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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방송]대놓고 말하지 않는 끄자웬(Kejawen) 문화

beautician 2022. 4. 28. 12:07

대놓고 말하지 않는 끄자웬(Kejawen) 문화

 

 

현대 인도네시아인들의 정신세계를 논하자면 전체 인구의 87%가 가지고 있는 이슬람 신앙과 공화국 건국이념인 빤짜실라(Pancasilla) 같은 것을 들 수 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저변에 깊고 넓게 깔린 끄자웬(Kejawen) 문화를 우선 이해해야 한다.

 

끄자웬이란 어원상 ‘가장 자바적(Java的)인 것'이란 뜻인데 요컨대 자바섬에 사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세계관과 생활철학이다. 당연히 신비주의적 토속신앙도 포함된다. 그래서 정통 이슬람 입장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모습들이 도처에서 발견되곤 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인도네시아 중앙정부에서도 왕실의 권위를 인정하는 중부자바의 족자 술탄국, 즉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곳이 자바섬 남쪽 바다 마물들의 여왕 니로로키둘(Nyi Rorokidul)을 왕실의 수호신이자 역대 술탄들의 영적인 왕비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의 유일신이 토속신앙의 용왕쯤 되는 존재와 공존하는 것은 중동의 정통 이슬람이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른바 끄자웬 이슬람이라고도 불리는 자바인들의 독특한 이슬람 종교관의 배경은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다양한 설명이 가능하지만 인도네시아에 본격적으로 이슬람이 전파되기 시작하던 15-16세기를 배경으로 이른바 왈리 송오(Wali Songo)라 불리는 이슬람 포교자들 기사와 전설의 스핀오프 성격인 오스만투루크 출신 이슬람 퇴마사 쉑 수바키르(Syekh Subakir)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이슬람과 자바 토착신앙의 충돌과 봉합과정을 대략 유추해 볼 수 있다.

 

당시 자바섬의 우거진 정글 속에 득실거리던 귀신과 악한 진(dzinn-악마)들이 현지인들 마음을 지배하며 이슬람 전파를 방해하고 있었다. 이에 오스만투르크 술탄 무하마드 1세의 칼리프로부터 명을 받은 쉑 수바키르가 아랍에서 신성한 검은 돌을 품에 품고 자바섬 한복판인 띠다르산(Gunung Tidar)까지 가져와 그 정상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자바섬의 영적세계에서는 벼락과 불비가 폭풍과 함께 내리치기 시작했고 검은 돌이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에 귀신과 마물들이 견디지 못해 바다로 도망치면서 대혼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띠다르 산에서 9천 년을 살아온 진들의 왕 삽다빨론(Sabda Palon)이 나와 쉑 수바키르와 40일 밤낮을 싸웠지만 승패가 나지 않았다. 그러자 삽다빨론은 이슬람 전파를 방해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서면서 그 대신 자신들을 섬기는 인간들의 개종을 강요하지 말고 기존의 관습과 문화를 파괴하지 말 것을 요구했고 쉑 수바키르는 고심 끝에 그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런 후 삽다빨론은 초토화된 띠다르산을 떠나 머라삐산(Gunung Merapi)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머리삐산이 요즘도 가끔 분화하며 용암을 분출하는 것은 그곳에 깃든 삽다빨론의 심기가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지만 정통 이슬람과 토착신앙이 뒤섞여 자바에서 끄자웬 이슬람이란 형태로 발전한 것에 대한 일종의 설명이자 변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실제로 15-16세기의 수난 깔리자가(Sunan Kalijaga), 수난 꾸두스(Sunan Kudus) 같은 왈리 송오들은 전설과 민화 속에서 포교사라기보다는 앞날을 내다보며 온갖 도술과 기적을 행하는 끄자웬 도사의 면모를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쉑 수바키르와 삽다빨론이 이슬람 포교 원칙을 담판으로 정한 것처럼 당시 생경한 외래 종교인 이슬람을 토착문화와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하여 자바땅 연착륙을 도운 인물들이라 이해된다.

