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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섬이 자바섬에서 분리된 이유

beautician 2022. 5. 6. 11:55

[정리] 발리해협 생성고사

 

 

발리 해협

 

옛날 옛적, 시디 만트라(Sidi Mantra)라는 강한 도력을 가진 브라흐만 계급의 도인이 발리에 살았습니다. 그는 상향 위디야(Sanghyang Widya)라고도 불리는 바타라 구루(Batara Guru)신의 축복을 받아 큰 재물과 아름다운 아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힌두의 바타라 구루 주신은 예전 <자바 태고의 왕 아지사카(Ajisaka)> 이야기 속에서 한번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혼인 후 몇 년이 지나 그는 아들을 낳아 마닉 앙꺼란(Manik Angkeran)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마닉 앙꺼란은 잘생기고 영리한 청년으로 자라났지만 청소년기에 도박에 빠져 성인이 되어서도 도박에서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도박에서 돈을 잃으면 부모 소유의 물건들을 잡혔고 사람들에게 돈을 빌리면서도 부끄러움을 몰랐죠. 그렇게 빌린 돈을 갚지 못해 빚쟁이들에게 쫓기게 되면 늘 부모에게 다시 손을 벌렸으므로 집에 돈과 재물이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시디 만트라는 신들에게 기도를 올리며 도움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이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시디 만트라야. 아궁산(Gunung Agung) 분화구에 사는 나가 바수키(Naga Besukih)가 지키고 있는 재물이 있다. 그에게 가서 재물을 나누어 달라고 부탁하렴.”

 

시디 만트라는 곧바로 아궁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중간의 모든 역경을 딛고 마침내 아궁산 분화구 가장자리에 도착한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가져온 작은 종을 꺼내 울리며 주문을 외워 나가 버수키를 불러냈습니다. 그 주문에 응해 용이 분화구 속에서 서서히 기어올라왔습니다. 그는 마치 시디 만트라가 분화구로 찾아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용트림하듯 몸을 비틀자 몸을 감싼 비늘 속에서 보석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시디 만트라는 용에게 감사의 예를 표하고 보석들을 잘 주워담은 후 그곳을 떠났습니다.

 

아궁산

 

집에 돌아간 그는 그 보석들을 판 돈으로 마닉 앙꺼란이 지고 있던 큰 빚들을 모두 갚고 남은 돈을 마닉에게 주며 다시는 도박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도박벽을 그렇게 간단히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마닉은 그 길로 도박장에 달려가 재물을 모두 잃고 말았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돌아가 보석을 더 달라고 요구했지만 이미 남은 보석은 없었습니다. 시디 만트라는 아들에게 크게 실망해 돈을 달라는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마닉 앙꺼란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도박이 그렇게 무섭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어디에서 그 보석들을 얻어 왔는지 백방으로 알아보았고 결국 어머니를 통해 아버지가 아궁산에서 보석이 든 자루를 들고 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마닉은 즉시 아궁산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역시 명색이 브라흐만이자 도인의 아들답게 주워들은 풍월은 있었지만 어떤 주문을 외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겐 아버지가 잘 때 훔쳐온 작은 종이 있었습니다. 아궁산 분화구에 도착한 그는 주문을 외지 못하는 대신 귀청이 떨어지도록 요란하게 종을 쳐댔습니다. 그러자 나가 바수키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용이 나타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마닉 앙꺼란을 겁에 질리고 말았습니다. “인간, 여기 온 이유는 무엇인가?” 용의 질문에 마닉은 띄엄띄엄 자기가 원하는 바를 말했습니다. 지혜로운 용은 한참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겠다. 하지만 네 행실을 고치겠다는 약조를 해야 해. 도박에서 손을 끊거라. 그렇지 않으면 인과율(카르마)의 형벌이 너를 찾아올 것이다.”

 

마닉은 자기 눈 앞에 쏟아져 나온 온갖 보석과 금강석에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마음 속에 나쁜 생각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는 더 많은 금은보화를 얻기 바랐고 그 모든 보석들이 용의 비늘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용의 몸 속에 엄청난 재물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몰래 칼을 꺼낸 후 몸을 돌려 분화구 속으로 들어가려는 나가 버수키의 꼬리를 내리쳐 잘라 들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용맹하고 강력한 용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이었습니다. 나가 버수키는 단순히 현명한 조언을 하고 재물을 나누어주는 유약한 종류의 용이 아니었던 겁니다. 급히 몸을 돌려 달아나는 마닉을 따라잡은 용이 그의 발을 살짝 핥자 마닉의 몸에 불이 붙어 금방 한 줌의 재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나가 바수키의 꼬리를 끊는 마닉 앙꺼란

 

마법의 종이 없어진 것을 알고 아들의 소행이라 생각한 시디 만트라가 그 뒤를 쫓아 아궁산 분화구까지 도착했을 때엔 이미 사고가 터지고 만 후였습니다. 그는 재가 되고 만 아들의 흔적을 보고 슬픔에 빠졌지만 황망함을 거두고 다시 가부좌를 튼 후 정상적인 주문으로 나가 버수키를 불러냈습니다. 그는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했고 지혜로운 용은 시디 만트라의 진심과 그의 인품을 존중했습니다.

“내 꼬리를 다시 붙여주는 조건으로……!”

전장에서 적의 대군을 물리치고 사람들 병을 고치고 죽은 이도 살려내곤 하던 시디 만트라가 자신의 아들을 살려내지 못하는 거처럼 거대한 도력 덩어리인 나가 버수키 역시 신에 버금가는 온갖 조화를 부릴 수 있었지만 자신의 잘린 꼬리를 스스로 붙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시디 만트라가 아들의 재가 남은 곳에서 용의 꼬리를 가져와 감쪽같이 붙여주자 나가 버수키 역시 마닉 앙꺼란을 부활시켜 주었습니다. 시디 만트라는 어리둥절해하는 아들의 머리를 눌러 용 앞에 조아리도록 하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

“내가 네 응석을 너무 받아주었기 때문이겠지. 이제 넌 더 이상 나와 같은 집에, 같은 장소에 살 수 없다.”

분화구에서 내려온 시티 만트라는 아들에게 그렇게 말하며 순식간에 아들의 눈 앞에서 사라져버렸고 그가 있던 자리에서 물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물은 점점 더 불어나 호수가 되고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시티 만트라가 살던 곳과 아궁산 사이에 바다가 생겨 더 이상 서로 오갈 수 없게 되었는데 그것이 지금의 자바섬 동단과 발리섬 사이에 위치한 발리해협입니다. 예전엔 자바섬과 육지로 연결되어 있던 발리가 이 사건으로 섬으로 떨어져 나가고 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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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학적으로 발리섬은 2,300만 년 전 자바섬 동쪽 수중화산 활동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 합니다. 바다속에서 분출된 마그마가 굳어 발리섬을 만들었지만 당시엔 자바섬에 연결되어 있다가 후속 화산작용으로 인해 결국 섬으로 분리되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시디 만트라와 나가 버수키의 전설이 아주 틀린 것만은 아닙니다.

 

발리해협 고사 아트 모음

 

 

출처:

https://www.goodnewsfromindonesia.id/2019/08/20/dongeng-rakyat-asal-usul-selat-b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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