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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쩨의 또 다른 용 전설: 알루에 나가(Alue Naga)

beautician 2022. 5. 5. 11:32

알루에 나가 (Alue Naga) 고사

지도상 반다 아체 북방의 알루에 나가 지역

 

알루에(Alue)란 북부 수마트라 아쩨 방언으로 강의 지류나 늪을 말합니다. 나가(Naga)란 인도네시아어로 용()을 뜻하므로 알루에 나가(Alue Naga)란 나가 용의 늪’, ‘용의 습지또는 큰 뱀의 지류같은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아쩨에는 실제로 이런 지명을 가진 곳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전설에 등장하는 용은 서양의 날개 달린 드래곤이나 우리가 잘 아는 동아시아의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그 용이 아니라 대개는 큰 뱀을 뜻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녹색용이라 부르는 생물은 실제로 용이 아니라 거대한 뱀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야기가 이해됩니다.

 

어느날 술탄 므라(Sultan Meurah)는 꾸타 라자(Kuta Raja) 인근 마을 주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소식을 듣었습니다. 꾸따 라자는 지금 반다 아쩨 도시가 바다에 접한 지역을 말합니다. 술탄 므라가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려 그곳을 방문했는데 그곳 라묭(Lamyong)산 산자락에 사는 사람들은 가축들이 사라지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고 지진과 산사태가 빈번해 불안에 떨고 있었습니다. 선대 술탄, 즉 술탄 알람(Sultan Alam)이 세상을 떠나기 전부터 벌어지곤 했다고 말했습니다.

 

술탄은 궁에 돌아가자마자 절친 렝갈리(Renggali)를 궁에 불러들였습니다. 그는 라자 링에 무데(Raja Linge Mude)의 동생이었어요. 라자 링에는 술탄 알람의 동생이었으니 렝갈리는 술탄 므라의 사촌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무터 라묭산이 좀 수상했어. 그곳 능선 밑이 언젠가부터 늪지대가 되어 항상 물이 차 있게 되었다는데 어디선가 샘이라도 터진 걸까? 그렇다고 흘러넘쳐 강이나 호수가 될 정도는 아닌 모양이더군.”

술탄므라의 말에 렝갈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형님한테 들은 얘기인데 그 산능선이 어느날 갑자기 거기 나타났다고 해요. 옛날에 아버님이 실종된 이후 형님이 찾으러 다니다가 처음 꾸타 라자에 갔을 때부터 그 산이 수상해 보이더랍니다. 마치 그 산이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거에요.”

렝갈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습니다.

네가 가서 그 산능선에 대해 좀 조사를 해주겠니?”

맡겨 주세요.”

렝갈리는 술탄에게 그렇게 대답한 후 즉시 라묭산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는 바다와 맞닿은 북쪽부터 남쪽 경사면까지를 둘러보고서 뭔가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그는 가파른 경사를 타고 산정상까지 올라갔는데 발걸음을 옮기다가 갑자기 발 밑에서 따뜻한 물이 솟아나오는 것을 느끼고 급히 했어요. 깜짝 놀란 렝갈리는 급히 물 속에서 발을 빼면서 땅 위를 한 바퀴 굴러 몸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라자 링에의 아들이여, 날 용서하시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 렝갈리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물었습니다.

거기 누구요?”

그러자 아까의 따뜻한 물이 허벅지까지 잠기도록 올라왔습니다.

난 용이오. 당신 아버지인 왕의 친구.”

언덕은 이번에도 천둥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렝갈리가 자세히 보니 덤불과 수목들이 잔뜩 자라난 눈 앞의 언덕이 큰 뱀의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길다란 산능성 자체가 큰 뱀의 몸통이었던 것입니다.

, 내가 당신 머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럼 내 아버지는 어디에 있소?”

그렇게 말하는 중에도 따뜻한 물은 계속 그 수위가 올라와 렝갈리의 엉덩이까지 잠겼습니다.

술탄 알람을 불러오시오. 그럼 내가 모두 설명하겠소.” 언덕이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렝갈리는 급히 그 이상한 산을 떠나 궁전에 돌아온 것은 이미 날이 저문 후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을 술탄에게 낱낱이 보고했습니다.