 

그래서 조율과 화합의 끄자웬 문화 속에선 루꾼(rukun)과 무샤와라(musyawarah)가 무엇보다도 중요시되는데 간단히 정의하자면 루꾼이란 ‘진정성 여부를 차치한 표면적 화합과 연대’, 무샤와라는 ‘설득과 양보를 통해 만장일치를 이끌어내는 다자간의 의사결정방식’을 말한다. 쉑 수바키르와 삽다빨론의 담판이 그랬고 종교와 문화가 서로 다르고 방대한 지역을 아우르는 섬과 민족들이 인도네시아의 기치 아래 하나의 국가로 묶여 현대 세계사에 등장하게 된 것 역시 루꾼과 무샤와라의 끄자웬 문화가 작동한 결과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독립 당시 빤짜실라 이념에 이슬람 유일신 신앙사상을 꼭 넣으려 했던 정통 이슬람 인사들이 그 의견을 양보하지 않았다면 기독교 신앙이 강했던 메단이나 북부 술라웨시, 힌두교의 발리, 토속신앙이 강한 누사떵가라 등은 애당초 인도네시아에 편입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모두에게 반드시 유익한 것만은 아니다. 필연적으로 만족하지 못한 측이 분명히 생기지만 루꾼을 위해 속으로 분을 삭여야 하고 꼭 해야 하는 말이지만 화합과 만장일치를 위해 결국 하지 못하거나 해서는 안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신수도 이전

지난 4월 11일(월) 수천 명의 대학생들이 지난 11일(월) 중부 자카르타와 서부자바 및 다른 여러 도시에서 시위를 벌였다. 대학생 집행위원회 전국연합(BEM SI)의 기치 아래 모여든 학생들은 조코 위도도 대통령 임기연장 논의 자체는 물론 국회의원들이 그간 대통령 임기연장을 가능케 할 전제조건인 헌법 개정 시도 조짐에 대해 강력히 반대했다.

 

학생들이 국회의사장 콤플렉스 앞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오후 2시경이었다. 시위 초반은 전반적으로 질서가 지켜졌지만 국회의원들과의 대화를 요구한 학생들의 요구에 부응해 그린드라당 정치인 수프미 다스코(Sufmi Dasco)를 포함한 국회 부의장들이 답변을 마친 오후 3시 30분경부터 소요가 벌어졌다. 수프미 의원의 해산요청에 따라 대다수의 학생들이 자리를 떠났으나 일부 시위대들이 국회의사당 콤플렉스 안으로 돌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경찰들이 나서 최루탄과 물대포를 쏘며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했고 그 과정에서 일단의 폭도들이 시위 현장에 나와 있던 인도네시아 국립대학교(UI) 교수 아데 아르만도를 공격해 중상을 입히는 사태가 벌어졌다.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2019년 재선에 성공해 이제 2년 남짓 잔여임기를 남은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임기를 2년 쯤 더 연장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 주요 인사들과 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정당들에서 그간 쏟아져 나온 것이 문제였다.

 

