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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니켈광산 영적방어작전 (2)

beautician 2022. 1. 8. 11:47

ep2. 권총 차고 다니는 동네

 

아무튼 릴리는 돈과 이해에 얽매여 자기 편한 쪽으로 현실을 비틀고 왜곡해 보고하며 비용만 달라고 요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현장상황을 곧이곧대로 보고 얘기해 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선적이 임박해 있었으니 릴리는 그 과정을 전문적으로 감독할 사람도 필요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그 아세라의 제재소 때문에 파산하기 전까지 릴리는 나와 8년쯤 함께 일했습니다. 처음엔 내가 고용주였는데 나중엔 동업자가 되었다가 이젠 자기가 보스가 된 셈이었어요. 

 

그때 난 미용기기 수입판매를 하면서 나긋나긋한 미용업계에서 벤쫑(bencong), 반찌(banci)들과 헤어와 네일을 논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렇게 예비군 소집되듯 릴리의 광산에 투입되었습니다. 초창기에 남자들 세상인 광산판에서 무던히도 고생하던 릴리가 바뚜리찐(Batulicin)에서 비로소 똥깡(Tongkang – 바지선)에  석탄을 선적하기 시작하면서 난 릴리가 요청할 때마다 동부자바 뜨렝갈렉과 꾸빵, 소롱, 술라웨시의 망간, 니켈 광산들, 자싱아의 아연광산 같은 현장을 숱하게 다니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기 때문에 광산이 전혀 낯설지는 않았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13년 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바로 얼마 후인 2014 1월부터는 광물원석에 대한 수출금지조치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릴리는 원석 수출이 아직 자유로운 12월말까지 수십만 톤의 오더를 받고 이미 제티 인근 앵커리지에 5만 톤짜리 벌크선 여섯 척을 순차적으로 불러놓은 상태에서 원석을 캘 현장 중장비들 주유 용도로 매일 3~5천 리터씩 경유 유조차를 광산으로 올려 보내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굵직굵직한 대금은 통장을 통해 이체되었지만 현장 계약직 노동자들에게는 현금이 지급되어야 했으므로 나도 가끔은 운동 가방에 현금을 한 가득 담고 광산으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현금이 지급되어야 하는 것은 임금 말고도 많이 있었습니다. 관리들과 유지들, 양아치들에게 찔러주어야 하는 돈들은 수표나 외상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공권력이 도착하려면 4-5시간 걸리는 그 오지에, 그래서 현금 가방을 실은 차량들이 광산 부근 마을에 들어설 떄까지 몇 시간 씩 한적한 산길을 달려야 했으니 그걸 노리는 놈들이 없을 리 없었습니다. 무장강도들이 판을 쳤고 그들을 대비한 자경단이나 보안요원들도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현장엔 무기들이 굴러다녔고 특히 총기를 휴대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운전사들이 끄리스 단검을 품고 다니거나 광산에 고용된 군인들이 장전된 소총을 들고 다니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계약직 현장 소장도 권총을 옆구리에 차고 다녔고 현장 사무실 캐비닛엔 소총도 여러 자루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들리는 말로 릴리의 현장소장 디스타로는 어느 장군의 자제로 정식 허가를 득해 총기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으나 마피아 두목 로니가 들고 다니는 권총은 절대 허가를 받았을 리 없었습니다.

 

 

 

광산에 처음 올라 가던 날, 돈가방을 가져가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게 일단의 보디가드들을 붙여주던 릴리가 몰래 내민 작은 가방에도 권총이 들어있었습니다. 민간인들이 공공연히 지니고 다니던 총기들은 군용과는 달리 화약을 터뜨려 얻은 추진력으로 탄두를 날리는 방식이 아니라 압축가스로 쇠구슬을 쏘는 것이었지만 손바닥 정도는 간단히 관통하는 화력이었으니 근거리에서 머리를 쏘면 분명 살상이 가능할 터였습니다. 그렇지만 광산현장에서 생산과 선적을 감독하겠다는 사람이, 그것도 외국인이 공공연히 권총을 차고 다닐 수는 없는 일입니다. 로니 패거리들이 만약 그 오지 산중의 밤길에서 내 차 뒤를 따라 붙는다면 그런 권총을 몇 자루 가지고 있다 한들 돈가방은커녕 내 한 몸 지킬 수도 없을 게 뻔했습니다. 그런 총기는 발사할 때 화염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소음기를 끼운 것처럼 총성도 거의 없이  밤에 도로변 숲 속에서 매복을 당한다면 총알이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고 속절없이 당할 판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모골이 송연해졌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상황을 그동안 여자 몸으로 혼자 컨트롤하며 군인들, 깡패들, 양아치들, 부패관료들, 마을 유지들 사이에서 내내 위태로운 줄타기를 해온 릴리가 대견스럽기도 했습니다. 물론 권총은 괜히 가지고 다니다가 문제가 되면 추방당할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였으므로 보디가드에게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릴리가 자기 아버지뻘이 되는 큰형부와 함께 다시 광산에 올라가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한때 인근 어떤 섬의 짜맛(Camat), 그러니까 구청장급 공무원을 지냈던 분인데 씨큐리티라며 두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씨큐리티, 그러니까 보안요원으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족히 70살은 넘어 보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30대 후반 정도였는데 어깨까지 내려온 긴 머리에 늘씬하게 빠진 가죽 빽구두를 신고 있었던 것입니다. 광산에 올라간다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두 사람 모두 어딘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었지만 절대 보안요원의 아우라는 아니었습니다.

 

스피리춸 씨큐리티를 위해서라고요.”

릴리의 말에 난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씨큐리티면 씨큐리티지 스피리춸 씨큐리티(Spiritual Security)라고?  영어를 전공한 사람의 양심상 그걸 도저히 영적 보안이라 할 수 없어 사기진작을 위한 보안강화 정도로만 해석하고 싶었습니다. 릴리는 시간만 나면 날 붙잡고 알라와 알꾸란과 위대한 나비(Nabi-선지자)들에 대해 얘기하며 사람 진을 빼던 독실한 이슬람교도였는데 저 사람들이 아무리 무당이나 주술사 같은 냄새를 풍기고 있지만 설마 주술로 귀신을 부려 광산의 영적 보안을 강화하려 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