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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안 따파와 뿌뜨리 나가 전설 (아쩨 민화)

beautician 2022. 5. 4. 12:04

[아쩨 민화] 남부 아쩨에 남은 거인의 발자국

 

따빡 뚜안 따파  (Tapak Tuan Tapa)

 

따빡뚜안(Tapaktuan)은 남아쩨군(Kabupaten Aceh Selatan)의 군청 소재지입니다. 그곳에는 많은 매력적인 관광지들도 있고 신비로운 전설들도 깃들어 있습니다. 따빡뚜안은 꼬따나가(Kota Naga), 즉 ‘용의 도시’라고도 불립니다. 이 도시가 용의 전설과 관련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죠.

 

그곳엔 거인의 발자국 같은 것이 바위 위에 찍혀 있어 사람들 이목을 사로잡는데 따빡 뚜안 따파(Tapak Tuan Tapa)라고 부르는 곳입니다. ‘뚜안 따파의 발자국’이란 뜻이죠. 그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색상이나 모양이 어딘가 인의적 손길이 닿은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게 정말 뚜안 따파라는 엄청난 거인의 발자국이라고 애써 믿어 봅니다. 사림이 손을 댔다면 도대체 누가 왜 저 외딴 해변 바위 위에다가 엄청난 노력과 시간을 들여 세상이 놀랄 예술작품이 아니라 저런 엉성한 발다닥 조각을 해 놓았겠어요.

 

그 발자국은 남아쩨 따빡뚜안면 감봉빠사르(Gampong Pasar) 마을은 따빡뚜안 도심에서 1.5km, 아쩨주 주도인 반다아쩨나 북수마트라의 메단시에서는 500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곳에 가려면 바닷가 바위들 몇 개를 힘겹게 지나야 하지만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구경거리입니다. 길이 6미터, 폭 2.5미터의 발자국이 바위에 깊이 새겨진 모습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따빡뚜안의 람뿌산(Gunung Lampu)이 해변으로 뻗어나온 곳에 이어져 있습니다.

 

그 발자국은 거인 따빡 뚜안이 바다 한가운데로 큰 도약을 하기 위해 발디딤을 한 곳이라고 전해집니다. 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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쉑 뚜안 따파(Syekh Tuan Tapa)라는 이름의 거인이 그곳에서 은거하며 도를 닦았습니다. 깨어 있을 때나 잘 때나 언제나 창조주를 기억하며 경배하고 기도했다고 묘사된 것으로 보아 그는 신앙심과 도력이 깊은 인물이었습니다. 신앙심 깊은 거인…… 좀처럼 만나기 힘든 캐릭터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띠문마스(Timun Mas)와 녹색거인의 동화, 발리 바뚜르 호수의 거인 꺼보 이와(Kebo Iwa)의 이야기 등에서 등장하는 거인들은 모두 인간사회에 동화되지 못한 거칠고 치명적인 존재들이었으니까요.

 

뚜안 따파는 매일 남 아쩨의 산 속에 있는 한 동굴 속에서 깊은 명상에 잠겼고 신과 진리를 향한 그의 진심은 명상 속에서 일반인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세상과 우주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따파(Tapa)란 신비주의적 명상을 뜻하는 단어이고 뚜안은 경칭이니 뚜안 따파는 실제 이름이라기보다는 ‘명상도인’ 정도의 의미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한편 그 지역에는 용들의 나라에서 온 한 쌍의 용이 바다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자기 나라에서 쫓겨난 이유는 자식을 낳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판본들이 이 용들을 ‘중국에서 온 용’이라고 묘사하는데 그것은 뚜안 따파에게 이슬람적 요소들이 많이 덧씌워진 것처럼 아마도 후대에 각색되어 첨가된 이미지일 것으로 보입니다. 여의주를 문 중국의 용들, 날개가 달린 강력하고도 사악한 서양의 용들의 이미지가 들어오기 전, 인도네시아에는 니블로롱(Nyi Bloron)으로 대변되는 힌두의 큰 뱀이 드래곤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설화와 전설 속에서 ‘나가(naga)’ 즉 용이란 이름을 가지고 등장하는 것들은 사실 현대의 드래곤이라기보다는 거대한 뱀으로 이해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 그들이 그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한 인간 여자 아이를 발견했을 때 마음이 복잡 미묘했겠죠. 그들은 아기를 급히 뭍으로 데리고 나왔는데 마침 그곳은 뚜안 따파가 명상수련을 하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용들은 아기가 성인이 될 때까지 잘 키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아스라라노카 왕국(Kerajaan Asralanoka)의 공주였습니다.

