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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 병역거부자 지뢰지대 투입

beautician 2021. 12. 22. 11:01

 

2005년 5월 중앙일보에 이런 글이 올라왔습니다.

 

 

 

 

병역거부자들을 지뢰지대에 쳐넣고 지뢰제거작업을 시키자는 이 글의 논리는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뢰제거나 폭발물제거는 고도의 집중력과 경험을 요하는 것이고 당연히 철저한 교육과 해당장비를 위한 예산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미확인지뢰지대의 위치상 해당업무는 군부대에 일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20개월 병역의무를 지뢰제거작업으로 대체하자는 발상은 특정부류의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넣어 '사회적 지뢰제거작업"을 하자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지뢰제거도 필요한 일이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병역기피 올무를 벗겨주려는 시도도 바람직하지만 이런 식으로 둘을 엮는 것은 위험천만하고 무책임한 사고입니다. 온갖 사고와 부정부패를 저지른 기업인 정치가들은 때가 되면 그토록 쿨하게 사면해 주면서 양심적 병역기피자들은 지뢰지대로 몰아 넣자고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양로원이나 고아원에서 대체근무시키자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지뢰지대에 보내자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병역거부한 자들에게 지뢰제거시키자는 발상이 신박하긴 하지만 그러자면 공병 훈련받고 군에서 지급하는 장비 들고 지뢰제거해야 할 텐데 그건 결국 병역기피자의 올무를 벗겨주는 게 아니라 병역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병역을 거부했으니 니들은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쉬운 일은 택도 없고 지뢰제거 정도는 해야 너희 죄에 걸맞다...라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대놓고 말하는 것도 놀랍고 그걸 지면에 실어준 중앙일보도 놀랍습니다.

지뢰제거 반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인원과 제대로 된 장비로, 제대로 합시다.

그리고 집총교육대신 할 수 있으면서도 평화적 신념에 걸맞는 것들은 지뢰제거 말고도 의료 토목 오지봉사 119구조활동 등등 다른 것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일반 병역기피자들과 기본적으로 그 궤를 달리 합니다. 그들은 가용한 모든 방법을 통해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으려하고 그에  상응하는 댓가나 처벌마저도 기피하면서도 한국사회의 모든 혜택을 누리려 하는 일반 병역기피자들과 달리 대개의 경우 자신의 행동과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 신념을 위해 사법처리와 옥고를 포함한 모든 결과를 감수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양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입니다.

예전 어떤 주지사 한 명의 신념으로 인해 진주의료원이 문을 닫아 직원들과 환자들이 하루아침에 자기 자리를 잃었고 또 다른 주지사는 수십만명 학생들의 밥그릇을 걷어차며 무상급식을 주지 말자는 신념을 펼치다가 지사직을 잃었는데 그들의 신념은 고뇌에 찬 숭고한 결단이고 일평생 총기를 잡지 않고 어떤 인간도 적대시하지 않겠다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신념은 기필코 지뢰지대로 보내버려야 할 죄악일까요?

그러자는 신념은 또 얼마나 대단한 신념인가요?

 

2021. 12. 14

(2015. 5. 19. 원본의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