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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천사들

우리 동네 천사들 (6)

beautician 2022. 1. 3. 11:51

ep6. 좌충우돌

 

 

루디 하디수와르노 미용실 체인은 4단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루디 하디수와르노(Rudy Hadisuwarno)라는 이름만 달고 있는 미용실들은 그 중 최고급에 속하고 그 중에서도 ‘Executive’가 뒤에 붙어 있는 곳은 부유한 상류층들을 주고객으로 합니다. 일반 서민 대중 대상의 저가 미용실 브라운 살롱(Brown Salon)과 살롱 루디(Salon Rudy)는 일반 몰에서는 물론 자카르타 외곽이나 인근 위성도시들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루디 하디수와르노 개인의 명성과 그의 미용실 체인 위상은 아직 인도네시아에서 필적할 만한 경쟁자가 드물고 그 지분도 적지 않아 미용실 브랜드로 출시되는 헤어 관련 상품들도 적지 않고 현재 현지 미용실 산업 중견업체로 발돋움한 마이 살롱(My Salon)이나 키디컷(Kiddy Cuts)같은 미용실 체인들도 처음 론칭할 때에는 로열티를 내고 루디 하디수와르노의 이름을 빌려 달고 그 명성과 관린시스템에 의지해 시장에 연착률 했었죠. 

 

스텔라는 루디 본사에서 기본교육을 받은 후 살롱 루디 체인의 한 아웃렛에 배치되었습니다. 처음 스텔라가 배치받은 깔리바타(Kalibata)몰에서 부아란(Buaran)몰로 자리를 옮겼을 때만 해도 센티옹의 숙소에서 깔리바타가 너무 멀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매일 오토바이로 붐비는 좁은 깔리말랑(Kalimalang) 도로를 지나야 도착할 수 있는 부아란 역시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부아란에서 다시 뽄독 끌라빠(pondok Kelapa)로 옮기게 되었을 때 근무지를 옮기는 타이밍이 너무 잦은 것 같아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루디 본사에서는 스텔라의 출퇴근비용은 물론 숙소비용까지 지원해 주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비용은 해당 미용실의 OM(outlet manager), 즉 아울렛 관리책임자를 통해 지출되는 것이었는데 프랜차이즈점에서의 OM이란 본사 파견직원인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점주가 고집을 부려 자기 오른팔을 앉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바, 깔리바타에서는 약속된 숙소비용을 이런 저런 이유로 지불하지 않아 스텔라는 숙소를 근처로 옮기지 못하고 여전히 센티옹에서 다녀야 했답니다. 하루 3만 루피아 정도, 한화로는 3,600원 정도 되는 출퇴근비용과 중식수당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고요. 스텔라가 루디 본사의 특별한 배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OM이 고까워했서 일부러 스텔라를 힘들게 했던 것 같습니다.

 

 

똑같은 상황이 부아란에서도 벌어졌습니다. 그런 상황을 루디 본사가 모를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갈등이 시작된 아울렛에 스텔라를 계속 두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여긴 본사가 다시 옮겨준 세 번째 근무지인 뽄독 끌라빠에서도 스텔라의 커미션을 정상적으로 계산해 주지 않았습니다. 미용실에서의 급여체계는 대개의 경우 쥐꼬리만한 본봉과 별도로 자신이 담당한 손님 숫자만큼 커미션을 계산해 한 달에 한 번 정산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그렇게 모인 한달 커미션이 웬만한 대기업 지사원 급여 수준이 되는 특급미용사들을 시내 고급 미용실에서는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었지만 당시 현지 최저임금인 20-30만 원에더 미치지 못햇습니다. 하지만 한달 월세를 내고 한 사람 먹고살 식료품 사기엔 충분했던 그 돈이 스텔라 계정에 적립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스텔라가 수습사원이란 이유로 일은 스텔라가 했지만 스텔라 교육담당으로 지정된 미용사가 커미션을 가로채고 있었던 겁니다. 그건 경제적으로 치명적이기도 하거니와 치욕적인 일이기도 했습니다.

 

“스텔라가 고아라서 그런 짓을 당하는 거야?”

이걸 내가 루디 본사에 얘기해야 하는 건가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루디 측에선 내 얼굴을 봐서라도 뭔가 조치를 취해 주긴 하겠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어요. 이런 상황이 계속 벌어지면 이미 루디 측 사람들 사이에서  스텔라가 내 사람이라고 어느 정도 소문이 난 상태여서 나로서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고 그렇다고 계속 루디의 특정 프랜차이즈 아웃렛에 내가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건 분명 주제넘은 행동이 될 터였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끌라빠가딩 인근에도 루디 아웃렛이 몇 개 있는 걸로 아는데 그쪽으로 스텔라를 배치해 주시면 저희도 좀 더 쉽게 자주 스텔라 근황을 들여다 보면서 돌봐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 홈그라운드인 끌라빠가딩의 미용실들은 대부분 나나 메이의 말빨이 통하는 곳이었으므로 그곳 루디 살롱들도 스텔라에게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메이를 통해 그렇게 요청을 넣자 루디 측에서는 흔쾌히 수락했고 스텔라는 일주일 후 아르타가딩몰(Mall Artha Gading) 1층에 있는 아웃렛으로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센티옹에서도 그리 멀지 않았고 무엇보다 우리가 자주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이젠 스텔라가 부당하게 불이익 당하는 일 없도록 돌봐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미용실 경리가 또 스텔라를 왕따 시킨다고….?”

