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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웨시 무나 민화] 라물루 이야기 (Kisah La Moelu)

beautician 2022. 5. 7. 12:19

[술라웨시 동남부 민화] 라물루 이야기 (Kisah  La Moelu)

 

술라웨시 동남부

 

옛날옛적 술라웨시 동남부 한 마을에 라물루(La Moelu)라는 이름의 남자아이가 살았는데 이제 막 청소년기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릴 때 돌아가셨죠.

 

그는 아버지와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이미 나이가 많아 생계를 돕지 못했습니다. 일은커녕 지팡이 없이는 나다니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라물루가 매일의 양식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나이가 어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고기를 낚는 일뿐이었습니다.

 

어느날 라물루는 평소처럼 강에 물고기를 낚으러 나왔는데 낚시밥인 지렁이를 잔뜩 가지고 나와 물고기가 좀 더 많이 잡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가 강가에 도착하니 물고기떼가 수면을 어지럽히고 있어 그는 빨리 낚시를 시작하려고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그래서 급히 낚시대에 미끼를 끼워 고기떼 한 가운데로 던졌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미끼를 무는 물고기가 없었습니다. 라물루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해가 중천에 뜨도록 단 한 마리 물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갈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물고기떼가 몰려다니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에 좀 더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낚시줄이 팽팽해졌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낚시줄을 당기기 시작했습니다. 낚시에는 작고 예쁜 물고기가 한 마리 걸려 있었습니다. 비록 작은 물고기였지만 너무 예뻐 한참을 바라보던 라물루는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해 집에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물고기지? 너무 예쁘게 생겼구나.”

그 물고기를 본 아버지도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이 물고기를 어떻게 하면 좋겠니? 차라니 네 동생 삼아 키워 보렴. 어차피 너무 작아서 요리해도 둘이 먹기 충분치 않잖아?”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며 라물루에게 작은 통에 물을 채워 거기 물고기를 넣어 키우라고 했습니다. 라물루는 아버지 말대로 따랐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그 물통을 들여다본 라물루는 깜짝 놀랐습니다. 밤 사이 그 물고기가 큰 자물쇠만 한 크기로 자라 있었던 겁니다. 아버지도 그걸 보고 기이하게 여겼습니다.

아버지는 물고기를 절구통에 옮겨 넣으라고 했습니다. 라물루가 아버지 말대로 절구통에 물을 채워 물고기를 옮겨놓자 다음날 또 다시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물고기가 절구통 만한 크기로 자라 있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물고기를 큰 항아리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물고기는 다시 항아리를 가득 채울 만한 크기로 자라버렸습니다. 라물루는 이제 물고기를 어디에 넣어 키워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빠, 이제 물고기를 어디로 옮겨 키워야 해요?”

아버지는 집 옆에 물을 길어 놓는 큰 통에 물고기를 옮기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다음날 물고기는 이제 그 큰 통마저 꽉 찰 정도로 자라나 있었습니다. 이제 물고기를 넣어 키울 만한 더 큰 통이 라물루에 집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라물루에게 물고기를 바다에 풀어주는 게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왜 바다에 풀어주려는 것일까요?

 

어쨌든 라물루는 아버지 말대로 물고기를 바다로 데려갔고 풀어주기 전 이름을 붙여주며 당부를 하나 남겼습니다.

“물고기야. 이제부터 네 이름은 지난데 뜨레몸봉아(Jinnande Teremombonga)야. 나중에 내가 네 이름을 부르면 바닷가로 찾아와 줘. 내가 먹을 것을 주려고 부르는 거니까.”

영리한 물고기는 잘 알았다는 듯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라물루는 물고기를 바다에 풀어주었습니다. 이제 넓은 바다에서 자유를 만끽할 물고기는 언제보다도 기뻐 보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라물루는 물고기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바닷가로 나가 물고기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지난데 뜨레몸봉아야!!”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데 뜨레몸봉아가 정말로 나타나 라물루에게 다가와 먹을 것을 먹은 후 다시 바다로 사라졌습니다. 그것은 라물루의 매일 아침 일과가 되었습니다.

 

 

어느날 아침, 여느 때처럼 라물루가 지난데 뜨레몸봉아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데 뒷편 나무 위에서 세 명의 청년들이 몰래 그 장면을 훔쳐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라물루의 사촌뻘 되는 친척들이었어요. 그들은 라물루가 이름을 부르자 나타난 커다란 물고기를 보고 깜짝 놀랐지만 곧이어 저 물고기를 잡아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됩니다.

그들은 일단 라물루가 돌아가기를 기다려 나무에서 내려와 바닷가로 다가갔습니다. 그들은 아까 라물루가 하는 걸 보았던 것과 같이 물고기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지난데 뜨레몸봉아~!”

그러자 지난데 뜨레몸봉아가 순식간에 바닷가에 나타났지만 이름을 부른 사람이 자기 주인이 아닌 것을 보고 곧바로 깊은 바다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그들은 아마 사람들이 많아 물고기가 겁을 먹은 거라 보고 한 사람만 남기고 다른 두 명은 뒤쪽으로 물러나 몸을 숨겼습니다.

그런 상태로 다시 물고기를 부르자 지난데 뜨레몸봉아가 나타났는데 이번에도 자신을 부른 게 라물루가 아니란 걸 알고 다시 바다 속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청년들은 더욱 약이 올랐습니다.

