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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천사들

우리동네 천사들 (5)

beautician 2022. 1. 2. 11:41

 

 ep5. 떠나 보내기

 

 

루디 하디수와르노가 스텔라 자매에게 마련해 준 새로운 환경은 나나 메이가 당초 기대한 것을 훨씬 넘어서 있었습니다. 내가 원래 기대했던 것은 스텔라에 대한 처우였지 스테피에 대한 것까지는 아니었거든요. 스텔라가 루디 밑에서 교육을 받고 근무하는 동안 루디의 각별한 관심을 받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문제들, 예컨데 집에 남은 스테피를 돌보고 등하교를 돕는 일 정도는 어떤 식으로는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었죠. 물론 스테피의 학교 숙제를 봐주거나 음식, 옷가지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주는 것이 거의 여력이 없을 것임을 감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스터 루디가 스텔라와 스테피가 당면한 문제들 대부분을 한 방에 해결해 준 것입니다.

 

내가 한 일이 아니에요. 교회의 위원회에서 하는 일이니 나한테 고마워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사 같은 아이들을 도울 기회를 주었으니 저나 교회에서 당신한테 고마워해야 할 일인 거죠.” 그렇게 말하는 미스터 루디가 오히려 천사같이 보였습니다.

 

루디 하디수와르노

 

스테피가 서부 자카르타의 기숙학교에 들어간 후 루디 하디수와르노 측에서는 우리가 제품 배달이나 미팅을 위해 본사를 방문할 때마다 담당 직원이 내게 스테피의 근황을 보고하듯 얘기해 주었는데 내 입장이 좀 곤란해졌습니다. 내가 루디를 끌어들인 건 맞지만 내가 스테피의 후견인도 아니었고 스텔라를 돕는 일은 원래 메이가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남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버린 느낌이었고 우리가 루디에게 감사해야 할 상황에서 오히려 매번 근황보고를 받는 게 부담스러웠습니다. 스텔라에게서도 근황을 듣고 있는데 말입니다. 몇 차례 손사래를 쳤지만 루디 측에선 고집을 부렸으므로 결국 난 루디 측 살론체인과 관련된 업무를 대부분 메이에게 맡기고 루디 본사에 잘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중엔 메이 역시 스텔라를 통해 듣겠다며 여러 번 얘기한 후에야 비로소 루디 측도 스테피에 대한 근황보고를 중단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습니다.

스텔라는 블록엠 근처 불룽안(Bulungan)의 미용학교에 나가 크림밧과 매니패디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센티옹과는 거리가 멀어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 달라 부탁하자 당장 찌뎅(Cideng) 인근의 잘란 끄세하탄(Jl. Kesehatan)에 있는 루디 본사로 출근해 공부하도록 조정 받았습니다. 보건부 식약청이 위치하고 있어 거리 이름 자체가 건강로인 그곳보다 더 가까운 루디 학원들이 있었지만 스텔라는 아웃렛을 배정 받아 나갈 때까지 그곳으로 출근하는 미스터 루디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스테피가 공부하고 생활하게 된 기독교계 기숙사학교는 쾌적하고 우아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 자매는 물론 센티옹 까위까위 거리에 사는 그 누구도 전혀 꿈도 꿔보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센티옹엔 이들 자매가 맞이한 행운을 이를 갈며 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들의 축복기도 덕택이라 주장하는 몰지각한 친인척들도 있었지만 이제 스테피는 그들을 굳이 마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스텔라가 첫 월급, 또는 몇 번의 월급을 받아 자취방 임대료와 생활비를 해결할 준비가 되는대로 센티옹을 떠나 직장 가까운 곳으로 숙소를 옮겨 가는 것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 자매는 아프고 불행했던 과거를 모두 뒤로 하고 희망찬 미래를 향해 전심전력으로 달려가면 될 터였습니다.

 

그 시기의 스텔라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루디 학원에서는 그녀에게 교통비도 지급해 주었고 나는 스텔라가 일할 아웃렛이 정해지묜 그녀가 얻을 숙소의 월세를 몇 개월 치 미리 내줄 용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스텔라는 숙소를 옮기는 것을 서둘지 않았고 그녀의 일상은 미용학원을 다니는 것 외에 크게 변한 게 없었어요. 학원을 다녀오면 티티 아줌마 집에 들러 설거지며 청소를 거들었고 학원이 쉬는 날이면 메이의 아이들을 봐주기도 했지요. 하지만 스텔라의 표정은 확실히 변해 있었습니다.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어요. 스텔라가 행복해 하는 것을 보니 내 마음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늘 변수가 나타나 사람들 생활을 격동하게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스테피가 많이 아프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엔 가벼운 감기 같았던 증세는 점점 스텔라 자매의 부모를 앗아갔던 그런 병세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학교와 미스터 루디의 교회 위원회에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었지만 스테피의 병세는 쉽게 호전되지 않았고 그래서 스텔라는 또 다시 자지러지며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텔라는 교회의 도움으로 학교의 양해를 얻어 기숙사에 들어가 스테피의 병구완을 시작했습니다. 배정받은 미용실 아웃렛에도 당분간 출근할 수 없게 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어쩌면 좋은 일이 있으려는 전조인지도 모르죠.”