그런 생각을 처음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바흐릴 라하달리아 투자부 장관이었다. 지난 1월 그는 조만간 선거철이 도래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정치권의 각축전이 팬데믹 이후 인도네시아 경제재건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이유였다. 이러한 선거연기 화두는 2월 말에 접어들면서 더 많은 정치인들의 지지를 얻어 골카르당 아이를랑가 하르타르토 총재, 국민각성당(PKB) 무하이민 이스칸다르 총재, 국민수권당(PAN) 줄키플리 하산 총재 등이 속속 2024년 선거연기를 주장하고 나섰다. 조코 위도도 정권 최고 실세 루훗 빈사르 빤자이탄 해양투자조정장관은 빅데이터에 따르면 국민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 임기연장에 찬성한다고 발표했지만 그 빅데이터의 근거는 내놓지 못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열성 지지자들은 아예 개헌을 통해 대통령 3회 연임이 가능하도록 고쳐 조코 위도도 대통령의 2024년 대선출마를 합법화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사이풀 무자니 연구자문회사(SMRC)가 진행한 3월 여론조사에서는 대다수의 인도네시아인들이 개헌을 통하거나 2024년 선거를 연기하는 방식으로 대통령 임기를 연장하는 것에 거부의사를 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팬데믹을 이유로 선거를 연기하는 것에 대해 응답자의 78.9%가 반대의사를 표했고 경제문제로 선거를 연기하는 것에는 79.8%, 임기 내 신수도 이전을 위한 임기연장에 대해서는 78.5%가 반대한 것이다. 한편 응답자의 73%는 헌법이 정한 대로 대통령 임기는 2회 연임으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해당 여론조사는 선거연기, 임기연장에 대한 논의가 지속되면서 조코 위도도 대통령 지지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 국정수행 긍정평가율은 64%로 지난 12월 조사 당시 71.7%에서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러나 선거연기와 대통령 임기연장에 대한 제안이 야당은 물론 여당 내부에서도 강력한 반발을 일으키면서도 이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 움직임이 계속 가중되어 왔다. 심지어 지난 3월 중순에는 “인도네시아인들의 희망 #2024년에도 조코 위도도에 충성을’이란 슬로건의 배너들이 빨렘방, 잠비, 남부 람뿡 등 수마트라 지역 도로에서 나부꼈고 3월 말에는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여러 장관들이 자카르타 스나얀 스포츠 홀에서 열린 전국마을자치회연합(Adepsi) 집회에 참석했을 때 거기 모인 수천 명의 이장들이 대통령의 임기연장을 지지하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티토 카르나피안 내무장관 역시 5일(화) 총선은 변함없이 2024년 2월로 예정되어 있으며 이는 선관위와 입법부, 행정부가 이미 동의한 사안이라고 설명하면서도 매 5년마다 대통령선거를 치르게 한 것과 대통령 및 부통령의 5년 임기를 최대 2회 연임으로 제한한 현행 헌법의 개정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고 말해 오히려 더 큰 의혹을 남겼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4월 5일(화) 각료회의를 통해 각료들에게 더 이상의 대통령 임기연장 화두 언급을 금지하고 그간 모호했던 입장을 바꿔 2024년 2월 대선을 예정대로 진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것이 당초 4월 11일 대통령궁 앞에서 모이기로 한 시위대가 장소를 바꿔 국회의사당 앞으로 옮겨간 이유였다. 이후 연정 참여 정당들도 속속 해당 주장을 철회하면서 지난 몇 개월간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대통령 임기연장 문제는 마침내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2024년 대선연기와 대통령 임기연장 화두가 불거진 것이 신수도 이전 이슈와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3월 14일(월) 전국 주지사들과 함께 동부 깔리만탄의 신수도 부지에서 캠핑을 하며 전국에서 가져온 물과 흙을 합사하는 기원의식을 하는 등 신수도 이전에 대한 적극적인 의욕을 새삼 내비쳤다.

 

문제는 2020년 초부터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당초 임기 내에 마치려 했던 신수도 이전사업의 본격적인 시작이 2년가량 늦어졌다는 것이다. 신수도 이전은 총 466조 루피아(약 40조3,000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며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중 5분의1을 국가재정에서 지출하고 나머지는 민간부문과 해외투자자들로부터 조달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 건국 이래 최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팬데믹과 예산부족으로 2년을 허비한 현 정권은 신수도 이전을 위한 핵심 프로젝트 대부분을 마치지 못한 채 다음 정권에 넘겨줘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현 정권으로서는 막대한 이권이 걸린 프로젝트를 겨우 시작했는데 결국 남 좋은 일을 하게 된 셈이다. 그러니 개헌을 통해 대통령 3연임을 하든 임기를 연장하든 해서라도 무조건 저 프로젝트를 현 정권이 진행하려 했던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기조로 정부 당국을 비난하는 기사나 컬럼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루꾼을 이룬 것이다.

 

신수도 건설 당국은 현지 핵심 행정센터 건설을 현 정권 임기 중인 2024년 상반기까지 완료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2단계 사업은 새 정권이 2025년에 시작하게 된다.