하지만 스텔라가 아르타가딩몰에서도 비슷한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듣고서 난 고개를 갸우뚱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곳 미용실 경리는 예전 다른 에피소드에서 소개했던, 우리가 데려다 썼지만 사고치고 도망간 후 어떤 벤쫑 동성애 미용사의 여자역할 빼웡(Pewong)으로 전락했던 헤르디의 부인 레레가 출산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후 한 차례 전근해와 근무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스텔라의 발령소식을 듣고 미리 레레를 찾아가 특별히 부탁까지 미리 해 두었던 터였습니다. 그런 상황을 굳이 스텔라에겐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스텔라가 알면 날 믿고 버릇없이 굴까봐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좀 이상하잖아?”

“그러게요…”

메이도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그건 상대방 문제뿐 아니라 정작 당사자 자신에게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기 쉬웠습니다. 스텔라가 발령받는 미용실 아웃렛에서 매번 터무니없는 불이익을 당하거나 자신을 지독히 시기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원인이 혹시 스텔라에게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그러나 당시 바쁘게 돌아가는 회사일 때문에 당장 아르타가딩 아웃렛으로 달려가 스텔라나 레레에게 상황을 묻는 것은 우선수위에서 뒤로 밀렸습니다.그러다가 마침내 짬을 내서 그 미용실을 들른 것이 그로부터 두 달쯤 지난 후의 일이었습니다. 마침 공교롭게도 그날 스텔라가 출근하지 않았어요.

 

“걔 요즘 좀 이상해요. 일도 건성이고…, 이미 미용실에 나오지 않은 게 벌써 사흘째라고요.”

스텔라의 출근카드를 꺼내 보이며 불성실한 최근 근태를 얘기하는 레레에게 달리 할 말이 없었습니다. 미용실에서 돌아나오며 난 기분이 몹시 언짢았고 메이도 화가 나 보였습니다. 레레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스텔라에게 모종의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린 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는 셈이었어요.

 

“너 지금 어디 있는 거야? 미용실을 며칠씩 무단 결근할 정도로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라도 미리 얘기를 했어야 할 거 아냐?”

내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스텔라에게 전화를 건 메이는 목소리에 화가 뭍어 나왔습니다.

“그게…, 사실은 오빠들 때문에…..”

 

스텔라가 살고 있던 센티옹 까위까위 골목의 꼬스에 낮에 한 번 찾아왔다던 자칭 경찰이라던 사람이 스텔라가 퇴근한 저녁시간에 다시 찾아와 스텔라의 오빠들이 둘 다 감옥에 가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네고를 걸어온 것이 몇 주 전의 일이었다고 합니다. 오빠들은 늘 마약에 쩔어 살았고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스넨 시장과 뀌땅(Kwitang)지역 일대에서 소소한 절도, 강도를 저지르다가 경찰에 검거되었던 거지요. 그들이 당시 아직 경찰서 유치장에 있었는지 이미 교도소로 송치된 상태였는지는 분명치 않았지만 아무튼 스텔라로서는 그들을 빼내거나 영치금을 넣기 위한 여력이 전혀 없었고 사실 오빠들이 유치장에 간 것도 이미 한 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었지요. 그래서 놔두면 머지 않아 다시 나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로 며칠 전 둘째 오빠가 유치장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죠.”

 

메이도 남동생을 같은 케이스로 잃었습니다. 실제로 돈만 있다면 교도소 안에서도 얼마든지 마약을 구할 수 있고 돈이 정말 많다면 그 안에서도 나름대로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유자재로 외출 외박도 할 수 있는 것이 당시 인도네시아 교도행정의 현주소였습니다. 당시 교도수 수감과 함께 찾아온 갑작스러운 마약 중단 부작용이 남동생의 급성 간경화로 이어졌는데 교도소 측에서 요구한 돈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이 결국 세상을 뜨고 말았던 겁니다. 사실 그게 정말 간경화였는지도 모릅니다. 비용 때문에 부검조차 하지 못했으니까요.  스텔라의 둘째 오빠에게도 어쩌면 같은 운명을 맞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았습니다. 

 

“정말 그 일 처리하느라 결근한 거였을까?”

“그렇지만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미용실엔 물론 저나 엄마(티티 아줌마)한테 한 마디도 없을 수가…”

메이는 수긍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메이와 스텔라는 13살 터울이었지만 스텔라는 티티 아줌마에게는 물론 그동안 메이에게도 ‘마마’라고 부르고 있었어요. 최근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일반적이었던 조혼풍속을 생각하면 그리 무리한 호칭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스테피도 메이를 엄마라고 부르며 어리광을 부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그간 메이도 스텔라 자매를 자기 아이들 부듯 대했습니다. 특히 스텔라를 살롱 루디에 들여보낸 후 스텔라의 이익과 입지를 지켜주려 백방으로 노력했죠. 그런데 당시의 모양새는 마치 스텔라 쪽에서 서서히 메이의 손을 놓아 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스테피가 바딱 부부에게 입양된 직후였고 스텔라도 스테피의 양부모 측과 교류하기 시작하던 때였죠. 자신이 스테피의 양부모들과 저울질 당했다고 생각한 메이는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그리고 스텔라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어찌되었든 이제 고인이 된 스텔라의 오빠를 애도하고 스텔라의 상실감을 위로해 주었어야 할 타이밍이었는데 말이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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