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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하사 민화] 하늘과 맞닿은 신의 통로 로꼰산

beautician 2022. 6. 9. 11:30

 [미나하사 민화] 로꼰 산과 끌라밧 산의 전설

 

미나하사의 로꼰 산

 

옛날옛적 지상은 온통 산과 산맥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술라웨시 북부 미나하사(Minahasa) 지방도 마찬가지로 높고 낮은 산들이 즐비한데 산들 중엔 끌라밧(Kelabat), 소뿌탄(Soputan), 로꼰(Lokon), 두아 수다라(Dua Sudara), 마하우(Mahawu),땀뿌수(Tampusu), 똘랑코(Tolangko), 까웽(Kaweng), 심벌(Simbel), 렝꼬안(Lengkoan), 마사랑(Masarang), 까와딱(Kawatak) 등이 있고 산맥들 중엔 렘베안(Lembean), 깔라위란(Kalawiran), 꾸머럼부아이(Kumelembuai) 등이 있습니다.

 

산과 산맥의 이름은 그 성격에 부합하곤 했는데 예를 들어 마하우 산은 종종 화산재를 뿜어냈습니다. 소뿌탄 산처럼 사람 이름을 딴 것도 있고 두아 수다라 산처럼 그 상태나 형상을 빗댄 이름도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로꼰 산은 이름 그대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산입니다. 미나하사 방언으로 뚜아 로꼰(Tua Lokon)이라 하면 나이 많은 노인을 의미합니다.

 

로꼰 산에 처음 살기 시작한 것은 거인 마깔라왕이었습니다. 그는 로꼰 산을 가꾸어 비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스스로 자족한 마깔라왕은 점점 게을러지더니 결국 완전히 손을 놔버려 자연환경이 망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근에 살던 다른 거인들은 그곳 환경이 망가지면 로꼰 산에 큰 재앙이 올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로꼰산이 황페하게 되도록 방치하고 있는 마깔라왕을 쫓아내는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그들 중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만큼 마깔라왕이 강한 상대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무더기로 몰려들어 마깔라왕과 싸워 결국 쫓아내고 그 대산 삐논또안과 암빌링안 부부가 로꼰 산을 맡아 부지런히 가꾸며 자연을 비옥하게 다스렸습니다.

 

부지런하고 근면한 삐노또안과 암빌링안의 노력 덕에 로꼰 산은 더욱 높아지고 커졌으므로 미나하사 북쪽 끌라밧 산에 사는 이들이 비노또안과 암빌링안에게 로꼰산 정상을 조금 잘라 끌라밧 산에 얹어 주기를 청했습니다.

 

끌라밧 산에서 온 사람들이 그런 요청을 한 것은 옛날 고사 때문이었습니다. 옛날엔 로꼰 산이 지금보다 더 높아 하늘과 맞닿아 있었으므로 하늘의 신들이 그곳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엔 소부딴산(Gunung Sobutan) 산도 하늘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신들은 두 개의 통로를 사용해 지상을 오갔습니다. 하지만 지상의 인간들과 거인들은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죠. 태고적부터 엄격한 인종차별, 아니, 거인차별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지상의 와레레(Warereh)라는 거인이 그 법도를 어기고 하늘의 신들 생활을 엿보려 한 것이 신들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신들은 와레레가 불경한 존재라고 여겨 그를 죽이려 했지만 와레레 역시 보통 거인이 아니었습니다. 신들의 공격을 받고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와레레가 거대한 검을 꺼내 휘둘러 로꼰 산 정상 일부를 잘라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 신들은 더 이상 지상에 내려올 수 없게 되었고 지상은 온전히 거인들과 인간들만 살게 된 것입니다.

 

그때 잘라낸 정상 부분이 날아가 떨어져 생긴 것이 끌라밧 산이라는 겁니다. 당시 와레레는 내친 김에 소뿌딴 산도 정상을 잘라 웨낭 (Wenang) 앞바다로 내던졌는데 그게 마나도 뚜아(Manado Tua) 섬이 되었다고 하고요.

 

“이미 한 번 잘랐던 것인데 한 번 더 잘라 주세요!”