국제미용협회 ICD의 메단 세미나에서 마주친 미스터 루디가 미소까지 띄우며 그렇게 말할 때 난 살짝 기분이 나빠지려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어쩌면 스테피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는데 미스터 루디는 좋은 일을 언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테피의 위중한 상황이 어떻게 좋은 일과 연관될 수 있을 지 난 감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메단은 하필이면 스테피 자매가 엑소더스의 장정을 시작했던 그 도시였습니다. 그 당시 두 자매가 정말 먼 길을 걸어, 비록 거지 꼴이 되고 천식을 얻었지만 무사히 함께 센티옹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이 기적이었음을 실감했습니다. 어쩌면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기적들이 어디선가 계속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이 지속되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메단에서 돌아온 날 밤, 퇴근한 메이는 스텔라가 울면서 달려왔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난 마음이 착잡했어요. 스테피의 신상에 뭔가 중대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메단으로 출발하기 전 스테피의 건강이 심각할 정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였으므로 이제 스텔라가 울면서 메이를 찾아왔다면 상황은 이미 최악을 지나쳐 더욱 멀리 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스텔라는 스테피를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해요.”

이 얘기를 스테피가 너무 위독해져서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말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곧 스테피를 입양보내고 싶지 않았는 얘기임을 알아듣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미스터 루디의 교회에 스테피를 입양하겠다는 부부가 나섰다는 것이었어요. 난, 잠시 그게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었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부부는 스테피만 입양하려 했으므로 그것은 스텔라와 스테피의 가족관계가 소멸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까요.

 

스테피가 기숙학교에 들어간 후 미스터 루디가 다니는 교회의 그 위원회에서는 후원하고 있는 시설이나 개인들을 꼼꼼히 점검하고 챙기는 중이었는데 당연히 스테피 역시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얘기도 나누고 때가 되면 시내 몰로 데리고 나가 옷가지며 책이나 필요한 물건들을 사주곤 하던 위원들이 있었어요. 그들 중 한 바딱 부부가 스테피를 눈여겨 보고 있었습니다. 스테피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스텔라보다도 더욱 적극적으로 간병에 나섰던 모양인데 스테피의 상황이 교회 위원회의 규정과 예산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그들 부부는 더욱 확실하게 스테피를 책임지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입양을 제안했던 것이죠. 스테피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그동안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스테피를 절대 고아원에 보내지 않았던 스텔라도 이번만은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스테피를 보내주는 것이 스테피를 살리는 길이었으니까요.

 

그 부부는 즉시 스테피를 서부 자카르타의 유력한 모 병원에 입원시켜 철저한 검사와 치료를 받게 했고 입양수속이 진행되어 스테피의 여권이 나오자 바로 스테피를 싱가포르로 데려가 입원시켰습니다. 한 달도 안되어 완쾌된 몸으로 자카르타의 기숙학교로 돌아온 스테피는 부유한 상류층 바딱족 부부의 양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루디 하디수와르노는 스테피가 학교를 마치면 루디 본사에서 미용교육과 취직을 보장했지만 어쩌면 그럴 필요도 없어진 셈이었어요. 스테피는 더욱 양질의 고등교육을 받게 될 것이고 최고의 미용사보다는 유능한 전문직 여성으로 커갈 공산이 컸습니다. 

 

미스터 루디, 정말 좋은 일을 해 주셨어요. 뭐라고 고맙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지….”

얼마 후 시내 씨티웍(Citywalk) 몰의 스타벅스 앞에서 미스터 루디를 만나 메단에서 그가 했던 말의 깊은 뜻을 헤아리며 이렇게 말하자 그는 예상했던 대로 손사래를 치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내가 한 게 아니라니까요. 그건 저 높은 곳에서 하신 일입니다." 그의 손가락은 하늘을 가리켰어요. "정히 고맙다는 말씀을 하시려면 스테피 양부모에게 하셔야죠.”

 

스텔라와 스테피를 위해 문을 열어 준 것은 분명 루디 하디수와르노 당신이었는데 그는 전혀 생색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의 조카 오스카가 조직의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루디 하디수와르노 조직은 마치 삼국지 촉나라 유비의 인품에 반해 천하의 인재들이 몰려들었던 것처럼 미스터 루디를 존경해 마지않아 주군처럼 모시는 충성스러운 직원들로 북적거렸고 그 당시 형성된 부드럽고 친근한 기업문화는 아직까지도 그 원형을 상당부분 보존하고 있습니다. 루디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스텔라 자매의 모든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듯 보였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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