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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당초 내 인생에 뭔가 쉽고 만만한 게 있을 리 없었다.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우리동네 천사들

우리동네 천사들 (2)

beautician 2021. 12. 30. 12:05

ep2. 매매

 

 

그러던 중 스텔라는 탈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잠깐 숨을 고를 수 있는 작은 창문 같은 것을 발견합니다. 꼬스 가까이에 사는 티티 아줌마였어요

 

티티 아줌마 자신도 그리 풍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오랜 세월 가정폭력에 시달려온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 갈비뼈를 부러뜨렸던 남편의 폭력도 그녀의 착한 심성을 망가뜨릴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티티 아줌마는 스텔라가 자기 집 앞을 지날 때마다 붙잡아 앉혀놓고 굳이 밥상을 차려 주는가 하면 스텔라가 잔심부름으로 정신 없이 이리저리 뛰어 다녀 밥 얻어먹을 틈조차 없으면 튀김 몇 조각이나마 기름종이에 싸서 주머니나 가방에 쑤셔 넣어주곤 했습니다. 처음엔 그 호의의 이면에 숨어 있을 지도 모를 저의를 의심하며 조심하던 스텔라도 나중엔 그것이 정말 순수한 호의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때로는 스테피를 위해 밥을 얻어가기도 했고 그 대가로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찾아와 빨래와 설거지를 돕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겐 터울 크게 나는 언니 뻘인 티티 아줌마의 세 딸들과도 가까워지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티티 아줌마나 그 집 언니들에게 자신의 고민도 조금씩 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면 세상살이의 무거운 짐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스텔라는 세상살이가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을 매월 말, 살이 에이도록 절절히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녀는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단 한번도 월세 50만 루피아를 맞춰 내지 못했고 그때마다 이모에게 입에도 담지 못할 욕설을 참고 들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처음 몇 번은 부족한 대로 받은 걸로 치던 이모는 그런 상황이 계속 되자 나중엔 부족하게 낸 월세 부분을 빛으로 계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스텔라는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뼈가 으스러지도록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빚은 매달 불어나 스텔라가 15살 생일을 맞을 즈음엔 그녀의 능력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 되어 있었습니다.

 

좁은 뒷골목이나 쓰레기차 뒤, 철길 옆 공터에서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마다 어깨를 짓누르는 세상의 무게에 무던히도 몰래 눈물 짓던 스텔라가 그래도 세상에 대한,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은 무엇보다도 동생 스테피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었어요.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사랑으로 충만한 하나님이 분명 아름다운 미래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럴 나이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잔인한 세상은 스텔라에게 스스로의 추악함을 여지없이 드러냈습니다.

 

그래, 네 처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네가 다시는 돈 문제 때문에 걱정하지 않도록 해 줄게. 그 대신 우선 몇 가지 물어 볼 게 있으니 솔직하게 대답해 줘.”

 

센티옹에도 친가 쪽의 먼 친척이 살고 있었습니다. 스텔라는 그쪽 눈을 피해 다니려 애를 썼습니다. 도망쳐 나온 메단으로 다시 잡혀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늦은 시간에 그가 스텔라의 꼬스 방을 찾아와 그렇게 운을 떼더니 남자 경험이 있느냐고 꼬치꼬치 묻기 시작했습니다.

 

네가 정말 처녀라면 그거 살 사람을 소개해 줄게 1,500만 루피아까지 받아 줄 수 있어. 네가 평생 꿈도 못 꿀 돈이지.”

 

1,500만 루피아면 한화로 대충 110만원쯤 되는 돈입니다. 미성년 바딱 소녀의 처녀성은 그 정도의 가치일까요? 그 친척은 그보다 더 비싼 값에 팔아 중간차액을 챙기려는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자를 등치고 몸 뺏으려는 감언이설일 뿐이었을까요? 물론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귀한 보약이라도 다려먹듯 어린 처녀들만 찾으며 입맛을 다시는 어떤 부자들에 대해서 말입니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처절하게 몰리지 않았다면 아무리 포장한다 해도 결국 몸을 파는 일인데 어린 시절부터 기독교 가치관을 배운 스텔라가 받아들일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텔라는 그녀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6살이면 초등학교 입학연령이 되는 인도네시아에서 이미 1년 늦은 스테피를 꼭 학교에 보내고 싶었습니다.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그녀에게, 그래서 그 제안은 말할 수 없이 솔깃했던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하면 그 돈 주시는 거에요?”

그래, 일 마치고 나면 돈봉투 가지고 돌아가는 거야.”

 

스텔라는 그 제안을 받아 들이고 맙니다. 친척은 날짜를 잡아 다시 연락하겠다며 돌아갔고요. 스텔라는 그날 밤 많이 울었습니다.

 

 

 

잠깐. 잠깐만. 그래서? 같은 바딱이라며? 바딱들끼리 왜 그래?”

그렇다니까요.”

 

스텔라가 그 일로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티티 아줌마에게 털어 놓은 것이 몇 다리를 건너 내 귀에까지 들어왔습니다. 그걸 전한 사람은 메이였어요. 메이가 그 티티 아줌마의 큰 딸이었거든요 게다가 메이도 바딱이라면 치를 떠는 사람입니다. 그녀가 미혼모가 된 것도 결혼약속을 내팽개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바딱 남자 때문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대? 설마 걔한테 그래도 좋다고 한 건 아니겠지?”

당연히 그럴 리 없죠. 그래서 스텔라가 못하겠다고 했더니 그 친척 아저씨란 인간이 이제 와서 취소할 수 없다며 길길이 뛰더란 거에요. 계약 위반으로 유치장에 처넣게다고 협박까지 한 모양이라 스텔라가 오돌오돌 떨고 있어요"

 

착수금을 받은 모양이군.

 

애한테 그게 무슨 짓이야. 아직도 그런 개새가 있단 말이지?”

 

속이 부글부글 끊어 올랐습니다. 아무리 내 코가 석 자라 해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무슨 수가 나올 것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때는 바야흐로 사고친 직원들 다 내보낸 후 직원들을 애타게 구하고 있던 터여서 너무 손이 딸려 그런 오지랖을 펼칠 게재가 아니었습니다. 초등학교도 못나온 15살짜리 미성년자를 회사에 데려와 쓸 수도 없는 일이었고요.

 

아무튼 미스터르한테 뭘 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내가 걜 도울 테니 혹시 가능하다면 지원사격을 좀 해달라는 것 뿐이에요.”

 

그게 그거지, 뭐.

메이가 나한테 저런 얘기를 다 늘어놓는 건 나한테 원하는 게 있어서입니다. 하지만 그게 나쁜 뜻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고아를 돕는 일은 내 어머니도 평생 해왔던 일입니다. 자식들도 모르게 어머니는 여러 명의 고아들과 자매결연을 맺고 그들이 독립할 때까지 오랫동안, 그러나 은밀하게 후원했던 것을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후원 받았던 사람들이 아줌마가 되어 내 본가를 들락거리며 이런 저런 시중을 들어주고 있었거든요. 

 

몰랐으면 말 일이지만 이제 사정을 다 듣고 나서도 단지 내가 바쁘다고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비록 스텔라는 당시 아직 얼굴도 모르는 아이였지만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지금까지 당해온 험한 꼴을 다시는 당하지 않도록 할 수도 있을 터였습니다. 어쩌면 두 자매가 살아갈 길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난 잠시 생각에 잠겼고 메이는 내 생각을 읽으려는 듯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무지 부담스러웟습니다. 난 그때 무엇보다도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스텔라 처녀성 브로커로 나섰다는 그 친척 남자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이라 생각하던 중이었으므로 분명 심상찮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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