 

문제는 공주의 부모임 아스라라노카의 국왕과 왕비가 본국의 왕좌를 동생에게 양위하고 온 세상을 돌아다니며 십 수년 간 공주를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쩨 지역에서 용이 키우는 아름다운 소녀가 공주를 잃어버리던 당시 함께 없어진 왕실의 펜던트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자신의 딸이라 확신하면서 멀리 인도에서 인도양을 건너 남 아째까지 배를 몰고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용을 만나 공주를 돌려달라고 했지만 용들은 그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습니다. 공주는 친딸처럼 여기며 키운 용들로서도 결코 양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국왕은 용들이 경계심을 품지 않고 있던 사이 무작정 공주의 손을 잡아 끌어 배에 태웠습니다. 공주로서는 자신을 키워준 용들도, 자신을 낳아 주고 십 수년간 온천지를 돌며 자신을 찾으려 애썼던 인간 부모님들 사이에서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 사이 용들은 딸을 납치당해 크게 화가 나 배를 뒤쫓아 바다 한복판에서 격전이 벌이게 됩니다.

 

그 싸움 소리에 동굴 속 뚜안 따파는 명상에 방해를 받고 짜증이 나 자신이 늘 가지고 다니던 나무 봉을 들고서 바닷가로 나가 암석을 세차게 딛고 날아올라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바다 한 가운데를 향했습니다. 그때의 그 발자국이 아직도 바닷가 바위 위에 남아 있는 겁니다.

 

쉑 뚜안 따파는 나무로 만든 봉을 휘두르며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두 마리의 용을 죽였습니다.그 싸움을 통해 일대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전해지는 만큼 뚜안 따파가 일방적으로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바다가 갈라지고 많은 섬들이 박살나는 엄청난 전투였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왕과 왕비는 공주를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뚜안 따파에게 감사하며, 본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아쩨에 남기로 마음먹고 쉑 뚜안 따파가 사는 곳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평생 뚜안 따파에게 감사하며 섬기겠다는 생각이었죠. 어차피 본국의 왕좌를 동생에게 물려준 지 오래였으므로 용들과의 싸움으로 큰 피해를 입은 배를 굳이 고쳐 타고 먼 뱃길에 오를 필요가 없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훗날 그곳에서 세워지게 되는 따빡뚜안 마을 사람들의 선조가 됩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이슬람 근본주의를 내세우는 오늘날의 아쩨인들 상당수에겐 힌두 인도인의 피가 흐르고 있는 셈입니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뚜아 따파와 싸운 두 마리 용 중에 수컷만 목숨을 잃고 암컷은 살아남아 더욱 치열한 후반부 전투를 벌인 후 어디론가로 사라지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남편이 죽는 것을 본 암컷 용은 크게 분노해 날뛰며 우선 섬 하나를 둘로 갈라놓았는데 그 섬은 지금 뿔라두 두아(Pulau Dua), 즉 ‘두 개의 섬’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뿔라우 두아

 

암컷은 그중 큰 섬을 좀 더 산산조각 내버렸는데 그 잔해들이 바다 위에 쏟아져 작은 섬들이 되었고 지금도 아쩨 싱낄 군(Kabupaten Aceh Singkil)에 뿔라우 반약(Pulau Bayak), 즉 ‘많은 섬’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뿔라우반약

 