 

끌라밧 산 사람들은 삐논또안과 암빌링안 부부를 그렇게 졸라댔습니다. 정말로 로콘산은 원래 미나하사 지방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어서 산 정상과 하늘과의 차이가 한 뼘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한편 그 전설대로라면 끌라밧 산(Gunung Kelabat)은 원래 하늘과 맞닿았던 로꼰산의 정상이었는데 이제는 그 지역에서 가장 낮은 산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었어요. 끌라밧 산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괄괄하고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마깔라왕에게는 말도 붙여보지 못다하가 유순한 빠논또안 부부가 로꼰산을 관리하게 되자 용기를 내 찾아왔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산이 더 높아져 다시 하늘과 맞닿으면 신들이 몰려 내려와 와레레의 후손인 우리들과 싸우려 할 테니 산 높이를 나눠 주는 건 동의합니다. 하지만 와레레의 검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 아니 아는 거인들이 없어요. 마깔라왕이라면 알지 모르지만……, 여러분들이 직접 산높이를 깎아 가신다면 허락해 드리죠.”

 

그러자 끌라밧 산 사람들과 거인들이 모두 몰려와 로꼰 산 흙을 퍼다가 끌라밧 산으로 옮겼는데 그렇게 옮기는 과정에서 중간에 흘린 흙들이 중간에 따따위란 산(Gungung Tatawiran), 까세헤 산(Gunung Kasehe), 음뿡 산(Gunung Empung) 등이 되었습니다.

 

한편 로꼰산에서 쫓겨난 마깔라왕은 산을 내려가던 중 산 밑에서 큰 동굴을 만났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니 지상세계 만큼이나 넓은 공간이 있어 그는 그곳에 집을 짓고 살기로 했습니다. 그는 곧 나무를 베어와 기둥을 만들어 동굴을 튼튼히 떠받치도록 했고 그런 후 큰 집도 지었습니다. 하지만 동굴 속으로는 해가 들지 않아 농사를 짓는 대신 멧돼지들을 그곳에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관리를 잘 하니 마니 하며 간섭하는 다른 거인들도 없는 그곳에서 그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멧돼지들이 거인인 주인을 닮아 점점 몸집이 커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깐똥(Kantong)이라는 종의 큰 멧돼지들이었는데 그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집채 같은 덩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멧돼지들이 동굴을 받친 커다란 나무 기둥에 몸을 벅벅 긁어 대면 진동이 발생했는데 그게 지상에는 마치 지진처럼 느껴졌습니다.

 

작은 돼지들은 몸을 긁으면 동굴이 흔들리며 로콘산의 나무들이 조금 떨리는 정도였지만 수천, 수만 마리의 큰 멧돼지들이 몸을 긁어 대면 산사태가 일어나고 화산이 분화하며 해일이 일어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실제로 로꼰 산은 2012년 분화한 적이 있는데 멧돼지들이 좀 심하게 몸을 긁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거인들이 모두 사라진 지금 마깔라왕의 멧돼지들들은 여전히 지하에 남아 있어 그곳 사람들은 지진이 오면 땅이나 지면에 솟아난 대나무를 두들기면서 “왕코야! 더 예쁘지? 착하지?” 하면서 동굴 속 마까왈랑의 멧돼지들을 달래야 했습니다. 

 

실제로 로꼰 산자락엔 거인의 발자국이 남아 있어 미나하사 사람들은 그것이 몇 백 년 전부터 그곳에 살던 거인 마깔라왕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발자국 크기로 미루어 본 거인의 키는 6-7미터쯤으로 추정됩니다.

 

로꼰산의 거인 발자국

 

다양한 전설과 민화에서 등장하는 전설들을 보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신과 정령들은 몰라도 세계 곳곳에 발자국과 유골을 남긴 거인들은 정말 실존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산 정상을 단칼에 자를 정도의 거인이라면 진격의 거인에 나오는 제일 큰 거인보다 한 50배는 더 컸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

 

 

참고자료

https://www.kompasiana.com/losnito/608eccb0d541df4a734a1563/cerita-misteri-gunung-lokon-dan-meningkatnya-wisata-pendakian?page=3&page_images=1

https://histori.id/dongeng-gunung-lokon-dan-gunung-kelabat/

https://brainly.co.id/tugas/25826510

https://gunung.id/misteri-gunung-lok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