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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의 삶

15년 만의 여수 여행

beautician 2022. 10. 5. 09:55

 

어머니가 위독해서 오게 된 한국출장. 

결국 어머니 상을 치렀다.

 

그런 후 굳이 여수행을 강행한 것은 처가집에 대한 의무 때문이었다.

15년 전 장인어른 돌아 가셨을 때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여수.

막내처남은 어머니 상을 맞아 서울에서 몇 차례 만났지만 보령과 나주에 있는 첫째, 둘째 처남을 만나는 것 역시 15년 만의 일. 마침 추석을 맞아 여수로 내려오는 처남들을 만나 내가 그들 누나와 잘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 하지만 그동안 너무 소홀했던 일이었으니 이번엔 꼭 해야 할 터.

 

처남들을 만난 건 여수 도착 사흘 째인 9월 8일(목), 추석 하루 전이었다.

그보다 하루 전인 9월 7일(수)엔 역시 그동안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일사천리로 했다. 서울이라면 시간을 대지 못했을 것 같은데 여수라서 가능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종합건강검진.

여수중앙병원에서 오전 9시 경 시작한 종합검진은 수면위내시경 검사를 끝으로 12시쯤에 완료했다. 마취라는 게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찾아오고 아무런 자각도 없이 내시경 검사가 끝났다는 게 살짝 소름끼쳤다. 병원에서 의료목적으로 사람들 머리를 열고 배를 가르는 수술도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런 다음엔 치과.

서울에서 8월말에 치과를 들렀지만 스케일링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스케일링을 2차에 나누어 해야 하며 충치가 있으니 그 치료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내게 충치가 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간 자카르타에서도 치과를 다니지 않은 게 아닌데 그때도 충치 얘기는 들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여수에서 들른 치과에서 하는 얘기도 나한테는 충치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잇몸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 첫 단계가 스케일링이라면서 '그간 오래동안 스케일링 안하신 모양이에요'라고 말하며 본격적인 스케일링을 했다. 약간 아픈 듯 시린 듯한 스케일링 후 입안이 시원해진 느낌. 결국 서울에서 했던 전혀 아프지도 않았던 스케일링은 그냥 흉내만 낸 것이었던 모양이다. 서울 소재 치과들에 대한 신뢰가 확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런 다음은 도수치료. 다시 찍어본 엑스레이 상 목뼈 제일 아래 마디와 등뼈 제일 아래 마디에 협착이 보여 디스크 소견이라는데 충분히 공감되는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늘 아프고 허리 아래는 좌골신경통으로 짐작되는 저릿함이 느껴진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60년 가까이 사용했으니 고장나기 시작한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렇게 시작한 도수치료는 어찌보면 등뼈교정하는 카이로프락텍과 비슷한데 어마어마하게 아프면서도 뭔가 좀 좋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냥 느낌 탓?

 

그런 다음 사진 촬영.

분실한 한국 주민등록증 만들기 위한 첫 단계.

25,000원이니 인도네시아에 비해 절대 싼 편이 아닌데 아무튼 미남을 만들어 주었으니 감사할 따름.

다음 날 주민센터를 방문해 주민등록증 재발급 신청. 여수의 한 주민센터에서 서울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이 모든 과정을 하루에 마친 감상은 '빡세다'는 것과 상당히 효율적이란 것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혈압검사였는데 처음에 156이 나오자 의사는 혈압약을 처방하겠다 했지만 이후 몇 차례 더 한 검사 결과가 140, 136, 130으로 계속 떨어지자 더 이상 혈압약 얘기를 하지 않았다. 아직은 혈압약을 먹을 시점은 아닌 모양.

 

셋째 날 저녁 속속 모여든 처남들과 성대한 저녁식사를 한 후 넷째 날 조금 앞당긴 버스 스케쥴에 따라 오후 3시 경 여수를 떠나는데 다음에 다시 한국을 방문하면 꼭 여수의 장모님 만나러 내려오는 일정을 빠뜨리지 않아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지나간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한국출장이었으니......

 

 

2022.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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