가 말과 행동에 담아준 그 정성과 진심을 너무 당연히 여겼고 그러는 사이 불과 돈 몇푼 주고 물건 사면서 편의점 알바의 진심어린 친절마저 무의식적으로 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그 귀한 친절을 그 당시엔 너무나 당연시했고, 그래서 진심을 담아 친절을 행하는 이들에게 우린 늘 그보다 더한 걸 요구하기만 했다는 생각.

편의점 알바로부터는 가식적인 친절로 이미 족하다.

무례와 갑질을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동안 누군가의 진심어린 친절을 돈 몇 푼 주고 살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스스로 가소롭기 그지없다.

 

친절을 강요하는 사회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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