 

신수도 대통령궁 디자인

 

식용유와 디젤유

한편 작년엔 델타변이 바이러스 창궐 속에 의료용 산소통 충전소에 긴 줄을 늘어섰던 인도네시아인들은 올해 들어 싼 식용유와 디젤유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있다.

 

튀겨먹는 음식문화로 인해 식용유 사용량이 많은 인도네시아에서 식용유는 가장 중요한 생필품 중 하나여서 식용유 가격인상이나 품귀현상은 현지인들에게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작년 하반기 팜유 수확량 감소가 가격인상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당국이 빨리 상황을 회복시키지 못하면서 통상부 장관은 ‘식용유 마피아’ 색출과 엄단을 약속했지만 두 달이 다 되도록 단 한 명의 마피아도 검거하지 못했다. 4월로 접어들면서 식용유 물량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가격은 전혀 회복되지 않은 상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디젤 수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3월 하순부터 주유소마다 차량들이 몇 시간씩 장사진을 치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미 몇 개월째 고질적인 공급부족 사태를 겪고 있는 곳도 있다.

 

당국에서는 특정지역 수요증가로 인한 유통교란으로 인해 디젤유 공급부족이 벌어졌다고 하지만 사실상 디젤유 대란은 정부 보조금을 받는 디젤 가격이 리터당 5,150 루피아(약 440원)인 반면 보조금 받지 않는 디젤은 리터당 1만1,000 루피아(약 940원)로 두 배 넘게 벌어지면서 심화되고 있다.

 

물론 상당부분 목하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 탓도 적지 않지만 원칙적으로 공장이나 광산에서는 보조금 없는 산업용 디젤을 사용해야 하나 적지 않은 중간업자들이 보조금 있는 민간용 디젤을 산업용으로 둔갑시켜 공급하여 보조금 규모만큼 폭리를 취하는 실태가 민간용 디젤 품귀현상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임을 매체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는다. 민간용 디젤이 산업용으로 대부분 흡수되기 때문에 시중에 디젤이 동난 것이다. 그걸 매체들이 모를 리 없다.

 

실제로 이런 현상은 술라웨시 동남부 끈다리(Kendari)나 깔리만탄, 수마트라의 탄광 인근 도시의 시내 주유소에 10년도 전부터 보조금 디젤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시내 주유소로 공급되어야 할 보조금 디젤유가 산업용으로 둔갑해 광산 중장비나 민간 발전장비 용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조금 있는 디젤과 보조금 없는 디젤의 가격차가 벌어질수록 전국적으로 디젤 마피아들은 보조금 디젤유 빼돌릴 유혹을 더욱 떨치기 어렵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정황에 대한 조사와 유추가 가능하더라고 경찰이 그렇게 발표하지 않는 한 기자들은 그런 기조의 기사를 좀처럼 쓰지 않는다. 끄자웬의 루꾼 탓일까? 아니면 단순히 용기나 증거나 부족하기 때문일까?

 

 

메가와티의 고민

민주투쟁당(PDI-P) 총재인 메가와티 수까르토뿌트리 전 대통령은 최근 점점 더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차기 대선 때문이다.

 

최근 정치설문조사에 따르면 민주투쟁당 소속 간자르 쁘라노워 중부자바 주지사가 그린드라당 총재 쁘라보워 수비얀토와 자카르타 주지사 아니스 바스웨단 등 잠재적 대선후보 여섯 명보다 더 높은 당선 가능성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설문조사는 여론조사회사 인티카토르 뽈리틱(Indikator Politik)이 지난 2월 중순 진행한 것으로 17세 이상 국내 성인남녀를 무작위로 뽑아 그중 1,200명에게 받은 응답을 집계한 것으로 대선후보군이 33명, 19명, 일곱 명, 세 명일 경우를 상정해 각각 조사했고 오차범위는 2.9%다. 

 

첫 질문은 33명 예상 후보의 이름을 모두 제시하고 만약 지금 당장 대선 투표를 한다면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을지 물었다. 이 경우 답변은 쁘라보워가 21.9%로 선두였고 간자르 주지사와 아니스 바스웨단 자카르타 주지사가 각각 19.8%, 16.4%로 그 뒤를 따랐다. 쁘라보워 수비얀토는 앞서 2014년과 2019년 대선에서 두 번 조코 위도도 대통령과 맞붙었던 그린드라당 총재로 현 정권 국방장관으로 입각한 상태다.