 그 능선이 사실은 부왕과 함께 사라진 그 녹색 용이란 말이오? 용이 왜 부왕을 만나려 하는 것이오? 부왕이 이미 승하한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오?” 술탄 므라는 궁금증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용이 산에 동화되어 몸 위에 풀과 나무가 자라날 정도로 그곳에 꼼짝 않고 수십년 간 웅크리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그곳 주민들이 불안해하던 지진과 산사태의 이유도 그제서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물이 차오르는 이유는 무엇이오?”

그게……, 용이 울 때마다 물이 차오르는 것이 아마도 용의 눈물인 것 같습니다.”

 

라자 링에의 집이라고 알려진 곳

 

두 사람은 곧바로 궁전을 출발해 다시 라묭산에 다다랐습니다. 그러자 산 전체가 갑자기 부르르 떨었습니다.

왜 술탄 알람은 오지 않은 것이오?”

용이 물었습니다.

난 술탄 므라, 부왕 술탄 알람의 아들이요. 부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신 지 오래오! 녹색용! 그대는 어째서 이런 모습이 된 것이오? 우린 그대가 이미 그대의 땅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그대와 함께 했던 라자 링에(Raja Linge)는 어디 있소?”

술탄 므라가 그렇게 묻자 용은 땅이 꺼지듯 깊은 탄식을 흘렸습니다. 용이 거대한 머리를 조금 들어올리자 산 전체가 요동치며 인근 산자락에 산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모두 내 탓입니다. 내가 그를 배신했어요. 그러니 이 꼴이 되어 마땅합니다. 뚜안 따파(Tuan Tapa)가 많은 도움을 준 술탄 알람에게 선물로 준 성스러운 흰색 물소를 내가 가로채 먹어치우고 라자 링에도 내 손으로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 말에 렝갈리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라자 링에는 그대의 절친이지 않았소? 왜 그를 당신이 죽인 것이오?” 렝갈리가 물었습니다.

술탄께서 알다시피 난 부왕이신 술탄 알람을 섬겨 왔습니다. 술탄 알람께서는 특별한 영력이 깃든 검들을 그의 친구들에게 선물로 가져다주라고 명령을 했고 그래서 난 왕국 곳곳을 돌며 검을 전달했어요. 이제 라자 링에와 뚜안 따빠(Tuan Tapa)에게 줄 두 자루의 검만 남은 상태였죠. 난 라자 링에를 먼저 찾아간 다음 뚜안 따파를 마지막으로 방문할 생각이었는데 마침 그도 그도 아내에게 줄 약을 구하기 위해 뚜안 따파에게 가려던 참이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함께 길을 떠나 뚜안 따파의 처소에 도달했죠.”

뚜안 따파는 남 아쩨 따빡뚜안(Tapaktuan) 지역의 해변 암석 위에 거대한 발자국을 남긴 은둔 거인이자 명상을 통해 도를 깨우친 도인입니다. 그는 아스라라노카 왕국의 전 국왕을 도와 그곳에 살던 용들을 처치하고 공주를 구해주게 되지만 지금 이 사건의 시점은 그 일이 벌어지기 오래 전, 아직 인간들과 용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시대의 일입니다.

