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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 깔리만탄 민화] 발릭빠빤(Balikpapan)의 기원

beautician 2022. 5. 30. 12:01

발릭빠빤(Balikpapan)의 기원

 

발릭빠빤

 

옛날 동부 깔리만탄 따나 빠시르(Tanah Pasir) 지역엔 현명하고 지혜로운 아지 무하마드 (Aji Muhammad) 왕이 다스리는 큰 왕국이 있었습니다. 농업과 어업이 산업의 중심인 이 왕국은 왕의 뛰어난 영도로 평화 속에서 번영을 거듭했습니다. 왕국의 넓은 영토 속엔 경관이 수려한 해변의 만(灣)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아지 무하마드 국왕의 딸 아지 따띤(Aji Tatin) 공주는 유일한 왕위 후계자였으므로 부왕과 왕비의 사랑이 그녀에게 쏠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수십 명의 시녀들이 주변에서 공주가 필요한 것들을 처리하고 보살폈습니다.

 

아지 따띤 공주는 성년이 된 후 꾸따이 까르타느가라 왕국(Kerajaan Kutai Kartanegara)의 귀족 자제와 혼인했는데 국왕은 수십 마리의 물소를 잡고 모든 신료들과 이웃 나라 사절들은 물론 왕국의 모든 백성들과 함께 성대한 혼인식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날은 신랑신부에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잔치 도중에 아지 무하마드 국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랑하는 공주에게 결혼선물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공주야, 이 행복한 날에 아름답고 매혹적인 만 지역의 영토를 네 혼인선물로 하사하노라. 이제 너는 만의 모든 권리를 행사하고 그곳에서 세금과 공물을 거둘 자격은 오직 너에게만 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주어진 책임을 엄중히 수행하겠습니다.”

아지 따띤 공주는 감사한 마음으로 봉토를 받았습니다.

 

그날부터 아지 따띤 공주는 만 지역을 다스리는 영주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그곳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걷을 때 남편과 함께 센동 장군(Panglima Sendong)이란 측근 신하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당시 백성들은 현지 특산품인 나무 널빤지를 현물 세금으로 냈는데 이는 왕궁에서도 사용되는 좋은 재질의 건축자재였습니다.

 

아지 따띤 공주의 신임을 받는 센동 장군이 부하들과 함께 백성들에게 거둔 공물 널빤지들을 배에 싣고 공주의 영지인 만을 향해 항해하던 중 만 가까이에서 갑작스러운 돌풍을 맞았습니다. 만에서 발생한 용오름이 강력한 바람을 동반하고 선박에 접근하자 센동장군과 그 부하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노를 저어 속도를 높여라!”

센동 장군이 소리치며 독려했지만 배는 곧 돌풍에 따라 잡히고 말았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돌풍을 벗어나는가 싶던 센동 장군의 배는 만에 들어서기 직전 거대한 파도를 측면에 맞고 넘어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센동 장군은 물론 많은 선원들과 공물들, 값비싼 목재들도 배와 함께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계속 밀려든 파도가 가라앉는 선박을 만 인근의 또꽁(Tokong)이란 이름의 거대한 암초로 밀어 부쳤습니다. 암초에 부딪힌 선박은 산산조각이 나버렸고 배에 실렸던 널빤지들 일부는 배와 함께 바다 밑을 가라앉거나 만 안의 해변으로 파도에 밀려왔습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센동 장군을 비롯해 단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아지 따띤 공주와 그 남편은 장군과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재앙에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사고가 난 만의 이름을 발릭빠빤(Balikpapan)이라 부르게 했습니다. 널빤지들이 뒤집어졌다는 뜻이죠. 한편 센동 장군의 배가 부딪혀 산산조각난 암초는 이후 점점 더 솟아올라 하나의 섬이 되었는데 과거 ‘또꽁’이라는 암초 이름에서 따와 뚜꿍 섬(Pulau Tukung)이라 부르며 지금도 그곳에서 목숨을 잃은 센동 장군과 선원들의 넋을 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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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쯤 발릭빠빤에서 강을 거슬러 올라간 곳의 실리카 광산을 가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처음 가본 그곳에서 참 이상한 도시 이름도 다 있다 생각했습니다. ‘발릭빠빤’이라니, 깔리만탄에 벌목장과 제재소, 목재공장들이 많이 있다더니 여기서 합판들이 단체로 엎어진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일이 있었던 거네요.

 

그리고 동부 깔리만탄 민화가 나올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꾸따이 꺼르타느가라 왕국의 이름을 볼 떄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 정부가 행정수도를 이전하려는 곳이 지금은 허허벌판, 우거진 정글에 불과하지만 예전엔 한때 고도의 문명이 번성했던 곳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현대의 발릭빠빤

 

출처:

https://histori.id/legenda-asal-mula-kota-balikpap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