 

이들 세 명의 정치인은 민주투쟁당 정치인이자 현직 사회부 장관인 뜨리 리스마와티(Tri Rismawati), 전 해양수산부 장관 수시 뿌지아스뚜티(Susi Pudjiastuti), 현직 부통령 마루프 아민이 포함된 19명 후보의 경우에도 여전히 선두권을 형성했다.

 

그런데 후보자를 일곱 명으로 줄이니 이변이 일어났다. 간자르 주지사가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인디까토르는 후보를 일곱 명으로 줄였을 때 간자르 표가 늘어난 것에 대해 일곱 명 후보군에 자신이 원래 지지하던 후보가 포함되지 않은 응답자들이 대거 간자르 지지로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쁘라보워의 경우 2019년 대선 당시 투표 결과에 비해 현재 당선가능성이 크게 하락했다. 그가 국방장관으로 입각한 후 대중의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게 된 것이 지지율 하락의 주원인으로 꼽혔다. 주지사들에 비해 국정전반에 대해 대중 앞에서 코멘트할 노출기회가 줄었기 때문이란 것이다. 쁘라보워가 대체로 침묵하는 동안 주지사들과 다른 경쟁자들은 지금도 자신들 얼굴을 담은 옥외광고판을 전국 곳곳에 세우고 있다.

 

하지만 간자르의 인기가 오르고 있다 해서 그가 곧바로 민주투쟁당의 대통령 후보가 될 것이란 보장은 아직 없다. 당내 엘리트들이 간자르에 맞서 당내 적통 뿌안 마하라니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뿌안과 간자르 사이의 라이벌 의식이 이미 오래전부터 비등점을 넘어 당내에선 대선을 앞두고 더욱 그 골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예로서 2021년 5월 민주투쟁당 내부합동회의가 중부자바 스마랑에서 열렸는데 정작 해당 지역의 주지사인 간자르가 초청조자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그를 경원하는 당내 분위기가 읽힌다.

 

  민주투쟁당의 여제(女帝) 메가와티 수까르노뿌트리는 당의 2024년 대선후보를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의중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다른 당들이 차기 대선주자들을 일찌감치 추대하면서 2024년 대선을 벌써부터 준비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민주투쟁당이 선거 승리를 바란다면 그간 지속적으로 높은 인기를 누렸고 최근 더욱 상승세를 보이는 간자르 주지사를 당의 대선주자로 지정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메가와티가 그를 선택하지 않고 오히려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수카르노-메가와티로 이어지며 이미 2대에 걸쳐 대통령을 배출한 자신의 가문에서 뿌안 마하라니라는 3대째 대통령을 배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메가와티에게 있어 간자르 쁘라노워 주지사는 민주투쟁당의 유력 대선후보가 아니라 눈엣가시일 뿐이다.

 

그게 그토록 명백한데도 현지 언론들이 대놓고 그렇게 쓰지 않는 것은 역시 언론들이 끄자웬과 루꾼 문화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뿌안 마하라니(왼쪽)과 메가와티 수카르노뿌트리

 

현지에서 회사를 운영하거나 부서를 맡아 부하직원들을 관리해본 사람들은 누군가 괴팍한 성격으로 직원들 사이에서 업무 분위기를 크게 해치거나 소소한 비리를 저질러 회사에 손해를 끼치고 있는 것을 대부분의 직원들이 뻔히 알면서도 외국인 상사에겐 아무도 일언반구 보고가 없다가 정작 문제의 직원이 퇴사하거나 야반도주하고 나면 그제서야 모두가 나서 성토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자주 경험하게 되는데 그것 역시 루꾼을 중시하는 끄자웬 문화의 영향이 분명하다. 그것을 꼭 비겁함이라고 말하고 싶진 않다. 그런 모습이 대부분 매체들 보도행태에서도 엿보이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쉑 수바키르와 삽다빨론을 탓할 수밖에.(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