전투에서 살아남은 이 암컷 용의 이야기가 아쩨의 오래된 전승들 속 어딘가에 숨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일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정작 쉑 뚜안 따파는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고 그의 발자국만이 거기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명색이 은둔자이며 우주의 비밀을 찾는 도인이었으니 세속적인 명예나 인간들과의 관계가 그리 소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평생 선하게 살았고 인간 아기를 귀하게 키운 두 마리 용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인 뚜안 따파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이 과연 올바른 것이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여지가 있습니다. 자신의 원하는 바를 ‘되찾은’ 아스라라노카의 전 국왕-왕비나 우주의 진리를 추구하는 명상을 방해받았다고 용들을 쳐죽인 뚜안 따파보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은 채 버려진 인간 여자아기를 정성들여 키우며 돌본 두 마리 용이 이 전설 속 가장 선한 등장인물들이 아닌가 합니다. 그 공주가 뿌뜨리 나가(Putri Naga), 즉 용의 공주라고 불렸다는 것은 인간들과의 교류가 있었거나 최소한 인간들에게 목격되는 상황에서도 용들이 인간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런 착한 용들이 뿌뜰 나가를 잘 키워준 치하를 받는 게 아니라 뚜안 따파를 영웅으로 만드는 이 전설 속에 등장해 한 마리는 억울한 죽음을 맞고 다른 한 마리는 쫓겨나고 마는 모습은 매우 불공평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전설은 그렇게 전개되고 용을 죽인 도력의 거인 뚜안 따파는 이렇게 이 전설에서 모습을 감추지만 알루에 나가(Alue Naga) 같은 다른 전설에 ‘말만 하면 다 알 만한 기존인물’ 격의 조연 캐릭터로 다시 등장하기도 합니다.

 

뚜안 따빠의 전설이 남긴 유산들은 따빡뚜안 지역 많은 지형지물에 깃들어 있습니다.

 

해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상에 떨어진 뚜안 따파의 터번이 지금은 돌이 되어 있습니다. 그 꼬삐아는 뚜안 따파가 용들과 싸울 때 떨어뜨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 전투에 사용했던 나무 봉도 돌이 되어 있습니다.

 

뚜안 따파의 터번? 용의 간?

 

발자국이 있는 곳에서 5km 정도 떨어진 바뚜이땀 마을(Desa Batu Itam) 마을엔 용의 간이 떨어져 산호초가 된 곳이 있고 바뚜메라 마을(Desa Batu Merah)엔 용의 비늘이 우수수 떨어져 돌이 되었습니다. 이건 꽤 그럴 듯한 모양입니다.

 

바뚜메라 마을의 용비늘 바위

 

전승에 따르면 이 간과 비늘은 당시 뚜안 따파에게 패한 수컷 용의 잘린 몸 일부라고 합니다. 

 

발자국 바위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다마르 뚜똥 마을(Desa Damar Tutong) 바뿌 버르라야르 해변(Pantai Batu Berlayar) 마치 범선의 돛처럼 보이는 암초도 있습니다.

 

뿔라우 까빨 버르라야르 (pulau Kapal Berlayar)

 

한편 따빡뚜안 감봉빠당(Gampong Padang)에는 폭 2미터, 길이 15미터의 뚜안따빡의 묘지라고 말하는 거인묘가 발자국 바위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뚜안 따빠의 것으로 알려진 남아쩨의 거인묘. 오른쪽은 항공사진

 

정말 뚜안 따빠의 묘인지 발굴해보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용솟음치지 않습니까? 이래서 후세의 호사가와 인류학자들 호기심에 시신이 능욕당하지 않으려면 화장 만이 답입니다. 이곳에 그의 무덤이 남은 것은 뚜아 따파가 용과 싸운 후 병에 걸려 4년 후 라마단 금식월에 세상을 떠났다는 또다른 버전에 따른 것입니다. 이 무덤도 따빡뚜안 지역에 있는 람뿌 산(Gunng Lampu) 인근에 위치하며 예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에도 여러 차례 정비하여 새 단장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끝)

 

 

색상만 보면 시멘트로 모양을 잡은 듯한 느낌이 매우 강합니다.

 

 

 

출처:

https://steemit.com/history/@parwisnst/cerita-rakyat-aceh-selatan-tuan-tapa-dan-si-putri-naga

https://www.goodnewsfromindonesia.id/2021/06/07/legenda-tuan-tapa-telapak-kaki-raksasa-di-kota-naga-aceh-selatan

https://thetapaktuanpost.com/kategori/travel/tuan-tapa-legenda-telapak-kaki-raksasa-di-aceh-selatan/

https://bobo.grid.id/read/08673865/legenda-putri-naga-di-kota-tapaktuan-aceh?page=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