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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장례란 시신유기를 위한 합리화 과정

beautician 2022. 9. 18. 09:03

 

어머니를 포천에 있는 교회묘지에 모셨습니다.

사실 '모셨다'는 말이 적합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어머니 시신을 자주 찾아볼 수도 없는 교외 먼 곳 묘지공원이라 이름지어진 자본주의자들의 야산에 두고 온 것이라 해야 할지도. 결국 어머니를 사실상 버리고 온 것이란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장례라는 길고 복잡한 전통과 관례는 화장이라는 이름의 시신훼손, 매장이라는 이름의 시신유기를 정당화하여 유족, 친지들의 죄책감을 줄여주기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란 생각이 강하게 들게 됩니다.

장례라는 고상한 이름, 조문객들의 방문, 상을 치르는 동안 유족들이 감수해야 하는 고생과 비용, 비싼 상조회와 장례식장 비용, 묘지 비용들을 빼면 장례란 결국 가족의 시신을 훼손하거나 유기하는 행위..... 그래서 결국 고인보다는 남는 이들의 마음을 편케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것.

물론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나 역시 그 모든 과정을 거침으로써 '할 바를 다했다'는 자기합리화가 가능했으니까요. 

큰 일을 당할 때마다 자기 합리화가 되지 않고 모든 게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사무치고 나면(그게 대개의 경우 사실일지라도)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만 같습니다. 

어쩌면 관혼상제라는 것 모두가 어떤 단계를 통과할 때 사회적 동의를 얻거나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하기 위한 최소한의 '면피' 행위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장례를 잘 치렀고 그 상황에 이르기까지 적잖은 시간동안 어머니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내셨는지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늙으셨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되었고요. 

 

사람들의 마음은 참 무너지기 쉬운데, 그걸 가중시키는 것은 단연 죄책감인 것 같습니다.

특히 상을 치르면서 더욱 그걸 느끼게 되고, 그래서 그걸 애써 내색하지 않으려 쾌활한 농담을 해보려 하고 다른 화제의 이야기들을 밤새 하는 것이겠죠.

 

면피, 면죄부, 합리화....뭐가 되었든 격식을 갖춘 복잡한 과정과 그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감정적 노동, 경제적 고통을 통해 그 죄책감이 어느 정도 희석되는 것은 분명한 듯합니다. 

 


2022.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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