검을 받은 뚜안 따파는 그 답례로 술탄 알람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며 성스러운 흰 물소 여섯 마리를 맡겼습니다. 크고 잔뜩 살이 오른 놈들이어요. 함께 갔던 라자 링에는 뚜안 따파에게서 부인을 위한 약을 얻어 고마운 마음에 나를 도와 꾸따 라자까지 함께 흰 물소들을 몰고 가주겠다고 자원했죠. 그래서 우린 링에를 들러 부인에게 약을 전달한 후 술탄 알람이 있는 도성을 향했습니다. 하지만 길을 가는 내내 난 살찐 흰 물소들을 보고 군침을 흘렸습니다. 그런 물소들은 원래 엄청나게 맛있거든요. 그래서 난 마침내 두 마리를 몰래 잡아먹고 말았어요. 물소가 없어져 난리가 나 전전긍긍하는 라자 링에게 호랑이 왕인 꿀레(Kule)가 물어간 것이라고 거짓말을 둘러댔는데 라자 링에는 당장 호랑이 왕 꿀레를 찾아내 죽여 버렸습니다. 당시 라자 링에의 무예는 왕국에서 인간들이나 용이나 심지어 마물들을 통틀어 누구도 이길 수 없을 만큼 압도적으로 월등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내내 렝갈리는 이를 악물었고 술탄 므라는 아무 말없이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습니다. 녹색용은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다시 꾸따 라자를 향해 가던 도중 쁘상안 강변에서 잠시 쉬었는데 앞서 먹었던 흰 물소의 환상적인 맛이 자꾸 떠올라 난 다시 식욕을 참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다시 두 마리를 더 잡아먹었는데 물소가 없어진 것을 안 라자 링에가 격분하기에 난 또 악어들의 왕 부야(Buya)가 흰 물소들을 물고 갔다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러자 라자 링에는 악어들을 쫓아가 부야를 죽여버렸어요. 그런 후 마침내 꾸따 라자의 관문인 이곳 라묭산에 도착했는데 라자 링에는 도성에 들어가기 앞서 인근 강가에서 목욕재계하고 의관을 정재했어요. 난 그 사이 다시 찾아온 식욕을 참지 못하고 나머지 흰 물소 두 마리를 마저 먹어치워 버렸어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어떤 변명도 둘러댈 수 없었습니다. 의관을 정제하고 돌아오던 라자 링에가 내가 흰 물소들을 삼키는 장면을 보았던 겁니다. 라자 링에는 내가 그동안 거짓말을 했음을 알고 불같이 화를 냈고 결국 우리 사이에 싸움이 벌어졌어요. 그런데 그는 여러 번 날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머뭇거리며 차미 죽이지 못했고 오히려 내가 기회를 틈타 그를 먼저 죽이고 말았어요.”

용은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날 벌해 주세요. 죽음으로 죄를 씻겠습니다.”

용은 흐느끼면서 그렇게 말했습니다.

 

술탄 므라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왜 여기 붙박혀 있는 것이오?”

라자 링에가 죽기 전 찌른 칼이 내 몸을 관통해 온몸이 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바람에 땅이 갈라지면서 내 몸 대부분이 그 속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수십 년 동안 여기서 이렇게 붙박힌 채 날 죽일 자격을 가진 용사가 와줄 것을 기다렸습니다. 이곳은 내 친구 라자 링에가 묻힌 곳. 이제 라자 링에의 아들과 술탄 알람의 아들이 왔으니 두 사람의 손에 내가 여기서 죽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술탄 므라는 턱수염을 문지르며 눈을 가늘게 뜨고 한동안 생각한 끝에 렝갈리에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렝갈리, 그의 말대로 당신과 당신의 형제들은 그를 죽음으로 벌할 권리가 있어요. 당신에게 처형을 맡기겠소..”

하지만 렝갈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 아버님도 저 녹색용을 죽이려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내가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나는 오히려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겠습니다. 아버지도 그렇게 원하실 겁니다.”

하지만 용은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며 처형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술탄 므라 역시 그의 방면에 동의했습니다.

두 사람은 어렵사리 용의 몸을 뒤집어 그의 몸 아래쪽에 라자 링에의 검이 깊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렝갈리가 검을 뽑았지만 녹색용은 여전히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술탄 므라가 말했습니다.

넌 이미 오랫동안 라자 링에로부터 벌을 받은 셈이다. 그의 아들이 너를 용서했으나 이제 넌 너의 나라로 돌아가거라.”

그제서야 용은 서서히 몸을 움직여 바다로 향했습니다. 용이 이 모든 이야기를 술탄 므라와 렝갈리에게 이야기하는 동안 흘린 눈물은 이미 산기슭을 모두 덮을 정도였습니다. 용이 미끄러지듯 움직이면서 그를 따라 물길이 만들어지며 강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훗날 꾸따라자 인근에 만들어진 이 물길을 알루에 나가(Alue Naga), 즉 용의 지류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그곳 습지에는 당시 녹색용이 흘린 눈물이 아직 진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용이 돌아간 그들의 나라는 과연 어디일까요?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아쪠에서 사람들은 이 전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알루에 나가 게임도 있습니다.
알루에 나가의 습지
알루에 나가의 해변

 

출처:

https://ceritaanak.org/legenda-alue-naga/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