결국 그들은 한 명이 물고기를 부르고 다른 두 명은 작살을 깎아 들고 물고기에게 던져기로 작전을 짰습니다. 그 작전이 성공해, 물가로 다가온 지난데 드레몸봉아는 청년들이 던진 작살에 꿰뚫려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청년들은 물고기를 토막내서 각각 나누어 들고 집에 돌아갔습니다. 커다란 물고기를 나누었으므로 세 사람이 각각의 가족들이 함께 먹고도 남을 정도여서 그들 마음이 뿌듯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라물루는 다음날도 먹이를 가지고 바닷가로 나와 지난데 뜨레몸봉아를 불렀지만 물고기는 나타날 리 없었습니다. 한참 동안 목이 터져라 물고기를 불렀지만 나타나지 않자 라물루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지난데 뜨레몸봉아가 이름을 불러도 나타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까지 바닷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물고기를 불렀지만 결국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걱정에 가득 찬 마음으로 집에 돌아간 라물루가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말하며 눈물을 떨궜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라물루를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 물고기가 친구들을 찾으러 아주 먼 바다로 나갔는지도 모르겠구나.”

그렇게 말해주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날 밤 라물루는 무거운 마음으로 마을을 배회하다가 낮의 그 세 청년 중 한 명의 집 앞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훤히 들여다 보이는 집 안에서 가족들이 커다란 생선 요리를 식탁 한 가운데에 놓고 떠들썩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그 모습에 불현듯 지난데 뜨레몸봉아가 떠올랐습니다.

“설마 내 지난데 뜨레몸봉아를 잡아먹는 건 아니겠지?”

예의가 아닌 걸 알았지만 라물루는 그 집 문을 두드리며 그 물고기를 어디서 잡은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가족들의 시선이 물고기 자른 것을 가져온 아까의 그 청년에게 쏠리자 그는 허둥대다가 라물루의 집요한 질문에 결국 아침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습니다.

“아침에 바다에서 잡아온 거야. 왜? 네가 알던 물고기야? 너도 한 조각 맛보고 싶어? 어미도 없는 불쌍한 놈아!”

그의 목소리엔 언제나처럼 업신여기는 어조가 실려 있었습니다.

 

저 생선요리는 라물루의 지난데 뜨레몸봉아가 틀림없었습니다. 라물루의 마음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 청년은 불쌍하니 고기를 나누어 주겠다며 파파야 잎에 음식을 싸주었지만 그 안에 가시와 뼈만 들어 있었습니다. 라물루는 그나마 어딘가에 묻어줘야 하겠다고 생각하며 슬픔에 가득 차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집 앞에 지난데 뜨레몸봉아의 뼈를 묻고 밤새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라물루는 지난데 뜨레몸봉아의 무덤에서 벌어진 이상한 일에 깜짝 놀랐습니다. 무덤 위에 식물이 자라나 있었는데 몸체는 금으로 되어 있었고 잎파리는 은, 열매는 다이아몬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곧바로 아버지를 불러 그 광경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모습에 놀란 아버지가 경위를 묻자 라물루는 어제 벌어졌던 일들을 모두 아버지에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신의 축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서 솟아난 마법의 식물이 더 크게 자라도록 가꾸었고 그 소문이 퍼지자 모든 마을 사람들이 그 마법의 식물을 보기 위해 라물루의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식물은 날이 갈수록 더욱 크게 자라났습니다. 마치 매일 몰라보게 자라던 지난데 뜨레몸봉아처럼 말입니다. 라물루는 식물의 열매와 잎사귀를 조금씩 팔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라물루와 그의 아버지는 그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전의 초심을 잃지 않고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늘 관대하게 대했고 예전 라물루의 물고기를 잡아먹었던 그 세 청년의 집에도 어김없이 도움의 손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라물루는 그 마을에서 오래도록 존경받으면 살았습니다.

 

라물루 아트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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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웨시 떵가라’(Sulawesi Tenggara)라고 불리는 술라웨시 동남부엔 요즘 똘라끼(Tolaki)족과 부기스(Bugis)족이 반반쯤 섞인 인구구조를 보이지만 남부 술라웨시의 마카사르(우중빤당)의 부기스 족들이 역사와 교통이 발전하면서 술라웨시 전역으로 퍼져나간 측면이 크니 이 전설이 구전되던 당시엔 똘라끼족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이 라물루 이야기는 똘라키족의 사고방식이나 가치관을 반영하는 걸까요?

 

참고 견디는 착한 사람에게 행운이 찾아온다는 기조의 스토리이지만 라물루가 한 것이라곤 물고기를 잡아 키운 것뿐이고 실제로 특별한 것, 기적을 일으킨 것은 모두 지난데 뜨레몸봉아라는 이른의 물고기였습니다. 이 물고기가 용왕의 아들이었다거나 여인으로 변신해 라물루와 혼인했다거나 하면 우리에게 친숙한 일반적인 전설들과 유사했을 텐데 죽어서 주인에게 복을 가져다주는 식의 전개는 특이하면서도 한편으로 좀 섬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물고기를 잡은 세 명의 청년 역시 꼭 비난받아야 하는지도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라물루가 밥을 주는 물고기였다 해도 공유지인 바닷가에 살며 딱히 누가 주인이라고 표시하는 목줄이나 인식칩 같은 것도 없었으니 청년들이 힘을 합쳐 큰 물고기를 잡은 것은 어찌 보면 언제든 벌어질 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출처:

https://histori.id/kisah-la-moelu-si-anak-yat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